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기)

 

'''大刀 (朴刀)''' [* 영어로는 Chinese War Sword, Dadao, Podao, Pudao 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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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국민혁명군이 사용한 실전용 대도.
1. 설명
2. 중일전쟁 시기
3. 상징성과 현대의 대도
4. 특징
5. 대도를 사용하는 검술
6. 창작물


1. 설명


중국 북송대부터 중일전쟁 종전시까지 군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크게 사용된 전형적인 중국도.
크기가 다양해서 전통적 대도 중 작은 것은 1.7 m정도로 사람 키만했고 큰 것은 3 m 이하였다. 무게도 제각각이라 평균치를 내기 어렵다.
특히 근접전, 난전, 선상전에서는 그 뛰어난 위력을 보여 청나라대까지 대도로 무장한 보병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반장전쟁, 중일전쟁 등의 전쟁이 빈번하던 근대에 들어서는 60-150 cm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며 휴대성이 좋아져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간에서도 호신용, 무술수련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청말 태평천국운동에서도 많은 태평천국군이 사용하여 한때 태평도라고도 불렸다.
손잡이가 긴 대도를 따로 박도(朴刀, Podao[1])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엄밀한 구분이라 하긴 어렵고 혼용에 가깝다. 이런 형태는 손잡이가 두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길어 쌍수대(双手帶)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 강남 지방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남파 계열의 대표적인 병장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망나니가 장비한 참수용도 역시 바로 이 대도였다. 중국 강남의 오구도 같은 도를 가지고 술을 뿜으며 춤추는 것은 20세기 사극에서 타국의 사형집행방식을 섞어 창작된 것이며, 조선시대 그림에서 묘사된 대도를 든 망나니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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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정도첩에 그려진 참수용 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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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도 후기로 가면 극단적으로 짧아져서 거의 중국의 대도와 똑같이 변한 버전도 있는 모양이다. 다만 이건 대도라 불리진 않고 반월도 혹은 그냥 언월도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추노에 나오는 송태하의 무기가 이것이다.
근대에 들어 청나라에서 양무 운동이 벌어져 근대 소총과 대포, 전함을 장비하였으나 청일전쟁에서 일부 병&사관이 전통적인 대도를 사용하여 참전한 적이 었었다. 청일전쟁을 묘사한 당대 우키요에에서는 아라타 대위와 청국군의 양손 세이버vs대도의 교전을 그리기도 했다.[2]#

