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으로 17~20대 국회의원(대구 동구 을)을 지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중,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최장집 교수의 제안을 받고 정책기획위원회에 참여하여,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계획안을 제안하였다. 또한 포스코 경영진단반 10인의 일원으로 포스코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것은 반영되어서 2000년 포스코 민영화가 단행되었다. 하지만 1999년 최장집 교수가 조선일보의 사상검증 파문으로 정책기획위원장을 사퇴하자, 유승민도 물러나게 된다. 이후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영입제안을 받고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를 맡게 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과의 마찰 끝에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박근혜 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지며 새누리당을 탈당, 바른정당의 대선주자로서 4위로 낙선한다. 대패하긴 했지만 탄핵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던 새누리당 출신으로 마지막에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바른정당 대표로서 국민의당의 안철수와 통합을 진행했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해 공동대표를 맡게 된다. 그러나 지역기반이 전무하던 바른미래당은 7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결국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직을 사퇴하게 된다. 이후 손학규와의 갈등으로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 자유한국당과 합당하며 미래통합당으로의 통합을 이루었다.
21대 총선에선 보수통합의 진행을 위해 불출마를 선언했고, 동구 을의 지역 기반까지 잃을 가능성이 언급되었지만, 동구 을은 같은 친유 출신인 강대식 전 대구 동구청장이 차지해서 큰 타격은 없었다. 총선에서 타 세력들이 붕괴하는 폭풍에서 본인과 인연이 맺힌 친유만큼은 대거 생존하며 고질병이었던 약한 당내 세력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힘을 가지고 현재 제20대 대선의 잠룡으로서 언급되고 본인 역시 2020년 5월 26일 대선에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그리고 11월 18일, 대선 출마를 정식으로 공식화했다.
2. 생애 및 정치 경력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10] ,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0년 2월에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 동구 을이다.[11]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친유계 수장이며 정병국과 같이 친유계 핵심인사이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완전히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반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히고, 수많은 친박 의원들의 반대로 인해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지역 정계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외에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 야당과 같이 인양해야된다."'''의 연설로 인해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떻게 되던 간 두 발언 모두 박근혜, 황교안, 친박에게는 아킬레스건 수준의 발언이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계와 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영의 열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 뒤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탈당 러시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 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박주선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이후 장고에 들어가면서 주요 정치적 발언을 삼가하고 정쟁을 멀리하였으나 7대 지선 이후 손학규를 비롯한 당권파와 갈등하다가 결국 옛 바른정당 구성원들과 같이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자유한국당과의 통합 요구가 많았지만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며 거절하다가, 당내의 강한 요구에 의해 선거 연대를 제안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결국 본인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신설 합당을 주장했고, 그 결과 미래통합당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뚜렷한 당내 리더쉽과 스킨쉽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재 과감한 대권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청와대와 정부, 여당 그리고 여권 대권 주자들과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3. 사상 및 견해
- 국가보안법 전면 개정이나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의 체제전복을 꾀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률적 장치로서, 북한이 이러한 전략을 항구적으로 포기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전면 개정 또는 폐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 외교안보정책의 경우 대표적인 친미파이다. 일단 본인부터가 미국 유학파이며 UC 샌디에이고에서 교수까지 한 인물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친중 정책을 고수하는 것을 꾸준히 비판했으며, 그 와중에도 한반도의 사드배치를 강력하게 주장할만큼 친미 반중 성향을 보인다. 또한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북한에 폭격을 주장할만큼 대북 강경파이기도 하다.
