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버브

 

The V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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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기타


1. 개요


영국록밴드. 그레이터 맨체스터위건 출신이다. 브릿팝 초창기부터 활동하던 밴드로서 오아시스를 오프닝 밴드로 투어에 데리고 다니면서 키워줬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주로 인디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오아시스나 블러(밴드)와 달리 활동 당시보다는 오히려 브릿팝 말기에 라디오헤드와 함께 우울한 감성으로 주목받은 밴드로 사실 브릿팝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음악을 했다.

2. 상세


EP와 1집 A Storm In Heaven에서 슈게이징 밴드로 출발해, 이후 사이키델릭 록, 브릿팝 등의 영향을 받은 몽롱함과 낭만적이고도 사색적인 멜로디와 가사,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주로 3집 Urban Hymns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비평과 상업성 모두에서 대성공. 98년 영국을 대표하는 브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그룹, 최우수 앨범, 프로듀서상 세 개 주요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때 함께 후보로 올랐지만 더 버브에게 막힌 그룹이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프로디지'''(...)[1] [2] 다만 1집 역시 슈게이징 명반으로서 지속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성격이 악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별명이 '''매드 리차드'''.[3] 이미 1집 부터 리차드와 멤버들간의 불화때문에 "밴드를 해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념삼아 내는 앨범"이라는 식으로 작업하였고 결국 2집 활동 시절에 리차드와 함께 밴드의 양대축인 닉 맥케이브가 리차드와 크게 싸우고 밴드를 탈퇴하면서 처음 해체하였다. 그러다 리차드가 케이트 레들리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솔로 1집 녹음을 시작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닉이 '버브 말고는 제대로된 안식처를 찾을 수 없다'며 리차드에게 연락했다. 닉의 기타를 아쉬워하던 리차드는 재빠르게 닉에게 다시 밴드를 재결성하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밴드의 3집 Urban Hymns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3집 활동 도중 닉과 리차드가 다시 대판 싸우고 밴드는 그대로 해체.
대부분의 관심은 보컬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에게 집중되지만, 기타의 닉 맥케이브 역시 독특한 사운드와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높게 평가받다 못해 기타에 대해서는 '''천재'''로 불리며 리처드보다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2집 활동이 끝나고 닉이 탈퇴했을 때 닉의 후임으로 3집 녹음에 잠시 참여했던 기타리스트가 바로 스웨이드의 버나드 버틀러. 아무래도 몽환적인 사운드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나보다.
역시 나이가 들면 성격이 좀 달라지는가 보다. 2008년 4집 Forth 내고 성공적으로 재결합했다... 라고 적었지만, 2009년 8월에 벌써 세번째로(...) 해체. 해체의 원인은 버브의 결합을 애쉬크로포트가 자신의 솔로 커리어에 이용하는 것을 보고 다른 멤버들이 반발한 것이 이유라 한다. 여러모로 팬들은 안습이다..
리차드 에쉬크로프트는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리더 제이슨 피어스와 무척 사이가 안 좋은걸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리차드가 제이슨의 동거녀인 케이트 레들리를 NTR했기 때문이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멤버 케이트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리차드가 케이트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오히려 케이트가 가족들 몰래 리차드와 혼인신고를 할 정도로 리차드에게 푹 빠졌다고. 참고로 리차드와 케이트는 지금도 잉꼬부부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스피리추얼라이즈드 항목 참조
노엘 갤러거는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에게 바치는 곡을 쓰기도 했다. 이 곡은 오아시스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수록된 Cast no shadow라는 곡인데 그들의 무명 시절 버브가 데리고 다니면서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듯. 여기에 애쉬크로프트도 버브의 2집 A Northern Soul의 타이틀 곡으로 응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출처는 여기 2018년이 되어서도 리암이 자신의 콘서트에서 리처드 애쉬크로프트를 위한 곡이라며 Live Forever를 부를 정도로 존경과 친밀감을 표시한다.
3집 수록곡 Bitter Sweet Symphony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사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이 곡에 대한 저작권료를 '''발표 후 20년 넘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 곡은 롤링 스톤스의 곡 'The Last Times'의 오케스트라 편곡버전을 샘플링해서 만든 곡이었는데, 원곡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레코드사인 ABKCO가 동의한 범위보다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모든 수익이 원곡의 레코드사로 귀속. 덤으로 저작권 크레딧도 재거-리차드로 바뀌는 바람에 그래미 시상식의 베스트 록 후보에 해당 곡이 올라올 때 믹 재거키스 리차드가 거론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이게 웃긴 것이 '''처음에는 무상으로 샘플링하도록 했다가''' 곡이 히트 치니 50:50으로 하자. 더 히트를 치게 되니 수익금 전부 내놔. 라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라서... 리차드 애쉬크로포트도 여간 열받았던 것인지 툭하면 "이 곡은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가 20년간 썼던 곡 중 최고의 곡" 이라며 비아냥 대고 다녔다.[4]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게, 저작권 소송은 ABKCO 사 사장인 '앨런 클라인'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것이고, 재거-리차드가 '''소송에 관여한 부분은 단 1%도 없다.''' 앨런 클라인은 1965년부터 71년까지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로 일했던 사람으로, 사상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대신 자작곡의 출판권을 클라인의 회사가 소유하는 부당 계약을 체결하여 밴드와 매니저가 여러 차례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5], '''스톤스는 Bitter Sweet Symphony와 관련한 소송 건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안습 그런 불쾌한 내막을 모른 애쉬크로프트는 하필 그 외의 일도 겹쳐[6] 돈독오른 걸로 악명높은 인물이 소유한 곡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안습... 이 상황이 너무하지 않냐는 Q매거진의 인터뷰 질문에 키스 리차드는 "난 이 일을 때려치긴 했지만, 이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골칫 덩어리다. 더 버브가 더 좋은 곡을 썼다면 돈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이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Bitter Sweet Symphony'의 인기는 의외로 높은 편. 신한금융지주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선전기원 광고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였으며 그 외에도 여러 영화와 CF의 OST로 자주 수록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ABKCO가 오로지 돈벌이 수단 삼아 여기저기 사용권을 팔아댄 결과로, 자신들의 노래가 상업 CF 브금으로 쓰이는 걸 굉장히 싫어했던 리차드 애쉬크로프트는 ABKCO에 소송을 걸어 유럽의 상업 CF에서 'Bitter Sweet Symphony'가 흘러나오는 걸 막았다.
'''그리고 결국 앨런 클라인이 사망하고 난 뒤 2019년에 재거-리차드는 원치도 않게 자신의 곡이 돼버린 Bitter Sweet Symphony의 모든 저작권을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에게 줬다.'''[7]

