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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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계
친이명박계

<colbgcolor=#0095DA> 형성
<colbgcolor=#ffffff>2005년
수장
이명박
정치적 이념
신보수주의, 보수주의, 반공주의[1]
경제적 이념
경제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주요 정치인
김기현
박형준
오세훈
이상득
이재오
정병국
주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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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행적
2.1. 이명박 정부 이전
2.2. 이명박 정부 당시
2.3. 박근혜 정부 당시
2.4. 바른정당 창당과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
2.5. 황교안 대표 재임과 21대 총선 이후
3. 명단[2]
3.1. 정치권
3.1.1. 보스 ~ 중간보스 급
3.1.2. 현역 국회의원
3.1.3. 현역 광역자치단체장
3.1.4. 그 외 인물들
3.2. 검찰
3.3. 그 외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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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친이명박계 정치 세력의 준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인 신보수주의를 따르거나 그 측근이었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2천년대 초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3] 친박과의 계파 싸움으로도 유명했다. 기타 사항은 이 글도 참고해보자. 비밀해제 MB5년. 2018년 3월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 발부를 인용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결정됨에 따라 구심점을 상실하고 사실상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물론 친박계가 당권을 잡고 친이계를 못잡아먹어 안달이던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비박계 내에 분화되어있긴 했다.[4]
다만 결속력이 마피아급으로(...) 하나되어 뭉친 친박과 달리[5] 친이는 그렇게까지 단단한 조직은 아니라 사실상 김영삼 세력을 기반으로 한 빅텐트에 가까웠다는 의견도 많다. 이명박을 최종보스로 탄탄히 뭉쳤다기보다는, 군부 세력 친박이 싫어서 혹은 이명박 역시 김영삼이 정계에 입문시킨 인물이였으니 일단 계보상 이쪽으로 붙어 넘어온 것이 다수였다는 것. 결국 하나되어 결속을 강조하던 친박보다는 다소 구성이 널널한 편이라 한나라당 내 무계파 세력도 범친이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수의 비박이 아무래도 최종보스로 김영삼을 모시다 보니, 김영삼 라인 중에서 그 당시 가장 유력한 손학규이명박을 중심으로 비박 세력이 뭉치다 결국 기업가, 행정가로서 능력을 검증받은 이명박이 최종 후보로 낙점되었다는 것.[6] 당장 친이 좌장인 이재오도 김영삼이 정계에 입문시킨 인사로 사상 역시 유사했다.[7] 이러다보니 박근혜 구속 후 오만가지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친박과 달리 친이로 불렸던 정치인들은 이명박이 구속된 후에도 비박 정치인으로 꽤 남아있는 편이다.[8] 박씨 가문이란 혈통으로 맺어진 친박과 달리 친이계는 이명박이 구속되었어도 윗 라인격으로 김영삼이 있기 때문.

2. 행적



2.1. 이명박 정부 이전


1990년대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한국당은 YS가 힘을 잃게 되면서, 90년대 후반 이회창 전 총리에게 당권이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도 이후 2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하면서 2002년 12월 정계은퇴를 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떠오른 두 인물이 김영삼 대통령이 픽업한 이명박과, 후에 한나라당에 합류한 박근혜였다. 그러다 마침내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 경선을 치르면서 두 후보의 지지자들로 한나라당 내부가 확 나뉘면서 친이와 친박이라는 계파정치가 시작됐다. 당시 여권에선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가 확정되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마땅한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기면 본선도 이길 확률이 컸기에 한나라당 경선은 그만큼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으로 다소 권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박근혜 후보보다 일반 대중, 특히 이념적으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한 자유보수주의, 지역적으론 수도권과 PK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다.[9] 반면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당원들과 대경권의 박정희 향수에 취해있던 권위주의적 보수 인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당시 YS는 이명박을 지지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전면에 나선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 후보들에게 줄줄이 패하며 당원들의 지지가 줄어드는 타격을 입게 된다. 또 이명박 후보가 YS에 의해 정계로 입문한 관계로 민주계 인사들 대다수[10]와 운동권, 민주투사 출신 및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지지를 받았고, 반면 박근혜 후보는 민정계, 공화계 출신 지지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1][12]
이쯤해서 이명박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크게 높인 경선을 요구했으며, 실제 경선 결과 당원투표는 박근혜 후보가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더 크게 이겨 대선 후보가 되었고[13]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 여담으로 당시 17대 대선에서 연예인들의 경우 이명박과 사적으로 친한 유인촌, 이덕화 그리고 김보성[14] 등이 이명박 지지선언을 했었다.

2.2. 이명박 정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친이계가 당권을 잡았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일어나 많은 친박계 정치인들이 탈당해 친박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15] 이 때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친이계였던 이방호를 몰아내기 위해 친박계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로 사천시에 출마한 강기갑 후보를 팍팍 미는 정치 코미디가 벌어지기도 했고,[16]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박근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타 당인 친박연대 후보들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시라"는 격려를 남기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하튼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TK지역에서 선전하고 비례득표율 13.2%를 얻어 총 14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원내 4당으로 올라서지만, 결국 TK 지역 외에선 별 성과를 내지 못하다보니 친박 성향의 무소속 출마자를 시작으로 친박연대를 포함한 친박 세력은 몇년 후 소리소문없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게 된다.
다만 친이계도 상황이 좋진 않았는데, 2008년 정권 출범 1년차부터 광우병 논란이 터지면서 MB정부는 1~20%대까지 지지율이 급락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후에도 국정원 민간사찰, 명박산성 등의 과를 범하면서 2010년 지방선거도 일격을 당하는 등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된다. 심지어 이명박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비판했단 이유로 친이계로 분류되던 의원들마저 국정원을 동원해 사찰하는 정신나간 짓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2012년 총/대선이 다가오면서 이전과 달리 상황이 역전된다. 이명박과 친이계는 이명박이 차기 대권 주자로 도장을 찍어두고 있었던 친이계에게 당권을 넘기려고 했으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등으로 인한 야당의 맹공세와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당권마저도 미래 권력이던 박근혜와 친박계에게 빼앗기고, 친박계는 그렇게 친이계에 대한 공천탈락의 명분을 얻으며 18대 총선의 복수를 할 기회를 잡고 만다. 결국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 의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19대 총선에선 반대로 친이계가 상당수 짤려 나갔다. 이에 친이계도 18대 총선의 친박과 마찬가지로 몇몇 의원들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당을 만들어 새누리당 후보와 붙기도 했으나 이미 과거 권력이 되어가던 친이계였던데다 이때 짤린 의원들은 거물급은 드물었고[17], TK 정도 되는 결집력을 가진 지역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 낙선하고 만다.[18]
박근혜에게 찍힌 한 여성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공천이 잘못됐지만 자기 지역구에 공천받은 후배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며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스스로 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1순위로 출마했으나 이름을 스틸한 군소정당 한나라당에도 못미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거기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도 낙선.(...) 그리고 이후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는 박근혜가 친이계/비박계 7인과 경선을 했으나 여유롭게 승리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다. 이때 이명박은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을 밀 생각을 하기도 했고[19], 최측근인 이재오를 대선후보로 강력 지지하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하고 만다. 이외 임태희도 출마선언을 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탈락했다. 대선 과정에선 당시 제3지대 돌풍을 일으키던 안철수 후보를 은근히 돕는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으나 진실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론 문재인 후보로 야권이 단일화되면서 빛이 바랬다.

2.3. 박근혜 정부 당시


2012년 대선 결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한동안 친이계들은 더더욱 당권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로 박근혜의 지지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친이계들에게 다시 반짝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결국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친이계의 몇몇 여성 정치인들은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남성 정치인은 낙선했다. 이후 친이계는 비박계와 함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민심이반과 달리 당 내부에선 아직 친박계가 건재했기 때문에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한 친박 세력이 공천권을 휘두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이계는 그나마 살아남았던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비박계와 함께 다시 한번 공천학살을 당한다. 오죽하면 이재오 의원이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그러는거 아니다고 성토했을 정도.(...) 그 덕에 당의 친박 순도는 이전보다 높아졌으나, 20대 총선에서 참패하며 새누리당 자체가 위기에 빠지는 바람에(...) 친박계는 위기에 빠지고 친이계는 총선 패배의 주범으로 친박계를 까며 속으로 내심 미소를 짓게 되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후보가 낙선함으로 인해 새누리당에서 구심점을 잃은 친이계는 사실상 비박계 중 한 계파 정도로 의미가 변화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 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이재오 전 의원이 '늘푸른한국당'이라는 친이 계열 위주의 신당을 창당하며[20] 새누리당을 나갔고,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이쪽을 은근히 지원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인데 원외정당이라 큰 존재감은 없었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친박은 어떤 형태로든 궤멸이 뻔한 수순에 오른 반면,[21] 친이계는 상당수가 바른정당으로 가며 재기를 노리게 된다. 바른정당은 주로 친이, 비박 성향 국회의원들이 탈당해 창당한 정당으로, 현재 친박들이 포진한 자유한국당에서도 조원진과 같은 진성 친박 성향 정치인들은 새로 정당을 만들어 탈당을 하고 있어 자유한국당도 성향이 어찌될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또한 국민의당 친안계에도 한때 친이계였던 정치인들이 일부 있어 총 4개의 정당에 친이계 및 범 친이계 정치인들이 있는 셈이 되었다. 늘푸른한국당 대선 후보 이재오는 확실히 친이 성향 정치인으로 구분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또한 이명박과의 인연이 있다. 바른정당 대선 후보인 유승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점점은 거의 없는 편이나, 예전의 친박 성향은 거의 사라졌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 친이계가 많은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한 것으로 볼 때, 역시 친이계와 어느 정도는 접점이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되어 친이, 비박들은 4개의 당 중 1개라도 성공하면 주도권을 잡는 형국이 되었고, 그렇게 4명의 대선 후보 라인업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아직 소멸하지 않은 친박 등을 견제하면서 재기를 노리는 중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낙승하면서 현실은 시궁창.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친이계 정치인들은 높은 정권 지지율에 숨죽여 살며 2018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이계들이 여러 정당에 퍼져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지방선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이계들이 있는 정당 통합 즉 다시 말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설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국민의당은 애초에 이때만 해도 중도진보 계열 정당이었고, 바른정당도 유승민과 같은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어 통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2.4. 바른정당 창당과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


