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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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old and fastidious Italian film director in whose haunting movies men and women explored the uncertainties between time and space. ”'''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1960년대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한 감독. ”'''
2. 상세
1912년 이탈리아 페라라 출생. 볼로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지역 신문과 영화 잡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 로마로 이동하여 치네치타 영화사의 촬영기술센터에서 영화 기술을 수련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마르셀 카르네감독 등 쟁쟁한 감독의 조감독 경력을 거치고, 1950년 사랑의 연대기를 통해서 감독으로서 데뷔한다.
그의 대표작은 《정사》.(원래 제목은 모험(L'avventura)인데, 수입하면서 일본에서의 제목으로 수정되었다.) 이치카와 곤 감독의 《열쇠》와 더불어 1960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3] 한국에서는 196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욕망》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는 일본에서의 제목이 욕망이라서 이것이 한국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원제는 '''Blow-Up''', 욕망이랑 그다지 상관없다. (...)
장뤼크 고다르 감독은 '''스스로 영화가 되는 감독'''이라며 장 비고 감독과 더불어 그의 이름을 거론했다. 잉마르 베리만,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과 더불어 '''현대 영화 최후의 거장'''이라고도 불린다.
2007년 7월 30일, 로마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96세. 이는 공교롭게도 그와 동시대의 거장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타계한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거머쥔 최초의 감독이다. 이후에 로버트 알트만 감독 역시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수상년도 및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 <밤>
1964년 제28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 <붉은 사막>[4]
1967년 제2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욕망>
이혼 후 한동안 자기 영화의 페르소나로 나오던 모니카 비티 배우랑 10년간 연인 관계였다. 하지만 1970년에 헤어졌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
3. 필모그래피
- 사랑의 연대기 Cronaca di un Amore (1950)
- 카멜리에가 없는 숙녀 La Signora Senza Camelie (1953)
- 패배자 I Vinti (1953)
- 여자 친구들 Le Amiche (1955)
- 외침 Il Grido (1957)
- 정사 L'Avventura (1960)
- 밤 La Notte (1961)
- 태양은 외로워 L'Eclisse (1962)
- 붉은 사막 Il Deserto Rosso (1964)
- 욕망 Blow-Up (1966)
- 자브리스키 포인트 Zabriskie Point (1970)
- 중국 Chung Kuo, Cina (1972)
- 여행자 Professione: Reporter (1975)
- 오베르왈드의 비밀 Il Mistero di Oberwald (1980)
- 여인의 정체 Identificazione di una Donna (1982)
- 구름 저편에 Al di là delle Nuvole (1995)[5]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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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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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잉마르 베리만은 펠리니, 쿠로자와, 브뉴엘은 타르코프스키의 경지까지 도달했지만 안토니오니는 따분함에 숨이막혀 질식한채 끝났다라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