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파커

 

[image]
'''샌안토니오 스퍼스 No.9 '''
'''윌리앙 앙토니 파르케 주니어
(William Anthony Parker, Jr.)
'''
'''생년월일'''
1982년 5월 17일
'''국적'''
[image] 프랑스, [image] 미국
'''출신학교'''
INSEP[1]High School
'''신장'''
188cm (6' 2")
'''체중 '''
84kg (185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2001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8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 지명'''
'''등번호'''
'''9번'''
'''소속팀'''
파리 바스켓 레이싱 (1999~2001)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1~2018)'''
샬럿 호네츠 (2018~2019)
'''국가대표'''
'''프랑스 (2001~2016)'''
'''수상내역'''
'''NBA 파이널 MVP (2007)'''
'''올-NBA 세컨드 팀 3회 (2012-2014)'''
올-NBA 서드 팀 (2009)
NBA 올스타 6회 (2006,2007,2009,2012-2014)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2)
NBA 스킬스 챌린지 챔피언 (2012)
NBA 슈팅스타스 챔피언 (2006)
FIBA EuroBasket MVP (2013)
French League Rising Star Award (2001)
FIBA Europe U-18 Championship MVP (2000)
'''샌안토니오 스퍼스 영구결번'''
No. 9
[image]
'''2003'''
'''2005'''
'''2007'''
'''2014'''
'''2007년 NBA 파이널 MVP'''
드웨인 웨이드

'''토니 파커'''

폴 피어스
'''2012년 NBA 스킬스 챌린지 챔피언'''
스테판 커리

'''토니 파커'''

데미안 릴라드
1. 소개
2. 커리어
2.1. NBA 이전
2.2. 신인 시절
2.3. 발전
2.4. 베테랑이 되고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1. 소개


'''T.P.'''
NBA의 前 농구 선수. 벨기에 출신 프랑스인[2]으로, 낮은 드래프트 순위로 NBA에 입단했으나 꾸준히 성장한 결과 팀 던컨, 마누 지노빌리와 같이 2000년대 샌안토니오의 황금기를 이끈 빅 3의 일원이었다. 실적이나 경기력 모두 탑 클래스의 포인트 가드지만 스퍼스가 입단 때부터 강팀이었고 던컨이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주목도가 낮은 편이었다. 이 문서 역시 올스타급 가드 중에서 상당히 늦게 작성되었다.

2. 커리어



2.1. NBA 이전


토니 파커의 아버지는 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농구 선수였고 어머니는 모델이었다. 파커는 원래 유럽인답게 축구를 좋아했으나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보고 반해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마추어 리그에서 2시즌 활동한 다음 프랑스 리그의 프로 팀에 입단한다. 2000년 나이키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파커가 활약하는 모습을 본 NCAA의 몇몇 대학이 접촉을 시도했으나 프랑스에 남았다가 2001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2.2. 신인 시절


파커에게 관심을 가진건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뿐이었고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결과 28픽까지 내려온 파커는 무사히 샌안토니오에 입단한다.[3] 루키 시즌부터 파커는 주전 포인트 가드로 뛰면서 평균 9.2득점 4.3어시스트 2.6리바운드라는 성적을 기록하고 루키 퍼스트 팀 자리를 차지한다.
2002-03 시즌에 전 경기 스타팅 멤버로 나선 파커의 평균 득점은 15.5점으로 크게 향상되고 팀 역시 던컨의 활약으로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면서 데이비드 로빈슨을 떠나 보낸다. 하지만 파커는 경험 부족으로 플레이오프 동안 안정적이지 못한 플레이를 해서 까였고 감독인 포포비치에게 신나게 욕을 먹어야 했다. 이 일로 파커는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하기로 마음먹는다.

2.3. 발전


우승 다음 시즌에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막혀 백투백 우승에 실패했으나 2004-05 시즌 평균 16.6득점 6.1어시스트 3.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그에 적응해갔고, 스퍼스는 다시 한 번 2005 NBA 파이널에 진출해 디펜딩 챔피언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맞붙는다. 빡빡한 수비를 자랑했던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 파커는 고생했지만 정점에 도달한 던컨, 2002년에 합류한 마누 지노빌리와 같이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시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2005-06 시즌에는 야투율이 54.8%에 달하는 활약을 하면서 생애 첫 올스타로 선발되었고[4] 이듬해에는 물에 오른 기량을 바탕으로 다시 서부를 정복하고 2007 NBA 파이널에 진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만난다. 르브론이 수비에 꽁꽁 막힌 사이 파커는 시리즈 평균 24득점 이상을 올리며 맹폭, 클리블랜드를 4-0으로 완파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인 최초로 NBA 파이널 MVP를 수상'''한다.

