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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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윤정희, 남정임과 함께 1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서 영화에서 수많은 활약을 보여 줬다.
2. 활동
1965년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3] 이후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지만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데뷔작부터 큰 성공을 거둔 것에 비해 문희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4]
그러다가 1968년 여름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이들에게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흥행작을 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서울 시내 한개 영화관에서 37만 관객을 동원하여 이전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윤정희도 남정임도 못했던 기록 갱신에 성공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는데, 이러한 비련의 여성 이미지는 문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 문희에게 붙은 수식어가 '''눈물의 여왕'''.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성공으로 남정임과 윤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 여배우가 되었다.
이후 전성기 시절에는 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남정임은 주로 발랄한 배역을,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벽 속의 여자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다른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역을 맡았다. 한복과 수수한 원피스 차림 중심의 전근대적 여성상과는 다른 롱코트와 부츠를 착용한 서구적인 면을 가진 역을 연기하였다.[5]
3. 여담
서울특별시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남매 중에서 형제들은 모두 남자형제여서[6]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1965년 영화 <흑맥>에 출연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한 결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또한 윤정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70년대 여자 영화 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다가 1971년 갑자기 한국일보 부사장 장강재와 결혼해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다른 원로 여배우들이 결혼후 각종 구설수에 오르던 것과 달리 화목하고 잡음없는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993년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하면서 사별하였다. 현재는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문희의 아들 장중호는 명세빈과 2003년 결혼한다고 언론에 발표되었고 문희 본인이 직접 언급도 했으나, 파혼하면서 없던 일로 되었다.
나이드신 분들에겐 귀티나는 외모의 대표로 선호받는다. 최근 노년에 여성지 화보로 모습을 비추기도 했는데, 우아하게 나이든 모습을 자랑한다.
4. 영화
5. 수상 경력
- 1965년 제3회 청룡영화상 특별신인상 <흑맥>
- 1966년 제5회 대종상 신인상 <흑맥>
- 1967년 제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연기상 <초우>
- 1968년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막차로 온 손님들>
- 1968년 제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카인의 후예>
- 1969년 제6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 1969년 제12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카인의 후예>
-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 1971년 제8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
- 2010년 제18회 춘사영화상 아름다운 영화인상
[1]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이보희 문서 참고.[2] 장남 이름은 장중호, 전 일간스포츠 대표이사 사장이었다.[3] 훗날 절친한 사이가 된 선배 배우 엄앵란이 흑맥의 촬영 현장에서 문희를 처음 보았다고 하는데, 같이 촬영하던 남자배우들이 문희의 눈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작고 가녀린 문희를 보며 엄앵란은 ‘저렇게 가녀린 아이가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4]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남정임은 유정으로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했지만, 문희는 이들에 비해 데뷔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5] 옷차림이 지금이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6] 형제들 중 유명한 사람이 이상용 전 한국문원 대표이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