맥라렌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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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2. 개요
1990년 세상에 등장한 슈퍼카. 과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였다. 영국의 F1 레이싱 팀이었던 맥라렌에서 대뜸 내놓은 일반 도로주행용 슈퍼카인데, 세상에 나온 계기가 참 특별하다. 설계자인 고든 머레이를 비롯한 맥라렌 팀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에...
라는 대화가 오간 후 개발에 돌입... 하여 세상에 등장하였다.[출처]"왜 우리가 슈퍼카 한대 사려고 굳이 이탈리아까지 비행기 타고 가야 하지?"
'''"그럼 우리가 만들자!"'''
3. 프로토타입
최종 양산형은 1992년 모나코GP 전야제에서 공개되었다.
프로토 타입이 나오기전에 Albert와 Edward라는 시험용 차량이 존재했었다. 이 둘은 울티마 MK3 키트[3] 를 베이스로 만들어졌으며 테스트 후 보안상의 이유로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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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 구통계통과 전자장비 테스트용으로 BMW S70/2 엔진과 비슷한 토크를 내기위해 쉐보레 V8 엔진이 올라갔다. 또한 중앙 운전석과 카본 브레이크 등도 실험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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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 BMW S70/2 엔진과 윌리엄사의 변속기, 현가장치, 냉각계통 등 테스트용
이후 총 5가지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3.1. X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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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러닝 프로토타입. 1992년 12월 23일 제작되었다. 1993년 3월 24일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테스트 도중 전복되어 기름 유출로 폭발하였다. 당시 운전자는 부서진 앞 유리창을 통해 빠져나와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고 하며, 이후 맥라렌 전 CEO 겸 회장 론 데니스가 XP1의 잔해를 모두 모아 상자에 담아서 묻어놓았다고 한다.
3.2. X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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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시험용. 테스트 후 다시 고쳤다고 한다.
3.3. X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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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션 테스트와 내구성 시험용. 버터플라이 도어가 인상적이다.
3.4. X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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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박스 테스트용. 아시아 투어에도 사용되었다. 출력은 양산형보다 41마력 적은 585마력.
3.5. X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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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고속도 기록(391km/h)에 사용된 차량이다.
4. 특징
4.1. 무게
혼다 NSX에 큰 영향을 받은 자동차인 만큼 경량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든 머레이의 주도하에 개발되었는데 경량화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클러치 페달에 사용할 볼트의 크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6mm 볼트는 좀 부족하고 8mm 볼트를 쓸 정도로 힘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생각해서 표준 규격에 없는 7mm 볼트를 만들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공구를 사용할 수 없어서 전용 티타늄 공구박스를 줬다. 또한 당시로는 생소한 소재였던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모노코크 차체를 제작한 최초의 차량이다. 심지어는 켄우드 사가 특수 제작한 CD 플레이어에 들어가는 자석은 가볍지만 자성이 없는 알루미늄에 철 가루를 코팅했다. 덕분에 1,140kg의 엄청 가벼운 무게[5] 를 가지게 되었다.
4.2. 3시트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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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반적인 스포츠카의 구조와는 다르게 운전자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운전자 좌우로 자리가 있는 3시트 구조를 채용하고 있다. 설계자인 고든 머레이가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구조라 한다. 무게 중심이 좌우로 쏠리지 않고 운전자의 시야가 보장되며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6] 구조라고. 많은 맥라렌 F1 팬들은 이 구조에 대해서 극찬하지만 맥라렌 F1을 제외하면 3시트를 채용한 슈퍼카가 전무하고[7] 맥라렌에서 F1 이후 제작한 슈퍼카(SLR, 12c) 역시 일반적인 2인승 구조를 택하고 있는 걸 보면 이 3시트 구조의 답이 나온다. 원래 이 차는 양산차의 구조도, 일반 도로주행용의 구조도 아니다. 중앙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서킷에서 레코드라인을 운전자가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결과물. 1인승으로 만들려다 좌우 임시 시트 한 개씩 추가… 정도로 보면 좋다. 중앙선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할 때는 일반 차량보다 전방 시야가 훨씬 나쁘다. 이런 차를 공도용으로 계속 만들어 낼 수는 없고, 동승자에 대한 배려문제도 있고, 승객을 양 옆에 태웠을 때 운전자가 가운데에 끼여서 미칠 듯이 답답한 문제와 좌우의 시선 등... 이런 식으로 계속 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났다.[8]
4.3.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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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당시 맥라렌 포뮬러원 팀은 혼다와 엔진공급 계약을 맺고 있었고, 제작진들 또한 혼다제 엔진을 희망하였다.[9] 허나 혼다에 문의를 하니 맥라렌이 원하는 엔진 제공이 곤란하다고 해서[10] 결국 BMW M Sport의 폴 로쉐[11] 가 850CSi에 들어간 S70 엔진에 DOHC 헤드를 올리고 배기량을 6.1L로 증가시켜 개조한 BMW의 S70/2 엔진을 제작했고 이를 공급받아 사용하게 되었다. 독립 12 스로틀과 흡배기 가변타이밍 캠축(더블 바노스)를 적용하여 627마력을 발휘하고, 드라이 섬프를 채택하여 엔진 장착위치를 낮출 수 있었다.