- 양심적 병역거부는 반대하며 그에 따른 대체복무 역시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역 복무기간의 2배 이상 등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허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현재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체복무안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현재 여론이 사형제 존속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사형제의 완전한 폐지는 국민적 합의가 어느정도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 해군력 강화에 대체로 호의적이며, 2012년 예산안에 해군력 강화를 위한 방사청 연구 용역 발주를 주도했다.[12] 해군의 KDX-3이지스함 3척 추가 건조가 결정되기도 전에, 국방위 재량으로 관련사업 연구를 위한 착수금 명목의 예산을 배정한 적도 있었을 정도. 또한 그 이후에도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에게도 꾸준히 이지스함 조기전력화 관련 소요를 제기하였다. 방사청, 이지스함 의지 없나? - 유승민 의원
-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 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13]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영국을 포함한 유럽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14]
- 모병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 이유로 모병제를 시행하면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합법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고 결국 가난한 아이들만 전방에 가서 나라를 지키게 되는데, 단지 경제적 이유로 가난한 자제들에만 현역병으로 복무를 하게 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현실적으로 모병제를 하게 되면 예산도 문제고 국토 방위에 필요한 충분한 병력수가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 실제로, 군인의 대한 대우가 국가적으로도 사회 문화적으로도 좋은 미국도 병역 자원의 5% 내외만이 군에 지원한다.[15]
-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 자유보수주의적 중도우파 정치인답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배척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트랜스젠더가 군 복무하는 것에 대한 제한을 두자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고, 본인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없는 편이다. 그러나 동성결혼 합법화나 동성애자의 입양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보인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성소수자의 인권 중 군 복무에 대한 제한 등이 생길 수 있어서 부분적 찬성을 하는 입장이다. 낙태에 대해서는 낙태 금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입장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을 존중하되, 일부 제한은 둬야 한다는 입장이고 낙태죄의 대상이 되는 낙태한 여성들의 처벌이 지나치다고 하는 입장이다.##
3.1. 공화주의자
한국의 보수성향 정치인 중에서는 대표적인 시민적 공화주의자[19] 다."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조국은 이 토대 위에 건립한 이념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사상이며, 그 땅의 자식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다. 당신의 형제 중 어느 하나라도 투표권이 없어 나라 일에 자신의 의사를 전혀 반영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교육받은 자들 사이에서 교육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한,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고 또한 일하고자 하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가난 속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야 하는 한, 당신에게 당신이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조국은 없다. 모두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바로 그 조국을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 굉장히 맞는 이야기인데, 이 말은 20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독립 운동을[18]
하던 유명한 공화주의자였던 주세페 마치니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마치니의 조국에 대한 이 개념을 읽어보면서, 저는 이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좌파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여 논란이 있다. 그런데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과거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의 모습이 강했는데 재벌 정책에 대해서는 입장의 변화가 없고 다른 나머지 경제, 복지, 노동에 대한 생각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많은 지역구 주민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접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장 동력이 점점 쇠진해가고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 위기 등의 여파로 점점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전통적인 보수의 방법과 노선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그의 신념인 공화주의 자체가, 사민주의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다.[20] 보수 성향 의원 중에서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일부 보수 진영에선 유승민을 강남좌파, 가짜보수로 평가하기도 하고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은 '''"의견이 다르고 진영이 다름에도 학자 출신이라 그런지 말이 통하고 다른 보수들과 다르게 대화가 가능한 내가 인정하는 보수다"'''라며 긍정적으로 평했고[21] 반대로 보수 논객이자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유승민은 좌파"'''라고 평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2017년 2월 2일 썰전 방영본에 의하면, JTBC 신년 토론 이후에 심상정으로 부터 "정의당 와도 자리 없다"는 농담 문자를 유승민이 받았다고 한다(...)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 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식되지만[22]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23] ,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좌우 둘 중 양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김부겸[24] , 박지원[25] , 노회찬 등 민주당계, 진보성향인 정치인도 높게 평가할정도. 다만 기존의 보수에 대해 '낡고 부패했으며 기득권 편만 들어서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는 한편 진보에 대해서는 '나라의 곳간이 무한한 것처럼 말하고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두 진영 모두에게 비판받기도 한다.[26]
이외에 따뜻한 보수, 따뜻한 공동체의 표현을 봤을 때 1970년대 신보수주의 등장 이전의 서구의 온정적 보수주의 이념을 엿볼 수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유승민이 말하는 개혁보수는 온정적 보수주의의 분파인 진보적 보수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즉, 유승민이 말하는 공화주의 이념, 온정적 보수주의 이념, 진보적 보수주의 이념은 하나로 연결시키며 체화한 것이다. 국가별로 얘기하자면 미국식 보수주의가 아니라 유럽식 보수주의에 속하며 그 중 영국식 보수주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유승민이 자주 인용하는 인사들은 에드먼드 버크, 데이비드 캐머런[27] 같은 영국의 정치인들이며 유승민이 자주 인용하는 정당 역시 영국의 보수당이다.[28]
따라서 유승민은 개혁적 보수, 즉 온정적 보수주의의 한 분파인 진보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시민적 공화주의자, 자유보수주의[29] , 경제적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3.2.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 경제정책 관련
2분 19초 부분
저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희 새누리당의 공약이었습니다. 문제는 134조 5,000억 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반성합니다. (중략)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000억 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31]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3분 4초 부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중부담 중복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부담과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 수준을 장기적 목표로 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낮은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야 간에 중부담 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6분 37초 부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에게 던집니다. 저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습니다. 15년 전 제가 보수당에 입당한 것은, 제가 꿈꾸는 보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1분 20초 부분
10년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습니다. 양극화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분의 통찰을 저는 높게 평가합니다.
