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네스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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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마멜로디 선다운스 FC 감독을 맡았다."네스켄스의 활약은 미드필드에 2명의 선수가 있는 것 같았다."
- 스야크 스바르트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1970년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추. 커리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애제자였다. 당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 형 미드필더였으며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국가대표팀과 클럽 모두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공격 가담 시 재능도 뛰어나 득점 역시 잘 올리는 편이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고향의 RHC 헴스테데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70년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눈에 띄어 AFC 아약스로 이적했다. 아약스 이적 첫 시즌까지만 해도 네스켄스는 풀백이 주 포지션이었다. 아약스 이적 첫 시즌 파나시나이코스와의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선발 출장하며 팀의 첫 유러피언 컵 우승에 공헌한 네스켄스는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완전히 바꿨다.
풀백 출신이었던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워 에이스 요한 크루이프를 보좌했고, 유수의 득점을 뽑아냈다. 크루이프, 카이저, 수르비어 등의 동료들과 함께 네스켄스는 유러피언 컵 3연패를 경험했고, 1974년 서독 월드컵이 끝난 이후 은사인 미헬스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역시나 크루이프의 보좌관 역할을 수행했고 요한 크루이프를 이은 'Johan Segon'이라는 별명을 받기도 했다. 당시 프리메라리가의 지배자는 레알 마드리드였고 네스켄스는 맹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승 트로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75-1976 시즌 32경기 12골을 득점, 이때만큼은 크루이프보다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75-1976 시즌부터 시상한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의 첫번째 수상자가 된다. 1977-1978 시즌에서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라스팔마스를 격파하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하였고 1978-1979 시즌에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연장 접전끝에 4:3으로 격파하고 UEFA 컵 위너스컵도 들어올렸다. 그후 꽤나 이른 나이에 MLS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했고, 5년간의 뉴욕 생활을 끝낸 네스켄스는 30대의 노장이 되어있었고, 자국의 FC 흐로닝언에 입단해 잠깐 활약한 뒤 다시 미국의 포트 로더데일 선에 입단했다. 이후 인도어 사커 리그 소속의 캔자스시티 코메츠에서 활약한 네스켄스는 여러 팀을 떠돌았고 1991년 40세의 나이에 스위스의 FC 주크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
1970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네스켄스는 주전 미드필더로서 요한 크루이프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했는데,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2개의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4:1 승리에 일조했고, 우루과이를 격파하고, 스웨덴과 무승부를 거두며 2차 리그에 진출한다. 동독,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조가 된 네덜란드는 토탈 풋볼의 위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격파했고, 네스켄스는 동독과 브라질 전에서 1골 씩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 상대는 프란츠 베켄바워 - 게르트 뮐러 - 제프 마이어가 이끄는 서독이었고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가 드리블 돌파로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네덜란드는 1:0으로 앞서간다.[1] 그러나 서독도 파울 브라이트너가 페널티 킥으로 응수하며 동점골을 넣었고, 하필이면 크루이프가 베르티 포크츠에게 아예 지워졌으며, 게르트 뮐러에게 결승골을 허용 2:1로 역전패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고만다. 그러나 네스켄스는 1974 FIFA 월드컵 서독 올스팀에 선정되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비록 크루이프가 가족 납치 사건때문에 불참했지만, 롭 렌센브링크가 크루이프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 네덜란드는 1차 리그를 가뿐하게 통과했으며, 2차 리그에서는 4년 전 결승전에서 패배를 안겨주었던 서독을 제치고 1위로 통과하여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 상대는 마리오 켐페스 - 다니엘 파사레야 - 우발도 피욜이 버티는 홈팀 아르헨티나였고, 1:1 동점으로 연정전까지 가나 결국 1:3으로 패배, 2회 연속으로 준우승에 그치고만다. 이후 1981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시초'''
네스켄스는 크루이프를 보좌할만한 완고한 수비력과 활동량을 보였다. 드리블 실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안전한 패스를 연결, 그리고 뛰어난 킥 능력으로 페널티 킥을 전담하는 등 많은 득점을 올렸다.
3. 감독 경력
은퇴 이후 작은 클럽들의 감독을 맡다가 1995년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프랑크 레이카르트, 로날드 쿠만과 함께 수석코치로 활동했다. UEFA 유로 2000이 끝난 이후 네스켄스는 NEC 네메이헌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독립했다.
첫 시즌 네메이헌을 20여년만에 유럽 대항전으로 이끈 것을 좋았으나 다음 시즌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경질당했고 2005년 히딩크의 부름을 받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 같은 수석 코치 출신인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바르셀로나 시절 자유를 보장해주는 레이카르트 감독과 같이 팀의 기강이 무너지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과 함께 2008년 펩 과르디올라의 부임으로 인해 팀을 떠났고 2009년 레이카르트와 갈라타사라이에서 재결합했다. 2011년부터 남아공의 클럽인 마멜로디 선다운스의 감독직을 수행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무직상태이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AFC 아약스 (1970~1974)
- FC 바르셀로나 (1974~1979)
- 코파 델 레이: 1977-78
- UEFA 컵 위너스컵: 1978-79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준우승: 1974, 1978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3위: 1976
4.2.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실버 부츠: 1974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74
- 발롱도르 드림팀 3군: 2020
- IOC 올해의 축구 선수: 1971-72
- 돈 발롱 어워드: 1975-76
- FIFA 100: 2004
5. 여담
- 돈 발롱 어워드에서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상 부문 최초 수상자이다.
- 어릴 때 야구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8살 때 시작했는데 9살부터는 야구도 함께 배웠고 유소년 대표팀에 오를 정도였지만 16살 때 축구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그만뒀다. 네덜란드는 유럽 치고는 야구의 인지도도 있는 편이라 매우 특이한 이력은 아니다. 함께 70년대 네덜란드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요한 크루이프도 어릴 때 야구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