5. 레이스에서의 맥라렌 F1
후술하겠지만, 고든 머레이는 개발사상부터 맥라렌 F1을 레이스카로 활용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설계와 세팅 자체가 일상생활 용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 다시 레이스 세팅으로 돌린다는 것은 원래 목적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라렌 F1의 어마무시한 포텐셜에 주목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든 머레이를 꾹꾹 찔러댔고, 결국 고든 머레이는 '''"아몰랑 니들 맘대로 해"''' 하는 식으로 반쯤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LM을 베이스로 하여 28대의 GTR버전, 이중 10대는 리어를 연장한 롱테일 버전으로 생산되었다. 1995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F1 GTR이 종합우승을 비롯, 3,4,5위를 차지한데 이어[12] BPR시리즈에서 199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제패했고, 1997년부터 BPR시리즈를 이어받은 FIA GT클래스에서도 두각을 보이며 포르쉐 911 GT1, 메르세데스-벤츠 CLK GTR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13] 97년 다비도프 라이버리의 GTR 롱테일 버전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GT1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GT 레이스에서 인기를 얻어 일본의 JGTC에도 출전하고, 슈퍼 GT로 이름이 바뀐 현재까지도 외국 메이커로서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GT500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맹활약하며 90년대를 대표하는 명기로 남았다.
6. 기록
1992년 생산에 돌입하여 1996년까지 프로토타입과 파생모델을 포함하여 총 107대가 생산되었다.[14] 당초 계획은 총 300대를 제작할 계획이었는데 당시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도중에 양산이 중단되었다. 1994년 독일 Nardo 서킷에서 조나단 팔머가 운전한 차량으로 231mph(약 371.8km/h)에 도달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량으로 등극. 1998년엔 폭스바겐 테스트 트랙에서 앤디 월리스가 rpm 리미터를 해제하고 240.1mph(386.4km/h)에 도달하였다. 시간이 지나 네 종류의 슈퍼카가 맥라렌 F1의 속도 기록을 넘어섰지만[15] 아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연흡기' 차량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6]
7단기어를 추가하거나 기어비를 변경한다면 400km/h를 넘길 거란 의견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바램일 뿐, 실제 고든 머레이는 맥라렌 F1이 시속 400km/h를 낼려면 750마력 정도의 출력이 필요할것이라 밝힌 바 있다.[17]
7. 평가
20세기 슈퍼스포츠카의 명차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차들 중 하나다. 1994년 영국의 ''AutoCar'' 매거진은 맥라렌 F1에 관한 로드테스트를 실시한 뒤 "맥라렌 F1은 지금까지 나온 가장 뛰어난 시판용 자동차다", "F1은 자동차 역사의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며 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될 것이다." 라는 평을 남겼다.
생김새에 비해 차고가 높아 시승기들을 보면 포르쉐 911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생활에 아주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짐칸도 의외의 공간에 마련하여 보통의 수퍼카라 불리는 차량들에 비해서 수납공간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위에서 말했듯 애초에 개발사상이 "일상생활에서도 큰 불편 없이 사용하다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막대한 출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차"를 목표로 했기 때문.
개발 당시 맥라렌 F1의 개발사상에 영향을 준 차량이 바로 혼다의 NSX다. NSX처럼 쾌적하면서도 경량의 슈퍼스포츠 모델을 지향했다고. 고든 머레이도 NSX를 극찬했으며[18] , 맥라렌 F1의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8. 기타
미칠듯한 경량화를 위한 독자부품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가격이 치솟아 당시 60만 파운드가 넘는 가격으로 출시되었고[19][20] 2008년 기준 시세는 200만 파운드가 넘는다.