15년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후, 2개월 만의 15년 4월 첫 원내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력이 있고, 동시에 양극화 문제 해결, 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해 중부담-중복지 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그를 위해 보편적인 조세 형평성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하였다.[32]35초부터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중략)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5년 6월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 모두발언 中
하지만 이는 유승민이 국회법 개정안 관련 논란과 합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찍박'(찍힌 친박)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20대 총선까지 충돌이 이어지며 공천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일게 된다. 이 연설 당시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라는 단어는 이후 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박사모 등 친박 단체에서 유승민을 언급할 때 두루 응용되는 표현으로 회자되게 된다.
이 원내대표 연설문은 당시 여의도에서 '다시보기' 열풍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당시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2016년 국회의원 출마선언을 했던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이 연설문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언론인 출신인데 제정신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여담이지만 후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들의 연설 때마다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다. 당시 유승민이 발언할 때는 오히려 야당들이 박수까지 쳤던 모습과는 달리 후임 대표들의 연설의 경우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면 여당은 몰라도 다른 야당들이 어느 정도 동조를 해주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당(민주당)은 비웃거나 반발하고 다른 야당들은 '저게 뭐냐' 는 반응이니 무게감 있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두루 공감받던 유승민 의원의 연설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33]
후임인 문재인 정부에서 확장재정을 추진하는 데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신재민 사무관보다 못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세금 주도 성장" 등 페이스북을 통해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시절의 자유주의적인 경제관을 버렸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 이 분도 시장경제의 기능을 경제의 중심으로 보고있고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발생 시, 전 국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문재인과 황교안을 비판했다.[34][35]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부동산 규제정책과 같은 경제적인 규제남발에 대해 비판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앙겔라 메르켈, 맬컴 턴불과 존 키 전 뉴질랜드 총리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다.
3.3. 외교안보정책 관련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 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 19대 국회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 여, 야 초선 "유승민, 신계륜 의원, 일 잘해"(노컷뉴스)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 정출연 연구원 + 교수 출신의 경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상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 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37] 또한 후반기에는 원내대표직 수행에 따라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경제 전문가인데요, 알고보면 군사적 식견이 엄청나다. 군사적 식견과 전략이 대단하신 분이다. 그리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여, 야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균형 감각이 뛰어나신 분.
특히나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이자 저격수였던 유승민이 국방위로 자리를 옮기자, 그야말로 국방부와 군 장성들을 압도하는 논리와 날카로운 질의로 화제를 모았다. 예를 들어 2009년 1월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제2 롯데월드 관련하여 공군참모총장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발언으로 반박하게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빌딩을 위해 활주로를 조정한 사례가 있나? 라는 질문에 이계훈 총장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자 유승민 의원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공군에서 대만의 101 빌딩과 송산 공항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활주로를 튼 게 아니고 항로 변경을 한 것이다. 그 항로 밑에 육군 부대가 있었는데 보안 문제 때문에 군부대를 이전했다''' 라고 팩트 폭격을 시전하여 총장을 데꿀멍 시키기도.유승민 의원: 동쪽 활주로를 3도 틀면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이계훈 공참총장: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 이 문제를 지난 15년 동안 반대해온 여러분 선배들은 거짓말 하나? 누가 맞는 건가?
이계훈 공참총장: 활주로 3도 조정과 항행 안전시설, 안전 관련 장비를 보강하는 조건을 충족했을 때...
유승민 의원: '''활주로 3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안보 작전 안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계훈 공참총장: (당황) 네.
