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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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초기의 왕족. 정종의 15남이자 막내아들이다. 어머니는 숙의 기씨이다. 친형제로는 형 순평군, 금평군, 정석군과 누나 숙신옹주 및 여동생 상원옹주가 있으며 전주이씨 무림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
1419년(세종 1년)에[A] 인덕궁에서 태어났다. 무림군이 태어난 해에 아버지 정종이 세상을 떠났다.
1430년(세종 12년)에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에 제수되었고, 1441년(세종 23년)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원윤(元尹)이 되었다.# 1444년(세종 26년)에는 명선대부(明善大夫) 무림정(茂林正)에 봉해졌다.#
1460년(세조 6년) 10월에는 세조가 황해도와 평안도를 순행할 때 같이 따라갔고#, 1466년(세조 12)에는 문폐사(問弊使)가 되어 지방의 잘못된 정치와 폐단 등을 조사 및 보고하기도 했다.# 1468년(예종 즉위년) 11월에 정의대부(正義大夫) 무림군(茂林君)에 봉해졌다.# 1470년(성종 1년)에는 중의대부(中義大夫), 1473년(성종 4년)에는 승헌대부(承憲大夫)로 품계가 올라갔다.
3. 사후
1475년(성종 6년) 3월 25일에[1] 사망했다. 향년 56세[2] 묘는 경기도 광주군[3] 정안촌에 모셨다가 3년 뒤인 1476년(성종 7년)에 현재의 자리인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로 이장했다.#
1872년(고종 9년) 3월에 영종정경(領宗正卿)으로 추증되었다.#
4. 여담
- 1475년(성종 6년) 1월에 아버지 정종의 묘호에 대해 성종에게 상소했다.# 정종은 죽은 이후 한동안 묘호를 못 받고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만 불렸다. 이에 정종의 아들인 무림군이 '예종께서 공정대왕께 희종(熙宗)이라는 묘호를 정하셨는데 그만 승하하셨으니, 이제라도 묘호를 올려주십시오!'라고 한 것.[4] 그러나 성종은 이 상소에 대해 아예 답을 내리지 않았고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결국 공정대왕은 1681년(숙종 7년)에 가서야 정종이란 묘호를 받았다.#
5. 가족과 후손
양덕군부인 남양 홍씨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다.# 딸들은 각각 참의 나영손, 진사 김맹원, 전한 류대승과 혼인했다.
장남은 명천도정 이장손(明川都正 李長孫)이고 차남은 신평도정 이종손(新平都正 李終孫)이다. 명천도정은 1남을, 신평도정은 3남을 두었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전주 이씨 무림군파를 이루었다. 조선 후기에는 무관(武官)을 많이 배출했다.
정조 시기의 실학자 이덕무와 정미칠적 이병무가 무림군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