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

 



1. 鷄林


한국의 고대 왕조 국가인 신라의 다른 이름. 신라초기에는 탈해 이사금이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쓰기도 했다.
그 어원에는 두 가지 이설이 있는데, 원래는 1.1의,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장소의 이름이었지만, 후에 신라 전체를 뜻하는 이름이 되었다는 설이 일설이다.
혹은 높은 땅을 가리키는 '달'과 '서벌(서라벌=경주)'이 합쳐지면 '달스벌/달스불'이 되고.  당시 닭(鷄)을 닥, 달 등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달스벌/달스불'을 각자 음차 및 훈차하는 방식으로 닭+수풀, 즉 계림(鷄林)으로 표기하였다는설이 이설. 일단 위키백과에는 두번째 설이 정설로 소개되며, 경주 숲의 이름은 이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소개된다.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확정한 이후에도 별칭으로 계속 쓰였고, 삼국통일 이후에는 신라가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했으므로 더 나아가 '한반도, 한국, Korea' 자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도 쓰였다. 심지어 신라가 멸망한 후 고려, 조선시대까지도 쓰였다.[1] 가령 고려시대 고려를 여행한 중국인의 여행기 제목이 계림유사라거나, 일본의 '조선정벌기'에서 이순신에 대해 '충성과 용맹이 계림에서 으뜸이었다'라고 쓰기도 했다. 당연히 이순신은 신라가 아닌 조선시대 인물이므로, '계림'을 '조선(한국)'을 가리키는 말로 쓴 것.
즉, 경주의 작은 소나무숲을 지칭하던 말이 한반도 전역을 지칭하는 말로 점차 확대된 것. 비슷한 예로는 라틴이 있다. 초기 고대 로마주변의 지역 라치오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고대 로마가 전성기 시절 보편 제국으로 발전함과 함께 가리키는 영역이 확대한 것과 비슷하다.

1.1.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慶州 鷄林
Gye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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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구비전승지
'''면적'''
23\,042㎡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제작시기'''
신라
'''위치'''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글
경주역사유적지구[2]
영어
Gyeongju Historic Areas
프랑스어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3], (iii)[4]
지정번호
976
위에서 말한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장소. 작은 소나무 이다. 원래 이름은 시림(始林)이었지만 김알지가 태어난 이후 계림으로 바꿨다고 한다. 김알지 탄생 설화에 대해서는 김알지 문서 참조.
첨성대경주 월성, 한옥마을인 교동마을 사이 지나가는 길에 있어서 근처를 다니면 저절로 지나가게 된다.
다만 현재 알려진 계림은 사실은 경주향교의 홍수 방지용 숲이고 실제 계림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1.2. 계림대도독부


1번 항목의 계림을 따와 당이 신라에 붙인 명칭이다. 당이 고구려, 백제를 제거하고 마지막 신라까지 차지할 속셈으로 김인문을 계림대도독부의 도독부주로 삼았지만, 이름만 계림대도독부주이고 신라는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없던 걸로 되었다. 말그대로 이름만 있었을뿐.

1.3. 계림공


고려숙종이 왕이 되기 전에 받은 작위가 계림공이었다. 계림은 봉국, 공은 공작위를 의미한다. 자세한건 숙종(고려) 문서 참고.

1.4. 계림궁


고려궁궐 별궁이다.

1.5. 계림동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

1.6. 계림문고


계림출판사에서 1974년부터 1990년대까지 발간한 세계문학전집.

1.7. 계림중학교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에 위치해 있다. 1986년 개교하였다.

1.8. 계림잡전


신라의 사서

2. 桂林


구이린시 참조.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의 지급시로, 버덕들에게는 계림대우객차유한공사로 알려진 도시이다.

3. 계림동



3.1. 광주광역시 동구




3.2. 경상북도 상주시




[1] 마찬가지로, '고려', '조선' 역시 해당 왕조 국가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도 쓰였다. 신라(동음이의어), 고려(동음이의어), 조선(동음이의어) 각 문서 참조.[2]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제외[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