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맥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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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McCool '''
1. 프로필
2. 소개
3. 프로레슬링 커리어
3.1. WWE 데뷔
3.2. WWE 복귀
3.3. 악역 전환과 레이쿨의 결성
4. 여담
5.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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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Michelle Leigh McCool
생년월일
1980년 1월 25일
신장
178cm (5'10")
체중
58kg (128lbs)
출생지
미국 플로리다 주 팰래트카
배우자
언더테이커
피니쉬 무브
MADT[1]
윙즈 오브 러브[2]
Faith Breaker#
경기 스타일
올라운더
주요 커리어
'''WWE 위민스 챔피언십 2회'''
'''WWE 디바스 챔피언십 2회'''[3]
테마곡
Move It Up [4]
Not Enough for Me [5]

2. 소개


前 WWE 여자 프로레슬러.
2000년대 후반에 아이캔디 중심으로 돌아가던 디바 디비전에서 준수한 비주얼과 뛰어난 경기력, 거기에 능청스러운 연기력까지 보유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선, 악역 가리지 않고 전천후 활약하며 '''말 그대로 여성 디비전을 하드캐리했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3. 프로레슬링 커리어



3.1. WWE 데뷔


2004년 WWE 디바 서치의 참가자 자격으로 WWE에 처음 등장했다. 비록 최종 후보 10인 가운데 7위라는 비교적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탈락[6]하긴 했지만 WWE와 계약 체결에 성공하고 스맥다운에서 피트니스 트레이너 기믹으로 활동한다. 데뷔 후 한동안은 미스 스맥다운 컨테스트나 베스트 바디 컨테스트같은 경기와는 상관없는 스케쥴을 치르며 존재감 없는 나날을 보냈다.
2005년 무렵 던 마리[7]와의 대립을 시작으로 첫 경기를 소화하고, 곧이어 MNM[8]멜리나와도 대립 각본을 치르며 본격적으로 경기에도 투입되는 디바로 성장하나 싶을 무렵에 당시 WWE의 산하단체였던 DSW[9]로 보내진다.
2006년 6월. ‘섹시한 여교사’ 기믹의 악역 미즈 맥쿨(Ms. McCool)로 스맥다운에 복귀한다. 복귀하자마자 애쉴리 마사로, 질리언 홀과 대립하고 K.C. 제임스 & 아이돌 스티븐스로 이루어진 태그 팀의 매니저로도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이슈는 없이 다시 병풍이 되나 싶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해 12월엔 부상으로 인해 3개월간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3.2. WWE 복귀


2007년 3월에 다시 복귀한 뒤부터 경기력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 대부분의 디바서치 출신들이 그렇듯 프로답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였던 과거와는 달리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당시 맥쿨과 같은 디바서치 참가자였던 캔디스 미셸RAW에서 일취월장한 것과 비슷한 예. 캔디스가 디바서치 출신으로는 최초로 WWE 위민스 챔피언십을 따낼 무렵 맥쿨은 스맥다운을 대표하는 디바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10] 그리고 이 무렵 스맥다운에선 비키 게레로WWE 디바스 챔피언십을 만들었다.
명실상부한 스맥다운의 탑 페이스 디바가 된 후 WWE 디바스 챔피언쉽을 놓고 나탈리아 네이드하트와 대립을 펼쳤다. 하필 상대가 하트 가문의 딸이라 타이틀의 주인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2008년 7월 The Great American Bash에서 피니셔인 MADT로 나탈리아를 누르고 초대 디바스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며 선역으로서 전성기를 맞는 듯 했다.

