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 지노빌리

 

'''마누 지노빌리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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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스퍼스 영구결번'''
No. 20

[image]
'''2003'''
'''2005'''
'''2007'''
'''2014'''




'''샌안토니오 스퍼스 No.20 '''
''' 에마누엘 다비드 "마누" 히노빌리 마카리
(Emanuel David "Manu" Ginóbili Maccari)[1][2]
'''
'''생년월일'''
1977년 7월 28일 (46세)
'''국적'''
[image] 아르헨티나, [image] 이탈리아
''''''
198cm (6' 6")
'''체중 '''
93kg (205 lbs)
'''포지션'''
슈팅 가드
'''드래프트'''
1999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57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
'''등번호'''
20번[3], 5번[4]
'''소속팀'''
Andino Sport Club (1995~1996)
Estudiantes de Bahía Blanca (1996~1998)
Viola Reggio Calabria (1998~2000)
Kinder Bologna (2000~2002)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2~2018)'''
'''국가대표'''
'''아르헨티나 (1997~2016)'''
'''수상내역'''
'''NBA 챔피언 4회 (2003, 2005, 2007, 2014)'''
NBA 올스타 2회 (2005, 2011)
올-NBA 서드 팀 2회 (2008, 2011)
NBA 식스맨 상 (2008)
NBA 올-루키 세컨드 팀 (2003)
EuroLeague Finals MVP (2001)
All-EuroLeague First Team (2002)
Italian Cup MVP (2002)
Italian League MVP 2회 (2001-2002)
Olimpia de Oro 2회 (2003-2004)
50 Greatest EuroLeague Contributors (2008)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1. 상세
2. 플레이 스타일
2.1. NBA 슈퍼 식스맨
3. 커리어
3.1. 2012년 이전
3.2. 2012-13 시즌
3.3. 2013-14 시즌
3.4. 2014-15 시즌
3.5. 2015-16 시즌
3.6. 2016-17 시즌
3.7. 2017-18 시즌
3.8. 은퇴 후
4. 기타
4.1. 관련 영상


1. 상세


'''El CONTUSIONE'''
'''아르헨티나의 농구 영웅이자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빅3중 하나'''.
1977년 아르헨티나바이아블랑카에서 태어났다.
NBA 드래프트 사상 역대급 스틸픽인 1999년 2라운드 57순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된다. 이때만해도 스퍼스가 픽을 어디다 쓴거냐는 비아냥도 만만치 않았다. NBA 드래프트는 1라운드와 2라운드로만 이루어지며 총 30개의 팀이 두번씩 지명할 기회가 있다. 게다가 1999년 당시에는 29개의 팀만 존재했기 때문에 57위는 사실상 거의 모든 팀들이 지나쳤다는 의미로, 당시 NBA 프런트가 유럽리그를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그쪽 선수들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5] 그러나 그당시만 해도 유럽은 농구 변방이었고, 드림팀이 1992년 올림픽과 1996년 올림픽에서 그야말로 단체 관광 모드로 전 경기를 압살하며 금메달을 딴 것을 봤을 때 1999년 드래프트에서 그나마 검증되었던 동유럽계 선수가 아닌 변방중의 변방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탈리아 리그 선수를 뽑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농구 영웅인 마누 지노빌리는 그의 시그니쳐 무브인 유로스텝[6]으로 NBA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유로리그 탑클래스 플레이어라면 NBA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서 유럽과 남미권 선수들의 NBA 도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남미쪽으로 보면 거의 최고의 선수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남미 선수들 역시 꾸준히 NBA에 도전하고 있으며 일부는 주전으로 뛰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마누의 위상을 넘는 남미선수는 없다. 실제로 많은 남미선수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선수가 마누이기도 하다.[7]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굉장한 영웅 취급을 받는 듯. 리오넬 메시조차 자신을 축구의 지노빌리라 불러달라고 했을 정도.

