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금
1. 개요
몽골의 민속 현악기. 해금계 악기로 분류되지만 실제 모양새는 중앙아시아 악기(코비즈, 이킬)에 더 가깝다.
이름은 "말(머리) 악기"란 뜻이며 본래 이름은 몽골식 표현인 '''"머릉 호르(Морин хуур)"'''가 맞다.[4] 《원사(元史)》에는 "호금(胡琴)"[5] 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마두금을 중국의 자랑스런 전통문화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중국이 내몽골 자치구를 영토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따지면 마두금은 몽골의 민속악기이며, 한족이 대다수인 중국 입장에선 당연히 소수민족(몽골족)의 문화에 해당되므로 엄연한 중국의 억지다.
2003년에 "마두금을 이용한 전통음악 연주"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되었고 2008년에 등재 되었다. 당시 등재국가는 '''몽골'''.
대표적인 연주자로는 몽골 내 마두금 대중화에 앞장 섰던 "검버더르지 자미양"(Гомбодоржийн Жамъян, 1919 ~ 2008), 몽골 국가지정 인민배우이자 공훈예술가인 "체옝 체렝더르지"(Цэенгийн Цэрэндорж, 1940 ~ ), 국립몽골가무단 소속 공훈예술가 "출템 바트새항"(Чүлтэмийн Батсайхан, 1958 ~ ) 등이 있다. 몽골 메탈 밴드 The HU의 멤버 갈라, 엔후쉬 또한 마두금 연주자이다.
중국에는 중국국가일급연주가(中国国家一级演奏家)이자 중국마두금학회 창립자인 내몽골 출신 "치 보락"(齐·宝力高, 몽골명 Ч Булаг, 1944 ~ )이 있으며 내몽골의 포크 락 밴드 항가이(杭盖)의 "바투바겐"(巴圖巴根)이란 연주자가 있다.
2. 연주 영상
3. 역사
기원에 대해서는 일부 기록이 존재하지만 이를 뒷바침하는 유물이 많지 않아 명확하지 않다.
현재 몽골 측의 주장에 따르면, 흉노족이 활동하던 BCE 2세기에 지금의 동몽골 지역에서 동아시아 찰현악기의 원형이 탄생하였고, 7~8세기 선비족이 등장하면서 일반적인 호금이 등장하였다. 이후 마두금의 직계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이킬이란 알타이 지역 악기를 토대로, 13세기 때 말머리 장식과 말꼬리로 된 현을 이용한 마두금이 등장했다고 전해진다.[8]
중국 측에서는 북방민족 중 하나인 해족의 악기에서 마두금이 기원하였고, 얼후의 동계 악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내몽골에 있는 악기인 쵸르(Чуур, Chuur)를 마두금의 기원이라고 소개한다.
결과적으로 마두금의 형태 변화와 전래 과정 등을 따져봤을 때, 몽골 측 주장이 더 신빙성이 높다.
향간에는 중동의 악기인 레밥이 13세기 때 원나라로 전해지면서 마두금이 탄생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하나의 설에 불과하며 증거는 불충분하다.
4. 구조 및 연주
[image]
'''▲ 종류별 마두금 비교'''[9]
본래 울림통 앞부분을 나무가 아닌 가죽으로 씌운 것이 전통 마두금이며, 1965년부터 악기의 대중화를 위해 울림통 전면을 나무로 만들기 시작했다. 해당 아이디어는 소련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Denis Yarovoi로부터 시작되었다.#
지판 위의 현을 아래로 눌러 소리를 내는 방식이 아닌 현 측면을 손톱 윗부분(검지, 중지), 손가락 끝부분(약지, 소지)으로 비스듬이 눌러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운지법이 일반 현악기들에 비해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10] 비슷한 연주방식을 가진 악기로 인도에 카마이차가 있다.
마두금의 현은 얇은 줄을 여러가닥 모아 하나의 현으로 만든 것이다. 때문에 현의 굵기가 타 현악기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외현[11] 약 130개, 내현[12] 약 105개로 전통마두금은 말총, 현대에는 나일론 줄을 사용하며 쇠줄은 사용하지 않는다.
마두금 중에서 줄감개 부분을 용머리로 장식한 것이 있는데, 이는 몽골을 침략 지배했던 청나라의 상징인 용을 몽골의 상징인 말보다 아래에 두게 하는 일종의 보복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련 역사는 청나라 치하 몽골 참고.
마두금은 악기 형태와 연주법에서 크게 몽골식과 중국식(내몽골식)으로 나뉘는데, 그 이유는 울림통 형태와 조율에 있다. 몽골식 마두금은 울림통의 옆면 폭이 넓고 사용된 나무 두께가 앏으며, 조율은 외현 / 내현 기준으로 F(파) / B♭(시플랫) 또는 E♭(미플랫) / B♭(시플랫)으로 풍부한 저음을 낸다. 중국식 마두금은 옆면과 앞면 폭이 좁고 나무 두께가 두꺼우며 G(솔) / C(도)로 튜닝하여 탄력 있는 고음을 낸다. 중국식 마두금은 습기에 강한 것이 특징인데, 이 때문에 일본 등 습한 기후의 나라에서는 중국식 마두금을 주로 연주한다.