상기했듯 탄핵 정국에서 몰락하는 새누리당 친박들로부터 집단탈당하여 바른정당을 결성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었다.[22] 남경필이 선도 탈당한데다가[23], 정병국이 창준위 위원장직을 맡았다. 또한 1월 11일, 이재오최병국이 공동 대표, 이외 정운찬 前 국무총리를 주축으로 해서 친이계의 주축이자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늘푸른한국당이 정식으로 창당했다. 또한 늘푸른한국당 창당식 축사에 바른정당에서 친이계 상당수 인사들과 남경필이 참석해서 축사를 낭독하면서[24], 추후 늘푸른한국당은 바른정당에 존재하는 친이계나 친이 성향을 가진 이들과 규합할 확률이 충분히 높아져,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 외에도 아직 자유한국당에 범 친이계 정치인들이 소수 남아 있어 이러한 친이계들이 규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규합에는 반문정서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당이나 더불어민주당 일부 비문성향 정치인들이나 자유한국당의 잔류한 소수 옅은 친박 성향 정치인이 일부 참여할 가능성까지 예상되기도 한다. 여담으로 국민의당에도 이태규와 같이 한때 친이계에 있었던 의원들이 일부 섞여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선거로 들어서고, 친이계는 갑작스러운 대선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지, 안철수와 유승민 후보가 패배한 데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현재 높은 상황이라 지지율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친이계는 여러 정당에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친이계가 주축이 되어 창당한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바른정당을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 둘 중 하나 또는 이 3개의 정당을 모두 합당해서 하나의 거대한 보수야당을 출범시켜 친이계 정치인들을 결집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25] 이러한 움직임은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는데, 현재 바른정당의 이혜훈과 유승민과 같은 비박계 자강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통합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시각이 있어 통합 작업은 쉽지 않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경우 홍준표 대표 체제로 들어서면서 박근혜 탈당과 친박 핵심 의원 탈당과 같은 친박계 색깔을 빼는, 친박 청산 작업에 돌입하고 있어 이러한 작업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행동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홍준표는 바른정당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어찌 되었든 보수 야당 통합을 주도하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의 김무성 모두 범 친이계 인물로 구분되는 것이 특징으로[26], 국민의당의 경우 친이계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비노 성향 정치인들과 손학규계 등이 있는 정당으로써, 친이계 정치인들이 일부 있어 역시 통합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경우는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친이계 정치인들은 정병국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던 데다가 바른정당-국민의당의 합당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친이계의 본진인 늘푸른한국당도 이명박이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지도부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한 만큼 바른미래당에 들어서서는 친이 색채가 상당히 옅어졌다.
어찌 되었든, 친이계는 친이계 정치인들을 '한 정당'에 모으려는 이른바 '보수 야당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이명박의 구속과 엄벌 여론이 70%를 넘을 정도로 친이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이명박의 기치 아래에서 이들이 다시 뭉쳐서 계파를 형성하는 것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부활은커녕 와해를 걱정해야 할 판국. 이명박의 최측근인 김백준 구속 직후 증거가 터져 나오며 이명박이 피의자로 입건되자, 그 동안 정상적으로 퇴임한 전직 대통령인지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지지여론도 훅 꺼져버렸다.
2018년 기점에서 구심점이 필요한 친이계는 범 친이계였던데다 당내 세력 확장이 필요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애를 끈질기게 받아와 일부는 친홍계로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허나 7회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포함한 비박계, 구 친이계 지도부가 역대급 참패를 해버리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홍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 전원이 사실상 사퇴함에 따라 홍준표를 중심으로 잠깐 뭉쳤었던 구 친이계들 또한 앞날이 다시 깜깜하게 되었다.

2.5. 황교안 대표 재임과 21대 총선 이후


2019년 2.27 전당대회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황교안 전 총리가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자유한국당이 전체적으로 다시금 친박색이 강화됨에 따라 친이계들의 앞날이 더욱 불확실하게 되었다. 한국당 '총선 공천' 주도할 핵심 요직에 친박 전진배치. 다만 황교안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와도 사이가 좀 껄끄러워져서인지 대표가 된 이후부턴 비박과 친박 사이 줄타기 행보를 하였고,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후신 미래통합당의 공관위원장으로 친이계인 김형오를 선임하였다. 이 때문인지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생각보단 친이계가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황교안은 홍준표, 김태호, 정병국[27] 등 자신의 대권 가도에 방해가 되는 인사들은 죄다 쳐낸데다[28], 친박 인사 중에서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사들은 대거 살려뒀기에[29], 이쪽도 저쪽도 제대로 청산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총선을 치르게 된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황교안호는 영남을 제외한 대다수의 미래통합당 지역구 후보들이 갈려나가는 대참패를 당하게 된다. 특히 수도권 121석 중 고작 16석 밖에 못얻으며 악몽같은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친이계의 경우 오세훈, 나경원 같은 중진 인사들이 낙선했으나, 그 와중에도 주호영, 장제원, 정진석, 김기현과 같은 중진급 친이, 범친이계 인사들이 살아남았고, 권성동 의원 또한 무소속으로 생환했으며, 강기윤, 조해진[30]과 같은 인사들도 생존 신고를 하면서 향후 당권 경쟁에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사이가 나쁘지 않은 친유계보수 소장파도 생환한 사람이 있기에[31] 21대 총선에서 친박 인사들이 대거 낙선한 점도 친이계에겐 호재라 할 수 있다.[32] 연장선상에서 친이계 주호영 의원이 21대 총선 직후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여유있는 표차로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2020년 이명박 구속과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대다수의 친이로 분류된 정치인은 그다지 이명박 구제에 적극적이지 않다. 친이라는 세력이 친박과 달리 결국 이명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고 보기 어렵고 결국 김영삼이나 이회창의 라인인 비박 세력들이 잠시 이명박을 보스로 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분이다. 게다가 법적 절차가 이미 마무리된지라 더이상 어찌할 방법은 없을듯. 결국 계파 수장을 잃은 친이계는 비박계로 활동 영역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3. 명단[33]



3.1. 정치권


친이계 출신이라도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인물과 보수적인 인물이 섞여있을 수 있으며, 정치생명을 이명박 대통령과 계속 함께한 인물도 있고 도중에 정권 비판을 하며 거리가 생긴 인물도 있고 애매하게 퇴임 이후 색이 엷어진 의원도 있으므로 친이라고 무조건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정의되진 않는다. 애초에 언론에서의 분류란게 으레 그렇듯 본인은 친이계라고 생각하는데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본인은 친이계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포함된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34] 또 리스트를 보면 수도권이나 PK 쪽이 고향이거나 지역구인 사람이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래도 PK는 TK 기반의 박근혜에 대한 반발심이 크고 상대적으로 김영삼을 따르던 자유주의 세력의 위세가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35] 비박/반박 성향으로 인해 친이로 간 인물도 꽤 있었다.[36]
현재 친이계는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서의 조직적인 배제[37]이명박의 구속으로 위상이 상당히 감소하였고, 측근들은 크게는 비박계 안에서 친홍, 친무, 친유, 친안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또한 일부 소수는 2012년, 2017년에 문재인을 지지하며 친문으로 변하였다.
#, # 이 자료들을 참고하면 대략 누가 친이계로 분류됐는지 알 수 있다.