2.4. 베테랑이 되고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빅3 중 던컨과 마누가 30줄이 꺾이면서 노쇠화가 시작된 반면 나이가 조금 더 어린 파커는 후배 포인트 가드크리스 폴, 데런 윌리엄스, 라존 론도, 데릭 로즈, 러셀 웨스트브룩 등에게 꿀리지 않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샌안토니오 프랜차이즈 어시스트 리더는 토니 파커이며, 득점 역시 역대 4위에 도달한 상태.
파업이 있었던 2011년에는 잠시 프랑스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2012-13 시즌에는 All-NBA 퍼스트 팀에 들 만한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발목 부상으로 한 달 정도 결장을 해 퍼스트 팀 자리를 놓치기도 했으나 무사히 팀에 복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3.0득점 7.2어시스트를 찍으며 LA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차례로 격파, 6년 만에 다시 2013 NBA 파이널 무대에 도착해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다. 그러나 3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데다 르브론 제임스의 마크에 막혀 제 컨디션을 모두 낼 수 없었고, 스퍼스는 7차전에서 아쉽게 패하고 만다.
2013년 NBA 시즌이 끝나고 프랑스 대표팀 소속으로 유로 바스켓에 참가해 종횡무진 활약, 결승에서 리투아니아를 격파해 프랑스의 첫 유로 바스켓 대회 우승을 이끌며 MVP까지 차지했다. 다만 그 여파로 2013-14 시즌엔 전 시즌보다 부진한 시즌을 보내기도. 그래도 팀이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 시즌인 2014-15 시즌엔 하락세가 좀 더 뚜렷해졌다...
나이 때문인지 2016-17 시즌 초반에는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이 초반에도 햄스트링 부상 및 잔여 부상들을 달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은 더 이상 없고, 수비에는 확실히 구멍이긴 하지만 현 스퍼스에서는 게임 리딩을 할 만한 포인트 가드가 없는 지라 여전히 기용되고 있다.[5] 물론 스퍼스 시스템 자체가 한 선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벤치 멤버들의 활용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크게 체력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대략 25-27분 사이를 뛰며 팀을 이끄는 역할로 자리 잡은 듯 하다.
4월 15일 멤피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첫 경기에서는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18득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며 아직 건재함을 과시했는데, 문제는 요즘 리그가 포인트 가드 중심이라 앞으로 어떤 팀을 만나든 그 팀들의 포인트 가드들이 (???)이라 파커의 고생은 이미 예언되어 있다. 그나마 조금 만만한 수준이 마이크 콘리, 조지 힐, 라존 론도, 그리고 제프 티그 정도임을 감안하면...
하지만 1라운드에서 정말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팀은 4-2로 시리즈를 승리하며 1라운드를 돌파하여 2라운드에서 휴스턴 로키츠를 만났으나... 휴스턴과의 2차전 경기 4쿼터에서 파커는 허벅지 부상을 입어서 경기에서 아웃되었고 스퍼스는 2차전을 승리하여 시리즈를 1-1 원점으로 돌려놓았으나 파커의 부상으로 인해 크게 기뻐할 수 없었고, 결국 수술로 인해 시즌 아웃되면서 모든 스퍼스 팬들은 매우 슬퍼하는 중. 파커 개인으로서도 플레이오프에서 4,000득점과 1,000어시스트를 달성한 역대 4번째 선수가 된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부상을 당했으니 더욱 속상했을 듯.
2018년 7월 6일 17년간의 정들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떠나 2년 1000만달러에 샬럿 호네츠와 계약 후, 2019년 6월 10일 마침내 파커가 은퇴를 발표했다. 최근 20시즌을 채우고 은퇴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다음 시즌 계약 옵션이 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전적은 경기당 평균 15.8 점 / 5.7 어시스트.