2. 중일전쟁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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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를 장비한 국민혁명군의 모습.
세월이 지나 중국 국민당중국의 정권을 잡고 독일의 도움을 받아 군의 근대화에 매진하였으나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군대가 그러하였듯이 군수품의 불충분과 화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20년대 이후로 주목받은 참호전과 근접전, 그리고 기관단총이라는 분야가 그러하였다. 기관단총이라는 것이 권총탄을 사용하는 소형 기관총으로써 출발하여 참호에 돌입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청소해버린다는 개념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자연히 중국도 MP18 기관단총과 마우저 C96계열 권총을 국산화하여 이러한 세계적 기준에 따라가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탄약휴대량이 많아야 이러한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데 중국은 이러한 개념에 걸맞는 수준의 탄약을 지급할 능력이 되지 못했으며, 자연히 근접전투 중 총탄이 떨어질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근접전 병력은 대도를 휴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33년 열하사변 중 활약한 쑹저위안의 29군 휘하의 대도대가 유명하였으며 1937년 이후 중일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하여 '''항일대도(抗日大刀)''', '''항전대도(抗戰大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보통은 그냥 대도라고 불렸으며, 항일대도는 이 시대의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여 호칭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일본군청일전쟁 때부터 중국군의 대도를 경험하여 중국군이 청룡도를 사용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중일전쟁이 개전하면서 일본군은 프랑스식 돌격주의를 계승한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아 중국군을 압도하는 화력, 병력의 질을 바탕으로 오송 크리크에서 1만 명 전사의 피해를 내면서도 독일식의 오송 크리크와 상하이 요새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자신을 얻은 일본군은 중일전쟁 내내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았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군과 중국군간 백병전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중국군의 C-96 기관권총과 군용 대도의 조합은 실전성이 높았다고 한다. 전투에서 일본군은 대도의 강한 베기 성능과 기세에 큰 인상을 받았다.
중국군의 전략거점인 우한이 일본군에 함락된 이후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중국군이 소규모로 침투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대도는 중국군 내에서 상당히 많은 숫자가 장비되었다. 주요 산업지대를 모두 빼앗긴 중일전쟁 중반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화력이나 탄약 수급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대도의 활용도가 더 늘어났다. 일본 육군도 그 때문에 원래 규정상으로는 도검을 소지해서는 안 되는 하사관병사[3]들도 도검 소지를 암묵적으로 허용받았다. 이른바 이종군도가 전선에서 유행하게 된 이유였다.
대도 자체는 화력의 강화와 함께 자연히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일본군 특유의 돌격주의 신봉과 중국군의 보급 사정상 화력의 부족, 그에 따라 자주 일어나는 백병전에 필요한 근접전 장비가 필요한 상황이 맞물려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 당시의 자료, 참전자들의 증언, 무술가들의 이론, 그리고 현대의 실전 모의 등으로 검증한 결과, 실전 영역으로 넘어가면 대도의 효용성은 총검에 밀린다는 게 현대의 다수 중국인들도 인정하는 중론이다. 우선 리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데다 대도를 휘두르는 동작은 총검의 찌르기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체력 낭비가 심하며, 베여서 난 상처보다 찔려서 난 상처가 더 깊고 아물기 힘들다. 여기에 보급이 열악했던 중국군들은 백병전에서 중요한 요소인 피지컬이 일본군보다 훨씬 딸렸고, 훈련수준이나 멘탈 역시 일본군보다 못했다.[4] 하여 백병전으로 넘어가면 중국군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교환비를 냈고, 그나마 중후반부부터 병사들도 경험이 생기고 일본군 포로들에게서 노하우 등을 전수받으면서 나아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겉보기에는 폼나지만 실상은 화기는커녕 냉병기인 총검조차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해서 대도로 때워야 했던 당시 중국군의 안습함을 상징한다고 할까...[5] 위의 대도대로 알려진 부대도 정식 명칭은 권총대였고, 실제 주무장으로 활약한 것도 권총이었지만 당시 언론들에서 국민들의 사기를 고양시킨답시고 대도의 역할을 과대포장해 선전하였고, 덕분에 대도 뽕을 맞은 국민들이 전선에 대도를 다수 기증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창도 쓰였지만 휴대성, 편의성, 화기와의 겸용성 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총도 제대로 지급 못할 정도로 장비가 정규군들보다도 더 열악했던 팔로군이나 민병대 정도를 제외하면 널리 보급되진 못했다.
중일전쟁에서 대도를 최초로 부각하기 시작한 부대는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 허베이 지방의 29군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 마이신(麦新)은 루거우차오 사건 후 군가 대도진행곡(大刀進行曲)을 지어 29군을 기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도진행곡의 부제도 "29군 대도대에게 바친다(獻給二十九軍大刀隊)".(#)중국에서 국민혁명군 29군은 루거우차오 사건 이전의 열하사변 당시에 일본군을 상대로 결사전을 벌인 이 대도대로 유명해서 2007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큰 칼로 왜놈들의 머리를 부수자(大刀向鬼子头上砍去)" 가 나오기도 했다.
'''대도진행곡
大刀进行曲'''

작곡(词曲) : 맥신(麦新)

大刀向鬼子们的头上砍去,
큰 칼로 왜놈[6]들의 머리를 부수자,
全国武装的弟兄们,
온나라의 무장한 형제들아,
抗战的一天来到了,
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抗战的一天来到了。
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前面有东北的义勇军,
일선엔 동북(만주)의 의용군,
后面有全国的老百姓,
후선엔 전국의 국민들,
咱们中国军队勇敢前进!
우리 중국군대는 용감히 전진!
看准那敌人,
적을 보고 겨누자,
把他消灭!
그들을 소멸하자!
把他消灭!
그들을 소멸하자!
(喊) 冲啊!
(함성) 돌격!
(唱) 大刀向鬼子们的头上砍去!
큰 칼로 왜놈들의 머리를 부수자!
'''(喊) 杀!
(함성) 죽이자!'''

3. 상징성과 현대의 대도


실전 투입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일본 군도일본군의 상징이 되었듯, 대도 또한 중국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적인 한 가지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군가 대도진행곡을 비롯하여 중국군 군장 재현자들 중에서 대도를 메지 않는 사람들이 없고, 항일참전용사 중에서도 사용하던 대도를 소장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 도검계에서도 중국을 상징하는 도검 아이콘으로써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우슈의 중국검, 유엽도(柳葉刀)[7]와 함께 중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 도검 업체에서도 대량생산하는 제품 중 하나로써 항상 라인업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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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old Steel社의 대도(Chinese War sword)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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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당시의 군용 대도는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대도의 디자인을 계승했으나 휴대성을 고려하여 길이는 심플하게 규정되었다. 국민당을 비롯하여 군벌들이 제각기 정한 교범마다 조금씩 치수는 달랐으나 대체적으로 칼날은 60cm전후, 손잡이는 30cm정도로 전체길이는 1m를 넘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였다. 국가나 군벌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나온 것도 있고 대장간에서 따로 주문해서 쓰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 기록사진들을 보면 길이와 비율이 다 다르다.

