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분당
1. 개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시작된 보수 정당 대분열 사태다. 이 혼란은 2016년 12월 27일부터 이후 2020년 2월 17일 미래통합당이 창당될 때까지 약 3년 2개월간 지속되었으며[1]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보수정당이 둘로 갈라져 경쟁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 혼란은 미래통합당 창당으로 어느정도 일단락 되지만 이후로도 보수 본연의 지지층은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게 되는 등 아직까지도 현재의 보수정당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러모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져온 보수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2. 배경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친박과 비박간의 심각한 공천갈등은 새누리당을 지켜보던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고 결국 제1당마저 빼앗기며 참패하게 된다. 그 결과 당대표였던 비박계의 수장 김무성이 대표직을 사퇴하게 되었고 공천과정에서 비박계 의원들은 공천학살 당해 친박계의 새누리당 사당화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던 와중 박근혜 정부의 각종 비리 의혹이 드러남과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은 꼭두각시였다는 국정농단 의혹이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점점 바스라져가기 시작했고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사실로 드러나며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완전히 추락하게 된다. 끝내는 탄핵소추안까지 가결되며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로 갈라져 독립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한 지붕 두 가족, 혼돈의 도가니로 들어가게 된다.
이 혼란 속에서 비박계는 친박의 꼭두각시 상태였던 지도부를 사퇴시키는데 총력을 기울렸고 끝내 이정현 대표와 지도부를 사퇴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어진 지도부 선출과정에서 또다시 친박계에게 패배했고 원내대표 겸 대표직 권한대행으로 정우택이 당선되어 버렸다. 이후로도 친박계는 지도부를 장악하며 비박계 김용태 의원[3] 의 선임안을 부결시켰고 비박계가 최후의 카드로 내건 비박계의 투톱인 유승민 의원의 비대위원장 선임안[4] 까지 끝내 부결시키면서 비박계의 신당 창당이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김무성, 유승민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분당이 시작된다.'''
3. 경과
탈당한 비박계들은 주로 바른정당에 합류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이재오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다. 친무와 친유, 친이가 떠난 새누리당은 당명을 교체하며 자유한국당으로 개명된다. 그 와중에 박근혜가 세운 당명을 교체하고 박근혜를 출당시켰다는 반발하에 극렬 지지층들이 새누리당(2017년)을 창당하며 떨어져나간다.
이렇게 분당이 마무리되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대선 상황에서 격렬한 충돌을 벌이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을 앞서나가는등 비박계의 선전이 이어졌지만 창당 초기던 바른정당이 계속하여 미숙한 실수를 번복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집토끼 사냥 전략이 성공하며 오히려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에게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바른정당의 친무계는 바른정당 후보인 유승민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자유한국당과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유 후보가 응하지 않자 대선을 1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집단 탈당 후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 간신히 교섭단체는 유지하지만 당내 갈등은 이어졌고 끝내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놓고 다시 한번 집단 탈당(후 자유한국당 복당)이 이어지는등 분란는 계속되었다. 한편 친이계 인물들이 창당했던 늘푸른한국당은 이재오의 대선참패후 사실상 흐지부지 되어가다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을 계기로 정당을 해산하고 대부분이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
이후 남겨진 바른정당은 생존을 위해 민주당계 정당이던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진보색이 강한 의원들과 많은 호남계 의원들이 국민의당을 탈당하며 두 당의 성향차가 좁혀졌고 결국 합당에 성공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여 자유한국당에 이은 두 번째 보수정당으로 자리잡는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에서 복당한 의원들이 홍준표와 힘을 합쳐 어찌어찌 친박의 폭주를 억눌러내는 등 당내에서 비박과 친박간의 힘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뒤에 벌어진 7회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2석, 바른미래당은 0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남북평화무드의 바람에 밀린 것이 컸지만 자유한국당은 탄핵 정당의 이미지와 홍준표 대표의 발언으로 인한 각종 구설수로 이미지가 추락했고 바른미래당에선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의 공천 갈등으로 공천 혼란이 벌어지는등의 행동이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결국 한국당에선 비박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며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고 미래당에서도 유승민 공동대표가 사퇴하며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등 두 보수정당이 모두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후 시간이 지나 자유한국당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퇴임하고 자유한국당의 신임 대표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을 선출한다. 