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코리 케이

 

'''니시코리 케이'''
'''(錦織圭(にしこり けい / Kei Nishikori)'''
'''생년월일'''
'''1989년 12월 29일 (34세)'''
'''국적'''
'''[image] 일본'''
'''출신지'''
'''일본 시마네현 마츠에시'''
'''프로데뷔'''
'''2007년'''
'''신장'''
'''178cm (5 ft 10 in)'''
'''사용 손'''
'''오른손 (두손 백핸드)'''
'''ATP 싱글 랭킹'''
'''최고 4위 / 현 35위[A]'''
'''ATP 더블 랭킹'''
'''최고 167위 / 현 465위[A]'''
'''개인전 통산 성적'''
'''404승 192패 (67.8%)'''
'''복식 통산 성적'''
'''25승 32패 (43.9%)'''
'''개인전 타이틀 획득'''
'''12회'''
'''그랜드슬램 결과'''
호주 오픈 8강 (2012, 2015, 2016, 2019)
프랑스 오픈 8강 (2015, 2017, 2019)
윔블던 8강 (2018, 2019)
US 오픈 준우승 (2014)
'''올림픽 메달'''
'''2016 리우 올림픽 단식 동메달'''
'''통산 상금 획득'''
'''$23,922,819'''
'''후원'''
'''유니클로'''
'''SNS'''
''' '''
1. 소개
2. 선수 경력
3. 커리어
4. 기타
5. 참고 링크


1. 소개


'''아시아 남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일본테니스 선수이다.
소니에서 '''"세계 랭킹 20위권 일본 선수를 배출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스폰서를 받았으며, 미국의 IMG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뒤 2007년 프로무대에 데뷔하여 주목받는 신인으로 통하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 선수 경력