3.1.1. 보스 ~ 중간보스 급



  • 이명박 - 친이계의 수장으로 전직 재선 국회의원(14~15대), 민선 3기 서울시장,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 이재오 - 전직 5선 국회의원(15~19대)으로 친이계 좌장이었다. 2012년 즈음부터 꾸준히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과거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늘푸른한국당의 창당을 주도하여 이 당의 대표를 역임했다. 늘푸른한국당이 자유한국당(이후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흡수된 지금은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있다. MB 정부 당시 최측근 중 거의 유일하게 지금도 MB 곁에 남아있는 인물로, 이명박의 검찰 소환 때도, 구속 직전에도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자 재판에도 거의 매번 참석하는 인물.
  • 이상득 - 전직 6선 국회의원으로(13~18대), 17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 MB의 친이자 영포회[38]의 수장. 하지만 MB 집권 기간 말기에 비리로 구속되면서(...) 동생에게 제대로 민폐 끼친 주범이 되었다.
  • - 전직 3선 국회의원으로 (17~19대), 제 19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장. 이명박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보좌했던 그야말로 원조 친이였고,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과 본선에서 참모역을 맡으며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소위 왕의 남자라 불리며 이명박 정부개국공신이 된다. 이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역임. 허나 MB 정권 출범 직후 이상득과의 갈등을 기점으로[39] 친이계 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고, 이명박 정부에 찍혀 토사구팽 당한 이후부턴 완전히 반(反)이명박으로 돌아섰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이명박 저격수'로서 활동하였다. 다만 구속당한 MB의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는거 보면 애증이 교차한 사이였던듯.

3.1.2. 현역 국회의원


  • 강기윤 - 현직 재선 국회의원(19, 21대). 창원시 성산구지역구권영길노회찬이라는 진보 진영 거물들에게 치이던 나름 안습한 인물. 그나마 19대 총선은 둘 다 떠나 당선되었으나, 20대는 또 떨어졌고, 21대 총선에선 진보 분열로 생환했다.
  • 권성동 - 강릉시 현역 4선 국회의원(18~21대), 부장검사 출신으로, 이명박의 임기 초반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하다가, 2009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친이계 중에서 이재오계에 속했다. 또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이 되고 나서는 친무계로도 분류됐다. 제 20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박근혜 前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여당 인사 중 하나여서 친박계에서 싫어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40]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들 중 하나이자 3월 22일 이명박의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들 중 한명이기도 하다.
  • 김기현 - 울산 남구 을 현역 4선 국회의원(17~19, 21대), 전직 울산광역시장이다. 2014년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도 MB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친이계 정치인으로 소개되었다.
  • 김은혜 - 초선 국회의원(21대), MBC 기자 및 뉴스 앵커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에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인물이다. 나중에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분당구 갑에 당선되었다. 유승민, 정병국, 이기인, 이종훈과의 가까운 관계로 인해 친이계인 동시에 친유로도 분류된다.
  • 김희국 - 현직 재선 국회의원(19, 21대), MB 정부에서 국토해양부 2차관을 지냈으며, 4대강 정비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구 중구·남구에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친박계의 공천학살로 인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에게 밀려났다. 이후 바른정당에 참여하여 유승민을 지지했기에 친이인 동시에 친유로도 분류된다.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자신의 고향이 있는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으로 옮겨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 의원이 되었다.
  • 류성걸 - 현직 재선 국회의원(19, 21대). MB정부에서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냈다. 유승민과는 경북고 동창으로 친한 편이어서 친유로도 분류된다. 20대 총선에서는 친박계의 공천학살로 인해 박근혜 정부 행정안전부장관이었던 정종섭에게 공천에서 밀렸으나, 21대 총선에서는 다시 공천을 받아 대구 동구 갑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컴백했다.
  • 박성중 - 서초구 을 현역 재선 국회의원(20~21대). 친이계에서 대표적인 S라인[41] 인사다. 친무로도 분류.
  • 박진 - 현직 4선 국회의원(16~18, 21대). 18대 국회 전반기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 채결에 기여한 인물이다. 초선, 재선과 3선 때는 종로구 국회의원이었고, 현재는 강남구 을 국회의원이다.
  • 서일준 - 거제시 초선 국회의원(21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했다.
  • 윤한홍 - 마산회원구 현역 재선 국회의원(20~21대). 공무원 출신이다. 다만 이 사람은 이명박 임기가 다 끝나고서 정계에 입문했고 홍준표 밑에서 경상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친홍 핵심이기도 하다.
  • 이달곤 - 현직 재선 국회의원(18, 21대),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역임.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에 출마했다가, 무소속 후보 김두관에게 근소한 표 차로 패배한 흑역사가 있다. 이후 정무수석을 지내고 21대 총선에서 김성찬을 대신해 진해에서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 이채익 - 현직 3선 국회의원(19~21대). 울산 남구청장을 지낸 이력이 있으며, 18대 총선에서는 울주군에 출마했다가 강길부에게 졌다.
  • 장제원 - 현직 3선 국회의원(18, 20~21대). 당시까지만 해도 이명박을 지원하던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부산 지역 지부장을 지냈고, 그 공로로 18대 총선 때 공천을 받아 사상구에서 당선되었다. 영포라인에 속하기도 하며, 18대 국회에서는 친이계 내에서도 이상득계에 속한다고 평가받았다. 광우병 논란 등 이명박 재임 중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친이계 국회의원으로서 이명박을 보호하는데 앞장섰으며, '이명박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해준다'는 명분으로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총선 때는 2번 연속 무공천에 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총선에 나가 승리[42]하였다. 합리적인 모습도 자주 보여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물론 덕분에 친박계랑은 척을 졌지만... 2017년 초반에는 일진 논란을 일으킨 아들 덕분에 또 한 번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탄핵 정국에선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며 바른정당으로 갔으나, 곧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였다.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을 맡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앞두고 논현동 자택을 찾기도 했으며, 구속되었을 때 "눈물이 흐른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정운천 - 현직 재선 국회의원(20, 21대), 이명박 정부 시절 농림수산식품부장관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전북 전주시 을 국회의원이었고[43], 현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만 자길 친이계에 가두지 말아달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다. 유승민친유와 같이 바른정당새로운보수당에 있어서 친유로도 분류된다.
  • 정진석 - 현직 5선 국회의원(16~18, 20~21대), 청구동계 막내. 이명박 정부 당시 정무수석. 원래 범 친박계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나[44] 이명박 및 친이계 최측근들과도 원래부터 친분이 상당한 사이였다. 그래서 견원지간인 이명박/이재오와 박근혜의 사이를 정진석이 직접 나서서 여러 번 중재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친박계에 시달리더니, 확실히 비박으로 전향하고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내 친홍, 친무계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름 마당발인 듯. 주호영과 함께 이명박의 1심 재판 마지막 변론기일에 참석하기도 했다.
  • 조해진 - 현직 3선 국회의원(18~19, 21대).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이던 시절 인연을 맺은 S라인 출신으로, 탄핵 이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더불어민주당 및 범 진보권의 적폐몰이에 따른 강한 야당, 보수를 강조하는[45] 이명박의 말을 듣고 바른정당 탈당 후 자유한국당에 입당서류를 제출하기도 했다. 2018년 이명박의 검찰소환 및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다. 유승민과도 친하기 때문에 친이인 동시에 친유로도 분류된다. 2020년 이명박 구속과 관련해서도 보복정치라고 비판할 정도로 진성 친이이다.
  • 주호영 - 현직 5선 국회의원(17~21대)이자 21대 국회를 맞은 첫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전직 판사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특임 장관을 맡았고, 한때 바른정당의 원내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박형준, 이동관, 임태희 못지 않았던 이명박의 측근이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며 이따금씩 재판 방청도 하는 편.
  • 하영제 - 초선 국회의원(21대), 이명박 정부 시절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했다.
  • 홍준표 - 현직 5선 국회의원(15~18대, 21대), 전 경상남도지사. 전직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과 같이 김영삼이 영입한 정치인이다. 15대 국회의원 도중 이명박이 먼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게 되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였고, 홍준표도 99년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미국에서 재회하여 친분을 쌓기도 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홍준표가 4위로 떨어지자, 이명박을 지지하며 범친이계가 된다. 한때 서울시장 경선직을 두고 MB가 오세훈을 밀어줘서 사이가 소원해진적도 있으나, 이후 BBK 주가조작 사건에 관해 이명박측을 옹호하면서 관계를 회복하였으며, MB정부시절 환경부장관직을 제의받기도 하였다.[46] 현재도 이명박과 큰일없이 잘 지내는 중이다. 또한 현재는 친홍이라는 독자적인 계파를 만들었으며, 윤한홍, 장제원 등 친이&친홍 핵심인물들도 많다.