2.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강심장 + 역대급 BQ + 엄청난 운동신경 + 유니크한 시그니쳐 무브 + 폭발력 + 최고급 플랍'''[8]으로 요약이 가능한데, 원숙해지기 전까지는 기복이 심하고 턴오버가 장난 아니어서 엄청 까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터노빌리'''(...). 지금과 달리 2000년대 중반 스퍼스는 페이스를 느리게 끌고 가면서 서로 저득점 경기를 가져갔는데, 승부처에서 던컨과 마누가 경기를 마무리 짓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NBA에서 복잡하기로 유명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모션 오펜스가 돌아가지 않을때 식스맨으로 등장해 팀에 변수와 활력을 줄 수 있는, '스퍼스 시스템에 최적화된 선수'로 평가했고 실제로 최고의 식스맨 중 1명이다. 미국팬들은 가끔 그를 'Mad Scientist'라고도 부르는데, 전성기 시절 그의 창의성과 폭발력은 말 그대로 '미쳤다'고 할 정도로 신선했다.
마누 지노빌리가 가세한 스퍼스는 팀의 중심이자 컨트롤 타워인 팀 던컨을 중앙에 세우고 스타일이 상극인 듀얼 가드 토니 파커와 함께 외곽에서 던컨과의 팀플레이를 통해 수비를 벗겨낸 뒤 한번 생긴 균열을 연속적인 패스로 벌려내면서 보웬, 오리, 대니 그린같은 3점 슛 전문 롤플레이어들이 3점 슛을 받아먹으면서 연쇄 폭발시키는 오펜스로 한명에게 공을 몰아주지 않고도 동시다발적인 득점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활용했고, 지노빌리는 이 시스템의 주요 키플레이어이자 위기때 개인기로 해결까지 해주는 소금같은 역할을 했다.
스퍼스의 시스템이 자칫 뻑뻑하게 돌아갈때 쳐지는 분위기를 한 순간의 번뜩이는 플레이로 끌어올린다. 갑작스런 돌파나 기상천외한 패스(가랑이 사이 패스, 총알패스, 비하인드 백패스 등)[9]로 라틴계 특유의 리듬을 스퍼스의 시스템에 뿌려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특히 점퍼가 없음에도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매우 강한 특수한 타입의 선수다. 보통 1대1이 강한 선수들은 안정적인 풀업 점퍼를 보유한 선수들이 대다수이다.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가 대표적인 사례지만, 마누는 중거리에서 수비의 방해를 뚫고 슛을 성공시키는 능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특유의 유로스텝을 앞세운 돌파와, 장거리 3점슛이라는 OX퀴즈 두가지 패턴만을 가지고도 림어택을 시도해서 굉장히 높은 확율로 메이드 한다. 거기다 커리어가 진행될수록 점점 중거리에서 점프슛 확률을 높이면서 점점 공격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었다.[10]
하지만 기본적으로 닥돌형 플레이어에 영웅 본능이 자칫 잘못하면 혼자 날뛰다 팀을 망치는 플레이가 되듯, 점차 나이가 들고 부상이 잦아지면서 위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커리어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2014년 파이널에서 맹활약으로 오역을 풀었다.(그러나 2015년 스퍼스의 1라운드 탈락에 토니 파커와 함께 부실한 백코트진으로 오역을 다시 뒤집었다.) 16-17시즌 플레이오프, 17-18 전 시즌엔 알드리지를 보좌하는, 노장 투혼을 보여주었다. 안습한 팀의 가드진이 더해져 최고 가드 중 한 명.

2.1. NBA 슈퍼 식스맨


NBA의 대표적인 식스맨이지만, 다른 식스맨들과는 달리 동시대 정상급 슈팅 가드들과 비교되고 있다. 이는 지노빌리가 웬만한 팀에서는 에이스가 될만한 실력의 소유자이면서도 팀의 전술상 "식스맨"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 실제로 지노빌리의 전성기라 할수 있는 2000년대 중반에 주전으로 나온 마이클 핀리는 출전시간도, 실력도 지노빌리보다 훨씬 못했다. 심지어 지노빌리는 2008년에는 올해의 식스맨 상과 동시에 All-NBA Third Team에 오르기도 했다. 벤치에서 출전하는 주제에 NBA의 모든 가드(슈팅 가드뿐만 아니라 모든 가드!)중에서 여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활약을 했다는 말. 실제로 올스타는 동서부 합쳐 최소 여덟명의 가드(+와일드카드)가 선발되는 데다 선발은 인기투표로 뽑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All-NBA Team의 권위가 올스타 선발과 비슷하거나 높다. 실제로 지노빌리는 토니 파커, 팀 던컨과 함께 스퍼스의 빅3로 꼽힌다.
지노빌리 이전까지만 해도 NBA에서 식스맨은 ‘주전이 아닌 선수’를 의미했다. 그렇지만 지노빌리처럼 스타터 라인업의 기량을 가진 선수가 굳이 식스맨으로 뛰는 경우는 없었다. 2007-08시즌에는 지노빌리의 장점이 극대화 된다. 지노빌리는 총 74경기 중에 23경기만 선발 출전했다. 그런데 평균 출전 시간은 31.0분에 육박했다. 평균 기록은 19.5점 4.8리바운드 4.5어시스트 1.5스틸이었다. 말 그대로 '무늬만 식스맨'인 코트의 경기 흐름을 뒤집는 주전급 선수였다.
결국 지노빌리는 2008년에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낸다. NBA 올해의 식스맨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올-NBA 서드 팀에도 입성한 것이다. NBA 역사상 올해의 식스맨상을 수상한 선수가 그 해에 올-NBA 팀에도 이름을 올린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노빌리가 최초였다. 그리고 지노빌리 이후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선수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2008년의 지노빌리가 얼마나 위대한 식스맨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커리어