은퇴 후에는 농구 관련 교육 사업과 고향 리옹에서 운영중인 농구팀 관리에 집중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로써 스퍼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3은 모두 은퇴하게 되었다. 은퇴 선언 전 샌안토니오에서 이미 던컨지노빌리와 식사하면서 은퇴 의사를 밝혔고 모두들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은퇴 이후 선수 시절부터 지분을 보유해온 ASVEL 리옹 농구팀의 구단주 및 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9년 11월 11일 스퍼스와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홈 경기 행사에서 그의 등번호 9번이 영구결번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원래는 전형적인 드리블러이자 듀얼 가드였지만, 데뷔 이래 기량이 서서히 꾸준하게 발전하여 6~7년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상급 포인트 가드로 꼽히기 시작했으며, 무려 10년차가 넘어 리그 No. 1 포인트 가드를 다투는 위치까지 올라선 대기만성형 선수. 커리어 초반에는 '난 림밖에 보이지 않아' 스타일의 닥돌형 선수였다. 돌파가 뛰어나고 득점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동시에 돌파'''만''' 잘한다는 혹평을 받았으며 스퍼스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6]라는 정교한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져 포인트 가드 본연의 역할 수행에 미숙하고 BQ가 의심되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 또한 기복이 심해서 국내에서는 이름과 관련하여 욕설이 섞여서 불릴 정도.[7] 데뷔 때부터 파커를 보아온 대부분의 팬들이 오늘날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이 정도까지 클 줄은 예상 못했다." 농담 아니라 진짜로 전호장이랑 플레이가 똑같았다.
일단 엄청난 순발력과[8] 바디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돌파 후 페인트 존 득점력은 데뷔 때부터 그의 대표적인 장점으로,[9] 매치업 상대로 수비가 약한 선수가 붙을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영혼까지 털어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레이업 및 플로터[10] 마무리 능력은 NBA 포인트 가드들 중 단연 최고 수준. 언젠가부터 안정적인 중거리 풀업 점프 슛이 장착되면서 최고의 스크리너 팀 던컨과의 콤비 플레이도 더욱 강력해졌다. 파커가 있는 스퍼스 모션 오펜스의 시작은 던컨과의 픽 앤 팝을 통해 1선 수비를 벗겨낸 뒤, 노 마크에서 공을 잡은 던컨이 나머지 팀원들의 포지셔닝을 이용해 패스를 돌려 상대 수비를 소몰이하듯 휘두르고, 그렇게 난 노 마크 3점 슛을 나머지 3명이 성공시키는 전형적인 모션 오펜스이다.
던컨이 족저근막염 부상 이후 팀의 절대적인 No. 1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핵심 선수로 꾸준히 기용되며 판단력과 패싱, 게임 운영도 원숙해졌으며, 확률 높은 중거리 점퍼를 장착하면서 무리한 공격이나 볼 호그 짓을 안 하게 되어 기복도 별로 없어지고 턴오버도 적은 꾸준형 선수가 되었다. 클러치 상황에서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배짱도 있고 폭발력도 상당하다. 부상이 별로 없는 것 또한 큰 장점.
풀 업 점퍼를 던지긴 하지만 안정적인 3점 슈터가 아닌 것 빼고는[11] 약점이 거의 없는 선수이고 탑 포인트 가드임에는 분명하지만, 철저한 팀 오펜스를 중시하고 수수한 플레이로 유명한 샌안토니오 특성 및 분명히 잘하긴 하는데 뭔가 임팩트가 적은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이 맞물려 비슷한 수준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인기가 좀 없다.[12] 인기가 없는 게 가장 큰 약점인 선수(...). 그렉 포포비치가 주전들의 출장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는 스타일이라 별로 오래 뛰는 편이 아님에도[13] 2012-13 시즌 평균 20.3득점, 7.6어시스트, 3.0리바운드, FG 52.2%, 3P 35.3%, FT 84.5%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All-NBA 2nd 팀에 선정되었다.
동시대에 비슷한 유형의 가드로 새크라멘토 킹스의 마이크 비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천시 빌럽스가 있다. 이 두 선수 모두 파커와 마친가지로 접전 상황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차 스탯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당대 최강이였던 샤크, 코비의 레이커스 시절에 대항하는 팀들의 엘리트 포인트 가드였다.