경제, 국방, 외교 통상의 삼박자를 고루 거친 탓에 각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가급 식견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그 때문인지 국방 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간간이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모 신문사에서 매년 평가하는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유승민 의원은 항상 최상위권에 등재되어 유승민 의원의 국방 관련 식견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 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었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 질의에 외교장관, 통일장관 진땀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북핵 대비용으로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주장한 정치인이다. "'국내 예산으로 THAAD를 '''도입'''해 한반도 전체를 커버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 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 방어 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 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 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 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식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 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군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사드 2~3포대 추가 배치를 주장하였고, 후에 성주군 배치로 결정된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사드,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연합뉴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해 방중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며 굴욕 외교를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2015년 북한 목함지뢰 도발 당시, 국방부의 '확성기 강화' 지침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해 놓고, 이제까지 한 게 확성기 재개한 것이냐"''' 며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하였고, 사고 후 아무 일 없다는듯이[42] 통일부에서 북한에 회담을 제안한 사태를 보고 '''"좀 정신 나간 짓 아니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보수진영의 대표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이것이 정치다> 1월 5일자에 유승민 의원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유승민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하여 미사일 발사 종류와 사거리, 사격 고도 및 발사 각도, 그리고 미사일 발사 기지 위치 등의 자료를 만들어와 전원책 변호사 앞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사드 배치 관련 타당성 주장을 하였는데, 전원책 변호사는 "이건 정말 정확한 자료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등으로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 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 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 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육군 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 공약으로 군 의문사 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또한 천안함, 연평해전 유족들은 물론이고, 각종 군 관련 사고 영결식장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한다. 모 네티즌은,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고 영결식장에 정치인들이 방문해 유족들과 사진 찍고 5분 내로 가기 바빴는데,''' 한 노신사가 투벅투벅 보좌관도 없이 걸어와 유족들을 1시간 넘게 위로했고, 그게 유승민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 발의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 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 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UAE 파병'' 결정, 문서 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 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태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19대 대선 출마 시에도 국방위원회에서 8년, 그리고 국방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게임 체인지(Game change)를 선도하는 최강군의 구축, 그리고 북을 억제하기 위한 한국형 상쇄 전략(Korean Offset Strategy) 채택을 토대로 미래지향적 국방 태세 구축을 내걸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사드 '''1대당 10억 달러'''를 부담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트럼프 사드 10억 달러 지불해야 이에 대선 토론에서 문재인, 심상정 후보가 사드 관련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심지어 문재인 후보가 유승민 후보에게 '''"이거 어떡할 거냐"'''라고 대놓고 따지자, 유승민 후보가 밝힌 견해는 이렇다.
'이미 돈을 미국이 대기로 합의를 하고 끝난 사안이라서, 우겨도 돈을 줄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사업(비지니스)을 한 사람이라, 속칭 '지르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즉,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방위비 분담 쪽으로 얘기가 올 듯하다.'''[44] 내가 대통령 되면 이거 협상해서 잘 해결할 거다." 라는 것. 실제로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 협상과 각종 통상 압박에 맞물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업자끼리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 이라는 주장으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대선토론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배치 조기 완료와 추가 도입을 주장했고, 전략성 모호성이라는 개념과 국회비준 운운하는 문재인 정부를 '''사드 배치를 왜그리 머뭇거리냐''' '''운동권식 사고로는 국정 망친다''' 고 거세게 비난하였다. 그 이후 북한의 잇다른 ICBM 도발과 6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결국 9월 7일 사드 배치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문제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찬성' 의 입장이었다.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신한 밀약''' 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였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나, 2017년 8월 군사정보 보호협정은 연장되었다.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 당시에는 사고 당일 밤에 정계에서 가장 먼저 포항 제1해병사단을 찾아 유가족들을 면담하고 위로하였다. 비공개로 방문하였기에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통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소재, 부품, 장비는 한마디로 일본 기술 경쟁력의 결정체다. 일본, 독일, 미국과 같은 나라는 산업의 뿌리를 장악하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고 그 기술로 이들은 세계를 제패했다"며 근본적인 산업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북한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서는 강경 일변도인 이유가 무엇인가. 말만 강하면 진정으로 강한 것인가"라며 문재인 정부의 반일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경제 보복에 나선 일본의 비이성적인 행태는 치졸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라고 비판했다. #
2020년 3월 26일에도 10주기를 맞는 천안함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46일만에 정치 활동을 재개했는데, 우연히도 천안함 피격 사건 희생자들도 46명이다. 원래 꾸준히 천안함 생존 장병에 대한 지원을 도왔고, 관련 법안 발의까지 꾸준히 하던지라 유가족들과 화기애해한 분위기로 지냈던 것은 덤.
4. 친유
5. 상훈
- 2019 제21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 2018 제20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 2017 제1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 2016 제18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대상
- 2015 제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대상
- 2015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 제1회 머니투데이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 2014 제16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14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3 제15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11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0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0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우수의정활동부문
- 2009 제11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08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4 바른사회시민회의 국정감사 정무위원회 우수의원
- 1991 경제기획원 장관 표창
- 1991 국무총리 표창
- 1987 Dissertation Travel Fellowship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 1986 Distinguished Teaching Assistant Award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 1982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공로상
6. 어록
'''보수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재벌대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백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받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제가 꿈꾸는 보수는 그런 보수가 아닙니다.'''
'''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45]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2015년 7월 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연설 中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길을 용감하게 가겠습니다.'''
