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미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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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上真司.
일본의 게임 제작자. 1965년 8월 11일생. 캡콤재적 당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디노 크라이시스 시리즈 등의 아버지이며 데빌 메이 크라이, 역전재판 시리즈, 귀무자, 갓 핸드 등의 히트작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전적이 있던 개발자로 당시 오카모토 요시키[1] 의 뒤를 이을 캡콤의 유명 개발자였다. 현재는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소속.
초기 대표작으로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게임화한 SFC판 알라딘으로 수준 높은 액션게임을 만들어낸 전적이 있다.
이 사람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때는 1996년도에 발매한 바이오하자드가 결정적으로 작용해 스타 개발자로 우뚝 섰는데 그때 개발 당시 캡콤은 90년대 초 공전의 히트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기타 2D 액션 게임 등으로 게임계를 평정했으나, 시장의 흐름이 3D 게임으로 옮겨지기 시작해 캡콤도 2D 게임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거기에 캡콤의 경영진은 부동산 투기 실패로 부도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2D 게임의 기술력은 높았지만 3D 기술 경험이 전무했던 캡콤이 당시 투신전으로 당시 초기 3D 대전액션게임을 양분했던 타카라와의 기술협력으로 시험작으로 만든 게임이 바이오하자드였다.
바이오하자드는 인포그램즈의 걸작인 어둠속에 나홀로를 벤치마킹한 작품으로 시스템적으로는 차별화가 떨어지고 인터페이스와 조작방식이 불편한 게임이었는데 개발 중간 나온 체험판이 배포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찮았고, 미카미를 비롯한 개발팀은 사내에서 빈축에 시달려야 했다(심지어 미카미의 뒤를 지원하기 위해 프로듀서직을 맡은 오카모토 요시키도 이 작품의 성공에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1996년 3월 22일 조용히 바이오하자드가 시중에 나왔다.
발매가 된 직후, 이 게임을 즐긴 소수의 유저들은 점차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어둠속에 나홀로가 콘솔로 이식되지 않아 이런 류의 게임은 바이오하자드가 최초였고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만들어진 불편한 조작감은 의외의 공포감 상승의 요소가 되어 뜻하지 않게도 호평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결국 바이오하자드는 100만장이라는 의외로 엄청난 양의 판매를 이루어내며 경이로운 히트를 해내어 캡콤의 빚을 전부 갚아내면서 캡콤의 부도를 막게 된다. 이후,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를 개척한 미카미 신지는 캡콤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더욱 더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미카미 신지는 카미야 히데키에게 디렉터를 넘겨주고, 자신은 프로듀서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바이오하자드 2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유저들을 열광시키는데 충분했다. 이 작품은 5 이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최다 판매를 이룩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만 200만장 이상을 팔아버리며 더블 밀리언 셀러라는 대흥행과 더불어서 명실상부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캡콤의 흥행카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계속 다른 콘솔로 이식하게 되는데 "바이오하자드를 플레이스테이션만이 아니라 다른 콘솔을 갖고 있는 분들도 즐기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바이오하자드에서만 끝내지 않고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사용하긴 하지만 좀비가 아니라 공룡이 등장하는 디노 크라이시스를 제작하여 시장에 내놓게 되고, 역시나 이 게임도 호평을 받았다. 게임성이 우수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고를 연발하여 이 작품도 흥행을 하게 되어 오카모토의 후계자 자리를 이을 개발자로 우뚝 서게 되어 록맨의 개발자인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의 자리를 경쟁하는 라이벌로 발전하게 된다.
바이오하자드 2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에 캡콤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이오하자드 3를 내놓게 되었고, 이번에도 미카미 신지는 카즈히로 아오야마에게 디렉터를 맡기고 자신은 또다시 프로듀서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3는 유저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장르에서 너무 벗어났다...',[2] '나의 바하는 그렇지 않아!'라는 이유에서... 팬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속출하였고 결국 3는 바하의 명성과 안맞는 실적을 올렸다.[3]
이후 닌텐도64로 바하 2가 이식이 되면서 바이오하자드 제로의 스샷이 올라왔지만 곧 취소되었고, 이 작품은 나중에 게임큐브로 재탄생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당시 미카미 신지는 게임 개발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서 프로듀서 직으로서 후배 개발자들을 지원하게 된다.
