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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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壽善
1911년[1] 6월 26일[2] ~ 1972년 7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주(廣州)[3]#.
1911년 6월 26일 경상남도 언양군 상북면 어음동(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어음리)[4] 에서 아버지 김상학(金相學)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종국(洪宗國)의 딸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언양보통학교와 경남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사범학교 졸업 후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울산군 청량보통학교[5] 훈도로 근무하였으며, 이 사이 1937년 성주보통학교 훈도 및 1938년 경산심상소학교 훈도를 겸직하기도 했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는 재령국화심상소학교 촉탁 및 훈도로 근무했다.#
이후 산업조합 서기로 근무했으며, 해방 직전에는 농업에 종사하였다.
8.15 광복 후에는 주식회사 문화당(文化堂) 상무취체역, 조선교육연구회 총무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울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인접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로 옮겨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오위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는데 오위영 후보가 사퇴하면서 쉽게 당선되었다. 이후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였으나 1955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역구에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1957년 의원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다가 개헌이 결국 불가하게 되자, 『一人政治十年(일인정치십년)의 歷史(역사)』라는 저술을 발표하였고 이로 인해 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질문서한을 보냈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옮겨 서울특별시 종로구 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당 윤보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영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설두하에 밀려 탈락하자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71년 다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지지하였다.
金壽善
1911년[1] 6월 26일[2] ~ 1972년 7월 2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주(廣州)[3]#.
2. 생애
1911년 6월 26일 경상남도 언양군 상북면 어음동(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어음리)[4] 에서 아버지 김상학(金相學)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종국(洪宗國)의 딸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언양보통학교와 경남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사범학교 졸업 후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울산군 청량보통학교[5] 훈도로 근무하였으며, 이 사이 1937년 성주보통학교 훈도 및 1938년 경산심상소학교 훈도를 겸직하기도 했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는 재령국화심상소학교 촉탁 및 훈도로 근무했다.#
이후 산업조합 서기로 근무했으며, 해방 직전에는 농업에 종사하였다.
8.15 광복 후에는 주식회사 문화당(文化堂) 상무취체역, 조선교육연구회 총무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울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인접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로 옮겨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오위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는데 오위영 후보가 사퇴하면서 쉽게 당선되었다. 이후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였으나 1955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역구에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1957년 의원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다가 개헌이 결국 불가하게 되자, 『一人政治十年(일인정치십년)의 歷史(역사)』라는 저술을 발표하였고 이로 인해 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질문서한을 보냈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를 옮겨 서울특별시 종로구 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당 윤보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영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설두하에 밀려 탈락하자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71년 다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