3.1.3. 현역 광역자치단체장



3.1.4. 그 외 인물들


  • 강길부 - 전직 4선 국회의원(17~20대), 제 19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장, 초선 때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가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후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에는 다른 비박계 인사들과 함께 바른정당으로 갔고, 바른정당 탈당 사태 때는 다른 친이계 인사들과 함께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가 2018년에는 홍준표를 비난하며 자유한국당을 탈당, 제7대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유세를 돕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 입당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으나 결국 무소속이 되었고, 나이도 어언 70대 후반이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정계 은퇴했다.
  • 강석호 - 전직 3선 국회의원(18~20대), 제 20대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장,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 바른정당 창당 당시에 지역민심을 고려해서 합류하지 않았는데, 이게 선견지명이 되었다.
  • 강승규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 고승덕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솔로몬의 선택 출연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던 변호사였고,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이명박이 궁지에 몰렸을 때, 박희태, 홍준표와 같이 자발적으로 수임료 없이 변호해줬다. 물론 다음 해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긴 했지만...[47]
  • 고흥길 -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던 인물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의 러브콜을 받아 입당했다. 이후 18대 국회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특임장관을 맡았다.
  • 공성진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18대), 서울시의원 출신으로 2011년 비리로 의원직 상실.
  • 권경석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18대), 육사 25기로 하나회였으나 군인을 그만두고 공무원으로 전업한 유신사무관 출신이다.
  • 권철현 - 동서대학교 교수를 지낸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아들인 권성주친유계 인사로 수영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 권택기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 김금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이자 前 여성가족부장관. 셧다운제 논란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이미지도 영 시원찮다.
  • 김대식 -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이후 홍준표 대표체제에서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맡았으며,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다만, 김대식은 친이보다는 순수 친홍에 가깝다.
  • 김덕룡 - 전직 5선 국회의원(13~17대), 상도동계 원로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부터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후 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과 더불어 친이 6인회로 거론되었다. 그래서 상도동계면서 친이계로도 분류된다. 다만,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민정•공화계의 후예인 박근혜와는 성향이 맞지 않기 때문.
  • - 전직 6선 국회의원(15~20대), 사실 김무성은 친이는 아니지만, 이명박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고[48], 친이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비박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17대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때는 친박이었기 때문에 친이계에게 밀려 18대 국회 공천에서 탈락한 전적이 있다.(...) 또 친무로 분류되는 정치인들 또한 친박 무소속 연대 때부터 같이 한 이진복 정도를 제외하면 친이계들이 상당히 많다.
  • 김성동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자유한국당 상임고문단장을 맡고 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현재는 친유로 분류된다.
  • 김범일 - 전직 대구광역시장(민선 4~5기). 이명박의 평창 올림픽 유치 성공의 숨은 조력자.
  • 김성찬 - 전직 재선 국회의원(19~20대), 이명박 정부 시절 해군참모총장을 했다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창원시 진해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김성회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 김양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말이 친이계이지 계속 공천에서 떨어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버려졌다고 봐도 될 수준.
  • 김영우 - 전직 3선 국회의원(18~20대), YTN 기자였으며 친위그룹인 안국포럼[49] 출신이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 및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며 소환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으로 가는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김용태 - 전직 3선 국회의원(18~20대), 친이계 내 대표적인 소장파이다. 남원정과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사무총장 시절 스스로 자신의 지역구 당협위원장직을 포기하였다. 이후 험지인 구로구 을로 차출되었으나 낙선.
  • 김재경 - 전직 4선 국회의원(17~20대), 제 19대 국회 후반기 윤리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김정권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18대)
  • 김정훈 - 전직 4선 국회의원(17~20대), 제 19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장으로, 한나라당,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맡기도 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며,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 김한표 - 전직 재선 국회의원(19~20대), 범 친이계 정치인. 다만 이 사람은 이명박정부 후반기에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이전에는 계속해서 무소속이었던지라, 계파구분이 모호하다.
  • 김형오 - 전직 5선 국회의원(14~18대), 제 18대 국회 상반기 의장. 민정계였으나 신민주계로 편입했고,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기도 했다. 18대 국회 상반기 국회의장을 지냈고 지금은 당적을 버리고 사학자가 되었다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복당하였다.
  • 김효재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조선일보 국장급 기자 출신이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 언론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이후 친이계에 속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전당대회가 치러지고 나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2011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라 재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2012년 2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의혹으로 정무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났다. 이로 인하여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다가 2013년 사면, 복권되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나성린 - 전직 재선 국회의원(18~19대), 친무로도 분류되며, 2012년에 이어 2016년 20대 총선 때 부산 부산진구 갑에서 출마하지만 김영춘에 밀려 패배하면서 3선에 실패한다.[50]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정계를 떠났다.
  • - 전직 5선 국회의원(15~19대), 민선 6기 경기도지사.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초반부터 이명박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면 남경필은 친이보다는 원희룡 등과 함께 소장파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무래도 소장파 의원들 대다수가 이념상으로나 지역상으로나 친박보다는 친이쪽과 이해관계가 잘 맞아 둘 중 따진다면 그나마 친이라 범친이계로 분류되곤 했기 때문. 다만 정두언, 정태근처럼 이상득 등 영포라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이상득과 마찰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사실상 친이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MB 정부 총리실로부터 부인이[51] 민간인 사찰을 당하는 흠좀무한 일을 겪으며 오만정이 다 떨어진듯. 여튼 5선 의원으로 있다가 2014년엔 경기도지사까지 지내지만 2018년 재선에는 실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 류우익 -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장, 통일부 장관 및 주중대사로 일하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명예교수를 지낸 거물 지리학자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의 실질적 입안자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맹형규 - 전직 3선 국회의원(15~17대). SBS 8 뉴스 초대 앵커를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 17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이 사퇴하여 열린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기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이며, 서울중앙지검으로 가는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 박계동 - 전직 재선 국회의원(14, 17대). 다만 개인적인 논란으로 인해서 18대 총선 공천에 떨어졌다.
  • 박대동 - 전직 초선 국회의원(19대)
  • 박민식 - 전직 재선 국회의원(18~19대). 검사 출신으로 친무 성향 이기도 하다.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2016년 20대 총선부산 북구·강서구 갑에서 출마하지만 전재수에 밀려 패배하면서 3선에 실패한다. 이후 홍준표에게 내쫓겼다가 되돌아왔고 21대 총선에서 또 전재수에게 졌다.
  • 박승호 - 이명박의 고향인 포항에서 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52]
  • 박승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4대강 정비 사업의 전신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추진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역구 관리가 시원찮았고, 결국 김진재의 아들인 김세연에게 지역구를 빼앗겼다.
  • 박재완 -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 정무수석이자, 마지막 기획재정부 장관.
  • 박정하 - MB정부 때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춘추관장, 대변인 등을 지냈다. 이후 원희룡 제주도지사 도정에서 정무부지사를 지냈고 바른정당에 참여하며 유승민을 지지했다. 21대 총선에서는 원주시 갑에 출마했지만 이광재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지역에서는 차기 강원도지사, 원주시장 후보로 보고 있다. 친이인 동시에 친유로도 분류된다.
  • 박준선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 박창달 - 전직 3선 국회의원(15~17대). 이명박의 중학교 후배로, 영포회 라인에 속하는 이명박의 최측근이다. 박정희 때부터 민주공화당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했는데 이후로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있다가 민정•공화계에서 신민주계로 편입해 김영삼을 지지하면서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적 변경이 한 번도 없었던 3선 국회의원이다.(17대는 당선무효)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 퇴임때까지 자유총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났을때 친이계의 늘푸른한국당 창당에도 함께 합류했던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박근혜를 정계로 데려온 주역 중 한 명이 이 사람이다.(...) [53]
  • 박형준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김영삼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17대 국회에서 수영구를 지역구로 하여 초선 의원을 지냈고,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과 본선에서 이명박의 핵심 참모로 활약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부산에서 대거 당선된 친박 무소속 연대[54]유재중에 의해 낙선했고,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았다. 20대 총선 이후 입심이 좋은 논객 중 한명으로 주목받았다. 2017년부터 썰전에 보수 측 패널로 출연했었는데, 오죽하면 그 유시민한테 매우 좋은 토론상대로 인정받았을 정도. 보면 자유주의 중도우파적 시각에서 꽤나 합리적인 말을 잘한다. 이동관, 임태희와 더불어 MB키즈로 분류된다. 썰전에서 하차한 이후 다른 정치 평론 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하며 논객으로 활약하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범보수 통합을 위해 통추위원장직을 맡았고 이후 미래통합당 공동 선대위원장도 맡았으나 결국 강경 우익 세력의 극단성과 막말 등이 겹쳐 총선에서 참패하며 빛을 바랬다. 그 후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 박희태 - 전직 6선 국회의원(13~18대), 제 18대 국회 후반기 의장. 민주정의당 시절 명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총체적 난국, 정치 9단 등 수많은 유행어를 창조했다.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정당 출신임에도 김영삼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으로[55] 김영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문민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 이후 한나라당의 중진으로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명박을 지원한 후,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다. 이후 18대 국회 말기에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이 터지고, 2013년에는 캐디를 성추행하여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둘째 사위도 부장검사를 지낸 인물로 뇌물수수를 하다가 걸려서 검사직에서 파면되었다.
  • 백성운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외모가 김무성을 닮은 인물로 관선 고양군수 출신로서 일산신도시 개발에 참여했었다가 일산동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 신상진 - 전직 4선 국회의원(17~20대). 의사 출신으로, 2000년에 의약 분업이 추진되었을 때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고, 이것으로 생긴 유명세 덕분에 경기도 성남 중원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참고로 17, 19대는 보궐선거로 당선된 것이다.[56]
  • 신성범 - 전직 재선 국회의원(18~19대). KBS 기자 출신으로, 친무계, 친유로도 구분된다.
  • 신지호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친이계 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 술을 마시고서 100분 토론에서 방송사고 수준의 토론을 보여주기도 했고, 결국 친박계에게 내쫓겼다.
  • 안경률 -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18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장. 상도동계로,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안상수 - 전직 4선 국회의원(15~18대). 한나라당 원내대표/당대표와 민선 6기 창원시장을 맡은 바 있다.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여담으로 안상수라는 정치인은 2명이 있으며, 둘 다 자유한국당 출신이다.[57] 참고로 홍준표와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다른 안상수가 홍준표와 친하다는 걸 생각하면 대조적.
  • 안택수 - 전직 3선 국회의원(15~17대).