2016년 3월 23일 새누리당 탈당 기자회견 연설 中 유승민의 정치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2016년 3월 23일 새누리당 탈당 기자회견 연설 中
'''너무 계산하지 않고 원칙과 명분대로 하겠다'''
2017년 3월 29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은 '정치적 스승'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예방 유승민 '정치 스승' 이회창 예방…"원칙이 중요…계산 않겠다"
'''오늘 이제 바른정당에서 국회의원 13분이 당을 떠났습니다. 참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힘든 것보다는, 우리 많은 국민들께서 정말 힘들고 팍팍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시고, 그분들을 위해서 제가 늘, 매일 매일 저 자신에게 묻는, ''나는, 우리는 왜 정치하는가.'' 그분들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5월 3일 19대 대선 토론 中[46]
#
'''희망은 한여름날 쏟아지는 태양이 아니라, 시린 겨울에 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은 옵니다.'''
2017년 11월 13일 바른정당 당대표 수락 연설 中
'''지금부터 모든 책임은 대표인 제가 다 지겠습니다.'''
2017년 11월 13일 바른정당 당대표 수락 연설 中
'''경제와 안보,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데 정작 문 대통령이 가장 집착해온 것은 과거와의 싸움,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다. 전범 김일성의 손자,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에게는 '오지랖 넓다'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저렇게 따뜻하게 관대하게 대하는 우리 대통령이 왜 자기나라 국민·야당·전직 대통령에게는 모질게 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19년 5월 9일 페이스북 #
'''저는 오래 전부터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세금주도성장'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중략) 혁신성장은 그저 말 뿐이고, 혁신을 위한 노동개혁, 규제개혁, 교육개혁, 인재양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2019년 5월 17일 페이스북 #
'''국채담당 기재부 사무관은 나라빚을 줄이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대통령은 왜 나라살림을 위험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까. 신재민 사무관보다 못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2019년 5월 20일 페이스북 #
'''땀흘려 노력해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룰 때 거기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이러한 신뢰 위에 우리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이 최소한의 믿음이 무너지고, 권력을 잡은 저들이 그토록 배척하던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는 거다. (조국 교수 딸) 논문 사건의 가장 큰 죄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꿈을 짓밟은 죄다. 특권과 반칙이 노력과 실력을 짓밟은 것이다.'''
2019년 8월 22일 페이스북 #
7. 여담
- 원래 흡연자였으나 2020년 총선이 끝난 후에 금연하였다고 한다.
- 유승민은 이회창의 제안으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유승민이 바라는 것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어서 본인이 경제수석이 되는 게 목표였다고... 관련 기사 즉 본래부터 유승민은 본인이 배운 경제학을 현실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회창이 예상치 못하게 패배하면서 계획이 흐트러졌고 이는 유승민이 정치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박근혜를 주군이나 상전으로 여긴 적이 없고 동등한 관계인 정치적 동지로 여겼다고 한다. 물론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만큼 존대는 했지만 그것이 전근대적인 의미로의 충성심은 아니었다고. 때문에 2005년 세번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때, 할말은 하겠다는 조건으로 9개월간 수행했었다. 이 시기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에서 손 떼라고 조언했으나 박근혜는 비서실장이 그런 거 신경쓰지 말라 했고, 이때부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 자신을 유'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47][48][49]
- 100분 토론에서 대표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언변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기본적으로 언변이 뛰어나고, 만렙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며 경제 지식에서 유시민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정치적인 공방에서도 유시민이 밀리는 분위기였다. 어찌보면 당시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여당 입장에서 여러 비판을 받는게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위 토론의 주제는 정책에 관하여 여러가지 사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었는데, 실리를 따지는 논쟁(ex 수도권 공장총량제)에서 불리해지면 철학적 소견(국가 균형발전)을 이유로 회피하고, 옮고 그름을 논할 때(출자총액 제한제도) 불리해지면 갈라파고스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재벌주도의 경제구조)에 불가피한 이유를 들며 회피하는 유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국회가 국회 공성전을 한창 벌이면서 난장판이 된 도중 정봉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몸싸움이 빚어진 적이 있는데, 정 의원이 젊은 시절 쿵후와 권투를 배웠고 고등학생 때 일진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전투적이었던 몸인지라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다. MBC 뉴스 정봉주 의원을 제지하러 움직인 인물은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다.
-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당대표를 하던 시절 유승민이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이회창의 밑에 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연설문 초안을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껏 만든 초안은 박근혜가 늘 어딘가로 갖고 가서는 연설문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연설문을 막장으로 개조한 원흉은 최순실. 그걸 안 전여옥은 누군가 했더니...라고 반응했다. 그냥 그 연설문 초안 그대로 했어도 담당자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중박은 쳤을 텐데 말이다.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유승민이 비서실장이었던 시절 쓴 연설문을 하나도 안 고치고 그대로 읽었던 것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 연설뿐이었다고 한다.
