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ors
}}} ||
1. 개요
도어즈는 '''사이키델릭 록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이자 1960년대 말 록 음악계를 풍미했던 밴드이며 8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동안 '''전 세계를 흔들었던 전설의 아티스트'''다.
2. 상세
도어즈는 데뷔한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전성기를 누린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사이키델릭 록 밴드이다. 베트남 전쟁이 불을 붙인 반전 운동을 포함하여 청년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청년들은 기성 세대의 문화를 거부하고 높으신 분들에게 반항하고자 했다. 이 혼란한 와중에 혜성같이 등장한 도어즈는 음울하고 은유적인 가사와, 매력적인 보컬, 그리고 약을 빤 듯한 멜로디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밴드의 구성 중 특이한 점은 베이스가 없으며, 저음부를 깁슨 G-101(레이 만자렉이 치는 콤보 오르간) 위에 올려놓은 Fender Rhodes Bass Piano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도어즈의 라이브 영상 등에서 레이 만자렉이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왼손으로는 베이스 음을 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그냥 도어즈로 통한다. [1]
3. 멤버
4. 활동
이 내용은 Doors History에 기반한다. 도어즈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보자!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도어즈의 활동을 거의 일정표 수준으로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중요한 소식(예를 들어 비틀즈의 앨범 발표, 베트남전 발발 등)이라든지, 그때 당시 도어즈의 사진이라든지, 생존 멤버들의 자서전 등에서 따온 인용구가 적절하게 들어가있어 내용이 아주 풍부하다. 다만 1971년 부분은 굵직한 사건만 정리되어있다. 언제 수정될지는 미지수.
4.1. 1965년
UCLA 영화학을 졸업한 짐 모리슨은 베니스 해변에 위치한 친구네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그러던 7월의 어느날, UCLA 재학 시절 친했던 동기 레이 만자렉과 점심시간 쯔음에 마주치게 되었다. 레이 만자렉은 당시 '릭 앤 더 레이븐스'[4] 의 곡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짐이 요즘 곡을 만들고 있다고 해서 들려달라고 청했다. 그때 짐이 부른 <Moonlight Drive>, <My Eyes Have Seen You>, <Summer's Almost Gone> 등을 듣고 짐의 시적인 가사와 멜로디 감각에 감명을 받은 레이는 짐에게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결성한 것은 아니고..)
짐은 밴드 이름을 The Doors로 정하자고 했는데, 이는 18세기 영국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의 한 구절인 '''"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every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is: infinite."'''(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청소되면 모든 것이 진실된 모습으로 무한히 보일 것이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는 올더스 헉슬리의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이라는 작품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인식의 문>은 주로 화자의 메스칼린(환각제) 경험담을 다루고 있는데, 짐과 레이도 마약이나 격렬한 섹스 등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가고 영혼을 황폐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감각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넘어 미지의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짐 모리슨은 평소 윌리엄 블레이크의 "과욕으로 가는 길은 지혜의 성전으로 그대를 인도할 것이다."(The road to excess leads to the palace of wisdom.)이라는 말을 신봉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도어즈의 모태는 릭 앤 더 레이븐스(Rick & The Ravens)이다. 레이 만자렉의 형제인 릭 만자렉이 이끄는, 주로 조그만 바 등에서 간간히 공연하던 밴드였다. 레이는 여기에서 가끔 피아노를 치며 보컬을 맡기도 했는데, 짐 모리슨을 데려왔다. 훗날 만자렉의 인터뷰에 따르면 만자렉은 짐을 밴드에 영입할 생각이 아니라 단순히 소개나 해주고 구경시켜주러(...) 데려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데려온 짐이 어쩌다 준비도 없이 노래를 한 번 불렀는데 급 고정멤버가 되었다고 카더라. 1965년에 릭 앤 더 레이븐스는 데모를 녹음했는데, 여기에는 훗날 도어즈의 노래가 된 <Hello, I Love You>, <Moonlight Drive>, <My Eyes Have Seen You> 등이 담겨있었다. 그러다가 릭 앤 더 레이븐스의 미래가 불투명함을 느끼고서 불만족스러웠던 레이가 짐에게 따로 밴드(저번에 베니스 해변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The Doors)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레이가 릭 앤 더 레이븐스에서 드럼 치던 존 덴스모어[5] 를 영입해오고, 존은 자신의 친구인 로비 크리거를 데려와서[6] The Doors가 탄생했다.
