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
萬積
(? ~ 1198)
만적의 난을 일으킨 중심 인물로 당시 무신 집권자였던 최충헌의 노비였다고 추측된다. 사실 만적이 최충헌의 사노비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2] , 만적이 고려사 열전 최충헌편에 있어서 최충헌의 사노비라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종 1년인 1198년에 개경 뒷산에서 노비 몇 명과 함께 나무를 하며 거사를 상의하다가 여러 종들을 불러모아 일을 도모하기로 하고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丁)이라는 글씨를 적어놓고 종이를 표지로 삼게 했다. 그리고 정자 표지를 달고 날짜를 정해 흥국사에서 출발해 격구장에 대오를 정비해 한꺼번에 북을 올려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 흥국사에는 몇 백명만 모였기에 적은 수로는 거사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날 보제사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순정이라는 종이 주인인 율학박사 한충유에게 이를 고해바치고 만다. 결국 만적은 100여 명과 함께 붙잡혀 강물에 던져지는 것으로 죽음을 맞았으며 순정은 포상금을 받고 평민이 되었다.
돌쇠나 마당쇠처럼 우직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일각에서는 김준처럼 무장이나 가병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소설 만적에서는 경상도 토착 세도가인 김풍의 노비로 나온다. 6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김풍의 아들인 김정이 사냥길에 노복 삼복이를 활로 쏴죽이는 것을 목격하면서 친구 감마라와 함께 도망가는데 그 전에 죽은 친구의 동생인 분이에게 어머니의 유품인 구리 팔찌를 건네주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감마라와 도망 생활을 하다가 대사 허정을 만나고 태백산에서 무예를 익히다가 김정과 사랑을 나눈 여진족의 여인인 금소예를 만났으며 허정의 가르침으로 노비가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산 속 마을에서 여진족의 여인인 야매영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되는 것 등이 나온다. 최후에 예성강에 던져질 때는 자신의 씨를 잉태한 야매영을 생각하면서 절규하다가 죽는다.
최충헌을 제거하고자 한 노비 자객 순정과 미조이를 알아보고 숨겨주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최충헌과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최충헌은 만적을 의심해서 채찍을 들었고 실제로 최충헌을 암살하려고 했던 자들을 놓아주었던 것은 분명 큰 죄인지라 이 사건을 계기로 결국 천출을 차별하는 세상을 뒤엎기로 결심한다. 만적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들도 만적이 망설이자 '이미 우리들을 보내줬을 때부터 넌 최충헌을 배신한 것이다'는 식의 말로 만적을 끌어들인다.
어쨌든 최충헌에게 원한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귀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의를 위해서 거병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나중에 최충헌이 환속할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면천이 되어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귀천있는 세상이 이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최충헌 역시도 만적에게 노비 문서를 주어 환속할 기회를 주었지만 만적이 난을 일으키려는 것인지 아닌지 떠보기 위함이기도 했다.[6]
결국 만적은 역사의 전개대로 노비들을 모아 '잃을 것은 노비 문적이며 얻을 것은 천하다'라는 연설로 거사를 일으켰다가 순정의 밀고로 실패하여 처형당하고 만다. 만적과 노비들이 처형당할 때 비가 내리는데 노석숭이 만적과 주모자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최충헌은 천노는 사람이 아니라며 물고기 밥이 되도록 강물에 던져주라고 한다. 이후 최충헌은 한동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훗날 최충헌이 죽기 직전 과거의 자신에게 질타를 당할 때에도 언급되는데 젊은 날의 최충헌은 “만적이와 같은 천노들의 열망을 짓밟는 난신적자”라고 질타한다.
영화 무사에서는 노비 출신인 여솔이 어렸을 적 들은 이야기로 언급하며 자신을 차별하는 용호군 대장 최정에게 위에 나온 만적의 대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 ~ 1198)
1. 개요
고려시대의 노비로 만적의 난의 주동자. 고려판 진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1]
『고려사절요』 14권 「신종(神宗)」 (개성의 북산에서.)
2. 상세
만적의 난을 일으킨 중심 인물로 당시 무신 집권자였던 최충헌의 노비였다고 추측된다. 사실 만적이 최충헌의 사노비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2] , 만적이 고려사 열전 최충헌편에 있어서 최충헌의 사노비라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종 1년인 1198년에 개경 뒷산에서 노비 몇 명과 함께 나무를 하며 거사를 상의하다가 여러 종들을 불러모아 일을 도모하기로 하고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丁)이라는 글씨를 적어놓고 종이를 표지로 삼게 했다. 그리고 정자 표지를 달고 날짜를 정해 흥국사에서 출발해 격구장에 대오를 정비해 한꺼번에 북을 올려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 흥국사에는 몇 백명만 모였기에 적은 수로는 거사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날 보제사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순정이라는 종이 주인인 율학박사 한충유에게 이를 고해바치고 만다. 결국 만적은 100여 명과 함께 붙잡혀 강물에 던져지는 것으로 죽음을 맞았으며 순정은 포상금을 받고 평민이 되었다.