-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한 몸인 만큼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에 대해서 박근혜 옆에 있던 다른 무리들처럼 기껏해야 옆에서 아양 떠는 환관이나 간신배로 여겼지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휘두르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전여옥도 최순실이 철부지 옆에 상궁이 나타났다고 여겼지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부리는 수준이었다는 건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나고 난 이후에야 알았다고.
- 유명 정치인 중에 임플란트로 가장 잘 알려진 건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 치아가 빠진 문재인이나, 사실 덜 알려져서 그렇지 정치인의 대량 임플란트 원조는 이 사람이다. 본인이 공개한 것만 15개 이상이라고 한다. 2002년말 40대 중반에 이회창 후보의 선거본부 활동때부터 치아가 빠지기 시작해 만 50살 직전인 2007년 박근혜 경선 선거본부 시절까지 심각한 치주염으로 잇몸이 마구 망가져서 15개 이상이 빠졌다고 한다. 50년도 살기 전에 웬만큼 치아잇몸 안 좋은 사람도 겪기 힘든 수준[50] 의 치아손실을 겪었다. 대통령이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래 앞니는 전체가 임플란트고 어금니도 여러개 없어 다 임플란트라고 한다.[51] 그 이후에도 상당한 치아손실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남은 치아가 10개도 안된다고 알려진다. 심지어 저 시기를 한참 지난 이후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유승민이 원내대표가 되어 심하게 정치적 갈등을 빚었던 시절인 2015년, 청와대 만찬행사 초청이 오자 껄끄러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유승민이 거절하며 청와대측에 밝힌 명목상 이유도 '임플란트한지 얼마 안 돼서 만찬하기에 잇몸이 불편하고 몸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었을 정도다.[52] 정말 임플란트로 불편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대량손실 이후에도 계속 치아가 조금씩 빠져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온 것만은 팩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2013년 대구의 대구테크노파크(TP) 측에서 대구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골프 접대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유승민의 보좌관 A가 연루되었다. # 이에 유승민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해당 보좌관을 즉시 해임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 하였다. 이 사건에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16년 9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1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2016년 9월 19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2017년 2월 16일 뉴스룸 2부 대선 예비주자 검증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경남 합천군에서 진도 2.9의 지진이 났다고 한다.[53] 급작스럽게 지진 이슈에 대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했는데, 준비도 안 되었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대응 문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국회 지진안전 예산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원전 현황을 이야기 할때는 원전 소재지역과 가동, 건설 중인 원전의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진예측시스템, 원전 소재지의 단층파악문제까지 언급하는 등 디테일한 사항까지 꿰뚫고 있어 뉴스룸 시청자들은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6년 9월 19일 뉴스룸
- 하태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유목민 역의 장도윤을 직접 만났다.[54] 장도윤이 딸인 유담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인지라, 아들처럼 반가워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장도윤은 유담보다 1살 어린 1995년생이라, 유담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 볼프강 프록쉐 (Wolfgang proksch) 안경(독일산)을 사용한다.
-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내에서 친박과 복당파(친무, 친이)간의 갈등이 다시 심화되면서 대부분 친박 인사들은 복당파인 김무성과 친무, 친이를 비난하면서 유승민 본인과 친유가 소신 있다고 재평가를 받고 있다.[55]
- 사적으로 정두언 전 국회의원하고 친분이 깊다. 첫 인연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이회창 캠프에서 일하던 것이 계기로, 이 때 서로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두언은 이명박의 편이었고 자신은 박근혜 진영이라 서로 대립했지만 친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56] 인터뷰에서 유승민의 행적에 대해 정두언이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적으로는 여전히 친한 사이라고...
-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57]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근거리에서 정책 개발, 연설 및 메시지 담당을 한 적도 있다. 자신의 연설문은 직접 쓰는 것은 물론 의원실 명의로 나가는 보도자료도 대부분 본인이 직접 쓴다고 알려져 있다.[58]
- 친박에게 비난을 받지만 반대로 청년층에게선 크게 호응을 받고있다. 함께 보수의 대선주자로 꼽히는 홍준표 역시 20대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나 홍준표의 경우 그 20대층 사이에서도 오직 남성층에만 지지받는데 비해서 유승민은 여성에게 역시 균형잡힌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실제로도 19대 대선에서 당시 바른정당의 3배에 달하는 의석수와 튼튼한 지역기반을 가진 자유한국당의 일방적 밀어주기를 받았음에도 홍준표가 유승민보다도 청년층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19대 대선 투표율
- 한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한편,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며 본인은 상당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혜훈 전 국회의원, 민현주 전 국회의원,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한국개발연구원의 워킹맘 연구원들을 돕는 등의 배려를 했다고 한다.[59] 페미니스트로 분류하자면 현대 한국의 주류인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아니고 리버럴 페미니스트나 이퀄리스트에 가깝다. 또 본인이 여성 정책을 늘 저출산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으로 보아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60] " 뜻으로 썼을 가능성도 높다.