원래 가격도 비싼데 거기에 감가상각까지 역으로 적용되는 슈퍼카로도 유명하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중고가격이 오히려 올라가기만 한다는 것인데, 슈퍼카 시장에서 이런 예는 손으로 꼽을만큼 희귀한 케이스라고 한다. 경매에서 무려 40억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되어 국내 인터넷 뉴스에 오르기도.[21] 한국에도 한두 대 있다고 한다.[22][23]
아직도 비닐도 안 뜯은 새차가 있다. 관련기사 섀시넘버 060인 차량으로, 차량 테스트와 탁송을 위해 주행한 239km가 총 마일리지라고 한다. 평균 거래가격이 1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조금 더 가격이 비싸게 호가될 것으로 보인다. 허나 일반적으로 클래식카는 오히려 너무 안타면 내부의 그리스나 오일류가 굳거나 산폐되는 문제, 고무류의 경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행거리가 짧다고 해서 무조건 가치가 높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이정도 가치의 슈퍼카라면 보존을 위해 항온항습실에서 질소충전백에 싸여 보관되고 있을 수 있으므로 상태가 정말로 신차 그대로일 가능성도 있다.
이 차의 뉘르부르크링 랩타입은 차덕후들의 영원한 떡밥. 일단 한 드라이버가 7분 45초를 기록한 동영상이 존재하기는 한다. 또한 7분 11초를 기록했다고 말하는 매체도 있으며, 6분 후반대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차량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횡가속도 0.86G에 불과한 코너링성능(닷지 바이퍼가 동시대에 무려 0.96G를 기록했다)때문에 7분 11초와 함께 사실불명. 7분 45초에서 단축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브루나이 국왕의 동생이 9대를 주문했었다[24] . 여전히 7~8대를 보유중.일반버전 1대(티타늄 노란색, 슈마허 싸인이 되어있던 모델. 현재는 미국인에게 매각되어 흰색으로 도색되어졌다.)는 경매로 넘어갔고[25] , GT모델은 영국으로 갔다는 소문이있다.
일본에 10대 정도 있다고 하며 한국에는 90년대 후반에 잠깐 있다가 일본에 간 것으로 전해진다.
황금용자 골드란에서의 주인공인 드란의 모티브가 되었다.
미스터 빈 캐릭터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이 자주색한정판 F1 한 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2번의 사고로 2번 반파된적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 사는 것이 더 나은 수준임에도 본인의 의지로 완전한 수리를 거쳤고, 한정판+유명인 프리미엄으로 나중에 경매에서 무사고 차량보다 비싼 가격에 낙찰되었다.
이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20년전의 구형 노트북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알려져있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에 업데이트로 등장했는데, 성능은 Gr.3 카테고리 내에서 사기급. 그야말로 빠른 최고속도와 좋은 코너링에 멍~한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이 차는 FIA GT1 차량이라 포드 GT LM 스펙 II 테스트 카, 애스턴 마틴 DBR9 GT1 같은 동급 차량이면 몰라도 두 단계 아래인 GT3보다 느린 건 말도 안 된다.
이 차를 효시로 맥라렌의 후속 모델들도 줄줄이 버터플라이 도어를 채택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개발자 고든 머레이는 이웃이 소유한 토요타 세라라는 자동차의 디자인에 반해서 그 문의 형태를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맥라렌 F1의 디자인 요소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맥라렌 F1보다 3년 앞선 시기에 시판된 어느 일본 소형차의 영향으로 지금의 맥라렌들이 큼지막한 버터플라이 도어를 달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9. 후속작
F1은 슈퍼카의 역사 전반에 걸친 높은 기여를 한 차량으로서 수십년이 지나서도 후속차량이 나오고 있다. 맥라렌 오토모티브에서 만든 스피드테일과 고든머레이 오토모티브에서 만든 T50이 있다.
3인승 좌석으로 대표되는 특징들을 갖고 있고 하드코어 레이스카와 다르게 부드러운 GT성향을 띄고 있다.
스피드테일은 8기통 트윈터보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고, T50은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두 모델 다 F1의 컨셉을 이어받고 있지만 세세한 디테일들이 개발자에 의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두 차량을 비교해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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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든 머레이 디자인 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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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4일 공개되었으며, 스피드테일이 1,430kg인데 비해 986kg[26] 이라는 엄청나게 가벼운 무게와 12,100rpm까지 회전하는 660마력의 코스워스제 자연흡기 3,994cc V12 엔진, 그리고 과거 브라밤 BT46 F1 차량과 섀퍼럴 2J 등에 시험 적용되었던 리어 그라운드 이펙트 팬을 장착하고 있다.
가격은 스피드테일보다 비싼 280만 파운드(한화 약 43억원)이며 2022년까지 생산할 예정이다.