  • 안형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KBS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다.
  • 여상규 - 전직 3선 국회의원(18~20대). 20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았는데, 고함을 치고 역정을 내는 일이 잦아서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평이 나쁘다.
  • 오세훈 - 전직 초선 국회의원(16대), 민선 4~5기 서울특별시 시장을 연임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진영에서 박근혜 다음으로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1년에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는데, 거기서 투표율이 33%를 넘기지 못하는 바람에 약속한 바에 따라 서울시장에서 사퇴하여 몰락하게 된다. 이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렸고, 실제로 당시 새누리당의 낙승이 예견되는 분위기 속에서 오세훈도 성공적인 정계 복귀와 유력 대권주자로의 등극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으나, 현실은 시궁창이라 본인은 낙선하고 새누리당도 참패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바른정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바른정당에서 탈당한 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도 언급되었으나 본인이 불출마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하였으나 친박황교안에 밀려 2위로 당 대표는 되지 못했고, 21대 총선에서도 서울 광진구 을에 출마했으나 아깝게 낙선하였다.
  • 유정현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친박계에 의해 숙청당한 이후에는 종편에서 방송인과 뉴스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 이계경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여성운동가 출신.
  • 이군현 - 전직 4선 국회의원(17~20대),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친이계 인사로 활동하다가 제18대 총선에서는 동작구 에서 공천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 해에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정동영이 민주당 후보로 공천되는 바람에, 정동영에 대항할 만한 거물급 인사였던 정몽준에 밀려 동작구 을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대신 자신의 고향이 있는 경상남도 통영시·고성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어 당연히 당선되었다. 19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후에 새누리당 대표가 된 김무성에 의해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친무로도 분류되기 시작했다. 또 20대 총선에서는 무투표 당선의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의원 임기 도중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 이동관 -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이명박 청와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한 바 있다. 박형준, 임태희와 더불어 MB키즈로 칭해지며 이명박의 총애를 받았던 최측근이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 및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이방호 - 전직 재선 국회의원(16~17대). 사천시에서 재선을 한 전직 국회의원으로,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서 친박 공천학살을 주도하였다. 이때 친박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미움을 받아, 친박 세력이 자신의 주요 경쟁자인 민노당 강기갑 후보를 지원하는(...) 그야말로 정치 코미디를 벌여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서부 경남에서 한나라당 후보인 본인이 낙선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 이범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 이병석 - 전직 4선 국회의원(16~19대). 19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소위 영포회 라인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스코와 관련한 비리 때문에 사실상 정계에서 쫓겨났다.
  • 이사철 - 전직 재선 국회의원(15~18대)
  • 이상휘 - 이명박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지금은 세명대학교 교수이다.
  • 이성구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 이성권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유승민과 같이 바른정당새로운보수당에 참여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승민을 지지해서 친유로 분류되기도 한다.
  • 이윤성 - 전직 4선 국회의원(15~18대). 18대 국회 상반기 국회부의장.
  • 이원창 - 전직 초선 국회의원(16대). 이명박 정부 시기에 공익광고협의회 대표 역임.
  • 이은재 - 전직 재선 국회의원(18, 20대). 20대 국회 불후의 명대사(?) '사퇴하세요'의 주인공 맞다. 다만 20대부턴 친이보단 친무로 분류되는 인물이었고, 자질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21대 총선에서 공천되지 못하며 사실상 정계에서 밀려났다.
  • 이재웅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 이종구 - 전직 3선 국회의원(17~18, 20대). 제 20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중소기업벤쳐위원장. 경제관료 출신인 경제통이다. 그러나 한화 그룹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단 이유로 이명박 정부의 사찰 대상 중 하나였다.
  • 이주호 -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맡은 바가 있다.
  • 이태규 - 전 친이계로, 정두언과 함께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인수위원회,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KT에서 사외이사를 맡게 된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려고 했으나, 그 때는 친박의 세가 강해져서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안철수가 뜬 이후부터는 안철수를 돕기 시작했다. 이후 안철수랑 같이 새정치연합-새정치민주연합까지 따라가다가, 안철수가 탈당하면서 국민의당을 차리면서 국민의당에 입당한다. 여기서도 뛰어난 책사로서 국민의당을 제 3당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한다. 안철수와 함께 바른미래당으로 옮겨간 지금도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현역]
  • 임태희 -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형준, 이동관과 더불어 MB키즈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 및 구속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장광근 - 전직 3선 국회의원(14, 16, 18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18대 국회 후반기 국토해양위원장을 맡았으나 임기 종료를 몇 일 앞두고 민주당 강성종과 같이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 전도봉 - 전직 해병대사령관.
  • 전재희 -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민선 1기 광명시장을 지냈으머 손학규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나 손학규가 민주당으로 이적할 때 결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 정문헌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 19대). 정재철의 아들로 17대 국회의원을 마치고 이명박 정부에서 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을 역임한다. 그리고 18대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해 소위 NLL 대화록 논란을 일으킨다. 이 덕에 박근혜 정부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유승민과 가까운 까닭에 친유로 분류된다.
  • 정미경 - 전직 재선 국회의원(18~19대).
  • 정병국 - 전직 5선 국회의원(16~20대), 상도동계 막내.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장관을 역임하였다. 바른정당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당대표직을 사퇴한 이후에도 유승민과 같이 바른정당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바른미래당 창당에도 합류했다. 친유에 합류하면서 바른미래당 내분사태 때는 새로운보수당을 설립하고, 결국은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과 같이 미래통합당을 창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58] 제16대 국회부터 시작해서 제20대 국회에서도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상도동계, 남원정 친이계, 친유계 정치인 중에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 중 하나였으나, 21대 총선에서는 불출마를 하였다.[59] 현재는 청년정치학교 교장직을 역임하고 있으나, 김선교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 관련재판으로 의원직 상실형이 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정병국2021년 재보궐선거를 포함한 재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승민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에 참여했고 유승민을 지지했기 때문에 친유계로 분류된다.
  • 정운찬 - 전직 국무총리. 2009년에 이명박에 의해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국무총리로 재직하면서 이명박, 이재오와 상당히 친해졌고[60][61], 이명박과 이재오는 정운찬에게 임태희의 대통령실장 임명으로 공석이 된 분당 을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요청하기도 했고, 이후 이재오와 더불어 친이계의 잠룡으로 자주 언급되었다. 현재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계가 주축인 늘푸른한국당에서 같이 활동하는 중이다.[62] 다만,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KBO 총재를 역임하고 있다만, 무능함 때문에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비판받고 있다.
  • 정의화 - 전직 5선 국회의원(15~19대)이자 제 19대 국회 후반기 의장, 부산에서 나름 명망 있는 의사였으며, 15대 총선김영삼에 의해 영입되어 부산 중구·동구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허삼수[63]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하며 친이계가 되고, 친이계 국회의원로서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기도 한다. 보통 친이계 중진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나,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정치 성향과 옅은 계파색으로 인해 일부 매체에 의해서는 범친이로 분류되기도 한다.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김영삼에 의해 영입되어 YS키즈로 분류되기도 한다.
  • 정정길 - 2008년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이명박 정부청와대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지냈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정종복 - 전직 초선 국회의원(17대). 다스의 본사가 있는 경주의 전직 국회의원으로, 18대 총선 당시 공심위 간사와 사무부총장을 맡았으며 여권 실세 중 하나였다. 이방호, 이재오와 함께 친박 학살을 주도했으나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소속으로 출마한 김일윤에 패하여 낙선했고, 그 김일윤이 비리로 잘려나가자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정수성 前 2군 사령관에게 또 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정치 활동이 되어버렸다. 복귀를 위해서 애는 쓰는데, 당 내에 자리가 없기 때문.
  • 정진섭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18대).
  • 정형근 - 전직 3선 국회의원(15~17대). 공안검사 출신. 이후 안기부로 파견되어 1차장을 지내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 묵주사건을 일으키기도 했고, 뉴라이트 전국연합 의장 시절에 뇌물수수를 하여 물의를 빚었다.
  • 정태근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정두언의 최측근으로, 정두언과 비슷한 시기에 이명박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 보조 역할을 맡으면서 이명박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도 기여했다. 허나 정두언과 같이 이상득과의 갈등을 기점으로 친이계 내에서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다만 이후에 탈친이를 한 정두언과는 달리, 정태근은 20대 총선 출마시 친이계 원로들의 유세 지원을 받는 등 친이계와 완전히 척을 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본인은 끝까지 정두언과 함께 하긴 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성북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만다.
  • 조전혁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뉴라이트 성향이다. 이후 경기교육감에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친노계 이재정 전 장관에게 패했다. 이후 인천 남동구의 지역구를 반납하고 부산 해운대구 출마를 노리고 있으나,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
  • 조진래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원래는 뉴라이트/친이계였으나 영남고등학교 선배였던[64] 홍준표가 경남도지사를 하던 시절에 정무부지사로 기용되었다. 이후에는 친홍계로 분류되었으나 부지사 시절 채용비리 논란으로 검찰수사를 받던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조진형 - 전직 3선 국회의원(14~15, 18대). 재산이 상당히 많은 수백억대의 자산가 의원. 박근혜가 당권을 잡자 고령을 이유로 19대 총선 공천에서 잘리고, 이후 20대 총선에서 재기를 시도했지만, 74세의 고령과 노쇠한 이미지 탓에 낙선했다. 이후 정계 은퇴로 이어지게 된다.
  • 조현룡 - 전직 초선 국회의원(19대). 前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절도공단 소리를 듣는 철도공단 출신답게 비리를 저질러서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함안역 KTX 정차가 이 사람의 작품이었다.
  • 진성호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조선일보[65] 언론인 출신이다. 지금은 보수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 진수희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MB 정부 시절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현재는 친유로 분류된다[66]. 그래도 친분은 계속 유지하는지 19대 대선 유세 당시 유승민과 함께 이명박을 예방하기도 했다.
  • 최금락 - 前 청와대 홍보수석. 원래는 SBS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 최병국 - 전직 3선 국회의원(16~18대). 공안통으로 유명했고 검사장을 지냈던 울산의 원로 정치인으로, 영포라인 못지 않은 이명박의 최측근이며 이재오와 함께 늘푸른한국당으로 갔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로 이명박 재판의 변호인을 맡기도 했다.
  • 최시중 - 조선일보 출신 언론인으로, 이명박 정부 때 신설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다. 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김덕룡과 더불어 친이 6인회로 거론되었다.
  • 하금열 - SBS에서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을 맡았다가 이명박에게 천거되어, 이명박 정부 말기에 대통령실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2018년 3월 14일 이명박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택을 찾은 인물 중 하나.
  • 허천 - 전직 재선 국회의원(17~18대). 강원도의회 의장을 지냈던 인물로, 춘천시의 터줏대감인 한승수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기회를 잡고 국회의원까지 지내게 된다.
  • 홍일표 - 전직 3선 국회의원(18~20대). 20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위원회 위원장. 판사 출신으로, 아들인 홍성균도 판사로 키웠으나, 아들은 성적 문제로 판사직을 그만두었다.
  • 홍정욱 - 전직 초선 국회의원(18대). 前 헤럴드미디어그룹 회장.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와 잘생긴 외모, 다양하고 풍부한 경력 덕분에 한 때 2018년 지방선거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본인이 거절하여 무산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권 비판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의 사찰 대상 중 하나기도 했다.