- 얼핏 봐서 친박과 비박의 관계가 나쁘고 또 한 때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으로 다른 정당에 속했지만 추경호 국회의원과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일단 공통점이 많은 게, 기획재정위원회 근무도 같이 했고, 둘 다 대구에 기반을 둔 경제통, 금융통, 재정경제통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있다. 유승민 국회의원의 마지막 시간 때 서로 포옹하기도 했다. 친박인 추경호와 친유의 수장인 유승민이 사이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이 드러났다.
- 국회의원 재임 시기 옆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태옥과는 사이가 되게 좋지 못한 편이었다. 애초에 정태옥이 친유 출신인 권은희를 꺾고 친박의 등을 업고 공천을 받은 것, 이부망천 당시 비판한 것과 이에 대해 정태옥이 유승민을 비난한 것 등으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나마 추경호와 유승민은 친박과 친유의 관계를 커버할 공통점이 있었는데 정태옥과는 그 것이 전무했다.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과 같이 미래통합당으로 재창당 할 때 반대한 정치인 중 하나가 정태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태옥의 의도와 다르게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재창당했고, 친유 출신 정치인들은 미래통합당에서 공천받고[61] 정태옥 본인은 컷오프 되었다. 대신 당 내 계파 색이 옅은 양금희가 본인의 국회의원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결국 정태옥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낙선하고, 유승민의 당 내 입지가 상승하게 되었다.
-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유승민이 빵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019년에 조국이 그걸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국 ‘케이크 귀가 사진’ 연출 의혹, 1년 만에 올린 페북 해명엔… 각도와 상황등이 상당히 유사하며 다른 점이라면 조국의 자세는 유승민이 찍힌 자세보다도 카메라에 나오기 좋은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받았다. 다만 조국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우연일 수도 있어서 진짜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연출했는지는 또는 단순한 해프닝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차가워보인다는 인상과 다르게 의외로 좀 노는 편이다(...) 유승민은 차가워보인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부인하며 평소에 술도 잘 마시고 잘 놀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였다.
-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새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당해 미래통합당이 탄생하면서 유승민은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런데 이때 정계에서 유승민의 종로 출마설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서 도는 그냥저냥한 뜬소문으로 치부되었으나 훗날 유승민이 종로 출마를 고민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황교안 대표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 출마를 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7.1. 가족 관련
-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사망 때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부친인 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축출된 것은 2대에 걸친 악연인 셈이다.
- 유승민 의원의 친가는 영주이며 외가는 안동인데, 유승민 의원의 외삼촌인 강일원씨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하여 학생 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이다.
- 유승민 의원의 아들인 유훈동씨가 입시준비를 위해서 논술학원에 다니려고 했는데, 입시에 필요한 요령만 가르치는 학원은 안 좋다고 유의원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원 보내는 대신 유승민 의원이 직접 논술을 가르쳤다고... 결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합격.
7.1.1. 딸의 인기
대선후보 유세 과정에서 친딸 유담이 언론의 미모 관련 기사 도배로 유명해져, 아예 독립 문서까지 생겼다.
7.2. 기자들 사이에서의 인기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백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세상 모든 일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현안이고 아니고 그런 거 없다. 편안하게 물어봐 달라.''' 정치부 3년 하는 동안, 이런 말을 한 정치인은 유승민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 프레시안 소속 최하얀 기자 -
심지어 대선출마 간담회 이후 참석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작성했던 특집 기사를 언급해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도 한다. 또한 대개 언론에서 국회의원 인터뷰를 할 때는 보좌진에게 질문 내용이 전달되고, 그걸 의원 본인이 추려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유승민은 그런 과정이 없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한다.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해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심지어 이로 인해 MBC에 미운털이 박혀, 그를 향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노조파업 지지했던 유승민에 대한 MBC의 꼼꼼한 뒤끝과 복수
당시 파업 중인 노조대표들과 면담하는 유승민. 심지어 당시는 2012년 총선 직전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심장과도 같은 대구광역시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시 정부에 반대되는 소신을 지킨 것.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토론회장 앞에서 시위 중인 언론노조와 대화하는 유승민
7.3. 우파 유튜버와 태극기 부대와의 갈등
유승민, 김무성 둘은 우파 성향의 유튜버들과 태극기 부대에게 가장 많은 공격과 비난을 당한 정치인 중 한명이다. 우파 유튜버, 태극기 부대, 친박, 강성 지지자들 등에게 주로 기존 박근혜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유래한 '배신자' 프레임으로 많이 비방을 당해왔다. 한편 비박계 정치인들 및 범친유계에서는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옳은소리하고 저항하는 것을 배신이라 표현하는 것은 부당하는 입장.김무성: 앞으로 내가 보수 유튜버들하고 싸우려 그래. 나쁜 놈들이야. 이놈들 전부 돈 벌어먹으려고 하는 놈들이야.