몽골식 연주법은 대부분 전통 민요인 오르팅 도의 영향으로 음 자체를 길게 뽑아내거나 클래식 음악처럼 절제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반대로 중국식(내몽골식)은 중국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아 기교가 많은 편인데, 몽골식 연주법에 비해 글리산도와 비브라토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한다고 한다.
국내에선 인지도가 매우 낮은 악기 중 하나라서 취급하는 곳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한 때 소규모 모임 형식으로 몽골에서 온 마두금 연주자를 초청하여 강습을 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는 듯 하다.#
5. 국내 연주자 현황
국내에서 활동하는 마두금 연주자는 대부분 몽골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인 연주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한국인 연주자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타미르(본명 김연준)'''가 있다. 몽골 출신 유학생 작드수렝(N.Zagdsuren)[13] 과 벌드수흐(Ch.Boldsukh)[14] 에게 마두금을 배웠다고 한다. 현재 "IKEL 몽골전통예술진흥재단"이라는 몽골 예술단체의 한국 지사 부대표를 맡고 있으며# 버스킹 활동은 물론 2019년 부터 마두금 관련 공연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15] 2021년 현재까지 '''몽골식 연주법을 구사하는 유일한 한국인 연주자'''이다. 여담으로 몽골 메탈 밴드 The HU의 대표곡인 Yuve Yuve Yu를 마두금으로 커버하기도 하였다.#[16]
이외에 전문 연주자는 아니지만 중국식(내몽골) 마두금을 연주 할 줄 아는 인디밴드 한음파의 보컬 이정훈이 있다. 밴드를 잠시 접고 중국 내몽골에서 다년간 '''중국악기의 일환으로 마두금과 얼후를 배웠다고 한다'''.[17] 한음파 밴드의 특징인 싸이키델릭한 음악 색깔을 내는 것에 마두금을 사용하지만, 이정훈의 마두금 연주가 모든 곡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며 호불호가 존재한다고 한다.[18]
가수 하림도 마두금을 소유하고 있지만, 연주 실력은 영 좋지 못하다.#
6. 기타
- 옛날에는 마두금 연주자는 남성들만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마두금 전설 때문인지 여자가 연주하면 부정 탄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는 여성도 마두금 연주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한국 영화 OST 사상 최초로 이 악기를 이용한 연주곡들이 수록되었으며, 연주곡 중 한 곡은 무한도전 관상 특집에서 잠깐 흘러나온 적이 있다.# [20]
[1] 이 표기가 발음상 본래 이름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2] 몽골 전통 문자 표기.[3] 현대 몽골어 표기.[4] 영어 알파벳 발음표기인 "모린 쿠르"가 있지만 이는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호르(хуур)"라는 몽골어는 북방민족과 해금계 악기를 뜻하는 한자어 호(胡)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있다.[5] 호금이란 말 자체가 동아시아 찰현악기 전반을 통칭하는 말이다.[6] 순서: 몽골 전통곡 "Jonon khariin yavdal", 로베르트 슈만 "Träumerei", 게임 원조비사 OST를 편곡한 "꿈의 바람".[7] The HU의 멤버 엔후시의 전 소속팀. 몽골어로 '전설'을 뜻한다.[8] 이킬은 그 형태가 유목민들이 쓰던 국자에서 비롯됐으며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9] 몽골식 마두금 조율법에 오타 있음. Ed → E♭[10] 운지법 자체만 놓고 보면 바이올린족 악기들보다 훨씬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바이올린, 첼로가 연주하기 쉬운 악기란 뜻이 아니다.[11] 연주자세를 취했을 때 연주자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줄.[12] 연주자세를 취했을 때 연주자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줄.[13] 영화 최종병기 활 OST에 마두금 연주자로 참여하였다.[14]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팝핀현준, 박애리 부부와 함께 협연하기도 했다.#연주 영상[15] 김연준이 활동하기 이전에도 마두금을 연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몇 명 있었지만, '''정식으로 "마두금 연주자"란 타이틀을 걸고 연주 활동을 하던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몽골 소재 전통예술단체가 정식으로 인정한 한국인 연주자는 김연준이 유일하다. 따라서 김연준을 "최초의 한국인 마두금 연주자"로 봐도 사실상 무방하다.[16] 이는 '''전세계 최초이자 한국인 최초'''라고 한다.[17] 본래 중국에 간 이유는 수타면을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여러 인터뷰와 연주곡 등을 따져봤을 때 몽골국(외몽골)에 가본 적은 없는 것으로 추측된다.[18] 오히려 마두금이란 희소성 있는 악기로 오랜기간 밴드 활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정훈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마두금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물론 이는 마두금의 인지도와 더불어 한음파가 속한 장르인 인디 록 자체가 국내에서 지나치게 마이너한 탓도 있다.[19] 울림통을 왼쪽 다리에 올려놓고 연주하는데 이 주법은 사실 얼후에서 쓰는 주법이다. 실제 마두금은 울림통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연주하므로, 영상의 연주방식은 첼로를 바이올린 마냥 어깨에 걸치고(...) 연주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20] 극 중 유재석이 유선비에서 유망나니가 된 뒤 슬퍼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