프로 데뷔 다음해인 2008년 2월에 ATP 투어 델레이 비치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했는데, 당시 니시코리 케이의 세계 랭킹 순위가 244위에 불과해서 본선 직행은 못하고 예선전부터 출전하였다. 당시 니시코리는 주목받지 못하는 신인 정도의 위치였으나, 예선 3라운드를 다 통과해 본선에 올라 결승까지 진출 - 세계 랭킹 12위로 대회 1번 시드를 받은 제임스 블레이크[1](미국)를 상대로 2-1(3-6, 6-1, 6-4)로 역전승을 거두고 '''커리어 첫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노시드에 챌린저 투어 남자 단식 우승 경험도 없던 갓 데뷔한 신인이 이런 엄청난 활약을 보여 당시 테니스계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니시코리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던 탓인지 ATP 투어 델레이 비치 오픈 남자 단식 우승 이후에 6개월 가까이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ATP 투어에서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2009년 4월부터 1년간 부상 치료와 재활에 전념해야 했다. 2010년 초에 복귀한 이후에 바로 투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챌린저 투어 대회들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세계 랭킹 순위를 올리다가 2011년에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상하이 오픈 남자 단식 4강에 오르는 등의 성적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상위랭커로 자리잡았다.
올라운드 스타일로써 딱히 특출난 점은 없지만, 매우 견고한 테니스를 치며 집중력이 뛰어나다. 투어 대회에서 다비드 페레르,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 등 선배 상위랭커들을 이기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동년배 신인들 중에선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와 함께 가장 잘 나가는 선수였다.[2]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경력이 없는 동년배 상위랭커인 디미트로브 & 라오니치 등과 더불어 그랜드 슬램 타이틀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는 중.[3][4] 다만, 이름난 유리몸이다.
게다가 2014년부터 아시아계 테니스 선수들에겐 영웅인 테니스 레전드 마이클 창을 코치로 맞이하면서 성적이 더욱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를 증명하듯 2014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르며 니시코리 케이 본인의 커리어 첫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였고 이는 아시아 국적 테니스 선수로선 처음으로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르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 하반기에 US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우승 후보로 세계 랭킹 1위이던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3-1(6-4, 1-6, 7-6<7-4>, 6-3)로 이기고 결승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는데, 니시코리 케이의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 진출은 본인의 커리어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결승 진출이면서 아시아 국적 테니스 선수 중 최초의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 결승 진출 기록이었다.
아시아'''인''' 테니스 선수 중 최초로 그랜드 슬램 남자 단식 결승 진출자이자 우승자는 현재 니시코리 케이의 코치이기도 한 중국(대만)계 미국인 마이클 창. 하지만 아쉽게도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마드리드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클레이 코트 대회에선 거의 무적이던 세계 랭킹 1위로서 대회 1번 시드를 받은 우승후보인 흙신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만나서 세트 스코어 1-2(6-2, 4-6, 0-3<경기 중 기권>)로 역전패하였고, 2014년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도 마린 칠리치[5](크로아티아)에게 세트 스코어 0-3(3-6, 3-6, 3-6)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니시코리 케이의 앞으로의 선수로서의 전망은 밝은데 이를 증명하듯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 11월달 ATP 싱글 랭킹에서 5위에 오름과 동시에 아시아 국적 선수로선 최초로 2014년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에 참가하는 쾌거도 이루어 냈다.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까지의 커리어 만으로 역대 최고의 아시아 국적 남자 테니스 선수로 평가되는 태국의 테니스 영웅 파라돈 시차판[6]의 커리어를 넘어섰다. 니시코리 케이가 현재의 커리어 성적만으로도 시차판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아시아 국적 남자 테니스 선수로 평가될 것이 분명하며, 니시코리 케이가 아직 1989년생이므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커리어를 쌓게 될 것인지 기대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2015년 3월에는 아시아 국적 남자 테니스 선수론 최초로 ATP 싱글 랭킹 순위 4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다만, 니시코리 본인이 항상 부상을 달고 살기 때문에 테니스 포럼 쪽에서는 만년 유망주로 남는 것 아니냐라는 분석도 있다.[7]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 테니스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선 앤디 머리(영국)에게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선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2-1(6-2, 6-7<1-7>, 6-3)로 꺽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당시 남자 단식 & 복식에서 쿠마가에 이치야(1890~1968)가 은메달 2개를 받은 이후로 96년만의 메달획득.
리우 올림픽 2주 후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에선 8강전에서 앤디 머리(영국)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3-2(1-6, 6-4, 4-6, 6-1, 7-5) 역전승하면서 4강에 올랐다. 그러나 4강전에선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스위스)에게 세트 스코어 1-3(6-4, 5-7, 4-6, 2-6)으로 역전패하면서 다시 한번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 오르는데는 실패하였다.
2017년 11월까지 거둔 통산 주요 성적은 2014년 US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2016년 US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5회, ATP 파이널스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3회, 4강 진출 7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동메달,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1회, 준우승 7회를 기록중이다.

