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분당

 

1. 개요
2. 분당 배경
3. 분당 전개 과정
3.1. 1차 분당-새로운보수당
3.2. 2차 분당-붕괴
4. 분당 결과
5. 결말
6. 관련 문서

세 인물은 갈라져 각자의 길을 간다.

1. 개요


20대 국회 대한민국의 제2야당이었던 바른미래당의 분당 사태.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인 분당 절차를 밟으며 최후에는 거의 공중분해 수준으로 해체되었다.

2. 분당 배경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은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합당이라는 정치적 실험이였고 바른미래당은 계속 당내 갈등에 시달렸다. 중도우파 성향의 바른정당계, 중도우파~중도 성향의 친안계, 중도우파 - 중도좌파 성향의 손학규계, 중도~중도좌파 성향의 호남계와 극우 이언주계 등 여러 성향의 많은 계파들이 모였기에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였고, 총선이 다가와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당내 갈등은 지지율 저조를 불러왔고 이것이 단체 분당의 배경이 되었다. 거기다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개편과 호남계 중심의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의 존재도 영향을 미쳤다.

3. 분당 전개 과정



3.1. 1차 분당-새로운보수당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2019년 4월 5일 막말 논란에 휩싸이던 이언주 의원이 당권파에 의해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았다.[1] 18일 뒤, 23일 이언주 의원이 바른미래당을 전격 탈당했다.
4월 13일 바른미래당이 2019년 보궐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패를 당하며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졌다. 15일 재보궐 참패로 총사퇴를 요구 받던 손학규 대표가 추석때까지 당의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는 약속을 번복하고 대표직을 유지하며 버티는 것으로 태세를 전환했고 당내 분란이 심각해졌다.
4월 18일 공수처법에 대한 패스트트랙 참여 여부를 놓고 당권파와 친유계가 격돌하며 의원총회가 파행으로 끝났다. 일주일 뒤인 25일, 당권파가 패스트트랙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친유계 오신환 원내대표와 친안계 권은희 의원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에서 강제 사보임[2]시켰다. 오신환 원내대표와 권은희 의원 모두 크게 반발했고 권은희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성을 잃었다"며 맹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당권파와 친유계의 혼전에 친안계가 친유계에 가세하며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다.
4월 26일 안철수계와 유승민계는 당권파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냈고 국민의당바른정당 출신의 당협위원장 49명은 "수명을 다한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당후사의 방법은 총사퇴뿐"이라고 비판하며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11일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내분에 지쳤다고 밝힌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이 임명을 받은지 2주도 안되어 전격 사퇴했다.
9월 30일 안철수계와 유승민계가 연합해 손학규 퇴진을 목표로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출범했다. 이로서 바른미래당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두 가족이 따로 살게 되었다.
10월 18일 당권파를 필두로 한 윤리위원회가 안철수 비하를 명목으로 유승민의 최측근인 이준석 최고위원을 직위 해체하였다. 11월 26일, 윤리위원회가 변혁에 소속된 의원들인 유승민·오신환·권은희·유의동·정병국·하태경 의원에 대한 무더지 징계 논의에 들어가며 '완전한 이혼' 절차에 착수했다. 결국, 12월 2일 윤리위가 유승민·오신환·유의동·권은희에 대해 당원권 1년 정지 징계 처분을 내렸고, 12월 8일엔 정병국·지상욱·하태경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10월 19일 친유계 하태경 의원이 당권파 손학규계에 대해 "후배를 잡아먹고 바른미래당을 말아먹는다"라며 맹비판을 가했다.
10월 27일 '''당권파였던''' 문병호 최고위원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했고, 11월 26일엔 당내의 두 축인 안철수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김근식 교수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바른미래당의 갈등이 익고 있을 무렵, 11월 13일 7개월만에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신당 창당을 시사했고, 12월 1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신당 창당을 위한 창당발기인 대회를 개최했다.
12월 4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신당기획단이 신당명을 가칭 ‘변화와 혁신'으로 확정하고 8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중앙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8일에 변혁은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며 신당 창당 절차에 돌입했다. 12일, 신당 '변화와 혁신'의 공식적 당명이 새로운보수당으로 확정되었다. 3주 뒤, 1월 3일 '''유승민 전 대표와 유승민계 의원들이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했다.''' 새로운보수당 국회의원의 구성원은 모두 과거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로 사실상 바른정당국민의당이 통합한지 약 3년만에 파혼으로 끝나는 모양새가 되었고, 1월 5일 새로운보수당이 공식 출범했다.
처음부터 보수대통합이란 슬로건 아래 창당한 정당인 만큼, 창당한지 72일 뒤인, 2020년 2월 17일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이 통합, 미래통합당이 창당되었다.

