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조통달 소리꾼이 부른 흥부가 中 <화초장타령>
1. 소개
2. 줄거리
3. 해설
4. 흥보만보록의 발견
5. 흥보만보록의 내용
6. 유사한 타국의 전래 동화들
7. 흥부전이 모티브가 된 작품


1. 소개


춘향전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 못된 형과 착한 아우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방이 설화가 흥부전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형과 동생의 역할이 반대고 나쁜 쪽이 죽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전개가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1]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흥부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2. 줄거리


옛날 어느 마을에 흥부놀부라는 형제가 살았다. 놀부와 흥부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사이좋은 척 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못된 놀부는 착한 흥부를 돈 한푼 안 줘서 쫓아냈고, 흥부는 스무명의 처자식들과 함께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처지에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별의별 힘든 날품팔이로 살아간다.
이 도중에 흥부가 놀부네 집에 식구들 먹일 쌀이라도 좀 얻어보러 갔다가 인심 사나운 놀부 아내에게 주걱으로 싸다귀를 맞고, 밥풀이라도 조금만 더 달라고 구걸하다가 풀이 죽어 되돌아왔다.
어느 봄날 흥부는 제비구렁이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구렁이를 쫓아내려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그 제비를 치료해주었다. 이듬해 봄, 제비가 박씨를 떨어뜨리자 흥부네는 그 박씨를 심었다. 박은 놀랄 정도로 거대하게 자랐으며, 흥부 가족은 먹을 것이 없어 박이라도 먹기 위해 박을 꺼내서 박을 탔다. 그러자 박 속에서 온갖 곡물과 금은보화는 물론, 심지어 일곱 난쟁이들까지 쏟아져나와 흥부네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놀부는 흥부에게 그 비결을 듣고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당장 본인네 집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를 보고 그 중에 한 마리를 잡아 일부러 강제로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다시 고쳐주었다. 이듬해 봄 제비가 박씨를 가져오자 놀부는 그것을 심어 박을 키워 탔는데, 박 속에서 나온 건 곡물과 금은보화가 아닌 40명의 도둑들과 도깨비, 물 등이 쏟아져 나와 도둑맞고 마구 두들겨 패고 집까지 덮치게 되면서 놀부 내외는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착한 흥부네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놀부가 개과천선하면서 흥부와 우애롭게 살았다.

3. 해설


욕심 많은 형과 착한 동생이 대비를 이루고, 나쁜 형이 벌을 받고 착한 동생이 복을 받는다는 점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권선징악의 교훈 외에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남의 성공을 어설프게 흉내내면 오히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교훈도 있다.
많은 국사 선생님들은 근대 태동기의 부농과 빈농의 분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사실 흥부전을 근대 태동기 시대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쓰는 게 아주 뜬금없는 접근은 아닌 게, 흥부네 가족들이 박으로 잭팟이 터진 뒤 이 쏟아지는 부를 어떻게 할까하면서 만담하는 장면에서 '''엽총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부 판본에선 흥부와 놀부 모두 신분은 양반이지만 두 형제의 부모가 형인 놀부에게만 재산을 다 물려줘서 흥부네 집이 가난한 거란 이유도 덧붙여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스토리를 재평가하기도 한다. 흥부는 먹여살리지도 못할 자식들을 책임감 없이 줄줄이 낳았으니 이는 분명한 잘못이며, 놀부는 그래도 본인이 노력해서 축적/유지해 온 재산인데 그걸 한큐에 잃어버렸으니 오히려 흥부를 감성팔이하는 악역, 놀부를 선역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일단 문학에는 기본적으로 해석의 자유라는 게 있고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해 준다는 점에서 이런 역발상이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든 우선은 작품 자체에 대한 정합적 이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이는 적합한 해석이 아니다. 놀부 문서를 참고해 보면 알겠지만, 놀부의 재산은 동생 몫까지 빼앗은 부당한 상속의 결과이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뤄낸 게 아니라는 점을 염두해야 하고 흥부 역시 어쨌거나 처와 그 많은 자식들을 다 끝까지 먹여살렸다는 점에서, 다소 어수룩한 인물일 수는 있어도 악역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
고전 문학 선악 비틀기 자체가 다소 식상한, 한물간 유행이긴 하다. 현대 소설의 입체적 인물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작품 내에서 형상화될 때부터 빼박캔트로 전형적인 선악 인간형으로 설정되었는데 그걸 무리하게 뒤집는 건 억지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예 작품을 다르게 재창조하여 인물을 형상화했다면 몰라도.
외국 교수 마크 피터슨이 18세기 무렵의 저항문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당시, 형제 균등 상속에서 장남 상속제로 바뀌면서, 형이 부모님의 재산을 다 가져가고, 동생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가난해지는 것이 옳바른 것이냐는 시각에서의 해석이다.