3.2. 검찰


  • 김홍일 -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있을 시절에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올랐고 이후에도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 물러났다.
  • 노환균 -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실세로 울산지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면서 잘 나가는 검사였고 이후에도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까지 지내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물러났다.
  • 송찬엽 - 이명박 정부 때 인천지검 2차장,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 법무부 인권국장을 하다가 부산지검 1차장으로 검사장에 올랐고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도 올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있던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를 담당했는데 꼬리 짜르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후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박근혜 정부 때도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하고 서울동부지검장까지 하다가 2015년에 물러났다.
  • 신경식 -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하다가 수원지검 1차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되었는데 이 당시에 민간인 사찰 사건 수사를 맡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축소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후 청주지검장을 하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광주지검장을 거쳐서 수원지검장을 하다가 2015년에 물러난다.
  • 이진한 - 이명박 정부 당시에 한상대 라인 검사 중 한 명이며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기획관을 하면서 왕재산 사건 수사를 이끌었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구속시켰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하면서 잘 나가는 듯 했지만 여기자 성추행 의혹으로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고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으로 전보되었다가 서울고검 검사로 좌천된 뒤 여기자 성추행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 정병두 - 이명박 정부의 출범 과정에서 이명박 인수위에 파견되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수원지검 1차장이 되었다가 이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되었고 이후 용산참사와 PD수첩 광우병 방영 건을 수사했다. 이후 춘천지검장,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인천지검장까지 하다가 박근혜 정부 때 대법관 후보에 오르지만 결국 대법관에는 오르지 못하고 물러났다.
  • 최재경 - 친박계의 원로인 최병렬과 절친하고 친박 핵심인 최경환과도 친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에 큰 공을 세운 검사였으며, 특수통의 핵심으로 당시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하면서 박연차 사건의 초기 수사를 지휘했고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올랐다. 이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검사장에 올라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거친 뒤 대검찰청 중수부장까지 되지만 이명박 정부 말기에 검란을 주도했다가 전주지검장으로 좌천되고 이후 대구지검장을 거쳐 인천지검장이 되었으나 세월호 사건 수사를 하다가 옷을 벗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직을 한다. 그 이후 현재는 동아일보 논설위원, 삼성전자 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한상대 -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실세로 법무부 법무실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직위를 거쳤고 갖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까지 올랐으나 2012년에 일어난 검란으로 물러났다.

3.3. 그 외


  • 천신일 - 세중나모 회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후원자였으며 6인회 중에 한 명이었다.
  • 김중수 - 이명박 정부 때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에 경제통이었다.
  • 어윤대 -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자 측근으로, KB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 강만수 - 경제관료 출신이며 이명박 정부 초반기에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고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이명박 정부의 경제통 측근이었다.
  • 이팔성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특별시장으로 있던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장을 지내면서 이명박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4. 관련 문서


  • 상도동계 -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친이계 인사들 대다수가 상도동계이거나 정•공화계 출신 중에서 김영삼 지지로 갈아탄 신민주계, 혹은 김영삼에 의해 영입된 YS키즈들이며, 상도동계와 친이계 모두 자유보수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친이계의 한 뿌리가 상도동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남원정 -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은 이명박에 대해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67]
  • 친노 - 지금은 노무현 지지자들은 검찰수사 건으로 이명박을 악의 축 취급하나, 노무현과 이명박은 같은 보스를 모셨던 사실상 뿌리가 같은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둘은 자주 협력했었으며, 노무현 말기 노무현의 지지세가 매우 하락하자, 친노 세력은 민주당이 한번 더 집권하면 분명히 그것은 동교동계가 될 것이며, 그러면 친노에 대한 정치보복이 이뤄질 것이라는 계산 하에 한나라당 친이 세력과 자주 어울렸다. 당장 17대 대선을 전후로 이명박과 노무현이 서로 자주 친하게 지내며, 친노 정치인은 당시 이명박을 극찬하고 '정동영, 박지원, 천정배 같은 동교동계가 더 나쁘다' 라는 발언을 허구헌날 했다.[68] 이 둘의 사이가 갈라진 것은 광우병 괴담에 친노 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이 후 이명박 정권이 친노를 사찰했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국정원을 동원한 공작대상에 들어갔다.
  • 친박 - 최악의 천적. 당내 최대 라이벌 파벌이자 심지어 야당보다 더한 견원지간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당시 유승민, 권영세 등 범친박계 온건파 외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 친무 - 친무 정치인들 상당수가 이전에 친이계였다. 대표적으로 권성동 국회의원과 강석호 전 국회의원.
  • 친홍 - 홍준표 본인부터가 범친이계고[69] 당 대표 시절 홍준표와 같이 한 친이계도 상당수 있었다. 윤한홍 국회의원이 그 예시이다.
  • 친유 - 유승민 쪽으로 간 친이계 인사들은 친무나 친홍보단 적었다. 다만 바른정당 탈당사태를 거치면서 이들 대부분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해 현재는 접점이 많이 줄어들었다. 대표적으로 조해진 국회의원, 김희국 국회의원, 김은혜 국회의원, 류성걸 국회의원,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장관, 이성권 전 국회의원, 박정하제주도 부지사,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이 있다. 그래도 이념적으로는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같이 유사점이 많다.
  • 친안 - 친안 인사들 중에 일부 친이계 출신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태규 의원.
  • 늘푸른한국당 - 해산 후 지도부는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다.