김웅: 아휴, 싸우지 마십시오. 제가 싸우겠습니다
김무성: 아니 유승민이가 뭐 잘못했나? 대통령 권력이 잘못됐으면 거기에 저항을 해야지, 저항했다고 유승민이 죽일 놈이라 그러고 탄핵가지고 나랑 유승민이 역적이라 그러고 매일 우리는 화형식 당하고 말이야. 우리 인형 만들어가지고 개 끌듯이 끌고 당기고 말이야. 그걸 다 전해들었는데 그때 소위 친박이라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나에게 찾아와가지고 탄핵하면 안된다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니까? 조원진이가 어디서 인터뷰 나한테 반대를 했는데 내가 뿌리쳤다. 전부 거짓말이야 한번도 나한테 온 일이 없어. (중략)
또한 선거 이후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당 대표가 극우유투버들을 당 행사에 초청하고, 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한다"''',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부대, 그런 낡은 보수 주장에 당이 끌려가는 모습은 고쳐야 한다."''', '''"사전투표 조작설, 그만좀 했으면 좋겠다."'''등의 언급으로 2013년 윤창중 대변인의 사퇴 요구 이후 다시 한번 극우파와 대립각을 세웠다.[62][63]
이러한 배신자 프레임은 이후로도 줄곧 유승민을 괴롭힌다. 현재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와 같은 소규모 온라인 디시 커뮤니티에서도 유승민에 대해 윾이라고 부르며 반 유승민 정서를 내보일 정도. 특히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는 반 친박 성향임에도 그렇다. 이러한 반 유승민 정서에 대해 서민(교수)가 분노하여 국개론적인 주장을 하면서까지 유승민에 대해 호평하며 "보수 유권자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게 진심이었다면 쇄신을 하겠다는 보수정당(바른정당)에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며 "(바른정당 지지율이 낮으니까) 추가 탈당이 없었고, 대선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이 괜찮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찍은 사람은 없었다" "보수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이 새로운 정당으로 쇄신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이것이 야당이 침체기를 겪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국민의 지지를 못받은 바른정당은 산산이 흩어졌고, 알 수 없는 경로를 거쳐 결국 국민의힘에 합류했을 때 이분들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며 성토했다. ##
8. 비판 및 논란
9. 작성 논문
10. 저서
11. 선거 이력
지방선거 출마 경력 없이 국회의원 선거를 4차례 치러 4전 전승을 거뒀다. 다만 지역구가 지역구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후 보수 정당의 재통합 속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엔 불출마를 선언했고 대신 그 자리에 공천을 받은 친유계 강대식이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4위로 낙선하였다. 거기에 더해 바른정당이 2018년 2월을 마지막으로 바른미래당으로 신설합당하면서 유승민이 바른정당 당적을 달고 주요 선출직에 도전한 유일한 케이스[67] 로 남았다.
12. 소속 정당
13. 방송 출연
- 대선주자 토론은 제외하였습니다.
- 040520 MBC 100분 토론 "한국경제 위기인가?" [70]
- 170102 JTBC 신년특집 대토론 "2017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 170207 MBC 대선주자 검증회 "대선주자를 검증한다! 유승민편"
- 170216 JTBC 뉴스룸 "유승민 '정권교체만 보는 묻지마 투표 안 돼'"
- 170220 SBS 대선주자 검증회 "대선주자 국민면접 5회 유승민편"
- 170305 채널A 대선주자 검증회 "청년, 대선주자에게 길을 묻다 유승민편"
- 170305 KBS 대선주자 인터뷰 "대선주자에게 듣는다 유승민편"
- 170613 KBS 냄비받침 이경규편 "유승민, 냄비받침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 170620 KBS 냄비받침 이경규편 "유승민,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 170627 KBS 냄비받침 이경규편 "유승민, 알고보면 조폭 영화 선호!"
- 200423 MBC 100분 토론 "보수의 길을 묻다"
- 210118 KBS 생방송 심야토론 "2021년 다시 정치의 길을 묻다"
- 210205 KBC 특별대담 "유승민 전 국회의원에게 듣는다"
- 210226 연합뉴스TV 1번지 현장 "유승민 전 의원에게 묻는 정치현안"
- 210228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집중분석 유승민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