3.2. 2차 분당-붕괴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국민의당
새로운보수당
미래통합당
미래를향한전진4.0
2020년 1월 19일 안철수 전 의원이 정계로 복귀했다. 동시에 이언주 의원은 신당 미래를향한전진4.0을 정식 출범시켰다.
1월 27일 완전히 복귀한 안철수 전 의원이 손학규 대표에게 전격 사퇴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28일 손학규 대표는 안철수 전 의원의 최후통첩을 거절하며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1월 29일 '''안철수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이로서 당의 두 기둥이던 안철수 전 의원과 유승민 전 대표 모두 바른미래당을 떠나게 되었다. 31일 비례대표 신분인 안철수계 의원들이 손학규 대표에게 본인들의 제명을 요구하자 당권파는 "스스로 나가라"라며 거절하는등 안철수의 탈당을 계기로 당권파와 안철수계의 갈등이 가시화되었다.[3]
2월 1일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3당이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며 3당의 통합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손학규 대표는 미래세대로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호남 3당 통합마저 흔들리고 있다.
2월 3일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들인 김동철, 김관영, 주승용 의원이 손학규 대표가 10일까지 사퇴하지 않을 경우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무총장, 비서실장과 같은 바른미래당의 핵심당직자들이 업무를 보이콧하며 10일까지 사퇴하라는 통첩을 보냈다.[4] 2월 4일 당권파 손학규 대표의 최측근이던 이찬열 의원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하며 바른미래당의 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졌다. 한편 손학규 대표는 이날 당무를 거부하고 본인의 사퇴를 요구하던 당직자들과 사무총장, 비서실장, 사무부총장, 임명직 최고위원들을 모조리 경질했다.
2월 5일 손학규 대표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의 호남 3당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동시에 김성식 의원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2월 6일 통첩대로 김관영 전 원내대표가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또 앞서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구 손학규계 이찬열 의원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사실상 손학규계는 국회에서 소멸했다.
2월 12일 손학규 대표가 3당 통합시 미래세대와의 통합을 위해 자신이 통합신당의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당권파내에서도 손학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2월 17일 당권파 의원들이 손학규 대표가 3당 합당을 의결하지 않을 경우 집단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18일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당권파를 제치고 단독으로 의원총회를 열며 비례대표 9명에 대한 셀프제명을 의결했다. 바른미래당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각자 도생에 나선 것으로, '''사실상 바른미래당은 이 날 붕괴되었다.''' 2월 20일 이러한 압박을 못 버틴 손학규 대표가 결국 24일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월 2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안철수 전 의원이 국민의당을 정식 출범시켰고, 24일 바른미래당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합당하며 민생당으로 재창당되었다.