3.3. 악역 전환과 레이쿨의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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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맥쿨의 WWE 커리어 최전성기'''
레일라와 미셸 맥쿨. ‘레이쿨’은 ‘브란젤리나’같은 단순한 이름의 조합일 뿐 별 의미는 없었지만, 이들의 이름은 훗날 침체되었던 WWE 디바 디비전의 전설이 되었다.
초대 챔피언에 오른 후 독주체제를 이어나갔다. 헌데 선역이긴 하지만 이전부터 건방지고 잘난척하면서 오만참견을 다하는 성격이어서 태그 팀 경기에서 팀원들과 마찰을 빚거나 상대선수를 가혹하게 공격하는 등 점차 턴 힐의 조짐을 보이더니, 마리즈에게 디바스 챔피언쉽을 빼앗긴 후 특별심판이었던 마리아에게 화풀이하며 악역으로 돌아섰다. 악역으로 전환한 뒤에도 맥쿨에게 대항할 만한 선역 디바가 스맥다운엔 없었기에[11] 사실상 최강의 디바로 군림하며 진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렇듯 불균형으로 인해 다소 지루해지려던 상황에 레일라와 '''레이쿨'''이라는 희대의 악녀 태그 팀을 결성하고 다른 디바들 전부를 적으로 돌리며 매주 엄청난 어그로를 끌었다. 여기에 스맥다운의 단장이던 비키 게레로를 빽으로 삼은 뒤 디바스 디비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미키 제임스, 베스 피닉스, 멜리나, 선역으로 전환한 나탈리아 등 경기력이 뛰어난 디바들이 모두 레이쿨의 대항마로 투입되었으며, 기억에 남을 명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오랫동안 욕먹은 피기 제임스 세그먼트, 베스 피닉스와의 익스트림 메이크오버 매치, TLC에서 베스 피닉스/나탈리아 팀과 가진 여성 최초의 태그팀 테이블 매치 등등.
2010년 스맥다운에선 베스 피닉스와의 핸디캠 매치에서 승리하며 레일라와 함께 공동 위민스 챔피언[12]이 되며 커리어 사상 최고점을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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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엔 벨트를 반으로 쪼개서 들고 다녔다.[13]
그 해 맥쿨은 위민스 챔피언의 자격으로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2010)에선 디바스 챔피언이던 멜리나와 맞붙게 되는데, 경기에서 승리한 쪽이 두 타이틀을 통합하는 통합 챔피언이 되는 경기였다. 결국 맥쿨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위민스 타이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탈리아 네이드하트와 대립이 다시 시작되면서 WWE 헬 인 어 셀(2010)에서 DQ로 패해서 타이틀을 방어하고, WWE 브래깅 라이츠(2010)에서 레일라가 나서게 되면서 레일라를 도와 간신히 방어하지만 WWE 서바이버 시리즈(2010)에서 레일라와 같이 나탈리아를 상대하지만 샤프 슈터에 걸려 탭아웃하면서 패하면서 챔피언 자리를 잃는다.
2011년 WWE 레슬매니아 XXVII에선 돌프 지글러와 팀을 이뤄 트리쉬 스트래터스, 존 모리슨, 스누키[14]를 상대하기도 했다.
맥쿨과 레일라도 결국 서로 갈등을 겪고 대립하며 레이쿨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두 사람은 WWE 익스트림 룰즈(2011)에서 루저 리브스 매치[15]를 치렀고 레일라가 승리하여 맥쿨은 WWE를 떠나게 되었다.[16]
이후 WWE 로얄럼블(2018)에 14번으로 깜짝 등장했고 앱솔루션의 두 멤버, 몰리 할리, 라나를 차례로 탈락시켰으나 나탈리아에게 제거당했다. WWE 에볼루션에 벌어진 배틀로얄에 참가했지만 엠버 문에게 탈락된다

4. 여담


  • 디바 서치에 참가하기 전에 교육자 집안의 영향(어머니는 교사, 아버지는 장학사)으로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7학년 과학교사로 4년간 일했었다. 후의 여교사 기믹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교사로 일하면서 투잡으로 개인 트레이너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 2006년 말에 교재( )하게 되면서 둘다 2007년에 각각 결혼한 사람들과 이혼한 후[17] 2010년에 15살 연상언더테이커와 결혼했다. (둘 다 재혼). 현재 둘 사이에서 딸 둘을 얻은 상태
  • 드래프트가 있던 시기에 몇몇 선수들은 브랜드 이동을 했는데, 미셸 맥쿨은 몇년간 드래프트 되지 않고 스맥다운에서 계속 활동했다. 이유는 언더테이커.
  • 몰리 할리와의 노 DQ 매치를 자신의 드림 매치라고 밝혔다.
  • 2014년 WWE.com에선 한 번 더 경기를 치렀으면 하는 슈퍼스타 15인 중 9위로 맥쿨을 선정했고, 스맥다운을 상징하는 15명의 슈퍼스타 중 13위에 맥쿨의 이름을 올렸다.
  • PWI 선정 2010년 최고의 여자 프로레슬러 순위에서 1위에 랭크되었다.
  • 2010년엔 WWE 슬래미 어워드를 두차례 수상했다. 하나는 올해의 디바 상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의 가장 우스운 장면 상. 올드스쿨 특집 RAW에서 매 영을 놀리다가 매 영에게 생방송 중 욕을 듣고 경기에서마저 졌던 일이 있는데, 그걸로 상을 받았다(...).