4. 흥보만보록의 발견


1833년에 쓴 흥부전의 한글필사본이 2017년 6월 27일에 발견되었다. 하버드가 소장 중인 지금까지의 가장 오래된 흥부전인 '흥보전'보다 20년이나 앞서있다. 해당 자료는 송준호 연세대 명예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서, 책의 표지는 '박응교전'이며, 전체적인 내용도 흘려 쓴 한글로 적혀져있으나 현대의 사람들은 읽기 힘들어 번역과 해석이 필요한 한 권의 고서쯤으로 생각하고 자세히 보지 않다가, 최근 책장을 넘기다보니 중간 부분이 '흥보만보록'이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연구가 진행되었다.
단순히 가장 오래된 흥부전이기도 하지만 가장 오래된 판소리 작품이며 기존 흥부전에서 막연하게 다뤄졌던 흥부 놀부의 출생 배경과 자세한 이야기 등이 적혀져 있어 세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여태껏 흥부전의 배경은 남부 지방 쪽으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춘향뎐과 같이 남원으로 생각되고있던 흥부전의 본래 장소가 평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발견했던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김동욱 박사는 '호남 지방이 판소리의 주도권을 지니게 되면서 배경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5. 흥보만보록의 내용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슷하며, 기존의 통설을 뒤엎은 내용 및 추가된 내용을 주로 정리했다.
  • 흥부와 놀부는 별명이 아닌 본명이고, 성은 덕수 장씨다. 출생은 평양 서촌이며, 그들의 아버지의 성명은 장천이다.[2]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흥부와 놀부는 비교적 잘 사는 부잣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 흥부는 친부모 봉양을 위해 고향집으로 돌아가려 하며 형인 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놀부는 자신은 처갓집 덕분에 잘먹고 잘살게 되었는데 왜 친부모의 봉양을 해야하느냐며 처갓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처와 장인 장모에 대한 봉양만 정성들여 했고, 이 때부터 둘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졌다.
  • 이후 제비 다리 사건은 기존 내용과 같다.
  • 흥부는 훗날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
덕수 장씨의 시조는 고려충렬왕 시대에 살았던 위구르 출신인 장순룡으로 알려져 있어, 흥보만보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같은 성씨라도 계파가 나뉘어 각 계파마다 시조가 있는 경우도 있다.[3]
흥부전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 시대일 가능성도 있다. 평민 집안의 남자가 부잣집 딸의 사위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아 신분을 넘어 남녀간의 연애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고려 시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점, 장남인 놀부가 흥부에게 부모에 대한 모든 것을 떠넘기고 장남으로서 지녀야 할 부모에 대한 효를 놓아버리는 모습이 엄격한 조선 유교 사회의 사상과는 차이가 있는 점, 자식을 여럿 낳을 동안 계속 처갓집에 붙어 내내 거주하는 점으로 보아, 사위가 1년 ~ 3년의 짧은 데릴 사위 생활을 하던 조선 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더욱 설득력이 생긴다. 흥부는 고려 시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 비로소 시행된 무과 시험에 급제 했다고 하면 말이 된다.
농촌 사회는 노동력을 중시하나, 두 아들인 흥부와 놀부가 고향집을 두고도 모두 처갓집에 들어와 살아도 되었다면 그들의 집안은 농사를 짓지않는 가내 수공업이나 상업으로 살아갔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도 고려 후기엔 민간 수공업이나 상업이 번창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담겨있으나, 스토리 중간에 여전히 제비 다리 사건과 같은 판타지가 섞여있다는 것에서 단순히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은 민담이라기보단 덕수 장씨의 후손이 자신들의 시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실제 이야기에서 과장 조금 보태서 퍼뜨린듯한 신화적 성격이 강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선조를 드높이는 신화는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의 이야기와 같은 탄생 설화 등이 있다.
흥보만보록의 내용을 알고 육각수의 노래인 흥보가 기가 막혀를 들어보면 흥부가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집에 가지않고 방황하는 패륜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더라.

6. 유사한 타국의 전래 동화들


이 이야기는 KBS2 스펀지 172회에서 흥부와 놀부 티베트 민화 명제로 소개된 적이 있다. 줄거리는 흥부와 놀부와 유사하며, 여기서는 제비 대신 참새가 나온다. 그리고 참바가 부자가 되는 과정은 흥부전과 비슷하며, 쩨링이 망할 때는 채권자가 나와서 엄청난 빚이 있다고 하면서 재산을 모두 가져간다. 또한, 흥부와 놀부에서는 서로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했다면, 여기서는 거지가 된 쩨링이 참바의 종으로 들어가 빚을 갚게 된다는 결말로 끝난다.
지금은 절판된 프뢰벨의 세계 전래 동화 선집에서 나오는 옛이야기. 어느 부잣집 여주인으로부터 혹사를 받으면서 일하던 가난한 소녀 마리카가 삼과 물레를 들고 부잣집을 탈출했다가 길을 잃고 해매던 도중 숲속에 있는 곰의 집에 들어가 주변을 치우다가 돌아온 집주인인 곰에게 들켰을 때 곰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위기를 넘겼다. 이에 그 보답으로 그녀는 곰으로부터 받은 항아리에서 나온 금화로 부자가 되었다. 그 뒤 부잣집 여주인이 마리카의 소식을 듣고 마리카가 자신의 집에서 탈출했을 때 그 집에 가지고 갔던 삼보다 더 값비싼 양털과 가위를 딸 이왕카에게 쥐어준 채 숲 속 곰의 집으로 보냈다. 그 뒤 곰의 집에 간 이왕카는 친절하게 곰을 대했던 마리카와 달리 집주인인 곰에게 온갖 나쁜 짓거리들을 저질렀고[4] 고집을 피우면서 곰으로부터 얻은 항아리를 집에서 열었을 때 튀어나온 벌떼에 모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플룻은 흥부전과는 많이 다르긴 하나 다른 나라들의 동물이 등장하는 권선징악형 전래 동화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편이다.

7. 흥부전이 모티브가 된 작품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흥부전을 놀부 위주로 재해석한 작품. 고우영 화백이 만화로 그린 것도 있다.
흥부전을 각색했으며 여러 전래 동화도 좀 섞여있다.

[1] 이 방이 설화는 또다른 설화인 혹부리 영감의 초기 형태로도 추정되고 있다. 읽어보면 두 설화를 섞어놓은 듯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2] 기존의 흥부전에서는 형제의 성이 연씨 혹은 박씨로 알려져 있다.[3] 흔히 파시조라고 한다.[4] 심지어 곰이 양털을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에 곰의 꼬리를 가위로 절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