3. 기타


  • 3집 Urban Hymns의 수록곡인 Bitter Sweet Symphony 는 한국에서도 스매쉬 히트를 기록했다. 아래 영상은 Bitter Sweet Symphony 라이브 중 가장 유명한 글래스톤베리 2008 무대.

그러나 곡이 수록된 3집 Urban Hymns는 한국에서 금지 크리를 먹었는데 이유는 '''The Drugs Don't Works''' 의 Drugs라는 단어 때문. 사실 저 곡은 보컬 리차드 애쉬크로프트가 자신의 부친의 사망을 추모하는 곡이다. 결국 사전검열제도가 폐지된 2004년에 EMI 명반 시리즈로 첫 발매되었다. 의외로 한국에서 음반 라이센스 과정이 파란만장했던 밴드. 3집 금지 크리, 4집 워너 뮤직(EMI코리아 철수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대단히 시끄러웠다.) 대리 판매등 여러모로 안습하다.
  • 우리나라 가수 중에 이상은이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도 여러번 보고,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1] 오아시스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3집 Be Here Now 시절이지만, 라디오헤드는 OK Computer, 프로디지는 The Fat of the Land로 활동하던 최전성기였다. 하지만 브릿 어워즈에게 미끄러졌고, 라디오헤드는 최고의 명반을 내놓고도 미끄러진 후 지금껏 브릿 어워즈에서 15개 부문에 후보로만 오르고 수상기록이 전무하여 영 브릿어워드와 인연이 없다.[2] 사실 밴드 자체가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역사가 희미하다보니, 밴드의 평가와는 별개로 인지도는 매우 떨어진다.[3] 2006년 인터뷰에서 리차드는 "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프로작과 같은 약들도 내겐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음악과 창작이 깊은 우울증세를 이겨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4] 이전 설명에는 재거-리차드가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고 되어 있지만 이 발언이 와전된 것이다. 후술할 내막을 고려하면 이 곡으로 재거-리차드에게 금전적인 수익이 얼마나 갔는 지, 또는 가긴 했는 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레코드사는 이 곡으로 엄청 짭짤한 수익을 얻은 건 맞다.[5] 그 증거로 ABKCO 레이블이 붙은 롤링 스톤스 관련 상품은 전부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데뷔부터 71년까지 다룬 미공개 라이브 공연 영상, 음반에만 한정되어 있다.[6] 전 매니저의 사망으로 음악적 성과와 별개로 재정 문제로 휘청이고 있었던 라이벌 밴드 비틀즈의 후임 매니저를 맡아 '''그들의 분열과 해체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그리고 몇 멤버들의 솔로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롤링 스톤스의 70년대 초 탈세 행각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긴 혐의가 짙다.[7] 이는 애쉬크로프트의 매니지먼트 회사의 제의를 받자마자 '''즉시, 지체없이, 무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