바른미래당에선 신임 대표로 새누리당 출신이 아닌 국민의당 출신이던 손학규를 선출하며 두 정당의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체제는 처음엔 잘 순항하며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 대표의 높은 지지율이 이어지며 이낙연 총리를 앞지르는등 순풍이 이어졌다. 반면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체제는 자유한국당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며 당내의 대주주인 친안계와 친유계 모두에게서 점점 신임을 잃게 된다. 결국 이후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1석을 차지한 반면 바른미래당은 의석을 얻는데 실패하며 손학규 대표의 사퇴가 빗발치는등 분열이 시작된다.[5]
이후 또다시 시간이 흐르며 조국 사태등의 문재인 정부의 악재로 인해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을 크게 올리며 반등한 반면[6]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를 둘러싼 분열로 인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등 보수내전의 승패가 서서히 자유한국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내분 끝에 사실상 공중분해 절차를 거치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당주였던 안철수 전 의원은 국민의당(2020년)을 창당해 나갔고 바른정당의 당수였던 유승민 전 대표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자유한국당은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두 정당에 통합 요청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에 비해 통합 논의는 각 당의 힘겨루기로 인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지막에 들어서 새보수당의 당주나 다름없던 유승민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보수통합은 빠르게 물살을 타게 된다.
4. 결과
2020년,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으로 나뉘어 있던 보수정당들은 미래통합당을 신설합당하며 보수 통합을 내걸면서 새누리당 분당 사태는 마무리되었다.[7] 미래통합당과는 별개로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같은 친박 정당이 남아있었으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외정당이 되며 정리되었다.[8]
두 보수정당의 분열 사태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보수의 적통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결과적으론 바른정당의 후신인 새로운보수당이 사실상 자유한국당에 흡수통합되는 형식으로 합쳐지면서 자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는 모양새가 되었다. 다만 통합 이후의 이야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데, 미래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반성과 자조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고 이 과정에서 기존 바른정당계가 지도부를 차지해 당의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9] 이런 이유로 어느 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는지에 대해선 현재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판단은 각자가 하기를 바란다.
5. 관련 문서
-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 비상시국위원회
- 바른정당 탈당 사태
-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 바른미래당 분당
- 새누리당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미래를향한전진4.0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1] 분당 형성이 완성된 시기는 바른정당이 창당된 2017년 1월 24일로 본다.[2] 엄밀히 말하자면 새누리당 분당 사태 이후인 자유한국당 시절에 창당되었다.[3]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한 상태였다.[4] 사실 친박계 입장에선 유승민은 박근혜를 배신한 역적중의 역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라 애초에 선임될 가능성이 적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로 인해 유승민 비대위 요구는 새누리당을 탈당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많았다.[5] 여담으로 이때 재보궐선거에선 자유한국당과 정의당과의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바른미래당 후보의 3% 잠식으로 인해 한국당이 정의당에게 의석을 1석 빼앗기는 등 보수 분열이 미치는 영향을 여김없이 보여주었다.[6] 물론 조국이 사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지지율이 다시 빠져나갔다.[7] 다만, 미래통합당은 9월 초에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며, 신한국당의 기록을 깨고 대한민국 보수정당중 '''가장 짧은 기간 동안의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8] 이에 앞서 신 새누리당이 창당되었으나, 이쪽은 진작 대한애국당이 갈라지면서 원외정당이 되었다.[9] 물론 바른정당계만 등용된다는 소리는 아니고 기존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지도부에 포함되었다. 다만 전에 비해서 바른정당계가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