4. 분당 결과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민생당
국민의당
미래통합당[개별합류]
새로운보수당
미래통합당
미래를향한전진4.0
2020년 들어 바른미래당의 계파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안철수의 정계 복귀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가장 먼저 탈당을 시작한 세력은 이언주계로 2019년 4월 탈당해 미래를향한전진4.0을 창당했다. 미래를향한전진4.0은 창당 이후 대외 활동을 안 하다가 결국 2월 17일 미래통합당으로 전격 통합했다.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포기하고 친안 새력 중심으로 신 국민의당을 창당한다며 나갔고, 낮은 지지율로 일부 인사들이 창당 전 미래통합당으로 합류했다. 또한 창당 과정 역시 험난했으나, 어찌어찌 창당을 했다. 창당 후에도 일부 인사들이 합류했으나 안철수대구 의료 봉사 후 지지율이 오르며 상당수의 인물들은 잔류했다.
유승민친유는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으나 정식 등록을 미루었고, 창당 직후부터 자유한국당과 보수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결국 창당한지 1달밖에 안 되어 미래통합당을 창당했다.
분당 후 남은 계파 중 손학규계[5]국민의당 분당 때 남은 잔류 호남계는 2월 말, 분당된 민주평화당과 또 분당된 대안신당과 합당해 민생당을 창당했다.

5. 결말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민생당
민생당
더불어민주당
무소속
국민의당
미래통합당[개별합류]
국민의힘
새로운보수당
미래통합당
미래를향한전진4.0
무소속[6]
분당된 바른미래당의 희비는 명확하게 갈렸다. 안철수의 경우 바른미래당을 빠져나와 무사히 새 살림을 꾸리는데 성공하며 3석이라는 성적을 받아들였다. 전체 파이에서 세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호남계와는 다르게 스스로 자강에 성공했고, 친안계 핵심인사 2명을 모두 당선시켰다. 2020년 10월 현재도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홍준표와 1위를 두고 다투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미래통합당으로 건너간 대부분의 친안계들이 전멸하며 향후 대선 경쟁에서 세력이 크게 밀리는 숙제 또한 받게 되었다.
유승민은 얼마 후 사실상 자유한국당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통합되며 안철수와는 다르게 자강에 실패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21대 총선에서의 친유계 약진으로 유승민의 고질병이었던 약한 당내 세력을 메꾸는데 성공했고 대선주자로서의 경쟁력도 유지해냈다. 지지율만 끌어올리면 대세론 형성도 가능할 만한 수이고 김종인 비대위가 종료되는 4월 이후론 당권 접수도 충분히 가능할 만한 기반을 마련했다. 거기다 불구대천지의 원수 친박이 몰락하며 친유의 당내 발언권도 강해졌고 본인도 유력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민생당손학규계와 바른미래당 잔류 호남계는 민생당의 타 계파와 같이 전멸했다. 한때는 3%를 넘기며 의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으나 계속되는 당내 갈등과 야합이라는 외부의 비판, 그리고 이미 현역 의원에게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의 마음이 겹쳐서 보인 결과였다. 호남권 현역 의원들은 4년이라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해 기반을 다 날렸으며, 지역구 평가가 좋은 일부 의원들이나 전남 서부에서만 유의미한 득표율을 확인했다. 손학규는 추태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그동안 쌓아놓았던 이미지를 다 까먹고 사실상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민생당이 21대 총선에서 참패하자, 일부 호남계 인사는 더불어민주당으로 갔고 새로운보수당 분당 당시 바른미래당에 잔류하였던 새누리당바른정당 출신 인사[7]들은 대부분 민생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지내고 있다.
무소속 정치인들은 모두 낙선했으나, 민생당 탈당파는 모두 15%를 넘으며 고정 지지층 확인에 성공했다. 다만, 중도~중도보수 성향의 권오을 같은 바른미래당 탈당파는 득표율이 저조했다.

6. 관련 문서



[1] 18일 뒤 패스트트랙을 놓고 벌어진 표결에서 이 징계로 인해 사라진 1표로 패스트트랙이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당권파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이언주 의원을 징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2] 직위해제[3] 안철수계가 제명을 요구한 이유는 비례대표의 경우 스스로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4] 참고로 이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손학규가 임명한 사람들이다.[개별합류] A B [5] 손학규계 일부는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남거나 미래통합당에 합류하기도 했다.[6] 권오을, 황진하, 김성식, 김관영[7] 바른정당 탈당 사태 때 잔류하였던 친이 인사들은 주로 총선 이전에 탈당하였고 친유 인사들은 주로 총선 이후에 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