이때 캡콤의 많은 히트작들이 발매되었는데 바이오하자드4를 개발하던 중에 디렉터인 카미야 히데키의 게임의 노선변경 요청에 힘을 실어주어 서바이벌 호러가 아닌 스타일리쉬 액션인 데빌 메이 크라이가 나오게 되었고, 당시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웠던 타쿠미 슈의 게임기획에 힘을 실어주어 역전재판의 제작을 총괄 지휘하여 시장에 나오게 하여 발매후 큰 호평을 얻게 된다.
여기에 라이벌인 이나후네 케이지가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담은 검무액션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을 때도 이를 흔쾌히 승낙하여 나온 게 바로 '''PS2 최초로 100만장을 팔아치운''' 귀무자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미카미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게임에 반영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라는 폭탄선언과 함께 자신이 캡콤과 불화가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세간에 충격을 줬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캡콤은 회사를 살린 은인에게 이런저런 일을 간섭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카미 신지는 마음을 다잡아서 회사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앞으로 닌텐도 게임큐브로만 독점 발매한다'''는 약속을 받았고 이를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도 배석했다.
그 계기가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드림캐스트판이라고 한다. 미카미는 자신의 작품이 다운그레이드되어 출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어 '''하나에 올인하여 가장 최고의 작품을 내놓자'''는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부응하는 게임기로 게임큐브를 골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버스와 제로는 닌텐도의 기술 협력을 제공받아 제작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발매된 바이오하자드(2002)는 환골탈태 수준의 완성도로 엄청난 대호평을 받았으나 완성도에 비하면 시원찮은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미카미의 영향력이 있는 다른 개발팀에서 나온 바이오하자드 제로는 쪽박찼다. 물론 게임큐브 자체는 굉장히 좋은 게임기였지만, 플스2에게 여러가지로 많이 밀렸으며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 같은 대작 서드파티 타이틀이나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메트로이드 시리즈 같은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대작 타이틀 말고는 내세울만한 게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큐브가 없는 팬들은 미카미의 결정을 아쉬워했지만 '''바이오하자드를 하려고 게임큐브를 사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카미의 이런 결정을 두고 '''게임 잘 만들고 똥고집 때문에 말아먹었다'''며 비판한다.
이때 캡콤 성공의 주역인 오카모토 요시키가 경영진과의 불화로 2003년에 퇴사하면서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 직을 놓고 경쟁하게 되는데, 당시 캡콤 개발진 파벌은 이나후네를 중심으로 한 플스진영과 미카미를 중심으로 한 닌텐도 큐브진영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는 유명한 일화를 남길 정도로 경영자 성향이 강한 이나후네와 장인 성향이 강한 미카미는 충돌이 잦았다. 그런데 큐브 독점전략으로 내놓는 작품들의 흥행이 시원찮은 반면에 플스진영이었던 이나후네의 귀무자와 카미야 히데키의 데빌 메이 크라이는 대박을 치면서 (비록 귀무자와 데빌 메이 크라이의 성공에 미카미가 기여한 부분이 있었지만) 미카미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게 된다.
이어 큐브독점 전략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자신이 프로듀싱을 하고 있었던 '''데드 피닉스'''라는 게임을 개발중단시키는 강수를 두며 오랜만에 디렉터를 맡아서 바이오하자드 4의 개발에 힘을 쏟는다.
