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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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계
친손학규계'''

<colbgcolor=#F08C14> '''형성'''
<colbgcolor=#ffffff>2003년 ~ 2005년
'''해체'''
2020년
'''수장'''
손학규
'''정치적 이념'''
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1]
'''경제적 이념'''
'''?'''
'''주요 정치인'''



1. 개요
2. 상세
3. 안습의 역사
3.1. 2017년 이전
3.2. 손학규의 정계 복귀
3.3. 극적인 부활, 그러나...
3.4. 당권 포기
3.5. 공중분해
4. 소속 인원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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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학규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일컫는다. 소위 'OO동계'라는 이름 대신 그의 정치인생에 크나큰 임팩트를 남겼던 만덕산에 관련된 별명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니셜로 HQ라는 명칭은 나름 쓰기도 하므로, HQ계라는 표현은 가능성이 조금 있는 편.

2. 상세


과거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며 손학규가 데리고 온 인원과 민주당계에서 흡수한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때 민주당계 정당에서 친노 - 친문, 김근태계와 함께 최대 정파 중 하나였다. 과거 큰 정파였던 정동영계나 김한길계는 정동영의 박스떼기 의혹과 김한길의 잦은 탈당으로 결속력이 약해졌으나, 민평련으로 대표되는 김근태계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다시 커지며 확대된 친노, 그리고 별 다른 일 없이 유지되던 손학규계는 제20대 총선까지도 이찬열 등을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었다.
특이하게도 다른 계파에 비해 스펙트럼이 넒어, 범친노 그룹에 속하면서 손학규계거나 민평련이나 486계에도 손학규계가 있었다. 많이 와해된 현재는 친안, 김한길계, 친유, 친문, 친이재명계에도 퍼져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의외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오랫동안 손학규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2015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손학규가 정계복귀에 시동을 걸 때 이낙연 당시 전남지사가 공관에 초대해 막걸리회동까지 가지며 여러모로 손학규 모시기에 힘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손학규더불어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그 밖에 조정식,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손학규계 정치인이기도 했다.

3. 안습의 역사



3.1. 2017년 이전


2012년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2등으로 패배한 손학규가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지도부 책임론의 일환으로 경기도 수원시 병에 전략 공천되나 김용남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간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4.29 재보궐 선거에서 전패해 문재인 당시 대표의 지도력이 손상되자, 친노무현계에 대응하는 야권 리더로서 차기 대선 주자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이 일어나기 시작해 손학규를 다시 불러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2] 아무래도 더 큰 건에서 정계 복귀를 시도하려 한 듯 했으나... 20대 총선에서 김종인 - 문재인의 시너지와 박근혜 정권의 실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고 원내 1당이 된 데다, 실패할 것이라 점쳐졌던 국민의당이 당당히 원내 3당으로 입성하며 '''야권은 최고의 호재를 맞는다.'''
이렇게 되며 손학규계 의원들은 원내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나 안전하게 원내 3당으로 정착한 국민의당의 머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손학규계는 점차 계파의 색을 잃게 된다.

3.2. 손학규의 정계 복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손학규는 정계 복귀를 하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버린다. 뒤늦게 이찬열 의원이 그에게 합류하고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만드나, 손학규계 의원 중 이찬열 의원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누구도 탈당하지 않았다. 그후 이들은 국민의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나 손학규가 패배하며 '''끝난다.'''

3.3. 극적인 부활, 그러나...


이렇게 손학규가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하며 이들의 정치 생명은 끝난 듯 싶었으나, 2018년 9월 손학규가 바른미래당 대표로 당선되어 당권을 잡으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친안-친유 연합전선으로 대표되는 비당권파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손학규가 당대표로 당선되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에는 모두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가 선출되고, 원내대표에도 김관영의 후임으로 바른정당 출신의 오신환이 선출되면서 위태로운 입지에 놓였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패스트트랙 문제와 2019년 보궐선거 참패로 손학규의 리더십 문제가 불거나오면서 2019년에 이르러서는 비당권파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3.4. 당권 포기


바른정당계안철수계의 퇴진 요구를 견뎌내며 2019년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일조하면서 손학규 대표의 당내 장악력은 높아졌다. 이에 2020년 초, 유승민계는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다. 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계복귀를 선언, 손학규가 이에 화답하며 당내 분란을 정리하고 총선을 위한 제3지대 규합이 시작...'''되는 듯했다....'''
안철수는 손학규의 퇴진과 비대위 체제 전환을 요구했으나 손학규는 이를 거부했고, 안철수는 탈당해 국민의당의 창당에 돌입한다.

3.5. 공중분해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손학규와 바른미래당에게 제3지대 통합 압력이 가해졌다. 바른미래당은 당시 20석으로 교섭단체 하한선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1석이라도 잃으면 교섭단체가 무너져 소속 의원들의 원심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컸다. 특히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마저 자유한국당으로 떠나고 말았고 임재훈 역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하며 '''사실상 계파가 와해되버렸다.''' 그 후 그나마 남은 손학규계는 대부분 민생당으로 합류하였으나 이후 수장 손학규가 선대위원장을 맡은 민생당이 제21대 총선에서 '''0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음과 동시에 사실상 재기 불능에 빠져버리며 손학규계 역시 처음 계파가 발족된 2003년 이래 약 17년간의 질긴 생존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4. 소속 인원


정계 은퇴 후 여러 총선을 거치며 많은 세력을 잃었고, 21대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의 당내 분란으로 사실상 대부분 손학규를 떠나거나 은퇴, 낙선의 길을 걸었다.
손학규가 바른미래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 당내 계파가 재편되며 손학규의 영원한 충신이라 불리는 이찬열 의원을 비롯해 김성식, 임재훈, 채이배, 최도자, 박선숙 의원과 원외 인사로는 문병호, 한광원, 장성철, 주대환 등이 손학규계로 분류되었으나 2020년 2월 기준으로 새롭게 당직을 맡은 김정화, 황한웅, 이해성, 백금산, 고연호 등 원외 인사들이 현재 손학규계 인사로 분류된다.
또, 한때 안철수계로 분류되던 장진영 변호사도 손학규가 바른미래당의 당대표를 맡은 뒤 손학규계로 분류되었지만 역시나 당대표 비서실장 직에서 해임되며 멀어졌다.
바른정당 출신인 강석구도 손학규계에 속했으나 2020년 9월 15일 민생당을 탈당하면서 떠났다.
한편 이낙연, 양승조, 정장선 등 분당 사태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한 舊 손학규계 인사들 대부분은 정부여당에서 각종 요직을 맡으며 잘 나가고 있다(...). 특히 이낙연은 최장기간 국무총리에 이어 제20대 대통령 선거/대권주자 중 상당한 기간 동안 여야합산 1위를 달린 바 있다.

5. 관련 문서



[1] 손학규계는 보수자유주의 정당인 바른미래당 내 주요 계파였으며, 자유주의~보수자유주의 정당인 민생당 내 보수파에 속했다.[2] 당시 당이 위험해지니까 손학규를 다시 장작으로 쓰려한다는 비판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