미국 Cold steel社에서 제공하는 자사의 Chinese War sword의 성능 홍보 비디오.
대도의 구조상의 이점은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있어 베기의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이 덕분에 대도는 놀라운 수준의 절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만 칼날에 힘과 무게를 실어 베어 가르는 기법에 적합하도록 무게중심이 손잡이보다는 칼날 쪽으로 가 있는 편이라는 점은 취급의 편의성에 있어서는 단점이 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부분은 일본도와도 비슷한 부분이었다. 일본도가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는 않은 칼인 것도 무게중심이 손잡이보다는 칼날 쪽으로 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대도도 그러한 점에서는 약점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도 대도의 손잡이에 폼멜이 있어서 취급의 편의성이 조금은 나은 편이다.
이러한 대도 말고도 전통적인 중국도, 즉 우미도(牛尾刀)/유엽도(柳葉刀)/안모도(雁毛刀) 등의 도검 계통의 도(刀)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유물도 소수 존재한다.

5. 대도를 사용하는 검술


중국군용 대도만의 특별한 검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대에서 사용된 대도술도 민간 무술가를 초빙하여 연구와 교육을 맡기는 방식으로 대도술이 정립되었다. 또 당시의 중국군대가 통합된 국군이 아니라 군벌군대의 연합체에 가까웠으므로 대도술도 독립적으로 따로 따로 정립된 경우가 많았다.
가령 1920년 하남의 풍옥상 군벌에 가담한 섬서성 마씨통비문의 마봉도는 명나라 시대의 교범인 단도법선(單刀法選)의 기술을 차용해 파봉팔도(破鋒八刀)로 정립해서 가르쳤다.재현영상 형의권의 한씨 성을 가진 협객을 초빙하여 형의육합도법을 기본으로 8가지의 총검 파훼법을 창안한 것이 파봉팔도로 불리웠다는 이설도 존재하며, 이 역시 풍옥상 군벌의 29사단 서북대도대에 교습되었다고 한다.
소림72예로 유명한 김은충(金恩忠)[8]은 1933년 중국 서북군 29사단 대도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이 내용을 실용대도술이라는 34페이지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응조번자권의 유법맹(劉法孟)은 1933년 광동군 19사단에서 편성된 대도대의 교육을 맡아 이를 대도술(大刀術)로 정립, 출판하기도 했다.영상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이들의 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또다른 도법을 훈련하는 당시 영상들도 많이 나오므로, 실제로는 대도술의 종류는 사단별, 군벌별로 제각각 다양했다고 볼 수 있다.
근본 내용 자체는 평범한 중국도법이지만 파봉팔도나 실용대도술은 모두 총검을 상대로 한 내용만을 가르친다. 파봉팔도의 소스가 된 단도법선 자체가 창을 검으로 격파하는 비법을 담은 책이다. 이는 당시 실전에서 가장 쉽게 맞닥뜨리는 것이 일본군의 총검돌격이므로 여기에 대한 대비책을 빨리 교육해야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봉도가 단도법선을 참고한 것도 총검을 이기는 법을 얻고자 했음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대도술도 그러했는지는 교범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야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은충 실용대도술을 재현한 영상.

