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삼

 


金春三
1928년 2월 1일 ~ 2006년 11월 26일
1. 개요
3. 실상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대한민국거지, 깡패[1]. '''왕초'''와 '''거지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2. 본인이 주장한 생애


평안남도 덕천 출신이지만 8살 때 대전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남하하던 중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무리에서 미끼노릇을 하게 되었고 이후 거지 생활을 하게 된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는 '''거지왕'''이 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전국 10여 곳에 합심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거둬들였고 '''대한자활개척단'''을 운영하며 거지들을 챙겨주며 '''거지들의 대부'''로 불렸다. 10평 남짓한 다세대 주택에서 기초생활수급자와 국가유공자 지원금으로 살면서도 평소 노숙자 문제와 환경문제에 관심이 컸다는 게 아들의 증언.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룬 자서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출판했는데 MBC에서 이를 각색한 드라마 왕초를 방영했다. 차인표가 김춘삼을 연기하며 인기를 끌었고 실제 김춘삼도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노년이 되어서도 12평 전세방에서 살다가 지병인 폐질환으로 7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상사로서 복무한 기록 덕분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추모하며 고아들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으며 무소유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3. 실상


'''실제로는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해방 직후인 제1공화국 시대를 통틀어 최악의 깡패가 바로 김춘삼이었다.''' 서울 중부시장에서 상인들에게 금품갈취와 기물파손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러서 현상수배까지 되었던 놈이 바로 김춘삼이다. 적어도 다른 악명높은 깡패들과는 달리 김춘삼만 유일하게 여자를 상습적으로 때렸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강제로 앵벌이를 시켰다. 김두한은 최소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깡패 시절 버릇을 못 고쳐서 그렇지 일단은 조직폭력배 세계에서 손을 씻었지만, 김춘삼은 평생 깡패 짓만 하다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드라마화까지 되어 그에게 큰 인기를 가져온 자서전의 내용은 죄다 거짓말이라 봐도 무방하다. 본인이 김두한과 절친한 친구였다고 했지만 김두한은 1918년 생으로, 정확히 김춘삼보다 열 살 형이고, 김두한은 당시 남조선 어깨 중 강자라인에 선 인물[2]이다. 게다가 남한이든 북한이든 김두한에게 '''깡패를 초월한 존재'''로 대우했으며 이 때문에 김일성이 직접 김두한에게 조선인민군의 '''장성급 장교 정복'''을 선물한 일화까지 있다. 물론 김두한은 아버지인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되어 그 정복을 소각했다. 이런 김두한이 김춘삼하고 다녀서 좋을 것도 없고, 다닐거면 부하로 삼고 다녔지, 친구로 다닐 사람이 아니다. 당대 주먹들의 자서전이나 일화에도 김춘삼에 관련된 내용이 없다. 모두 김춘삼의 일방적인 주장들 뿐이다.
당대의 주먹뿐만 아니라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와도 인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박정희는 자신의 상관이었고 늘 챙겨주던 박정희가 법정에 서자 그를 위해 자신이 증인으로 섰다는 내용도 나온다. 5.16 군사정변 이후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때마침 그곳을 방문한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된 박정희가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고도 한다. 혁명재판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이승만 정권 시절 유명했던 소위 "오야붕 급" 정치깡패 출신들을 경계한 것이 박정희라는 것을 고려하면[3] 자신이 김두한, 이정재와 어울렸다는 네임드 주먹이라는 이야기를 스스로 거짓이라 증명한 셈이 된다. 이와 별개로 박정희와 우호적인 관계였다는 이야기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
애초에 무슨 김두한이나 이화룡, 이정재 같은 체계적인 조직이 있는 조직폭력배라기 보다는 거지들을 착취하면서 거지패 우두머리로 깡패짓을 하는 신흥 폭력배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 거지들을 상대로 자활개척단인가 뭔가를 운영했는데 자선사업을 빙자로 기부금을 갈취, 횡령한 문제로 신문지상에 계속 오르내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김춘삼의 이름을 검색하면 '''깡패''' 김춘삼이 고아들을 폭행하거나 금품갈취로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15살 연하인 아내와 금슬 좋기로도 소개되었는데 납치결혼 의혹이 있다. 아내는 기절시키지 않은 이상 강간은 없으니 인연이라고 생각해달라며 대답을 피했지만 사실 이건 이 정도 나이대인 여자들중에도 강간이나 신부보쌈으로 결혼하는 행위에 대해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그 아내와의 결혼 역시 말이 안 되는 게 아내라는 남윤자는 당시 조선대학교 4학년이었으며 1960년대 당시 대학생이면 지금의 으쟁이 뜨쟁이들과는 달리 진짜 지성인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남윤자가 한낱 무뢰배에 불과한 김춘삼에게 먼저 접근할 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김춘삼이 남윤자를 잡아서 무등산으로 끌고 간 뒤 15일 후 석방했다는 얘기는 있다. 김춘삼의 논지는 "석방시켜줬기 때문에 납치가 아니다"는 논지이다.
심지어 어린시절 김춘삼의 '''측근에서 활동했다고''' 밝힌 조세형은 드라마 왕초나 김춘삼의 자서전은 다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김춘삼이 어울렸다고 주장한 두 사람과는 너무나도 대조가 된다. 김두한이만섭[4],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동료 정치인으로 활동해 사후 이들이 김두한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고, 부하들도 김두한을 추억하면서 옹호한 전적으로 봐선, 사람 자체는 괜찮았던 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두한은 천하의 의협이라 와싱톤 정이 빈사상태로 형무소에 쓰러져 있었을때 '''오직 와싱톤 정을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강도질을 해서 병원비를 낸 일화'''까지 있는 인물이다. 김두한 보다는 작은 그릇인 이정재도 부하들이 억울하게 임화수 때문에 죽었다고 옹호하는 등, 측근들은 그에게 정이 들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인간미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김춘삼의 측근이 그의 자서전은 모두 거짓이란 말을 했다는 것은 김춘삼은 그릇 이전에 '''인간성 자체에 큰 결함이 있었다는 사람임을 엿 볼 수 있다.'''
이외에는 김춘삼의 자녀들은 김춘삼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고아들과 차별없이 자랐다고 하는데, 이를 좋게 말하면 자신의 혈연이 아닌 아이들도 자기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줬다고 할 수 있지만, 김춘삼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감안하면 김춘삼이 자녀들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아들을 자식처럼 대우한 게 아니라 '''자식들을 고아들과 똑같이 학대한 것에 훨씬 가깝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4.1. 드라마 왕초