[1] 이명박 정부 시기 외교안보 정책은 반공주의에 기반하였다.[2] 핵심 인사는 볼드. 친박 전향 인사는 제외.[3] 비박 개념까지 포함할 경우 2010년대 후반까지.[4] 비박계의 개념이 사라진 2020년대는 온건~개혁보수파에 걸쳐 있다.[5] 장제원 의원은 모 시사대담 프로에서 한번은 친박 의원들과 식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약간 종교적인 냄새가 났다는 식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본인하곤 좀 안맞다고 느꼈다고.[6] 물론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이 박근혜를 이기고 있었다는 점도 주효했다.[7]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원수지간이라지만 친노 세력과도 뿌리 자체는 YS로 같았다. 사실 2002년 대선 역시 이회창vs노무현으로 결국 김영삼이 픽업한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은 동일했다. 다만 노무현은 1990년 3당합당에 반대해 김대중한테 갔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8] 오히려 이명박 구속으로 타격을 입은 사람은 원세훈 등 관료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다.[9] 다만 결집력은 TK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10] 다만 예외적으로 강삼재는 이명박 대신 대선 국면에서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출마한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면서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11]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공화계 우두머리였던 JP는 박근혜 지지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명박 지지를 했다.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밝힌거지만 김종필은 박정희와도 사이가 썩 좋진 않았다고 한다.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받지 못한 섭섭함+당시 박정희의 2인자 견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고.[12] 여담으로 상도동계에서 친박으로 편입된 케이스는 친박연대 서청원, 친박무소속연대 김무성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던 반면, 민정계에서는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과 박희태, 김형오(원래 노태우의 측근이었다) 등 이후 신민주계를 거쳐 친이계로 편입된 케이스도 은근히 있었다.[13] 박근혜 후보의 경선안 대로 했어도 이 후보가 가까스로 승리할 수치였긴 했다.[14] 비락식혜 광고로 유명한 김보성 맞다.[15] 정확히는 정근모를 대선 후보로 내새웠던 참주인연합에 대거 입당하여 이름을 바꾼 것인데, 총선이 코앞이라 신당을 창당할 여유가 없다보니 이렇게라도 한 것.(...)[16]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18대 총선에서 강기갑 후보는 영남 지역 진보 후보 당선이라는 이변을 만들었다. 교외 농촌 지역이다 보니 친박세가 상대적으로 강했고, 그렇게 진보+친박표가 합쳐져 이변을 만들어낸 것.[17] 그래도 MB정부 집권기였던터라 친이 중진들은 살려두고 초재선 위주로 공천학살을 단행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선 중진까지 날려버리려다 옥쇄런 같은 사단도 난다.[18]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이 표심이 유동적인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던 것이 큰 요인이었다. 원래 보수 계열 정당들이 수도권 개별 선거구에서 득표율 자체는 꽤 되도 소선거구제로 인해 1등이 아니면 낙선하기에 의석 획득이 의외로 쉽지 않다. PK에서 민주당이 고전하는 것과 반대 버전인 셈. 실제로 2000~2020년 선거 특히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수도권을 이긴 케이스는 18대 총선이 유일했다. 이것마저도 허니문+야권분열+뉴타운 열풍처럼 시기와 구도, 이슈가 맞아떨어져 가능했던 것이지만, 직후 세계금융위기가 몰려오면서 뉴타운이 대거 취소되고 정부 인기도 하락하면서 한때의 바람이 되었다.[19] 정운찬의 경우, 이명박과 이재오가 한나라당 입당 및 분당 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이전부터 권유했었는데, 친이계가 당권을 거머쥐고 있을 때에는 정운찬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2012년 친박에 당권이 넘어가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나서는 새누리당의 색깔이 본인이랑 잘 안 맞는다고 거절하게 된다. [20] 이재오 본인은 친이 모임에서 우리가 언제적 친이냐며 늘푸른한국당은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서 만든 당일 뿐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선을 그으면서 중도진보 및 비 친이 인사들도 포용 가능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론 인재풀이 친이계 특성이 강했다.[21] 실제로 몇몇 의원들은 박근혜 탄핵소추 가결 직후, 범죄, 뇌물수수, 청탁행위를 검찰에서 재조사당하는 지경이 됐다.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이 대표적인 예. [22] 탈당의 배경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제시된다. 이러한 시각이 나온 배경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이계 정치인들을 만났을 때, "국민을 보고 가라"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친이계의 새누리당 집단 탈당을 지시하는 발언이었다는 시각이 있었다. 다만, 남원정, 친무, 친유와 일부 현역 친이계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한 것과 달리, 친이계 중진들은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다. 새누리당에 있던 친이계 성향 전현직 정치인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늘푸른한국당에 합류하기도 했다.[23] 남경필의 경우, 2007년 17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은 친이로는 분류되지 않는 소장파에 가깝지만, 성향과 당시 이명박을 지지했던 행적에서 양분할 경우 범 친이계로 분류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물론 친이계에 토사구팽을 당한 케이스라 비박계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지만.[24] 특히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경우 큰 목소리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히며 축사를 낭독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병국, 정의화, 주호영 또한 축사를 낭독했는데, 이들보다 소리를 크게 냈다. 이를 봤을 때, 남경필과 친이계 인사들도 늘푸른한국당과 연계할 가능성이 충분해졌음이 나타났다.[25] 실제로 친이계 중진들이 창당한 늘푸른한국당이 현재는 이명박의 구속에 이은 몰락으로 와해되면서 지도부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지만, 늘푸른한국당은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합당해 몰락하는 자유한국당을 흡수해 보수정당을 재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26] 다만 둘 다 진성 친이는 아니다. 오히려 김무성의 경우 상도동계 - 친박(그것도 좌장 소리 듣던 핵심) - 비박(친무) - 반박까지 행보가 다이내믹한 편이었다.[27] 정병국의 경우 지역구 내 평가가 긍정적인 정치인인데다 차기 경기도지사로 언급됨에도 불구하고, 친박, 친황 출신의 전직 양평군수인 김선교에게 지역구를 빼앗겨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이전에도 친박김선교상도동계, 남원정, 친이인 정병국 간의 갈등이 존재하였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이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이 때 황교안정병국유승민과 가까운데다 중진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본인의 대권에 방해되는 정병국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본인 계파에 속하는 김선교를 공천하였다. 결국 정병국이 불출마를 하고, 김선교가 단수공천이 되었지만, 21대 총선에서 김선교정병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본인의 행보들로 인해 정병국의 득표율보다 낮은 득표율을 겨우 얻어냈다. 심지어 텃밭이라는 곳에서 최재관, 김선교의 지지율이 동률이 된 적도 있고, 김선교여주시 일부 지역에서는 패배했다. 그러다보니 텃밭임에도 불구하고 공천 실패 사례로 언급되는 편이다.[28] 여기서 황교안의 대권 경쟁자인 유승민은 미리 불출마를 해서 황교안이 컷오프를 하지 못한 사례가 된다.[29] 여기서 김규환, 김재원, 윤상현, 정태옥 등 친박계 일부와 핵심 친박 5적이라고 분류되는 인물은 컷오프 되거나 사실상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나 곽상도, 김석기, 김정재, 김진태, 이만희, 이장우, 정점식, 추경호19대 총선20대 총선에서 친박 위주로 공천된 초재선 의원들은 살아남았고, 김선교, 유상범, 윤갑근, 최형두친박들 중 본인과 가까운 신인들을 텃밭에 단수공천이나 전략공천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황교안의 최측근이던 민경욱은 공관위 결정마저 뒤집고 계속 살려줘 호떡 공천이란 비아냥까지 받았다.[30] 친유로도 분류된다.[31] 범 친이 정병국, 정운천 등이 친유계와 가까운데다, 원조 친이라던 조해진이 친유에 속하기도 한다는 점도 있다. 사실 김성동, 김영우, 김은혜, 김희국, 류성걸, 박정하, 신성범, 이성권, 정문헌, 정병국, 정운천, 조해진, 진수희 등이 친이계나 친유계 모두에 속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바른정당 탈당 사태 당시에 생긴 감정이 없지는 않겠지만 둘 다 친박, 친황과는 완전히 척을 지었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친이계 입장에서는 친유보수 소장파가 가장 비슷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 둘 다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적인 특성을 보인다. 물론 친유에는 구 친이계 인사 외에도 구상찬, 권영세, 김세연, 유의동, 유승민, 이혜훈 등 구 친박 인사들이 존재하는데다 강대식, 김웅, 유경준 등 최근에 영입된 인사들도 존재한 까닭에 친이와는 구별되는 특성을 보인다.[32]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서도 지상욱, 홍철호 등 이탈 인사가 존재하고 있고, 임이자처럼 친박보다는 이철우와 가까운 까닭에 계파 색이 옅은 인사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내 인사 중 상당수가 친박이지만 일부는 이탈했다거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입한 케이스도 있다.[33] 핵심 인사는 볼드. 친박 전향 인사는 제외.