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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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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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향'''
경상북도 안동시
'''시조'''
김숙승(金叔承)
'''중시조'''
김방경(金方慶)
'''인구'''
425,264명(2015년)
1. 개요
2. 역사
3. 인물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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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安東 金氏(舊)'''
경순왕의 손자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고려의 명장 김방경이 중시조이다.[1]

2. 역사


고려 공민왕 때 신돈을 탄핵하고 고려가 망하자 첩첩산중에 은거한 충신 김사렴과 김사렴의 아우이자 조선 왕조 개국공신 1순위인 김사형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진주 대첩김시민 목사, 강홍립이 이끌고 출정했던 후금 정벌군의 전선 지휘관으로 훗날 명나라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는 김응하 등도 모두 선 안동 김씨다. 김시민, 김응하는 모두 충무공의 시호를 받았다.[2] 현재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선 안동 김씨는 김구다.
선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한다, 그 모든 중심에는 김자점이 있다. 김자점은 1623년 3월(광해군 재위 15년)에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른다.(나중에 다시 승정원동부승지로 특별승진) 후일 병자호란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당하고(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함) 호란이 끝난 뒤 조야의 처벌 요구로 유배당한다. 그러나 김자점은 1639년(인조 17년) 사면되고 1640년(인조 18년) 복직된다. 하지만 효종 때 산당 세력에게 탄핵당해 1650년 파직되고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당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청나라한테 효종이 청나라를 적대시하는 북벌론을 지지하고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한다며 밀고하여 나라에 큰 혼란을 불러오게되는데, 다행히도 이경석, 이시백 등의 활약으로 청나라 군대를 돌려보낸다. 이후 김자점은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당하지만 그 후에도 손자며느리인 효명옹주 저주사건, 아들과 손자들의 군사반란이 발각되면서 아들, 손자들과 함께 역모로 몰려 사형당하고 가문은 몰락한다(...). 임시 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가 김자점의 방계 후손인데, 백범 일지에서 집안이 상놈의 패를 찼다(...)고 언급하는 사건이 이것이다.
그러나 김자점 이후에도 좌승지 김구만(龜萬)뿐만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사 가 총 9명[3], 도승지, 병조참판을 역임한 김광국(光國) 등이 있는 것을 보면 김자점의 정치적 몰락으로 인해 벼슬길이 막혔다거나 집안이 몰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4] 다만 판서 이상의 벼슬은 김자점 이후에는 김구의 아들 김신이 교통부장관이 된 것이 처음이다. 오히려 이후 신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의 모든 정치, 사회 기능이 난장판이 될 때 그 여파로 인해 정치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이후 수많은 사대부들이 문란한 정치판에 실망하여 통치체제 자체에 불만을 갖게 됐으며, 이는 이후 흥선대원군이 순식간에 권력의 중심에 오르는 배경이 된다.

3. 인물


  • 김방경 : 고려 중기의 무신.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에 참전. 구 안동 김씨의 중시조이다.
  • 김사형 : 여말선초의 문신. 고려의 구신 가운데 이성계를 지지한 대표적인 인물.
  • 김시민 : 조선 중기의 무신, 진주 대첩영웅.
  • 김자점 : 조선 중기의 문신. 인조 대의 대신이었으나 역모를 획책했다가 처형당한다.
  • 김질 : 조선 전기의 문신, 사육신을 배신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
  • 김득신 : 조선 후기의 문신.
  • 백범 김구 : 25세 'O會' 항렬.
  • 김신 : 김구의 아들. 공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역임.
  • 김재익 :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24세 '在O' 항렬.
  • 김재형 : 전 KBS PD. 24세 '在O' 항렬.
  • 김소연 : 배우.
  • 김동회 : 조직폭력배, 25세 'O會' 항렬[A].
  • 김승회 :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선수, 25세 'O會' 항렬[A].
  • 연우진 : 본명은 김봉회, 25세 'O會' 항렬[A].

4. 같이 보기


[1] 김방경의 동생인 김현경의 손자 김영규(최영규)는 수성 최씨의 시조가 되었다.[2] 유독 한 분이 넘사벽으로 유명하지만 조선의 충무공은 모두 9명이다[3] 김영수, 김응해 등[4] 물론 그동안 떵떵 거리며 살던 사람들 입장에선 몰락이다.[A] A B C 즉, 김구의 먼 친척 동생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