초기에는 자질구레한 곳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많이 수줍었던 짐 모리슨은 레이가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에 마라카스를 연주하거나 "Yeah!", "Drive on!"(계속 해!)라고 소리치는 식으로 노래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짐 모리슨의 노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아, 많이 다독여주었다.(가끔 보면 '도어즈-짐 모리슨=0'으로 취급하는 극성 빠가 있는데,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묵묵히 받쳐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짐 모리슨이라는 불세출의 보컬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도어즈는 베이시스트 를 영입하기 위해 작은 클럽 등지에서 오디션을 개최했지만, 영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도중 레이가 희귀한 펜더의 베이스 오르간을 발견해서 이것으로 베이스를 대체하게 된다.[7]
[image]
왼쪽부터 존 덴스모어, 로비 크리거, 짐 모리슨, 레이 만자렉.
멤버가 갖춰진 도어즈는 베니스 해변에 위치한 레이의 집에서 맹연습을 했다. 이때 짐 모리슨이 각자 한 곡씩 만들어오라고 숙제를 줬는데, 그 숙제를 한 건 숙제를 낸 짐 모리슨과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뿐이였다. 그런데 로비가 만들어온 곡이 바로 '''Light My Fire'''. 그리고... 짐모리슨은 '''The End'''를 들려주면서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다(...)
4.2. 1966년
도어즈는 선셋 스트립에 위치한 '런던 포그'에서 진정한 첫 공연을 했는데,[8] 멤버들은 여기에서 사운드를 다듬어 발전시켰고 특히 수줍던 짐은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짐은 여기서 덤으로 연하 여친 패멀라 커슨을 만난다.
5월 초, 도어즈는 '위스키 어 고고'라는 바의 오디션에 붙어 고정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쟁쟁한 선배 가수들에게 비기를 전수받은 짐은 공연에서 날뛰며 패기를 발산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은 점점 더 도어즈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공연을 시작한지 세 달만에 엘렉트라 레코드 사장의 눈에 띄어 비공식 계약[9] 을 맺었다. 위스키 어 고고에서는 'The End'라는 곡으로 마지막 공연을 끝마치게 된다.
8월 말, 도어즈는 6일만에(주말에 쉰 것 포함!) 첫 앨범 The Doors의 녹음을 끝마쳤다. 11분을 넘어가는 대곡 'The End'는 단 두번만에 녹음을 마쳤는데, 정말로 샤먼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어두운 녹음실 안에 향을 피우고 촛불 하나 놔두고서 녹음했다고 한다.
10월 말, 계약 내용상 뉴욕으로 투어를 가게 된 도어즈는 정말 '''흥했다'''.(그리고 여기에서 앤디 워홀과 만나기도 했는데, 앤디는 짐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 그래서 엘렉트라 레코드의 권유대로 1집 수록곡 'Break On Through'를 첫 싱글로 내기로 했다. 그리고 앨범 자켓에 쓰일 사진을 찍는 등 여러 가지로 앨범 준비를 해나갔다.
4.3. 1967년
1월 4일, 첫 앨범 The Doors와 함께 싱글 'Break on Through'(뒷면에는 'End of the Night' 수록)가 발매된다. 그런데 히트 싱글로 밀려고 했던 'Break on Through' 대신 'Light My Fire'가 흥했다. 그래서 4월 말에 7분짜리 곡 'Light My Fire'가 라디오에서 틀기 편하도록, 곡 중간에 레이의 키보드와 로비의 기타 솔로 협연이 생략되어 3분으로 잘려서 나왔다.(뒷면에는 'The Crystal Ship' 수록.) 하지만 어딘가가 허전했는지 정작 라디오에서는 원곡만 틀었다.(...) 'Light My Fire'는 점점 차트 상위권으로 오르다가 마침내 7월 말에는 정점을 찍었다.