미카미는 게임 하나에 온 힘을 실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바이오하자드 4가 나오게 된다. 게임방식을 뒤엎고 액션성을 강화시킨 이 작품은 세계 모든 평론가와 유저들에게 대 호평을 받으며 게임 개발자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4]
그러나 이때 캡콤의 경영진은 판매부진의 원인이기도 하였던 바이오하자드 큐브 독점발매에 마침내 불만을 터트리며 미카미 신지와의 약속을 깨버리고 바이오하자드 4의 플스2 다운그레이드 이식을 바하4 발매전에 발표했다.
결국 경영진의 삽질로 인해 큐브판 바이오하자드 4의 판매에 찬물을 끼얹게 되고 더 팔릴 수 있었던 큐브판은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된다. 결국 미카미 신지는 캡콤에 실망하게 되어 사표를 써서 나오게 되었고, 바이오하자드 4의 프로듀서인 코바야시 히로유키 또한 이런 캡콤에 환멸을 느껴서 바하4의 플스2 이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플스2판 바하4도 게임큐브판 못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비록 게임큐브판의 그래픽에는 못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유저들은 바하의 플스 컴백을 열렬히 환영해주는 한편, 미카미 신지를 너무나 간단하게 내쳐버린 캡콤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5] 이 사건을 계기로 미카미 신지는 캡콤과 거의 척을 져버렸고, 바이오하자드 5가 발매될 당시에는 '''바하5 따위는 내가 만들지 않았기에 나는 바하5를 플레이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플레이하지 않을 거다. 바하5는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 중 하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며 그야말로 캡콤과 자신의 관계는 완벽히 파탄났음을 알리는 인터뷰를 하였다.
캡콤에서 퇴사한 그는 이나바 아츠시, 카미야 히데키 등과 함께 캡콤 제 4개발부의 스태프 대부분을 데리고 캡콤의 투자로 클로버 스튜디오라는 자회사 형태의 개발사를 설립한다.
클로버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게임은 미카미가 스다 고이치와 함께 합작한 킬러 7과 이나바 아츠시와 함께 개발한 B급 센스의 액션게임 갓핸드이다. 그리고 미카미가 직간접적으로 관여안한 게임인 카미야 히데키의 오오카미를 포함해 총 3개인데 모두 실적이 시원치 않았다.
킬러 7은 스다 고이치와 미카미 둘 다 자기 성향이 강한 개발자다 보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가 되어버려 호불호가 갈리게 되고,[6] 갓핸드는 B급 센스가 미카미의 네임밸류를 먹은 케이스이고,[7] 설상가상으로 카미야가 만든 오오카미는 엄청난 완성도와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성공적이지 못했다.[8]
결국 캡콤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였기에 결국 캡콤 경영진의 압박에 의해 다시 클로버 스튜디오는 캡콤에 완전 흡수되는 식으로 끝내고 다시 클로버의 인원들을 그대로 이끌고 플래티넘 게임즈를 설립하여 캡콤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플래티넘 게임즈에서는 뱅퀴시를 제작하여 발매했다. 게임 완성도는 호평이나 엔딩까지의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점, 클리어 후 반복플레이 가치가 떨어지는 점이 악재로 작용하여 또다시 완성도와 흥행이 따로 놀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뒤 스다 고이치와 다시 합작하여 만들어진 '쉐도우 오브 댐드'는 현재 호불호가 갈리면서 낮은 판매량으로 그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합작이며 킬러 7에 이어서 미카미X스다 조합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게임일뿐, 미카미 신지의 개발력을 의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 후 미카미는 플래티넘에서도 퇴사하고 2010년 3월 탱고 게임웍스를 설립했고 탱고 게임웍스는 2010년 10월, 베데스다와 이드 소프트웨어의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에 인수됐다. 2012년 4월 '쯔바이'란 코드네임을 가진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베데스다에서 매우 괴랄한 티저 영상을 4~5개 공개했고 수 많은 팬들은 이 게임은 폴아웃 4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정반대의 게임이 공개 되었는데 예전에 미카미 신지가 언급한 '프로젝트 쯔바이'였다. 폴아웃 4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개발 한다. 당연히 유통사인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와 별개.