6. 창작물


'''중국''' 하면 떠오르는 무기들중 하나이기 때문에 창작물에선 중국계 캐릭터들이 자주 쓰는 무기로 나오며, 비슷한 생김새와 중일전쟁 당시의 일화[9] 때문에 창작물에선 대도가 아닌 청룡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양판소판협지에서는 특유의 투박한 생김새 때문인지 영 대우가 좋지 않다. 보통 산적이나 오랑캐처럼 무식하거나 난폭한 이들이 들고 나오다가 세련된 검에 깨지거나 박살나기 일수. 물론 주인공이 광전사같은 캐릭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서, 보이는 놈마다 다 썰어제끼는 최강의 검으로 바뀌어서 나온다.
수호지에는 시대배경이 송나라이었기때문에 매우 자주 나오는 무기로 나온다. 무송[10], '''양지''', '''유당''', '''목홍''', '''뇌횡''', '''장횡''', '''양웅''', '''석수''', 연순, 장경, 목춘, 주통, 추연, 추윤, 고대수, 노준의[11] 등이 박도를 잘 쓴다고 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괄하이드 규리하가 대도를 사용한다.
삼국지연의에서 한당의 주무기으로 나오고,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하후돈의 무기로 나온다. [12]
대항해시대 3에서는 좀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청룡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명나라의 북경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살 수 있다. 효과치는 68로, 라이벌인 일본의 명도장광보다 1 높으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무기 중 두 번째로 강력하다.
드라마 "추노"에서 나오는 송태하도 사용한다. 초반부에는 낡아빠진 것을 썼는데, 후반부에 용골대에게 새 대도를 받아 쓴다.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나오는 양규의 대도도 비슷하다.
격투게임블레이블루주인공라그나 더 블러드엣지의 무기인 아라마사는 대검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대도(박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등장인물 군 젬의 탑승기 게이잠과 길가자무네는 제식무장 외에 개인적인 취향의 무장인 청룡도를 장비했었다. 정작 본인은 맨몸일 땐 서양식 사브르를 가지고 다닌다.
포 아너에선 무림 팩션의 캐릭터 천지가 이 무기를 사용한다.
소녀전선에 등장하는 전술인형인 한양조 88식의 개조스킨에서 장비하고 있다.
명일방주의 등장인물 첸 훼이제는 적소(赤霄)라 부르는 붉은 대검과 함께 SF풍의 대도를 무기로 사용하는데, 적소는 평상시엔 사용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주무기는 대도를 쓰고 있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는 사화, 헝빙류만과 같은 중국계 마피아 조직원들이 무기로 들고 나오며 작중에선 '청룡도'라고 불린다. 7편에서는 동료가 되는 쵸우 티안유도 대도(청룡도)를 기본 무기로 들고 나온다.
한국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유해진)이 이 항일대도를 들고 다니면서 일본군을 마구 썰어댄다. 심지어 총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
반다이 남코의 격투게임 소울 칼리버 시리즈에서는 어째선지 한국인 캐릭터인 황성경홍윤성이 사용한다.

[1] 대만에서는 Púdāo라고 읽는다. #[2] 다만 그림 속 청군의 무기는 일반 대도는 아니고 언월도이다.[3] 일본군에서 도검은 장교의 권위를 상징했다.[4] 중국군에 비해 일본군들은 훈련도 충실한 편이고, 전쟁포로를 총검술 훈련 샌드백으로 삼는 방법을 써서 병사들의 살육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5] 총검을 제대로 보급받았다고 해도 당시 중국군들이 쓰던 중정식 소총이나 한양조 소총은 일본군의 38식 소총에 비해 길이가 짧았기에 백병전은 여전히 열세였다. 사실 이건 38식 소총이 유난히 길었던 탓이기는 하지만. 다만 7.92mm 탄을 썼기에 화력은 앞섰다.[6] 鬼子(뀌쯔)는 원래 귀신이란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일본군을 말한다. 그러므로 왜놈이라는 번역이 맞을 듯. 자세한 것은 르번구이쯔 항목 참조.[7] 베기에 중점을 둔 외날 도검으로, 전통적인 중국도 중에서는 가장 흔히 쓰이던 칼로서 보병도로서도 기병도로서도 널리 쓰였기에 여러 중국 무술 유파에서 사용법을 가르쳤던 칼이기도 하다. 대도보다는 작은 칼이지만 그래도 역시 장검이었으며, 대도와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있어 베기의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도와의 차이는 대도가 무거운 양손검인데 비해 유엽도는 보다 가벼운 한손검이라는 점. 여담으로 유엽도의 설계가 무게중심이 절묘하게 잡혀 검술을 할 경우 손목을 이용하여 쉽게 위력을 내기 쉬워서 대도보다 더 실전적인 칼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엽도는 혼자서 하는 투로에만 활용될 뿐 대련이 거의 없는 실정에 무기끼리 맞붙는 대결에서조차 장검, 일본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유엽도의 실전성이 입증된 경우는 없다.[8] 놀랍게도 조선 사람이다! [9] 전쟁 당시 일본군이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중국의 민병대와 군벌군, 국부군들을 보며 '중국군은 청룡도를 휘두르고 다닌다'고 오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10] 괘할림편 이후에는 쌍계도로 같아탄다.[11] 대명부편 한정.[12] 삼국지연의를 비롯해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미디어물들에 유명 장수들이 쓰는 무기 대부분은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에 없다가 후대에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중 삼국지연의 창작물인 진삼국무쌍 시리즈는 아예 다른 나라에서 유래됐거나 국적불명의 무기들이 태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