10. 둘러보기
[1] BMW의 엔진이다.[2] 이 기록은 2005년 부가티 베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약 8년간 양산차의 최고 속도라는 타이틀을 가졌었다.[출처] : 고든 머레이를 비롯한 주요 개발자들의 저서 Driving Ambition: An Official Story of Mclaren F1[3] F1 차량의 무게 중심과 비율이 비슷하였기 때문에 선택되었다.[4] 이후 F1의 정신적 후속작의 시험용 차량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5] 가장 가벼운 모델의 경우 900kg이 안된다.[6] 다른 스포츠카가 달랑 2명 타면 끝이라는 걸 생각하면...[7] 영국 이외의 국가까지 따지면 캐나다 퀘벡의 슈퍼카인 HTT 플레토어 LC750이 있다.[8] 그러나 고든 머레이가 디자인한 T25와 전기차인 T27이 정체 불명의 자동차 메이커에 팔렸다고 하는데, 이 모델은 바로 운전석이 가운데에 있고 양 옆으로 조수석이 있는, F1과 동일한 형태의 좌석을 채용한 모델이다. 고든 머레이는 아직 3시트 레이아웃을 포기하지 않은 채 차량의 개발을 이어가는 중이며, 그 결과 그의 야심작인 하이퍼카 T50 또한 3시터로 나오게 되었다. 사족으로, 현재는 고든 머레이가 관여하지 않는 맥라렌에서도 F1과 P1의 포지션을 이어받는 3시트 레이아웃의 하이퍼카를 개발했다.[9] 맥라렌 F1개발의 주축이였던 고든 머레이가 혼다 NSX에서 좋은점을 가져와 개발했기에 혼다의 것을 쓰길 원했다.[10] 동시기 라이벌이던 페라리 F50처럼 F1 엔진을 넣어서 F1 기술과 접목시킬려고 했으나. F50조차도 Tipo 036엔진을 그냥 얹지 못하고, 흡배기는 물론이고 엔진의 각 부분을 시판차에 맞게 마개조 수준으로 개량을 해서 겨우 얹었는데도 700마력에서 다운된 520마력에 그쳤다. 혼다는 페라리와 달리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리가 없어서 결렬된 걸로 보인다.[11] [12] 이로서 맥라렌은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첫 르망 도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매뉴팩처러가 되었다.[13] 상술한 911 GT1이나 CLK GTR은 말만 로드카지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레이싱 무대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고 규정상 구색맞추기식으로 로드카를 손꼽힐 만큼 생산한 데 비해, 맥라렌 F1은 레이싱 무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로드카를 사후에 레이싱카로 개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호각으로 달렸다는 점에서 맥라렌 F1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14] 일반버전 64대, GTR 28대, GT 3대, LM 5대, 프로토타입 7대[15] Koenigsegg CCR, Bugatti Veyron, SSC Ultimate Aero TT, Bugatti Veyron Super Sport. 기네스북 월드 레코드 "Worlds fastest production Car" 항목.[16] 최근 슈퍼카의 추세는 자연흡기가 아니다. 자연흡기를 고집하는 메이커는 이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밖에 없는데, 최근 스포츠카들은 다운포스를 더 중요하게 여겨 최고속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페라리역시 엔초 페라리 후속으로 발표한 라 페라리 에서 순수 자연흡기가 아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채용하였다. 또한 앞으로는 터보도 고려중이니 맥라렌 F1의 자연흡기 1등이 깨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17] 고든 머레이가 부가티 베이론을 비평한 내용 중 일부이다. 407km/h를 내기위해서 1,001마력이나 소모해야 하는 베이론의 비효율적이고도 멍청한 공력특성을 까기위한 내용.[18] 개발 중 개인 차로 NSX를 끌고다녔었다.[19] 애초에 가격 제한 같은건 생각도 안하고 만들었다고 한다.[20] 일례로, 엔진룸은 발열을 고려해서 24K 금박을 입혀 놓았다. 방열재로써 금박은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자재이다, 특히 경주용 자동차제작및 항공우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무게대비 방열성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21] 2008년 10월 29일 런던 경매에서 섀시넘버 065번 로드카 차량이 2,530,000 파운드에(약 410만 달러) 낙찰되었으며 이는 맥라렌 F1 거래가중 최고가 기록이다. 당시 주행거리는 484km에 불과했다고.[22]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고 적게는 1~2대, 많게는 6대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중.[23] 그러나 현재 파악된 섀시넘버중에 한국에 있다고 파악된 넘버는 없다고 한다.[24] GTR 1대, GT 1대, LM 3대, 일반버전 4대[25] 국왕 동생이 부패와 횡령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재산압수[26] 람보르기니 세스토 엘레멘토의 999kg보다도 무려 13kg이나 가볍다! 이는 로터스 엘리스의 924kg보다 62kg정도로 10대 남학생 평균 몸무게 정도로만 더 무거운 수준. 고든 머레이의 엔지니어들이 정말 뛰어난 설계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