본 게임의 정식 네임은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9] 미카미 신지의 팬들은 드디어 진정한 '''바이오하자드 5'''가 돌아 왔다고 기뻐하고 있다.
게임의 특징을 언급 하자면
발매일은 2014년 10월 중으로 연기 되었다. 개발사에서 밸런스와 개선을 위하여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 발매 연기를 요청 했다고 한다.
2014년 7월 29일 SCEK는 PS4/PS3 버전에 대한 자막 한글화를 발표 하였으며 발매일은 2014년 10월 15일 예정. 한국은 동월 28일로 예정 되어 있다.
디 이블 위딘 발표 이후에는 한동안 이렇다 할 만 한 소식이 없었는데, E3 2019에서 고스트와이어: 도쿄라는 신작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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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피규어가 존재한다(...).
현 소속이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라서인지[12]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폴아웃 4에도 성우로 참가했는데, 맡은 역할이 다이아몬드 시티의 국수 뽑는 프로텍트론 요리사 타카하시다(...).
데빌 메이 크라이 5, 바이오하자드 레벨레이션 2 스탭롤에서 참여한 아티스트로 그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다만 영어로 적혀 있어서 동일인물이 맞는지 불확실하다. 이때문인지 카미야 히데키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캡콤과 화해하는데 성공해서 바이오하자드 차기작에[13][14] 협력할 수 있다는 루머가 있다.
바이오하자드 2, 데빌 메이 크라이, 베요네타의 디렉터이자 현 플래티넘 게임즈 소속인 카미야 히데키가 가장 존경하는 개발자로 미카미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카미야의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 있어 미카미 신지는 크레에이터나 상사 이상의 존재이며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자신이 해결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https://bbs.ruliweb.com/news/read/144368
자신의 게임 프로듀서로서의 회고를 다룬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NKYX3GstHlw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_37pVVpzg98&t=39s
三上真司.
1. 개요
일본의 게임 제작자. 1965년 8월 11일생. 캡콤재적 당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디노 크라이시스 시리즈 등의 아버지이며 데빌 메이 크라이, 역전재판 시리즈, 귀무자, 갓 핸드 등의 히트작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전적이 있던 개발자로 당시 오카모토 요시키[1] 의 뒤를 이을 캡콤의 유명 개발자였다. 현재는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소속.
2. 캡콤에서 개발자(디렉터)로서의 시기
초기 대표작으로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게임화한 SFC판 알라딘으로 수준 높은 액션게임을 만들어낸 전적이 있다.
이 사람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때는 1996년도에 발매한 바이오하자드가 결정적으로 작용해 스타 개발자로 우뚝 섰는데 그때 개발 당시 캡콤은 90년대 초 공전의 히트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기타 2D 액션 게임 등으로 게임계를 평정했으나, 시장의 흐름이 3D 게임으로 옮겨지기 시작해 캡콤도 2D 게임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거기에 캡콤의 경영진은 부동산 투기 실패로 부도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2D 게임의 기술력은 높았지만 3D 기술 경험이 전무했던 캡콤이 당시 투신전으로 당시 초기 3D 대전액션게임을 양분했던 타카라와의 기술협력으로 시험작으로 만든 게임이 바이오하자드였다.
바이오하자드는 인포그램즈의 걸작인 어둠속에 나홀로를 벤치마킹한 작품으로 시스템적으로는 차별화가 떨어지고 인터페이스와 조작방식이 불편한 게임이었는데 개발 중간 나온 체험판이 배포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찮았고, 미카미를 비롯한 개발팀은 사내에서 빈축에 시달려야 했다(심지어 미카미의 뒤를 지원하기 위해 프로듀서직을 맡은 오카모토 요시키도 이 작품의 성공에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1996년 3월 22일 조용히 바이오하자드가 시중에 나왔다.