9월에는 2집 Strange Days에 수록될 곡인 'People Are Strange'가 싱글로 미리 나왔다. 그리고 비틀즈, 롤링 스톤즈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등용문이 된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놈의 'Higher'('약에 취한'이라는 뜻이 있다.)라는 가사 때문에 에드 설리반과 마찰이 생겼다. 짐 모리슨은 시원하게 뒷통수를 침으로써 더 인기가 많아졌다.(?!)[10] 자세한 에피소드는 짐 모리슨 문서 2.3의 세 번째 문단 참조.
9월 25일, 2집 Strange Days가 발매되었고, 11월에는 3위를 차지하며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10월 초에 투어를 시작한 도어즈는 엄청난 인기를 끌어, <Time>이나 <Newsweek>에서도 도어즈에 대한 기사를 쓸만큼 대세 밴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12월 초 투어 도중, 짐 모리슨은 뉴 헤이븐에서 '''체포됐다!''' 짐 은 공연 전 무대 뒤 샤워실에서 여자와 놀고 있었다. 짐을 히피로 착각한 경찰[11] 이 짐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는데, 짐은 싫다고 했다가 '''얼굴을 얻어맞았다.''' 뒤늦게 매니저가 도착해서 이 사람은 오늘 공연하기로 한 가수라고 설명하자 경찰은 바로 사과를 했지만, 어쨌든 짐은 얻어터져서 퍼렇게 멍든 눈으로 공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다가 짐은 관객들에게 무대 뒤에서 맞은 이야기를 하며 경찰을 조롱했고, 결국 공연 현장에서 체포 당했다.(...)
[image]
당시의 머그샷. 하지만 보석금을 내고서 곧 풀려났다.
4.4. 1968년
새해 1월부터 짐은 또 체포당했다. 주차장에 있는 안전요원한테 담배 피는 시늉을 하면서 놀리다가 부랑죄('부랑자'할 때의 그 '부랑' 맞다!)로 체포당했다고 한다.
2월부터 3집 Waiting For the Sun의 녹음을 시작했다. 그런데 프로듀서인 폴 로스차일드가 완벽주의를 강요[12] 하며 녹음을 계속 시켜서, 짜증이 난 짐은 술 마시고 파티나 쏘다녔고, 존 덴스모어도 짜증나서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갔다가 다음날 돌아오는 등 여러가지 삐걱거리는 일이 많았다. 짐이 녹음실에 나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다른 멤버들을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싱글로 'The Unknown Soldier'(뒷면에는 'We Could Be So Good Together' 수록.)을 냈는데, 제목부터 '이름없는 병사'인 이 곡은 전쟁을 암시하는 민감한 내용의 노래여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틀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3월 초,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통칭 '''3J'''가 한 클럽에 모이는 역사적인 일이 생겼다. 셋은 함께 잼#s-3을 했는데, 짐이 블루스한 잼 도중에 약에 취한 나머지 무대로 뛰쳐올라가 음란한 가사를 지껄였다. 당연히 나머지 2J에게는 비호감으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헨드릭스는 4월에 짐이 같이 몬트리올 무대에서 공연하자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5월 중순에 짐은 머리 길다는 소리를 계속 들어서 트레이드마크인 북슬북슬하고 긴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랐는데,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그의 머리가 얼마나 짧아졌는지를 궁금해했고 결국엔 '''머리 잘랐다는 게 주요 뉴스에 나왔다.'''
[image]
어쩐지 약간 맹구 같아졌다...
6월에는 'Hello, I Love You'(뒷면에는 'Love Street' 수록.)을 싱글로 냈는데, 이는 철저히 상업적인 싱글이였고 도어즈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 'The Unknown Soldier' 싱글이 라디오에서 금지되어 레코드사에서 가벼운 사랑노래를 만들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노래라고 해서 딱히 이 두 곡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Hello, I Love You'의 작사는 로비 크리거가 맡아서 소년 같다는 평과 유치하다(...)는 평으로 갈리고, 두 곡 다 재즈풍의 감미로운 곡이기 때문에 도어즈가 3집 전까지 보여준 약 빤듯한 몽롱한 느낌은 없다.
7월 12일에는 우여곡절 끝에 3집 Waiting For The Sun이 발매되었다.