2016년 ESPN에서 선정한 세계 유명 스포츠스타 top 100에서 47위에 올랐다. 현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라 불리는 마이크 트라웃이 73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하다. 물론 테니스와 야구의 세계위상차이가 매우 큰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또한 포브스에서 선정한 2016년판 세계 스포츠스타 수입랭킹 top 100에서는 연수입 3,350만 달러로 아시아 선수 최고인 29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아시아 선수 2위가 연수입 2,300만 달러를 기록하며 74위에 오른 다나카 마사히로인데, 약 천만 달러 이상의 차이가 난다.
2017년 ESPN에서 선정한 세계 유명 스포츠스타 top100에서 20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매년 실시하는 인기 스포츠 선수 랭킹에서 5~6위권 안에는 드는 일본의 스포츠 영웅중 한명이며, 탑랭커답게 전세계적으로 팬들도 많다.
2018년 들어서는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챌린지 대회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호주 오픈에도 불참하고, 아카풀코 오픈에서도 1회전 탈락했다. 마이애미 오픈에서는 32강까지 갔지만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에게 패배했다. 몬테카를로 오픈에서 토마스 베르디흐를 격파, 32강에 올랐다. 32강전에서도 다시 실력이 돌아온 스트로크로 다닐 메드베데프를 격파해 16강 진출했다. 또 안드레아스 세피를 꺽으며 8강에 진출했지만 다음 상대는 마린 칠리치로 최근 전적도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 칠리치는 자신과 비슷한 체격과 강서버로 유명한 전 경기 상대 라오니치가 미리 경기포기하면서 walkover로 무혈입성으로 8강에 가면서 체력도 아껴 니시코리가 이길 가능성은 적어보인다..였으나 칠리치를 꺽고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4강에서는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꺾으며 결국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흙신 나달에게 맥없이 패배했지만, 그래도 마스터스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린 니시코리는 해당 대회의 점수가 반영된 순위표에서 전보다 14계단 오른 22위를 기록했으며 본인의 부활을 알렸다.
바로 다음에 출전한 마드리드 오픈에서 노박 조코비치에 밀려 1회전 탈락하면서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로마 오픈 32강전에서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를 꺾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니시코리는 복귀 이후 TOP10 랭커 중 3, 4, 5위 선수들을 나란히 쓰러뜨리며 다시한번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러나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조코비치한테 또 패해서 8강에 그쳤다. 롤랑가로스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주고 16강까지 갔지만, 하필 컨디션 최고였던 도미니크 팀을 만나 3:1로 패배했다.
이후 7월 윔블던에서는 닉 키리오스 등을 꺾고 기존 자신의 최고기록이었던 16강을 넘어 처음으로 8강에 안착하는데 성공하였다. 아쉽게도 8강에서 만난 노박 조코비치에게 3-1(6-3 3-6 6-2 6-2)로 패해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US 오픈에서 4년 전 자신을 꺾고 우승했던 마린 칠리치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2-6 6-4 7-6(5) 4-6 6-4) 끝에 승리하면서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올해 다시 만난 노박 조코비치에게 브레이크 포인트를 한 번도 잡지 못하고 0-3(3-6 4-6 2-6) 완패를 당하였다.
이후 500시리즈인 도쿄 오픈과 비엔나 오픈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했지만 각각 다닐 메드베데프, 케빈 앤더슨에게 패배하였다. 2개의 마스터스 시리즈는 각각 8강을 가며 본전을 건졌다. 여담으로 니시코리는 2016년부터 9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해 모두 우승을 못하고 패배하여 니시리라고 조롱을 받는 상황이다.(...)
시즌아웃된 델 포트로를 대신해 출전한 ATP 파이널스에서, 로저 페더러를 2:0으로 꺾는 이변을 보여준다. 그러나 케빈 앤더슨, 도미니크 팀에게 차례대로 패배하며 예선탈락한다.
2019년 첫 대회인 브리즈번 오픈에 출전해 우승, 9연속 준우승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호주오픈에서는 5세트 경기를 세번이나 치룬데다가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 2번, 카밀, 부스타를 상대로는 리버스 스윕까지 하면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만난 노박 조코비치를 상대로 1게임을 내주고 2게임에서 부상으로 기권패하였다. (1-6, 1-4 r) 최근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으로 만나서 번번히 막히는 중. 사실 3개 대회 모두 조코비치가 우승한 대회들이라 니시코리 입장에서는 운이 안 좋았다.
로테르담 오픈에서는 4강에서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에게 패배하였으나 작년 챔피언이었던 페더러가 불참하면서 등수 하락, 니시코리 본인의 순위는 6위로 올랐다.
클레이 시즌에는 영 폼이 안좋았고, 프랑스 오픈에서는 4회전까지 힘들게 이기다가 8강에서 라파엘 나달을 만나 예상대로 초전박살이 났다. 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중으로, 기량을 그럭저럭 유지하고는 있으나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들게 된 모양새.
윔블던에선 빅3를 제외한 상위 랭커들이 추풍낙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독야청청 또 8강 진출에 성공했으나 이번에도 빅3 페더러에게 패했다. 그래도 이번엔 지면서 세트 하나를 따내는 데엔 성공.
US오픈에서는 폼이 좋던 알렉스 드 미노에게 업셋패하면서 연속 8강 진출이 중단되었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아시아 대회는 거르게 되었다. 이후 2020년 초까지도 복귀하지 못해 랭킹이 다시 25위 바깥까지 추락했다. 안그래도 하락세가 온 참에 부상이 결국 또 발목을 잡는 모양새.
2019년 포브스에서 조사한 스포츠선수 수입랭킹에 따르면 니시코리의 연 수입은 한화로 '''400억''' 이 넘는다고 한다.