발매가 된 직후, 이 게임을 즐긴 소수의 유저들은 점차 이 게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어둠속에 나홀로가 콘솔로 이식되지 않아 이런 류의 게임은 바이오하자드가 최초였고 당시 기술력 부족으로 만들어진 불편한 조작감은 의외의 공포감 상승의 요소가 되어 뜻하지 않게도 호평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결국 바이오하자드는 100만장이라는 의외로 엄청난 양의 판매를 이루어내며 경이로운 히트를 해내어 캡콤의 빚을 전부 갚아내면서 캡콤의 부도를 막게 된다. 이후,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를 개척한 미카미 신지는 캡콤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더욱 더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미카미 신지는 카미야 히데키에게 디렉터를 넘겨주고, 자신은 프로듀서를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바이오하자드 2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던 유저들을 열광시키는데 충분했다. 이 작품은 5 이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최다 판매를 이룩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만 200만장 이상을 팔아버리며 더블 밀리언 셀러라는 대흥행과 더불어서 명실상부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캡콤의 흥행카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이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계속 다른 콘솔로 이식하게 되는데 "바이오하자드를 플레이스테이션만이 아니라 다른 콘솔을 갖고 있는 분들도 즐기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그는 바이오하자드에서만 끝내지 않고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사용하긴 하지만 좀비가 아니라 공룡이 등장하는 디노 크라이시스를 제작하여 시장에 내놓게 되고, 역시나 이 게임도 호평을 받았다. 게임성이 우수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최고를 연발하여 이 작품도 흥행을 하게 되어 오카모토의 후계자 자리를 이을 개발자로 우뚝 서게 되어 록맨의 개발자인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의 자리를 경쟁하는 라이벌로 발전하게 된다.
바이오하자드 2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에 캡콤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이오하자드 3를 내놓게 되었고, 이번에도 미카미 신지는 카즈히로 아오야마에게 디렉터를 맡기고 자신은 또다시 프로듀서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3는 유저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장르에서 너무 벗어났다...',[2] '나의 바하는 그렇지 않아!'라는 이유에서... 팬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속출하였고 결국 3는 바하의 명성과 안맞는 실적을 올렸다.[3]
이후 닌텐도64로 바하 2가 이식이 되면서 바이오하자드 제로의 스샷이 올라왔지만 곧 취소되었고, 이 작품은 나중에 게임큐브로 재탄생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3. 캡콤에서 프로듀서로서의 시기
당시 미카미 신지는 게임 개발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서 프로듀서 직으로서 후배 개발자들을 지원하게 된다.
이때 캡콤의 많은 히트작들이 발매되었는데 바이오하자드4를 개발하던 중에 디렉터인 카미야 히데키의 게임의 노선변경 요청에 힘을 실어주어 서바이벌 호러가 아닌 스타일리쉬 액션인 데빌 메이 크라이가 나오게 되었고, 당시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웠던 타쿠미 슈의 게임기획에 힘을 실어주어 역전재판의 제작을 총괄 지휘하여 시장에 나오게 하여 발매후 큰 호평을 얻게 된다.
여기에 라이벌인 이나후네 케이지가 바이오하자드의 시스템을 담은 검무액션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을 때도 이를 흔쾌히 승낙하여 나온 게 바로 '''PS2 최초로 100만장을 팔아치운''' 귀무자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미카미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게임에 반영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라는 폭탄선언과 함께 자신이 캡콤과 불화가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세간에 충격을 줬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캡콤은 회사를 살린 은인에게 이런저런 일을 간섭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카미 신지는 마음을 다잡아서 회사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앞으로 닌텐도 게임큐브로만 독점 발매한다'''는 약속을 받았고 이를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도 배석했다.