침착한 성격과 배짱으로 염천교 거지 소굴의 우두머리이자 전국의 거지왕이 된 인물. 거지로서의 닉네임은 '멸치'이지만 아무래도 왕초라는 호칭이 있는 만큼 발가락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5] 대구에서 거지 생활을 하는 동안 꿈에도 그리던 생모를 만났지만, 이미 거지 생활에 익숙해진 이후라 계부의 집에서 부잣집 도련님처럼 사는 답답한 생활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서울의 큰 거지가 되기로 결심한다.[6]
어린 시절 첫사랑인 연지를 다시 만난 후 장사치라고 구라를 펼치며 접근하다가 큰 동냥판에서 각설이 타령을 부르는 모습을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이미 연지도 춘삼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린 후였으니...
첫사랑에 대한 순정으로 온갖 모진 일들을 당하면서도 늘 대인배처럼 '또 만나자'고 말하며 일편단심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약혼한 연지의 부탁으로 그 남자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싸우기까지 한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친구라고 믿는 등의 우직한 면모도 있지만 동시에 단순 무식하기도 해 쉽게 버럭하는 면도 있다. 깡패는 아니지만 깡패들과 구역 다툼을 하기도 하는 전국 거지들의 대장 이니만큼 거물급 깡패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등의 존재감이 있지만, 거지라는 이유로 모욕적이고 부당한 일들을 겪으며 점차 인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부하 거지들을 간척 사업에 투입시키고 전쟁을 겪으며 고아가 된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고아원 '합심원'을 운영하는 등 사회 사업가로 성장한다.
강제 징용을 당했을 때나 6.25에 참전했을 때 모두 죽었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비장하게 돌아오는 등 은근히 불사조 기믹도 가지고 있다.
명대사는 '주먹으로 할래, 깡으로 할래?' [7]

4.2. 드라마 야인시대


왕초(야인시대) 문서 참조. 실존인물 김춘삼은 김두한보다 10살 어리지만 이 왕초는 김두한보다 연상이라는 점,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춘삼이라고 하기엔 부족해서 문서에서 삭제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거지들을 폭행하고 자신이 거지 주먹패의 왕을 자청하고 심지어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빼도박도 못한 김춘삼의 모습이다.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신정태가 김두한, 시라소니의 모습 중 일부만 채용한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처럼, 김춘삼의 면모 중 일부만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8]

4.3. SNL 코리아


GTA경성의 플레이 가능한 3 캐릭 중 하나이지만 플레이는 하지 않았으나[9] 나중에 퀘스트 목표로 재출현하여 플레이어 캐릭터인 이완용의 낭심을 집중공략하여 고자로 만들었다(...)
[1] 자신은 조직폭력배라 주장하지만 거지패의 우두머리다. 자기가 떠든 조폭들과의 일화도 교차검증이 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2] 당장 나이로는 김두한보다 1살 형인 이정재(조직폭력배)가 김두한을 형님으로 대우했다.[3] 박정희는 한국독립당 소속의 정치인 김두한과 주먹계에서 손을 씻고 영화인으로 활동한 이화룡을 손 보려한 적이 있다.[4] 아예 야인시대 열풍 당시에 인터뷰에 응해 멋진 의원, 바른 말만 잘하시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로 김두한을 고평가 했다.[5] 마치 베지터오공을 카카로트라고 부르는 것처럼[6]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경우로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가 부잣집에서 살다가 양가의 부모들이 서로 자식이 뒤바뀐걸 알아서 각자 원래 자식을 되찾았으나 가난한집에서 자라온 아이는 부잣집에서 적응을 잘한데 비해; 반대로 부잣집에서 자라온 아이는 가난한 본가에서 적응을 못해 결국 부잣집에서 두 아이를 모두 기르기로 한 경우랑 완전히 상반된다. 거지생활에 익숙해져서 부잣집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건 당연히 [7] 가끔 묘하게 깐죽대는 등의 대사를 하기도 하는데 차인표 특유의 말투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8] 어린 김두한에게 각목까지 썼지만 발차기로 패배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맥, 주먹실력 등등 인생의 전부가 거짓과 허세인 실존인물 김춘삼을 이환경이 조롱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일 가능성도 있다.[9] 플레이어와 게임캐릭터 모두 김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