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 렌센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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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네덜란드의 前 축구선수. 인간 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드리블 돌파의 귀재였으며, 득점 능력 역시 준수해 안데를레흐트 시절에는 득점왕을 차지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렌센브링크는 크루이프만큼이나 뛰어난 선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얀 물더르
2. 클럽 경력
1965년 DWS에서 데뷔해 바로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약관의 나이로 리그에서만 15골을 집어넣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고, 특이하게도 AFC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와 같은 국내의 빅클럽이 아닌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 KV로 이적한다.
벨기에 무대로 이적하자마자 그는 리그를 개발살내기 시작했고 2년만에 벨기에 최고 명문 클럽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한다. 렌센브링크는 이적하자마자 30경기에서 16골을 득점하며 벨기에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73-74 시즌에는 리그 20골을 득점하며 2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1975-76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의 결승전에서 렌센브링크는 2골을 넣으며 4:2로 웨스트 햄을 꺽으며 안데를레흐트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참가한 유러피언 슈퍼컵에서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2골을 득점, 5:3으로 격파하며 트로피를 차지한다.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도 FC 포르투와 FC 트벤테를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상대로 2골을 넣어 4:0으로 승리하며 또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유러피언 슈퍼컵에서도 리버풀 FC와의 1차전 87분에 쐐기골을 넣어 3:1 승리로 이끌었고, 2차전에서 1:2로 패했지만 결국 트로피를 차지했다.
렌센브링크는 안데를레흐트에서만 그는 150골을 넘게 득점했고 안데를레흐트가 모든 대회에서 성공하는데 일조한다. 그가 벨기에 팀 유니폼을 입고 득점한 골은 200골이 넘어가며 득점왕까지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1980년 하락세가 온 렌센브링크는 NASL의 포틀랜드 팀버스로 이적하고 몇개월만에 프랑스 2부리그의 툴루즈 FC에서 1시즌을 보낸 뒤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1968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해 두 차례의 월드컵과 한 차례의 유로 대회에 참가했다. 국가대표팀 기록은 46경기 14골.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인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크루이프, 렙과 함께 공격진을 구성했다. 팀 전체를 지휘하는 크루이프와 탁월한 위치 선정이 돋보이는 렙과의 콤비는 굉장한 위력을 자랑했으며, 드리블 돌파를 통해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으며 동독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비교적 부진해, 레네 반 더 케르크호프와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교체되었고,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1974년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축 멤버들은 아약스 소속(크루이프, 렙, 한, 네스켄스, 크롤, 쉬르비르)이거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소속(판하네험, 얀센, 라이스베르헌)이었다. 예외라면 FC 암스테르담[2] 소속의 골키퍼 얀 용블루트 정도였다.(그마저도 에레디비시 소속이다.) 리누스 미헬스가 추구하는 토탈 풋볼에는 익숙치 않은 상황인데 주전으로 활약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심지어 크루이프가 자신이 함께한 최고의 동료라는 피트 케이저르를 밀어냈다.[3]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는 크루이프를 대신해 네덜란드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이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때려박으며 월드컵 1000호골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탈리아, 서독, 오스트리아와 치룬 2차 리그에서도 네덜란드가 1위로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이 될 수 있었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빚나가는 등 불운했고 또 준우승에 머물렀다. 결승전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했는데 '''“만약 그때의 슈팅이 들어갔더라면 나는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을 것이고,[4] 월드컵 우승은 물론 발롱도르까지 내 차지였을 것이다.”'''[5] 그야말로 월드컵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는데 놓친 것이니 본인 입장에선 천추의 한일 것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렌센브링크는 엄청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며 직접 골을 넣고 크로스나 패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5. 사망
2020년 1월 24일에 향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근육병. 기사 참조
6. 기록
6.1. 대회 기록
- 클뤼프 브뤼허 KV
- 벨기에 컵: 1970
- RSC 안데를레흐트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 1971-72, 1973-74
- 벨기에 컵: 1972, 1973, 1975, 1976
-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1976, 1978
- 유러피언 슈퍼컵: 1976, 1978
6.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위: 1976; 3위: 1978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1978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74, 1978
- FIFA 월드컵 도움왕: 1978
-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득점왕: 1975-76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 득점왕: 1972-73
- 옹즈도르: 1976
- 옹즈 드 옹즈: 1976, 1977, 1978, 1979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77, 1978
- 벨기에 골든슈: 1976
- IOC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 1975-76
- FIFA 100: 2004
7. 여담
- 각력이 어마어마해서 엄청나게 강력한 슈팅을 퍼부었고 그래서 미사일이라는 별명이 있다.
- UEFA 컵 위너스컵 통산 25골로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올라 있다.
[1] Door Wilskracht Sterk. 암스테르담을 연고로하는 클럽으로, 60년대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잘나가는 팀이었으나 현재는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아마추어 클럽이다.[2] 현재는 사라진 클럽이다.[3] 물론 케이저르와 미헬스는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했다. 또한 케이저르의 기량이 급락한 것도 있다.[4] 마리오 켐페스가 득점왕을 차지한 것은 연장전에 넣은 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규시간까지는 렌센브링크, 켐페스 모두 5골로 동률. 렌센브링크가 넣었다라면 렌센브링크가 6골, 켐페스는 5골이 된다.[5] 1978년도 발롱도르에서 렌센브링크는 3위에 랭크되었다. 1위는 케빈 키건, 2위는 한스 크란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