4. 기타


  • 2015년 유로바스켓 대회에서 대회 통산 득점 1위를 차지했다.
  • 2012 런던 올림픽 직전 클럽에 놀러 갔다가 리아나의 남친 크리스 브라운과 래퍼 드레이크의 싸움에 휘말려 유리병으로 눈을 강타당해 눈 부상을 입고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아서 호위를 받으며 가는 등 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 프랑스인답게 축구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티에리 앙리와 친분이 있다.
  • 준수한 얼굴과 패션 감각의 소유자로 맥심에 나오기도 했다. 미모의 연상 여배우인 에바 롱고리아와 결혼해 뭇 남성들의 질투를 샀는데[14], 동료 브렌트 베리의 아내와 바람피우다가 3년 만에 이혼했다(…). 그래도 SNS를 보면 에바 롱고리아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스퍼스를 응원하는 듯하다. 이미 파커와 사귀기 전부터 스퍼스 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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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투_방해류_종결자.jpg
  • 2016년 5월 7일 펼쳐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3차전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의자에 앉아서 작전 지시를 하는 것이 국내 NBA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자기 마음대로 앉은건 아니고, 포포비치 감독이 지금 상황에선 자기가 지시하는 것보다는 파커가 지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자리를 비워준 것이라고.
  • 데뷔 초기, 그리고 전성기가 오기 전까진 감독이었던 포포비치에게 갈굼을 정말 많이 당했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그게 큰 효과를 본 것인지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 나중에는 경기가 어느 정도 기울었다 싶으면 포포비치가 그냥 벤치에만 앉아 전체적인 경기운영 자체를 일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 넷플릭스에 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몐터리가 업로드 되었다.
[1] Institut national du sport, de l'expoertise et de la performance의 약자이다.[2] 아버지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 어머니는 네덜란드인. 파커는 벨기에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곧바로 프랑스로 이민가 프랑스에서 자란 '''프랑스인'''이다. 15세의 나이에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이후 프랑스 대표팀에서 맹활약했다.(http://www.france24.com/en/20160803-rio-olympics-tony-parker-chases-medal-nba-basketball) 유럽에서 태어났을 뿐 미국인이라고 아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아버지가 미국인일 뿐 미국 시민권자도 아닐 뿐더러 10대 후반 NBA에 드래프트 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다 보내고 프로 데뷔까지 한 완벽한 프랑스인이다. 이런 사람을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버락 오바마를 케냐인이라고 하는 꼴.[3] 지금이야 장족의 발전을 거쳐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터지면 좋고 안 터지면 말고에 가까운 픽이었다. 당시 드래프트 뎁스가 나쁜 것도 아니었고 파커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원석에 가까웠기 때문에 스퍼스 입장에서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파커는 패스 위주의 정통 포인트 가드가 아니라 득점과 패스를 같이 하는 듀얼 가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듀얼 가드는 주가가 매우 낮았고 파커는 아직 만 19세의 어린 유망주, 심지어 유럽 선수라 정보도 많지 않았다. 상위픽으로 뽑힐 리가 없었던 것.[4] 다만 이때도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파커의 자격 논란과 더불어 "그렉 포포비치가 올스타전 감독이라 뽑아준 것 아니냐"는 다소 어이없는 음모론이 돌았는데, 이게 왜 어이없냐면 파커가 뽑힌 올스타 감독 추천 자리는 올스타 감독을 '''제외한''' 29개팀 감독의 추천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포포비치는 파커에게 표를 던질 수조차 없었던 유일한 인물이다. 여담으로 올스타 주전은 다들 알다시피 팬투표이며, 부상으로 인한 대체 선수는 총재가 직접 선정한다.[5] 패티 밀스가 포가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포가이기보다는 활력을 불어넣는 식스맨스러운 역할이 더 크고, 또 다른 포가 디욘테 머레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상황.[6] 엄밀하게 얘기하면 스퍼스는 전통적인 프린스턴 오펜스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았을때 모션 오펜스의 일종이긴 하다.[7] 파커를 변경한 X커로 보면 된다(...)[8] 전성기때는 NBA에서 가장 빠른 선수중 하나로 매번 언급되고는 했다.[9] 2005-06 시즌에는 페인트 존 득점 NBA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6-2의 포인트 가드가![10] 특히 Tear Drop이라고 불리는 샷의 마스터였다.[11] 일반적인 주전 포인트 가드들은 적어도 경기당 3회 이상의 3점 시도를 하지만, 파커는 1회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이것도 스퍼스의 시스템상 탑의 가드보다는 스윙맨들의 코너 3점을 주력으로 활용하는 스퍼스의 모션 오펜스 시스템 영향이 더 크다.[12] 사실 임팩트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지금처럼 듀얼 가드가 NBA의 대세가 되기 이전, 대세는커녕 듀얼 가드 활용법이 제대로 연구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기피하기까지 하던 리그 트렌드에서 벗어난 득점 위주 포인트 가드였던 점이 크다. 특히 정통 포인트 가드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한국에서 파커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된 원인. 듀얼 가드가 시즌 MVP까지 차지하게 된 최근에는 이런 스타일 때문에 생기는 평가절하는 상당히 해소되었다.[13] 경기 당 30~32분 정도.[14] 롱고리아는 2006년 당시 인터뷰에서 "불이 꺼지면 그가 (파커가) 선생님이고 난 학생이다"라고 해서 파커의 잠자기 스킬을 칭찬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이전에 본인이 "사랑 관해선 내가 경험많은 쪽이죠"라고 한 걸 확대해석해서 파커의 잠자리 스킬이 형편없다는 설이 돌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한 얘기라, 당시 남편이었던 파커를 띄워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