3.1. 2012년 이전


축구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에서도 농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세에 프로 데뷔를 하고, 20세에 세리에 A2로 진출하는데, 이때 소속팀 비오라를 세리에 A로 승격시키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킨더로 이적한 지노빌리는 01년 리그 우승, 이탈리안 컵 우승, 유로리그 우승으로 팀에게 트리플 크라운을 안겨주면서 자신 역시 리그, 유로리그 MVP 2관왕에 오르게 된다.
이 활약으로 NBA에 진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샌안토니오의 단장 뷰포드는 지노빌리를 U-22 선수권 때부터 점찍어 놓았다고 하는걸 보면 이미 포텐셜 하나는 빵빵했던거 같다. 남미의 백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운동능력이 굉장히 우수한 선수였다. 지금이야 다 늙었지만... 젊은 시절의 영상을 보면 투핸드 슬램, 속아서 점프를 뛰고도 다시 뛰어올라서 블락찍기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누 지노빌리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NBA 스타들로 도배되어 있는 미국을 준결승에서 접전끝에 누르고 결국 금메달까지 땄다. 커리어가 완벽하기로 소문난 팀 던컨에게 올림픽 동메달을 선물한 대굴욕. 당시 멤버가 감독이 명장으로 칭송받는 래리 브라운이고,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앨런 아이버슨, 스테판 마버리 등등 호화멤버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던컨을 제외한 인사이더 부족으로 인해서 던컨이 파울 트러블에 걸리자 인사이드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참고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아르헨티나의 금메달은 딱 2개였는데 나머지 하나는 카를로스 테베스의 남자 축구. 이로서 마누 지노빌리는 농구선수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싹쓸이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동메달을 수상한다.

3.2. 2012-13 시즌


30대 중반이 되면서 하락세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이 심각해져서 결국 스퍼스의 시즌을 통으로 말아먹었다. 절정은 마이애미 히트와의 파이널이었는데, 이때도 시리즈 전체로 볼땐 선전 중이었지만, 결정적인 6차전에서 9득점 8턴오버에 클러치 턴오버라는 니갱망을 제대로 선보였다. 6차전 중반까지만 해도 스퍼스의 우승이 거의 확정적으로 보였으나 지노빌리의 역귀짓 때문에 결국 승부의 행방은 7차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11] 이어지는 7차전에서도 4쿼터에서의 결정적인 패스미스와 볼핸들링 실수로 인한 턴오버를 남발하고 마지막 공격에서의 어이없는 난사로 인해 샌안토니오 팬덤에서는 난리가 났다. 오죽하면 진정한 파이널 MVP라는 말이 나올 정도. 농담으로 던컨의 카운터를 지노빌리라고 한다. 아테네 올림픽, 13년 파이널...
사실 이 시리즈에 앞서서 토니 파커의 햄스트링 부상이 심해졌고, 강력한 히트의 앞선 수비를 버틸수 있는 볼핸들러가 마누 한명뿐인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파커가 40분 이상을 소화하기 어려웠고 백업 포인트 가드인 게리 닐은 슛에 특화된 선수였기 때문에 지노빌리에게 막중한 롤이 주어졌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6, 7차전 환상의 턴오버 쇼가 나오게 된 것이다.[12] 이때의 충격으로 은퇴하는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어쨌든 스퍼스 시스템에 대안이 없다는 점도 있고 본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스퍼스와 2년 140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3.3. 2013-14 시즌