3. 커리어


2020년 9월 21일 기준
  • 개인전 통산 성적 : 404승 192패
  • ATP 단식 타이틀 획득 : 12회[8]
  • 복식 통산 성적 : 25승 32패
  • ATP 복식 타이틀 획득 : 0회
  • 통산 상금 획득 : 23,922,819달러(한화 약 278억원)
'''그랜드슬램 대회''' :
  • 호주 오픈 : 8강 - 2012, 2015, 2016, 2019
  • 프랑스 오픈 : 8강 - 2015, 2017, 2019
  • 윔블던 : 8강 - 2018
  • US 오픈 : 준우승 - 2014
'''기타 대회'''
  • ATP 파이널스 : 4강 - 2014, 2016
  • 마스터스 1000 시리즈 : 준우승 4회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동메달[9]

4. 기타


  • 니시코리의 어머니 에리는 피아노 선생님을, 아버지 키요시는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테니스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5살때 테니스를 처음 접한 이후 2001년 모든 일본의 어린이 선수권 대회를 우승하면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 그가 즐겨 하는 취미는 축구, 골프하기, 독서하기, 음악 감상이라고 한다.
  • 2020년 8월에 세상을 떠난 배우 와타리 테츠야와는 먼 친척관계인데, 니시코리의 증조부와 와타리 테츠야의 조모가 형제지간이라고 한다.

5. 참고 링크


[A] A B 2020.09.21 발표.[1] 1999년에 프로데뷔한 선수로 2006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4위까지 올라갔던 강자. 하지만 전성기 기간중인 2004~2005년 중반까지 암치료 때문에 대회 출전을 못하면서 고생좀 했으며, 2005년 중반에 다시 복귀해 괜찮을 활약을 보이다 2013년에 은퇴했다. 통산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3회, 2006년 마스터스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2회, 4강 진출 1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0회, 준우승 11회를 기록했다.[2] 물론 빅4 상대로 니시코리 케이의 상대전적이 우세한 것은 아니고 절대 열세이다. 로저 페더러 상대로 7전 2승 5패, 라파엘 나달 상대로 11전 2승 9패, 노박 조코비치 상대로 13전 2승 11패, 앤디 머레이 상대로 10전 2승 8패로 압도적으로 밀린다. 사실 빅4 상대로 절대 열세에서 벗어난 선수가 현 테니스계에선 없다.[3] 게다가 디미트로브, 라오니치 등의 유망주들 상대로 전적이 매우 앞서고 있다.[4] 참고로 니시코리 케이의 동년배 상위랭커 중에 델 포트로와 칠리치는 이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경력이 있다. -[5] 2005년에 프로에 뛰어들어 2016년 11월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한 니시코리 케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라이벌 선수이다. 2017년 2월 현재까지의 통산 커리어 성적은 2014년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8강 진출 5회, 2016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 우승, 2016년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파리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14회, 준우승 11회를 거두었다.[6] 1997년에 프로로 데뷔하여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였던 선수로 전성기 기간인 2003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9위를 기록하여 니시코리 케이가 경신하기 이전까지 아시아 국적의 남자 테니스 선수 중에 세계 랭킹 순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에 은퇴하였는데 현역 시절 커리어 성적은 마스터스 시리즈 4강 진출 3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5회, 준우승 6회를 기록하였다.[7] 다만 근래 유망주들이 워낙 기근이라서, 동년배 및 아래 세대에서 현재까지 이뤄놓은 실적(투어 타이틀 갯수라,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성적, ATP 싱글 랭킹 커리어하이 등등)으로 따져봤을때 니시코리보다 확실히 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88년생 슬램 위너들인 델 포트로칠리치뿐이다. 칠리치가 도핑 적발 전력이 있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연배에서 니시코리보다 윗급에 놓았을때 확실히 다른 말이 나올 여지가 없는 선수는 사실상 델 포트로가 유일한 셈.[8] 500시리즈 6개, 250시리즈 6개이며 250급 중 4개는 2013-2016 멤피스 오픈 4년 연속 타이틀.[9] 96년 만에 올림픽 테니스 메달 획득을 했던 터라 당시 일본에서 광장한 이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