그 계기가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드림캐스트판이라고 한다. 미카미는 자신의 작품이 다운그레이드되어 출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어 '''하나에 올인하여 가장 최고의 작품을 내놓자'''는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부응하는 게임기로 게임큐브를 골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버스와 제로는 닌텐도의 기술 협력을 제공받아 제작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발매된 바이오하자드(2002)는 환골탈태 수준의 완성도로 엄청난 대호평을 받았으나 완성도에 비하면 시원찮은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미카미의 영향력이 있는 다른 개발팀에서 나온 바이오하자드 제로는 쪽박찼다. 물론 게임큐브 자체는 굉장히 좋은 게임기였지만, 플스2에게 여러가지로 많이 밀렸으며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 같은 대작 서드파티 타이틀이나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메트로이드 시리즈 같은 닌텐도의 퍼스트 파티 대작 타이틀 말고는 내세울만한 게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큐브가 없는 팬들은 미카미의 결정을 아쉬워했지만 '''바이오하자드를 하려고 게임큐브를 사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카미의 이런 결정을 두고 '''게임 잘 만들고 똥고집 때문에 말아먹었다'''며 비판한다.
이때 캡콤 성공의 주역인 오카모토 요시키가 경영진과의 불화로 2003년에 퇴사하면서 이나후네 케이지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 직을 놓고 경쟁하게 되는데, 당시 캡콤 개발진 파벌은 이나후네를 중심으로 한 플스진영과 미카미를 중심으로 한 닌텐도 큐브진영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는 유명한 일화를 남길 정도로 경영자 성향이 강한 이나후네와 장인 성향이 강한 미카미는 충돌이 잦았다. 그런데 큐브 독점전략으로 내놓는 작품들의 흥행이 시원찮은 반면에 플스진영이었던 이나후네의 귀무자와 카미야 히데키의 데빌 메이 크라이는 대박을 치면서 (비록 귀무자와 데빌 메이 크라이의 성공에 미카미가 기여한 부분이 있었지만) 미카미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게 된다.
이어 큐브독점 전략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자신이 프로듀싱을 하고 있었던 '''데드 피닉스'''라는 게임을 개발중단시키는 강수를 두며 오랜만에 디렉터를 맡아서 바이오하자드 4의 개발에 힘을 쏟는다.
4. 바이오하자드 4 개발 후
미카미는 게임 하나에 온 힘을 실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바이오하자드 4가 나오게 된다. 게임방식을 뒤엎고 액션성을 강화시킨 이 작품은 세계 모든 평론가와 유저들에게 대 호평을 받으며 게임 개발자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이게 된다.[4]
그러나 이때 캡콤의 경영진은 판매부진의 원인이기도 하였던 바이오하자드 큐브 독점발매에 마침내 불만을 터트리며 미카미 신지와의 약속을 깨버리고 바이오하자드 4의 플스2 다운그레이드 이식을 바하4 발매전에 발표했다.
결국 경영진의 삽질로 인해 큐브판 바이오하자드 4의 판매에 찬물을 끼얹게 되고 더 팔릴 수 있었던 큐브판은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된다. 결국 미카미 신지는 캡콤에 실망하게 되어 사표를 써서 나오게 되었고, 바이오하자드 4의 프로듀서인 코바야시 히로유키 또한 이런 캡콤에 환멸을 느껴서 바하4의 플스2 이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플스2판 바하4도 게임큐브판 못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비록 게임큐브판의 그래픽에는 못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유저들은 바하의 플스 컴백을 열렬히 환영해주는 한편, 미카미 신지를 너무나 간단하게 내쳐버린 캡콤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5] 이 사건을 계기로 미카미 신지는 캡콤과 거의 척을 져버렸고, 바이오하자드 5가 발매될 당시에는 '''바하5 따위는 내가 만들지 않았기에 나는 바하5를 플레이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플레이하지 않을 거다. 바하5는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 중 하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며 그야말로 캡콤과 자신의 관계는 완벽히 파탄났음을 알리는 인터뷰를 하였다.