2013-14 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2년 연속으로 파이널에 진출하는 경사를 맞게 되었는데[13] 스퍼스 팬들은 지노빌리가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파이널 5경기 동안 14.4득점 3.0리바운드 4.4어시스트 1.0스틸로 대활약하며 스퍼스의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크리스 보쉬를 앞에 두고 원핸드 덩크를 찍기도 했다.
비시즌 기간 중에는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었는데, 미세한 피로골절이 발견되었다. 팬들은 나이도 많은 양반이 이 참에 휴식을 취하길 바라고 있지만, 본인은 여전히 대회 참가를 희망중...이었으나 결국엔 참가하지 못했다.

3.4. 2014-15 시즌


나이는 못 속이는지 직전 시즌에 비해 아투율이 3푼 가까이 하락하는 등 생산성이 쭉 떨어졌다. PER 16.2로 루키 시즌 이후 최저치를 기록. 그래선지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나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FA로 영입하고 베테랑 빅맨 데이비드 웨스트까지 베테랑 미니멈으로 입단하는 등 스퍼스가 2015-16 시즌 우승을 위해 큰 투자를 해서인지 한 시즌 더 뛰기로 결정했다.

3.5. 2015-16 시즌


2015-16 시즌에는 나름대로 전 시즌보다 괜찮은 식스맨으로 활약하다가 뉴올리언스와의 경기에서 라이언 앤더슨의 '''팔꿈치'''와 '''영 좋지 않은 곳'''을 부딪혀 최소 한달 이상을 결장하게 되었다. 게다가 상태가 심각해서 수술까지 받아야 될 정도라는 소식이 들렸는데, 팀으로서는 악재이다.
다행히 회복되었는지 3월 초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3.6. 2016-17 시즌


자신의 블로그에 한 시즌 더 뛰겠다고 선언했다. 스퍼스의 팬들은 팀 던컨도 같이 한 시즌 더 뛰기를 소망하는 중.
1년간 1400만불에 재계약을 했는데, 이유가 필라델피아 식서스에서 2년간 3000만불의 오퍼가 왔었다고 한다.[14] 마누는 진지하게 이 계약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참고로 샌안토니오의 첫 오퍼는 직전 시즌과 비슷한 수준인 1년 300만불이었다. 이에 스퍼스는 그동안 여러 번 페이컷을 한 마누를 생각해서 1년에 1400만불이라는 제안을 했고 마누는 그냥 1년간 샌안토니오에 잔류하는 걸 택했다. 연봉이 비슷한데 굳이 프랜차이즈를 버리고 탱킹팀에 갈 필요는 없었다. 느낌상 이번이 마누의 마지막 해인만큼 거의 은퇴 선물로 여기고 있긴 하다.
리우 올림픽에 선수로서는 마지막으로 참여하였고 아쉽게도 아르헨티나는 성적 부진으로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이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마누는 16년 동안의 길었던 국가대표 생활에서 은퇴하게 된다. 감정에 북받쳤는지 마지막 경기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비록 나이로 인해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드림팀 이후에 승승장구했던 미국 팀을 제치고 금메달을 딴 유일한 나라의 에이스였기에 멋진 퇴장이라 볼 수 있겠다.[15]

포틀랜드전에서 경기종료 2.5초를 남기고 팀이 108-105로 뒤지던 때에 자유투를 얻었는데, 자유투 2구를 고의로 놓쳐야 어떻게든 동점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세게 던졌으나 이것이 들어가버리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플레이오프에도 열심히 출전은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전성기의 반도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멤피스와의 플옵에서는 4경기내내 침묵하다가 5차전에서 드디어 10점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16] 휴스턴 전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데 1-4차전에 역시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5차전에 12점에 게임 결승 블락을 달성하며 승리를 거두었다.[17] 제임스 하든에게 시전한 막판의 블락은 완벽하게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넣은 블락이었기에 아마 마누의 커리어에도 손꼽힐 만한 명장면으로 뽑일 것이라고 화자가 되었다.[18]
골든스테이트와의 컨퍼런스 결승전에서는 레너드의 부상과 함께 무너져버린 팀을 살리고자 시몬스와 함께 동분서주했으나, 결국 시리즈 스윕을 막을 수는 없었고 커리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시즌을 끝내게 되었다.

