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
周大煥
1954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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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54년 6월 1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마산성호초등학교,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9년 부마민중항쟁 등으로 구속되었다.[2]
노회찬 등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91년 9월 29일 '회사의 노동자 정당 건설 전략에 재고를 요청함'(통칭 '신노선')이라는 문건을 발표했는데, 이 문건은 인민노련이 지하조직운동을 청산하고 합법적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2년 노회찬 등과 함께 가칭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약칭 한국노동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3] 한국노동당 창준위는 김문수, 이우재가 주도하던 민중당에 합류하여 통합민중당이 되었으나 1992년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자동해산되었다.
1995년 노회찬과 함께 개혁신당에 입당해서 창원 을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마산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5월 사회당 최혁 부대표와 비밀리에 통합 협상을 진행중이었음을 밝혔다. 이 협상안은 민주노동당 중앙에 보고되었으나 상부로부터 묵살당했다고 한다. 기사
2002년 8월 김호일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하여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정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정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6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정책위의장 선거 토론회 도중, 경기동부 계열 이용대 후보에게 북한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여 당내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관련 기사
2006년 민주노동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문성현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4]
2008년 3월 24일, 심상정 비대위의 종북주의 청산 주장을 NL계열이 거부하면서 평등파가 집단적으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분당 사태가 벌어지자 주대환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5] 다만 다른 평등파들과는 달리 진보신당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주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1월 27일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6]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창원시 성산구(권영길 의원 지역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선을 치뤘지만 탈락했다. 대선경선 당시 손학규 캠프에 소속된 경력도 있다.[7]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 될 때까지 당적을 유지하다가 2015년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기 위해 탈당하였다. 하지만 이후 국민의당으로 합류했고 이후 바른정당과 합당한 후에는 바른미래당에 있었다.
이후 2019년 6월부터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을 맡았다.
2019년 6월 28일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4일 만인 7월 11일 전격 사퇴하였다.# 손학규 대표의 지명으로 임용되었는데,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에서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의 연합으로 당권파의 반대를 '''5대 4'''[8] 로 꺾고 손학규 대표체제의 퇴진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의결하였기 때문이다. 주대환 혁신위원장은 반대표를 던졌으나 안건 통과를 막지 못했다.
이후 미래통합당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을 도왔다.
3. 선거 이력
4. 소속 정당
[1] 2013년 이후로 갱신 없음[2] 출처 미디어스 기사[3]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68912.[4] 문성현은 원래 심상정과 함께 활동하던 PD(정파) 출신이지만, 이 선거에서는 마땅한 당대표 후보가 없던 NL계열의 몰표를 받고 당선되었다. 이후 사실상 바지사장으로 전락한다.[5]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20243[6] 출처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0253[7] 당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자 손학규 캠프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출신의 좌파운동가들을 대거 영입해서 대단히 진보적인 정책공약을 만들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저녘이 있는 삶'이란 구호도 이들이 만든 것이다.[8]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 구성이랑 같다. 최고위원회는 바른정당계 4(하태경, 권은희, 이준석, 오신환), 안철수계 1(김수민)와 당권파(손학규, 문병호, 주승용, 채이배)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9] 민주당과 신설 합당[10]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1]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