4.1. 캡콤 퇴사 이후
캡콤에서 퇴사한 그는 이나바 아츠시, 카미야 히데키 등과 함께 캡콤 제 4개발부의 스태프 대부분을 데리고 캡콤의 투자로 클로버 스튜디오라는 자회사 형태의 개발사를 설립한다.
클로버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게임은 미카미가 스다 고이치와 함께 합작한 킬러 7과 이나바 아츠시와 함께 개발한 B급 센스의 액션게임 갓핸드이다. 그리고 미카미가 직간접적으로 관여안한 게임인 카미야 히데키의 오오카미를 포함해 총 3개인데 모두 실적이 시원치 않았다.
킬러 7은 스다 고이치와 미카미 둘 다 자기 성향이 강한 개발자다 보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가 되어버려 호불호가 갈리게 되고,[6] 갓핸드는 B급 센스가 미카미의 네임밸류를 먹은 케이스이고,[7] 설상가상으로 카미야가 만든 오오카미는 엄청난 완성도와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성공적이지 못했다.[8]
결국 캡콤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였기에 결국 캡콤 경영진의 압박에 의해 다시 클로버 스튜디오는 캡콤에 완전 흡수되는 식으로 끝내고 다시 클로버의 인원들을 그대로 이끌고 플래티넘 게임즈를 설립하여 캡콤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플래티넘 게임즈에서는 뱅퀴시를 제작하여 발매했다. 게임 완성도는 호평이나 엔딩까지의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점, 클리어 후 반복플레이 가치가 떨어지는 점이 악재로 작용하여 또다시 완성도와 흥행이 따로 놀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뒤 스다 고이치와 다시 합작하여 만들어진 '쉐도우 오브 댐드'는 현재 호불호가 갈리면서 낮은 판매량으로 그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합작이며 킬러 7에 이어서 미카미X스다 조합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게임일뿐, 미카미 신지의 개발력을 의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 후 미카미는 플래티넘에서도 퇴사하고 2010년 3월 탱고 게임웍스를 설립했고 탱고 게임웍스는 2010년 10월, 베데스다와 이드 소프트웨어의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에 인수됐다. 2012년 4월 '쯔바이'란 코드네임을 가진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5. 디 이블 위딘 공식 발표
베데스다에서 매우 괴랄한 티저 영상을 4~5개 공개했고 수 많은 팬들은 이 게임은 폴아웃 4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정반대의 게임이 공개 되었는데 예전에 미카미 신지가 언급한 '프로젝트 쯔바이'였다. 폴아웃 4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개발 한다. 당연히 유통사인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와 별개.
본 게임의 정식 네임은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9] 미카미 신지의 팬들은 드디어 진정한 '''바이오하자드 5'''가 돌아 왔다고 기뻐하고 있다.
게임의 특징을 언급 하자면
- 크게 줄어든 HUD, 인터페이스 요소가 거의 없다.
- 무기 및 인벤토리에 대한 링 메뉴.
- D 패드로 퀵 아이템 선택.
- 메디팩 존재.
- 바이오하자드 4 처럼, 도입부에 전기 톱과 분노로 가득 찬 적들을 조우 하게 된다. 하지만 트랩 등을 선택 할 수 있는 옵션 세팅에 의해 매우 다른 플레이 방식이 된다.
- 게임 플레이를 더욱 무섭게 하기 위해 많은 음악을 만들지는 않았다.
발매일은 2014년 10월 중으로 연기 되었다. 개발사에서 밸런스와 개선을 위하여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에 발매 연기를 요청 했다고 한다.
2014년 7월 29일 SCEK는 PS4/PS3 버전에 대한 자막 한글화를 발표 하였으며 발매일은 2014년 10월 15일 예정. 한국은 동월 28일로 예정 되어 있다.
디 이블 위딘 발표 이후에는 한동안 이렇다 할 만 한 소식이 없었는데, E3 2019에서 고스트와이어: 도쿄라는 신작을 발표했다.
6. 기타
[image]
어째서인지 피규어가 존재한다(...).