3.7. 2017-18 시즌


8월 24일, 1년 더 뛴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12월 9일, 보스턴과의 홈경기에서 2쿼터 버저비터 3점슛과 종료 5초전 3점슛을 성공시키며 승리를 이끌었다. 며칠 후에 있은 달라스와의 경기에서도 결승점을 올렸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방씩 터뜨려주며 클러치 전문 슈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전체적인 기량도 작년보다 더 좋아져서 이 양반도 더 젊어지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
17-18시즌이 끝난 후, 선수생활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은퇴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가 2018년 8월 27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샌안토니오 스퍼스 3인방의 시대가 끝났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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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8. 은퇴 후


가끔 연습 경기등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팀 던컨과는 달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다니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등 정말 농구와는 거리를 두면서 생활하고 있다.

2019년 3월 29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모든 팬들 앞에서 20번 영구결번식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마누의 모든 NBA 커리어를 같이 한 그렉 포포비치 감독, 토니 파커, Big 3의 대장 팀 던컨 그리고 마누와 2004년 올림픽, 2007년 NBA 우승을 같이 한 아르헨티나 선수인 파브리시오 오베르토 선수가 함께했다. 단순히 스퍼스의 상징적인 선수를 떠나 위의 소개된대로 아르헨티나에는 영웅적인 존재이기에 수많은 아르헨티나 팬들과 같이 뛰었던 동료들도 참석했고 영결식도 꽤나 길었다.

4. 기타


디시인사이드 NBA 갤러리 한정으로 2013-14 시즌 플레이오프 시기에 지노'''부선'''이란 별명이 붙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클러치 타임마다 상대팀에게 빅샷을 선사하면서 리그에서 유명한 강심장으로 평가받았고, 국내에서도 찬물의 아이콘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이 파이널로 인해서 큰경기에서 불안요소로 꼽히는 안습한 처지를 겪고있다. 사실 종종 클러치 턴오버를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해괴하게도 국적 때문에 디시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언급된 내용의 논지라는 게 '''아르헨티나는 농구도 축구만큼 한다.''' 라는 것. 실제로 아르헨에서는 축구와 농구 둘 다 전국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리오넬 메시 역시 대단한 농빠로 알려져있다. 농구 실력도 수준급.
의외로 많이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지만 유럽(2001년), NBA(2003,2005,2007,2014) 그리고 올림픽(2004)에서 모두 우승을 거둔 두 명의 선수중의 한명이다.[21]
경기 중에는 플라핑과 같은 간혹 더티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더티 플레이어로는 크게는 알려져 있지는 않으며 경기장을 벗어난 사생활에서는 선배인 로빈슨과 던컨처럼 꽤나 조용하고 구설수도 오르지 않는편[22]. 여행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SNS에 종종 여행 다닌 스샷 등을 올리고는 한다.

4.1. 관련 영상



백문이 불여일견. 그의 플레이를 텍스트로만 보고는 알수없다. 영상 초반부 카멜로 앤서니를 상대로 공격자 파울로 경기를 끝내는 장면이 단연 압권.