9월 초부터 17일간의 유럽 투어를 시작하였는데, 짐은 최고의 관중들이였다며 만족스러워했다.
9월 말 어느날의 저녁, 짐은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있던 비틀즈를 찾아갔다. 비틀즈는 'Happiness is a Warm Gun'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한 소절 코러스를 넣을 수도 있었지만 짐은 와서 구경하고 잠깐 들어보다가 인사만 하고 갔다고 한다.(...)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미국 중서부의 8개 도시에서 8개 공연을 한 도어즈는 바로 돌아와서 4집 Soft Parade 녹음을 준비했다. 이걸 녹음하는 동안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잠깐 들러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보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
4.5. 1969년
2월 초, 'Wishful Sinful'이 싱글로 나왔다. 그리고 짐은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됐다. 그런데 이건 예고에 불과했으니...
3월에 마이애미에서 술에 취한 채 공연하던 짐은 이말저말 지껄이며 진상을 부리다가 잡혀갔다. 죄명은 1. 외설행위(중죄), 2. 노출죄(경범죄), 3. 불경죄(경범죄), 4. 만취죄(경범죄)였다. 일설에는 짐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벗었다. 자위행위를 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미디어에서 와전된 것으로, 짐 모리슨은 바지를 완전히 벗지는 않고 가랑이 위로 투우사가 망토를 펄럭이듯(...) 셔츠를 흔들었는데, 진짜로 거시기가 보였는지 안보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무튼 그날 공연때 웃통을 까고 비교적 외설적인 제스쳐와 무대매너를 보인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꼬투리가 되어 외설죄로 잡혀간 것.당시 상황 설명
그후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었지만, 재판은 느릿느릿 진행된 덕분에 7월 18일에 4집 Soft Parade가 나왔다.
짐은 보석으로 풀려났고, 11월에 도어즈는 Morrison Hotel의 녹음 작업을 들어가게 됐다.
4.6. 1970년
2월 1일에 Morrison Hotel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Side One은 Hard Rock Cafe로 부르고, Side Two는 Morrison Hotel로 부른다. 하지만 주로 Morrison Hotel로 통칭하여 부른다. 모리슨 호텔은 뉴욕에 실재하는 호텔.
7월 1일에는 지금까지 했던 몇몇 공연의 실황을 녹음한 라이브 앨범 'Alsolutely Live'가 나왔다. 'Who Do You Love', 'Love Hides', 'Build Me A Woman', 'Close To You', 'Universal Mind', 'The Celebration of the Lizard[13] ' 등 도어즈의 앨범에 포함되지 않은 6곡도 함께 담겨있다.
7월 중순에는 유럽 투어를 돌다가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핑크 플로이드의 2번째 무료공연에 함께 참여하여 노래를 불렀다.
11월에는 첫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었다.
12월에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은 '''짐 모리슨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4.7. 1971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짐은 6집 L.A. Woman 녹음을 마친 뒤, 밴드의 잠정적 탈퇴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4월 중순에 여자친구 파멜라와 함께 파리로 떠났고, 짐의 유작이 된 L.A. Woman은 4월 말에 발매되었다.
5. 해체
1971년 7월 3일, 짐 모리슨은 27세에 마약 중독으로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하여, 모든 사람들이 심한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생존 멤버들은 한참 후에 추스르고서 레이와 로비가 보컬을 맡아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지만, 완벽하게 '''흑역사 취급'''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2006년까지 CD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메이저 레이블이 아닌 어느 듣보잡 마이너 레이블에서 냈다.
결국 그렇게 도어즈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이미 레전설인 것은 사실.
6. 여담
-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이 짐 모리슨의 생애를 그린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짐 모리슨 역인 발 킬머의 싱크로율이 엄청나 멤버들은 짐 모리슨이 살아난 것 같다고 평했지만 왜곡이 많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데이빗 보위도 자신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 벨벳 골드마인을 왜곡이 많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걸 생각하면 재밌는 부분.
- 참고할만한 자료
- 2002년에는 도어즈의 팬이었던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이 도어즈의 곡들을 피아노 솔로로 편곡해 앨범을 내기도 했다.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도 극찬한 앨범으로써, 도어즈의 팬이라면 한번 청취해보는 것도 괜찮다. 편곡된 Light my Fire의 멜로디가 일품.