문제의 영상. 경기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게 매 영의 생전 마지막 경기다.
  • 현역 시절 WWE 수뇌부들로부터 여자들 치고는 경기가 너무 리얼하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로 인해 경기를 만드는 일에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멜리나와의 경기 도중 배리케이드 위에서 DDT를 썼다고 에이전트에게 혼이 나는 걸 크리스 제리코가 쉴드를 쳐준 적도 있었고, 턴버클 위에서 펀치를 날리는 게 너무 리얼하단 이유로 빅토리아와의 경기를 통째로 재녹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 2016년 피부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5. 둘러보기


[image] '''PWI 선정 올해의 여성 레슬러'''
미키 제임스
(2009)


'''미셸 맥쿨
(2010)
'''

미키 제임스
(2011)

[image] '''PWI 100인 선정 올해의 여성 레슬러'''
미키 제임스
(2009)


'''미셸 맥쿨
(2010)
'''

매디슨 이글스
(2011)

[image]
'''WWE 슬래미 어워드 올해의 디바'''
마리아
(2009)

'''미셸 맥쿨'''
'''(2010)'''

AJ 리
(2011)
[1] Make a Diva Tap의 줄임말이며 힐 훅의 형태에서 앵클 락이 들어간다.[2] 이 기술을 받아줄 만한 기량의 디바가 드물며, 부상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봉인.[3] 초대 챔피언[4] 2005년에 사용된 테마 이후 미셸 맥쿨이 DSW로 내려가서 스맥다운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때 질리언 홀 & 크리스탈 마샬이 사용했다.[5] 토리 윌슨이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했던 곡.[6] 참고로 당시 우승자는 크리스티 헤미. 이때 발굴된 디바들로는 캔디스 미셸, 마리아 카넬리스, 에이미 웨버, 조이 지오바니가 있다.[7] ECW 출신으로 토리 윌슨의 새어머니 각본을 수행했던 디바.[8] 존 모리슨, 조이 머큐리, 멜리나로 이루어진 혼성 스테이블.[9] Deep South Wrestling. 맥쿨은 여기서 레슬링 뿐만 아니라 인터뷰 기술, 세그먼트 진행과 같은 프로레슬링 엔터테인먼트의 전반적인 진행방법을 터득했다.[10] 이는 물론 맥쿨의 발전도 영향이 있긴 하지만 당시 맥쿨 말고는 스맥다운을 대표할 만한 디바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토리아는 자버의 노선을 탔고, 애쉴리는 유리몸, 다른 디바들은 병풍이었다.[11] 이브 토레스는 아직도 병풍이었고, 벨라 트윈스마리아는 비주얼은 뛰어났지만 기량이 부족했다. 물론 게일 킴이 있긴 했지만 별다른 스토리라인엔 투입되지 못하는 신세...[12] 둘 중 공식적인 챔피언은 레일라.[13] 사실은 맥쿨과 레일라가 벨트를 서로 자기것이라고 벨트를 집어 당겨버려서 반으로 쪼개진것이다. 이후 위민스 챔피언은 두개가 되었다.[14] MTV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인 ‘저지 쇼어’의 출연자.[15] 패자는 WWE를 떠난다는 조항이 걸린 경기[16] 그런데 경기에서 지고 WWE를 떠나게 된 것도 억울한 마당에 카르마가 깜짝 등장하여 맥쿨에게 임플란트 버스터를 시전했다. 그 광경을 백스테이지에서 얼어붙은 채 구경하는 디바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17] 언더테이커는 두번째 이혼, 미셸 맥쿨은 첫번째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