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리드홀름

 

'''닐스 리드홀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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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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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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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로마'''}}}
{{{-2 43대, 50대


''' 스웨덴의 前 축구인 '''
''' 이름 '''
'''닐스 리드홀름'''
'''Nils Liedholm'''
''' 출생 '''
1922년 10월 8일 /스웨덴 발데마르스비크
''' 사망 '''
2007년 11월 5일(향년 85세)
''' 국적 '''
스웨덴
''' 신체 '''
184cm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발데마르스비크 IF (1938~1943)
IK 슬레이프네르 (1943~1946)
IFK 노르셰핑 (1946~1949)
AC 밀란 (1949~1961)
''' 감독 '''
AC 밀란 (1961~1963 / 수석코치)
AC 밀란 (1963~1966)
엘라스 베로나 FC (1966~1968)
AC 몬차 1912 (1968~1969)
바레세 칼초 (1969~1971)
ACF 피오렌티나 (1971~1973)
AS 로마 (1973~1977)
AC 밀란 (1977~1979)
AS 로마 (1979~1984)
AC 밀란 (1984~1987)
AS 로마 (1987~1989)
엘라스 베로나 FC (1992)
AS 로마 (1997)
''' 국가대표 '''
23경기 12골(스웨덴 / 1947~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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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남작(II Barone)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3. 감독 경력


1. 개요


스웨덴축구선수 출신 감독. 1997년AS 로마 감독을 맡았다.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의 주역이자 군나르 노르달군나르 그렌과 함께 '''그레-놀-리(Gre-No-Li) 삼총사'''[1]의 일원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38년 자신의 고향 팀 발데마르스비크 IF에 입단하였다. 1942년 IK 슬레이프네르로 가다가, 1946년에 자신이 2개의 스웨덴 리그 타이틀을 우승한 더 큰 클럽 IFK 노르쾨핑으로 이적하였다.
노르쾨핑에서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활약하는 동안에 스웨덴 알스베스칸에서 2차례 우승을 거두고 1948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맹활약으로 1949년 군나르 노르달군나르 그렌과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전설의 ‘그레-놀-리(Gre-No-Li)’ 삼총사'''
리드홀름은 군나르 노르달군나르 그렌과 함께 그레-놀-리 삼총사를 결성하여 첫 시즌에서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37개의 경기에 활약하면서 18골을 득점하였다. 1951년 자신의 첫 스쿠데토 타이틀을 차지하고, 1955년, 1957년, 1959년에도 세리에 A 우승을 달성한다.
또한 1951년과 1956년에 라틴컵을 우승하기도 하였다. 이후 노르달과 그렌은 AC 밀란을 떠나 스웨덴 삼총사는 해체되고 리드홀름은 1956년 이후 주장 완장을 차고 필드의 사령관으로 맹활약한다.
AC 밀란은 1957-1958 유로피언컵에서 레인저스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4강 원정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패했으나 홈에서 리드홀름은 페널티 킥 쐐기골을 포함에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한다.[2]
결승전 상대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리드홀름은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와 함께 AC 밀란의 공격을 지휘했고 스키아피노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이후 2:2 동점까지 가는 등 치열한 접전을 펼치나 결국 연장 후반에 프란시스코 헨토에게 결승골을 내줘 3:2로 패하였다.
이후 르드홀름은 1961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유로피언컵 준우승에 포함에 총 4차례의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등 AC 밀란의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바이킹 군단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캡틴'''
닐스 리드홀름-군나르 노르달-군나르 그렌의 그레-놀-리 삼총사가 이끄는 스웨덴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 맹활약하며 리드홀름은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12:0으로 박살내고 라이벌 덴마크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를 격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은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발탁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고 그레-놀-리 삼총사는 최전성기 시절에 국가대표에서 별로 활약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스웨덴은 이 규정을 철폐했고 리드홀름과 그렌은 국가대표에 차출되었으나 노르달은 기량 저하로 은퇴하여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해 그레-놀-리 삼총사 전원이 월드컵 무대에 밟지는 못했다.
리드홀름은 주장을 맡으면서 스웨덴은 조별리그에서 순항했고 특히 리드홀름은 멕시코전에서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3: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스웨던은 레프 야신이 이끄는 소련서독을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축구황제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이었고 리드홀름은 전반 4분만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펠레,바바,마리우 자갈루에게 개박살나며 5:2로 패하면서 스웨덴은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3. 감독 경력


선수로서 은퇴한 리드홀름은 AC 밀란의 수석 코치와 감독을 지내고, 엘라스 베로나 FC와 AS 바레세 1910을 위하여 진급되었다.
ACF 피오렌티나로 옮기다가, 다시 AC 밀란의 감독으로 재임명되어 1979년 10회의 리그 타이틀을 우승하는 데 이끌었다.
이후 호베르투 파우캉브루노 콘티같은 실력 있는 선수들이 소속된 AS 로마의 감독을 맡아 1983년 두번째 리그 타이틀로 이끌었다.
1년 후, 리드홀름의 AS 로마유로피언컵에서 리버풀 FC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다. 리드홀름은 코파 이탈리아에서 3회[3] 우승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파올로 말디니의 1군 데뷔 경기 당시, 말디니를 교체 투입한 감독이 다름아닌 닐스 리드홀름이었다.
[1] 스웨덴 삼총사라고 불리기도 한다.[2] 다만 당시 맨유는 뮌헨 비행기 참사 때문에 전력이 약화된 면도 있었다.[3] 1980, 1981,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