- 2009년에는 조니 뎁이 내레이션을 맡은 도어즈의 다큐멘터리
가 개봉했다.(한국 개봉은 2010년 12월)
- 레이 만자렉은 이후 프로듀서로 활동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미국의 펑크 록 밴드인 X[15] 첫 앨범 "Los Angeles"를 프로듀싱했다. 이 앨범에서 오르간도 연주했는데, 이 앨범은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 100위에 빠지지않고 랭크된다.심지어 소울키친까지 커버했다 레이 만자렉은 이후 X의 4집까지 세 앨범을 프로듀싱하는데 이 세 앨범 모두 첫 앨범에 못지 않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 위어드 알 얀코빅이 2009년에 발표한 싱글인 Craigslist는 도어즈의 음악 스타일을 패러디한 곡인데, 이 곡에 등장하는 오르간 연주는 레이 만자렉이 직접 연주한 것이다.
- 2011~12년 사이에 스크릴렉스의 Bangarang 앨범에 수록된 'Breakn a Sweet' 란 곡에 참여. 해당 곡에서 레이 만자렉의 목소리가 시종일관 나온다. 현대자동차에서 캠페인 형태로 촬영한 Skrillex & The Doors 작업기
- 안타깝게도 레이 만자렉은 2013년 5월 20일에 담관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별세했다. 향년 74세.
7. 디스코그래피
7.1. 앨범
도어즈/디스코그래피 참조.
7.2. 싱글
7.2.1. 빌보드 핫 100 1위
- Light My Fire (1967)
- Hello, I Love You (1968)
7.2.2. 빌보드 핫 100 3위~10위
- Touch Me (1969)
7.2.3.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 People Are Strange (1967)
- Love Her Madly (1971)
- Riders on the Storm (1971)
[1] 실제로는 门戶乐团(문호악단)이라고 통한다. 하지만 데뷔 앨범 'The Doors'는 大门(대문) 맞다.[2] 베이스 기타를 친 것이 아니라 Fender Rhodes Bass Piano로 저음부를 연주하였기 때문에 베이스로 표기되었다.[3] 일부 곡 한정.[4] 도어즈의 모태가 된 밴드.[5] 여담이지만, 존과 레이는 명상반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6] 존이 레이에게 로비를 소개 시켜주면서, 로비가 오디션 겸해서 슬라이드 주법으로 짐의 Moonlight Drive를 연주했다. 그때 당시는 백인 록에서는 슬라이드기타 연주가 드물기도 했고, 슬라이드주법 특유의 야릇하고 유연한 사운드를 들은 레이는 '하느님을 목격한 듯한 뻑간 표정' 을 지었다고 한다.[7] 하지만 역시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어 베이스 세션을 쓴 곡도 많다.[8] 사이키델릭 록 문서를 보면 알수있듯이 사이키델릭은 선셋스트립에서 시작하여 샌프란시스코의 화이트애쉬버리로 옮겨간것이다. 여기서 프랭크 자파나도어즈가 공연을 펼쳤다.[9] 뉴욕으로 투어를 가서 반응을 살펴본 후 공식 계약을 맺으려던 것이다.[10] 에드 설리반이 higher를 better로 바꿔서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짐 모리슨이 승낙했는데 그만 첫 티비출연이라 떨려서 1절을 부를 때 원 가사대로 불러버렸다. 그러자 짐 모리슨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2절에서 큰 소리로 Higher라고 외쳤다![11] 실제로 공연 DVD를 보면 공연장에 경찰이 쫙 깔려있다.[12] 'The Unknown Soldier'는 130번 넘게 녹음되었다고 한다...[13] 3집 속지 커버에 실린 짐 모리슨의 자작시 제목이기도 하다.[14] 노래방에서 부르면 안되는 노래 2순위에 꼽히는 She's Gone을 부르신 그 분이 맞다![15] 한국에선 인지도가 없지만, 일본의 동명 밴드가 X JAPAN으로 개명하게 된 게 바로 이 밴드의 존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