[34] 특히 친이vs친박 다툼이 심할 당시엔 친박 의원 아님 무조건 친이, 친이 의원 아님 무조건 친박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친이는 아니고 그냥 중도나 비박 정도일 뿐인데 친이로 포함된 경우도 있다는 것.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35] 상술했듯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YS는 박근혜 말고 이명박을 지지했다. 이유로는 YS가 이명박을 직접 픽업한 점, 박정희 때의 악연과 이후 '칠푼이'라는 발언에서도 보이듯 박근혜의 능력 자체를 낮게 취급한 점 등이 거론된다. 다만 박씨 부녀를 경멸한 YS와 달리, 이명박은 박근혜를 품어야 되니 한동안 박정희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사실 개혁보수 세력이 MB를 지지한건 맞지만 MB가 개혁보수 성향이었느냐는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고.[36] 반대로 TK는 친박 강세로, 친이가 친박을 상대로 공천학살을 자행했던 18대 총선 당시에도 이 지역의 친박들은 막강한 지역기반으로 상당수가 공천을 받았다. 물론 포항 같은 경우엔 MB의 사실상 고향인지라 친이세도 꽤 쎈 편이었고, 반대로 부울경에도 서병수(해운대ㆍ기장 갑), 허태열(부산 북구·강서구 을), 정갑윤(울산 중구)로 대표되는 친박 의원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37] 20대 새누리당 공천에서 주요 공천 배제 대상은 친이계와 친유계였는데, 19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는 이명박이 아직까지 힘이 있었던지라 친이계 중진들은 거의 공천을 받았지만, 이명박이 대통령직을 퇴임하면서 힘을 잃은 20대 공천 과정에서는 친이계는 완전히 전멸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이명박 직계라고 할 만한 의원들은 정병국, 주호영, 김영우, 장제원, 권성동 이렇게 딱 5명밖에 안된다.[38] 이상득을 포함한 영일-포항 권역이나 그 인근 지역 출신인 친이계 인사들의 모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엄청난 권력을 누려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39] 2008년 소장파였던 정태근, 남경필 등과 함께 이상득에게 MB 정부 성공을 위해 18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40] 유승민, 김무성 등과 같이 취급한다.[41]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이었을 때 보좌했던 인물들을 말한다.[42] 장제원의 아버지 장성만 또한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결과적으로 보면 장제원 집안이 해당 지역 기반이 강한 자체 경쟁력이 있는 후보였기 때문에 무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셈이다.[43] 소선거구제 이래 전북에서 최초로 당선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보수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황인성, 강현욱 등의 케이스가 있었다.[44] 전여옥도 외부자들에서 18대 국회의 정진석은 범 친박계였다고 언급한 바 있고,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계와도 친분이 있었지만, 18대 국회에서는 박근혜와 친박의 편을 조금 더 들어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19대 때 김무성이 박근혜 및 친박에 의해 공천을 받지 못하고 친이계 초재선들이 대거 공천탈락했을 때와, 20대 때 친이계와 유승민계가 철저한 공천 배제로 인해 친이계가 파멸당하고 유승민계까지 큰 타격을 입었을 때도 정진석은 전부 잡음 없이 공천을 받았다. 이렇듯 범친박계라고 분석해도 무리가 아닌 정치인이었으나, 20대 국회 초부터 박근혜와 친박을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비박으로 전향했다.[45] 자유한국당 복당을 주문했다고도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은 정보다. 확실히 알려진 건 강한 야당, 보수를 강조했다.[46] 여기서 재밌는 썰이 하나 있는데, 원래 홍준표 본인은 법무장관직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임태희 당시 비서실장으로부터 환경부장관직을 제의받았고 (이때 MB는 '준표한테 법무장관주면 내말안듣고 뭔 이상한 짓거리 할줄 모르니 안주겠다'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홍준표는 임태희한테 '태희야, 니 '타타타'가 뭔지아냐?' 라고 묻자, 임태희실장이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홍준표가 '그 노래가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 이렇게 시작하더라' 라고 말하며 거절하는 제스쳐로 임태희 실장을 돌려보냈다. 사실상 법무장관아니면 안하겠단 소리.[47] MB 정부 때 정치에 입문했다가, 이후 박희태 돈봉투 사건을 고발하며 정치 일선에선 물러났다. 그리고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상기한 흑역사를 찍게 된다.(...)[48] 사실 민주자유당신한국당에서 같이 민주로서 김영삼을 모시고, 포항과 인연이 있는 기업인 출신이라는 매우 비슷한 내력을 보면 김무성이 왜 친이가 아닌지 이상할 정도다.[49] 이명박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후 종로구 안국동에 대선을 대비하는 씽크탱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안국포럼이다. 이후 김영우 등의 안국포럼 출신 인사들은 이명박 정권에서 친이계 정치인이나 청와대 참모로 활약한다.[50] 제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다.[51] 이후 2014년 지방선거 전후해 이혼했다. 부인 왈 의원 뒷바라지까진 어떻게든 하겠는데 도지사는 무리라고 말했다고 한다.[52] 2010년 포항 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전라도에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대통령 고향에서 민주당 후보가 활개를 치고 다닙니까"라고 말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 행보를 보인바 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보다 무려 4배 이상 많이 득표하여 경북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53] 다만, 당시에는 이명박의 정치적 위상이 대권에 도전할 정도로 높지는 않았던 시절이라 당 홍보 차원에서 박근혜의 정계 입문을 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박창달은 17대 국회때부터 친박과 거리를 멀리 둔 강성 친이계였다. 이명박도 박창달이 피선거권 제약이 풀리지 않아 18대 총선에 나갈 수 없자,(2009년 재보궐선거에는 출마할 수 있었으나 박창달이 출마하지 않았다.) 대타로 박창달을 자유총연맹 회장으로 임명한 다음 대통령 임기를 마칠때까지 박창달을 유임시켰다.[54] 18대 총선 당시 경상도에서 친박연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친박연대가 직접 나선 TK와 달리 박근혜에 대한 비토 심리가 있었던 PK에서는 부산의 대표적인 지역 정치인 김무성을 필두로 한 친박 무소속 연대에서 친박 후보를 냈다. [55] 김기춘노태우 정부 사람이지만 김영삼과 동향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김영삼과 가까이 지냈다.[56] 17대는 이상락 의원이 학력위조로 인해 의원직을 잃으면서 생긴 재보궐선거, 19대는 김미희 의원이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신해 의원직을 잃으면서 생긴 재보궐선거.[57] 김성태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인 두 명도 있는데, 이 둘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현역] 현역 의원[58] 이 때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의 통합을 지지하는 정병국, 정운천, 하태경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의 통합을 반대하는 유승민, 이혜훈 간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유승민이 불출마하면서 갈등은 해결되었다. 현재는 다시 예전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59] 미리 불출마를 한 유승민과 다르게 정병국은 출마하려고 했으나, 황교안친박, 친황황교안의 대권행보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정병국을 컷오프하기로 했다. 정병국 대신 공천받은 사람은 친박, 친황 출신인 김선교로, 친이, 친유정병국을 처내고 황교안친박, 친황 심기로 김선교를 공천한 셈이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는 정병국강남구 을에 공천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결국 박진이 공천되었다.[60] 원래는 이명박과 친분이 거의 없었다고 알려진 바 있으나, 실제로는 이명박과 원래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61] 정운찬이 국무총리로 있었던 시절 이재오는 18대 총선에서 낙선하여 국회에 있지 않고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내각에 있었다. 정운찬과 접촉이 많을 수 밖에 없다.[62]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립 대학인 서울대의 총장이었음에도 노무현과는 성향이 맞지 않아 노무현을 자주 비판하였다. 이명박과도 추구하는 바가 다소 달랐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후, 이명박, 이재오와 친해지면서 이명박에 대해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명박도 정운찬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청하면서 일부는 실현하려고 했다.[63] 허삼수는 하나회의 일원 중 하나로, 삼당합당 이전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의 후보 노무현에게 부산 동구에서 패배한 민정당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당합당 이후 노무현이 김영삼을 떠나면서, 뒤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는 김영삼에 의해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게 되어, 같은 지역구에서 노무현에게 설욕했다. 하지만 15대 총선 당시 김영삼이 당 내 민정계를 축출할 때, 그도 같이 신한국당 공천에서 떨어졌다. [64] 사실 조진래는 영남고를 2달만에 자퇴해서 졸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65] 이 때문에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 당시 친박 성향의 독자들에게 엄청 욕먹기도 했다. [66] 애초에 서울신문에서 발간한 18대 국회의원을 다룬 서적에서는 유승민과 친하다고 적어두었다.[67] 다만 정병국은 상대적으로 사이좋게 지낸 케이스였다.[68] 당장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 중 대다수가 문국현으로 몰리거나 그나마 이명박, 이회창은 타 당이란 이유로 손이 덜 갔긴 했지만 죽어도 정동영은 안된다 라고 할 정도였으니..[69] 다만 홍준표는 여러모로 독고다이 스타일에 계파색이 옅은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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