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투
- 야구의 계투(繼投)에 대해서는 중간계투 문서를 참조.
1. 개요
중국의 폐습으로 '''패싸움'''을 뜻하는 말이다. 정체자로는 械鬥, 간화자로는 械斗라고 쓴다.[1]
2. 상세
계투(械鬪)라고 부른다. 여기서 계(械)는 '''무기를 뜻한다. 즉,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일컫는다.''' 무협에 나오는 중국 패싸움에서 괜히 무기가 등장하는게 아니다. 아니, 그전에 무협에 등장하는 '무림'이란 단어부터가 이 계투에서 그 모티브를 딴 것이다.
중국은 대륙이라 불릴만큼 땅이 넓고 인구도 많다보니 통일국가를 이뤘다고 해도 국가의 공권력이 대륙 전역에 완전히 뿌리내리질 못해서, 어딘가에서 재난사태가 터져서 피해 규모가 커지거나 피해복구를 제대로 못할 상황이 되면 그곳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원래 살던 곳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유민 무리가 되기 쉽다. 그렇게 한 지역에 재난이 발생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유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면(이들을 객가(客家)라고 한다), 당연히 원주민과의 갈등은 필연적인데 이걸 중재해 줄 공권력이 없게 되면 한정된 자원[2] 을 차지하기 위해 현지 주민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계투다.
객가건 원주민이건 삶의 터전때문에 목숨을 건 싸움이니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패싸움과 달리 칼 같은 흉기도 잘 등장한다.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가니 무엇을 들고 싸우느냐에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자루 긴 대도나 월도 같은 중세시대 장병기까지 직접 제작해서 들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무기까지 난무하니 사람이 상하지 않고 끝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계투와 무법자 무리들에 대항하기 위해 집을 요새화시키는 경우가 흔했다. 계투가 심하거나 도적때가 들끓었던 지역에서는 아예 집과 요새를 겸비한 건물을 지어놓고 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이 푸젠성의 토루로, 둥글게 두꺼운 벽을 쌓아 높이를 3층 높이 이상으로 만들고 층을 나누고 벽으로 방을 나눠서 그냥 마을 사람 모두가 거기서 산다. 출입용 문은 두꺼운 철문 단 하나 뿐으로 정말이지 흉악한 방어력을 지닌다. 화약무기가 나오기 전에는 공성장비를 투입하지 않으면 도무지 뚫을 방법이 없을 정도. 심지어 토루 내부에는 우물이 있고 이 동네는 산악지대이다. 민간인이 산다는 것만 빼면 거점 방어용 요새나 다름없다. 토루를 소개하는 글 이런 패싸움의 규모가 워낙 커서 중국 지방정부도 세금 잘내는 조건으로 묵인했다고 하니 거의 전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청나라 때는 객가 세력과 토착민 세력간에 계투가 무려 12년간 벌어져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렇게 사상자가 많아진 이유는 양측 다 용병을 고용해서라고(...)
현대 중국에도 이러한 계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공장이 많고 산업이 발달한 중국 1선 도시(베이징시, 상하이시, 선전시, 광저우시), 또는 2선 도시(칭다오, 청두, 난징, 천진, 하얼빈) 주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온 농민공들, 특히 허난성 출신에게 매우 적대적인데, 이들이 외지인을 혐오하는 이유도 이 계투의 원인과 매우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공장에 일하러 온 이민자 수가 워낙 많으니 이들이 뭉쳐서 싸우기 시작하면 원주민들이 자원을 잃고 쫒겨나는 수가 생긴다.
계투가 발생하면 그 무섭다는 중국 공안조차 계투 앞에서는 조용하다.(...) 싸움을 막기보다는, 싸움이 끝난 후에 뒷처리를 더 선호하는 듯 하다. 공안이 계투중에 개입해봐야 정치중립적인 결과가 나오기 힘들어서 일이 더 커질 우려가 있으니 그냥 싸우게 내버려두고 끝나고 나서 뒷처리만 하는 수준으로 끝내는 것.
[1] 참고로 정체자로 검색하면 기록화나 흑백 사진 등의 사료가 많이 나오고, 간화자로 검색하면 현대의 생생한(...) 사진 자료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2] 경작지, 농업 용수 혹은 관개 시설, 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