경기장에 들어온 박쥐를 맨손으로 죽여버리는(...) 지노빌리.[23]
[1] 스페인어로만 따지면 '히노빌리'가 맞다. 스페인어에서 ge, gi는 한국어 발음의 '헤', '히'에 해당되기 때문. 그러나 이탈리아계가 많은 아르헨티나의 성은 이탈리아어식으로 읽는 경우도 많다. 보통 둘 다 용인되는 편. [2] 마누의 영결식에서 팀 던컨은 이걸 한번 더 언급했는데 마누의 이름이 "임매뉴얼 지노빌리??(Emmanual Jinobily)" 하고 불려서 "얜 누구지?" 라고 이야기를 해서 빵터뜨렸다. 한국어로하면 이게 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어식으로 마누의 이름을 부르면 지노빌리가 아니라 즈노블리에 더 까깝다. 지금이야 익숙한 지노빌리의 영어식 발음과 줄임말을 풀네임 + 다른 발음으로 불렀던 생소한 시절을 추억하는게 포인트다.[3] 샌안토니오 스퍼스[4] 아르헨티나 농구 국가대표팀[5] 현재 이 픽은 NBA 드래프트 역사상 가장 큰 스틸로 여겨진다. 실제 2라운드에서 이 정도의 기량의 실력을 보여준 선수는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6] 사실 유로스텝 자체는 과거 소련의 사루나스 마슐로니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지만, 그것을 필살기로 완성시킨 것은 지노빌리라고 할 수 있다.[7] 마누의 영향을 받아서 일수도 있지만 유난히 스퍼스에서는 많은 외국인이 뛰는데 남미 선수들도 꽤나 많이 들어왔다.[8] 지노빌리의 플랍은 명품 중의 명품. 심판진이 마누의 플랍을 교재로 돌릴 정도이다. 공-수 양면에서 쓸 수 있으면 철저하게 플랍을 활용하는 선수였다.[9] nba 패스 관련 하이라이트를 보면 지노빌리의 패스가 빠지고 않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10] 이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NBA 역사를 통틀어 없었다. 현재 MVP도 수상할 정도로 슈퍼스타 슈팅 가드로 각성한 제임스 하든이 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활약하며 두 명이 되었을 정도. 이전의 서술에는 미들레인지 점퍼를 장착한 지노빌리의 플레이스타일이 우위라고 적혀 있었지만, 풀타임 볼핸들러 롤을 가져가면서 평득 36을 때려박는 MVP급 선수인 하든과의 격차는 지금은 아득히 벌어진 상태. 다만 이건 지누빌리가 나이가 들면서 돌파의 스피드가 떨어져 BQ와 플랍 정도로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어서 옵션을 늘려간 선택이라고 봐도 되기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의 우위 논쟁이 사실 필요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든도 미들레인지 점퍼를 쏠 줄 아는 선수지만, 대럴 모리 단장의 극단적인 모리볼의 영향으로 사실상 봉쇄해버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 하든이 아직 뛰어넘지 못하는건 플옵에서의 활약으로, 마누도 망쳐먹은 시즌이 없는건 아니지만 전성기때는 확실한 해결사였기도 했고 플옵에서 몇몇 시즌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11] 사실 지노빌리가 워낙 강렬한 활약을 해서 묻혀진 감도 있지만 경기 막판 지노빌리와 카와이 레너드가 자유투를 1구씩 흘리는 우를 범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연장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12] 이는 지노빌리의 플레이오프 활약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더 아쉬운 부분이었다. 골든스테이트와의 2라운드에서는 기복이 좀 있었으나, 멤피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상대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3] 의외로 스퍼스는 30년 가까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은 이때가 처음이었다.[14] 이렇게 선수 몸값이 급격히 비싸진 이유는 최근에 TV 매체와 맺은 계약이 성립되면서이다. 그곳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늘어나면서 캡스페이스도 늘어나게 되었다.[15] 1992년 드림팀 이후에 미국팀이 유일하게 올림픽에서 우승하지 못한 건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한 2004년 대회 뿐이다.[16] 10점이 뭐 그리 대단한가 할 수 있겠지만 초반에 넣은 10점으로 팀이 유리하게 시작하는데 기여했다.[17] 마지막에 넣은 2점은 4차전에 동점골로 게임을 오버타임으로 보내는 결정적인 골이었다.[18] 포포비치는 "옛날의 마누가 나왔다" 라고 말을 했고, 팀 동료들은 "할아버지 기운이 나왔다" 내지 "10년전 마누가 돌아왔다" 라고 다들 칭찬을 하였다.[19] 토니 파커는 은퇴는 아니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샬롯으로 이적했다. 물론 모두 다 인정할만큼 깔끔할만한 이적이어고 오히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스퍼스와 팬들은 그런 결정을 존중해주었다.[20] 오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제가 농구에서 은퇴하였음을 알립니다. 가족, 친구, 팀메이트, 코치, 스태프, 팬들까지 지난 23년간 제 인생에 함께한 분들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여행이었습니다.[21]빌 브래들리와는 달리 마누는 이 모든 우승 주역이자 기여도가 남다르다는 점이 확실히 다르다.[22] 스퍼스 3인방 중에서 경기장 밖에서 가장 사고가 많은건 막내 파커다.[23] 과격 동물보호단체로 유명한 PETA는 마누가 한 행동을 투견을 한 NFL 선수 마이클 빅의 행동에 비했다. 연약한 박쥐를 때려죽인 것은 잔인한 것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쟤네 또 왜 저런데.." 등 어이없다는 반응들... 고의적으로 동물을 스포츠용으로 죽도록 놔둔 것과 NBA 경기를 방해한 동물을 본능적으로 친 것과는 천지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