현 소속이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라서인지[12]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폴아웃 4에도 성우로 참가했는데, 맡은 역할이 다이아몬드 시티의 국수 뽑는 프로텍트론 요리사 타카하시다(...).
데빌 메이 크라이 5, 바이오하자드 레벨레이션 2 스탭롤에서 참여한 아티스트로 그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다만 영어로 적혀 있어서 동일인물이 맞는지 불확실하다. 이때문인지 카미야 히데키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캡콤과 화해하는데 성공해서 바이오하자드 차기작에[13][14] 협력할 수 있다는 루머가 있다.
바이오하자드 2, 데빌 메이 크라이, 베요네타의 디렉터이자 현 플래티넘 게임즈 소속인 카미야 히데키가 가장 존경하는 개발자로 미카미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카미야의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 있어 미카미 신지는 크레에이터나 상사 이상의 존재이며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자신이 해결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https://bbs.ruliweb.com/news/read/144368
자신의 게임 프로듀서로서의 회고를 다룬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NKYX3GstHlw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_37pVVpzg98&t=39s
7. 관련 문서
[1] 스트리트 파이터와 파이널 파이트의 개발자로 캡콤의 대전액션게임과 2D 벨트스크롤 액션게임의 대부분 손을 댄 전적이 있는 명실상부한 캡콤 성공의 주역.[2] 바하3를 기점으로 바하는 서바이벌 호러에서 점점 좀비액션 게임이 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바하4부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다만 3는 원래 외전으로 개발하던 작품이었으나 개발 도중 경영진의 압박으로 넘버링을 넣을 수 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다.[4] 당시 미카미가 실제 직접 진두 지휘한 작품들이 벤치마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게임들이기 때문에 몇몇 매니아들에게는 거품이 있는 개발자로 평가받았으나 바하4의 완성도는 거품 논란을 사그라들게 만들 정도로 걸작이었다.[5] 수익이 존재 목적인 것이 기업의 생리이기는 해도 회사의 일등공신을 그렇게 매정하게 내쳐버린 캡콤의 처사는 결코 옳다고 하지 못한다.[6] 엄연히 말하자면 배가 산으로 갔다기 보다는 스다 고이치의 게임이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스다 고이치의 게임은 10명 중 5명은 이게 뭐냐며 욕하고, 4명은 그럭저럭이라면서 한 번 플레이하고 접고, 1명은 광희하며 추종자가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7] 갓핸드는 솔직히 말해서 개발진들이 하고 싶은 것들만 채워서 만든 게임으로 대중성에 그리 많이 신경쓰지 않았다.[8] 오오카미가 흥행한 건 HD로 리마스터링한 오오카미 절경판이 나온 뒤였다. 리마스터링한 년도가 2013년이니 굉장히 늦게 빛을 본 셈.[9] 일본판은 사이코 브레이크(Psycho Break).[10] 바이오하자드 4와 비슷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 주는데 제한 된 환경에서 탄약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게 비슷하다. 예를 들어서 두 게임에서는 모아둔 '돈'을 '상점'에서 쓴다는 개념이 있는데 돈을 어떻게 쓰냐가 추후에 전략을 세우는 것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만 디 이블 위딘은 바이오하자드 4에 비해서 환경이 더 극도로 제한 되어 있고 탄약이 더 짜게 나오기 때문에 전략을 더 효과적으로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4에 비해서 액션이 부족 하다는 소감이 있다.[11] 다크 소울 같다는 소감도 있다.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높아서 각각 장애물에 신중하게 접근 하면서 공략을 배워야 하고 극복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캐릭터를 자기 방식대로 강화하기 위해서 업그레이드를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12] 미카미가 속한 탱고 게임웍스가 베데스다 산하의 스튜디오이다.[13] 정황상 바이오하자드 8이 유력하다는 의견이 많다.[14] 다만 바하2 리메이크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여러 증거들이 보이는 카미야와 달리 미카미는 이렇다 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