3. 창작물에서
돌쇠나 마당쇠처럼 우직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일각에서는 김준처럼 무장이나 가병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소설 만적에서는 경상도 토착 세도가인 김풍의 노비로 나온다. 6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김풍의 아들인 김정이 사냥길에 노복 삼복이를 활로 쏴죽이는 것을 목격하면서 친구 감마라와 함께 도망가는데 그 전에 죽은 친구의 동생인 분이에게 어머니의 유품인 구리 팔찌를 건네주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감마라와 도망 생활을 하다가 대사 허정을 만나고 태백산에서 무예를 익히다가 김정과 사랑을 나눈 여진족의 여인인 금소예를 만났으며 허정의 가르침으로 노비가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산 속 마을에서 여진족의 여인인 야매영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되는 것 등이 나온다. 최후에 예성강에 던져질 때는 자신의 씨를 잉태한 야매영을 생각하면서 절규하다가 죽는다.
'''“우리가 잃을 것은 노비 문적이고, 얻을 것은 천하를 얻을 것이다!”''' -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중에서[3]
무인시대에서는 윤승원이 열연했는데 최충헌의 충직한 가노로 처음 등장한다. 최충헌이 기생 홍련화를 스파이 역할로 이의민에게 보내자 “주인님의 대의는 귀족들 사이에서만 돌고 도는 대의가 아닙니까”라고 한탄했다가 노비가 주인의 대의를 어찌 폄하하느냐며 호통을 들은 것을 제외하면[4] 최충헌과는 단순한 주종 관계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 조위총의 난 때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은 주인을 들쳐업고 전장을 이탈하다가 화살에 맞는가 하면 무예 연습 상대를 해 주기도 하며 최충헌이 이의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고발하라고 명령했을 때에도 그대로 따르는 등[5]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던 것이다. 최충헌 역시 만적을 총애했으며 우봉 최씨 가문의 어르신이자 최충헌의 어머니인 유씨 부인 역시 만적을 단순한 노비가 아니라 아들처럼 가문의 일원으로 여겼다.'''“먼 훗날 천노의 자식들이 귀천의 족쇄를 깨부수려다가 죽어간 선대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오니 후회는 없소이다...”''' -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죽음을 앞둔 만적이 마지막으로 남긴 대사
최충헌을 제거하고자 한 노비 자객 순정과 미조이를 알아보고 숨겨주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최충헌과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최충헌은 만적을 의심해서 채찍을 들었고 실제로 최충헌을 암살하려고 했던 자들을 놓아주었던 것은 분명 큰 죄인지라 이 사건을 계기로 결국 천출을 차별하는 세상을 뒤엎기로 결심한다. 만적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들도 만적이 망설이자 '이미 우리들을 보내줬을 때부터 넌 최충헌을 배신한 것이다'는 식의 말로 만적을 끌어들인다.
어쨌든 최충헌에게 원한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귀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의를 위해서 거병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나중에 최충헌이 환속할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면천이 되어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귀천있는 세상이 이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최충헌 역시도 만적에게 노비 문서를 주어 환속할 기회를 주었지만 만적이 난을 일으키려는 것인지 아닌지 떠보기 위함이기도 했다.[6]
결국 만적은 역사의 전개대로 노비들을 모아 '잃을 것은 노비 문적이며 얻을 것은 천하다'라는 연설로 거사를 일으켰다가 순정의 밀고로 실패하여 처형당하고 만다. 만적과 노비들이 처형당할 때 비가 내리는데 노석숭이 만적과 주모자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최충헌은 천노는 사람이 아니라며 물고기 밥이 되도록 강물에 던져주라고 한다. 이후 최충헌은 한동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훗날 최충헌이 죽기 직전 과거의 자신에게 질타를 당할 때에도 언급되는데 젊은 날의 최충헌은 “만적이와 같은 천노들의 열망을 짓밟는 난신적자”라고 질타한다.
영화 무사에서는 노비 출신인 여솔이 어렸을 적 들은 이야기로 언급하며 자신을 차별하는 용호군 대장 최정에게 위에 나온 만적의 대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4. 같이보기
- 만적의 난
- 망이, 망소이
- 순정
- 스파르타쿠스
- 와트 타일러 - 와트 타일러의 난 때 난의 사상적 기반의 제공자였던 사제 존 볼이 ‘아담이 경작하고 이브가 길쌈할 때 귀족은 어디 있고 평민은 어디 있었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 진승, 오광
- 천민
- 형평운동
- 홍길동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홍길동전에서 많이 언급되는 대사다.
[1] 만적이 처음 한 말은 아니다. 중국 진나라 시절 진승·오광의 난에서 진승이 이야기한 것이 유행어처럼 민간에 퍼져, 이것이 이후 한반도로도 흘러들어왔을 것이라 추측된다. 고려사 원문에는 그냥 '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라고 적혀 있다.[2] 고려사에는 만적이 사동(私僮)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3] 실제로 기록된 말이 아니라 극중의 대사이며,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중 유명한 구절인 "노동 계급(프롤레타리아)이 잃을 것이라곤 족쇄 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4] 원래 만적과 홍련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맺어지지 못했고 홍련화가 기생이 되면서 최충헌을 섬기게 되었다.[5] 극중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노비가 주인을 고발했을 경우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처형당할 수도 있었다.[6] 작중 연출상 채찍질한 것을 뉘우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삽입된 배경 음악도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최충헌은 조위총의 반란 당시 만적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던 이야기를 주로 꺼내고 채찍질한 일은 마지막에 살짝 덧붙이듯이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만적이 최충헌에게 거짓을 말한 것은 맞으니 굳이 그 일을 꺼내기보다는 차라리 환속할 의향을 물어보는 쪽이 더 이치에 맞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