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1958)

 

'''김성식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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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갑)'''
제17대
유기홍

'''제18대
김성식'''

제19대
유기홍
제19대
유기홍

'''제20대
김성식'''

제21대
유기홍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초대
장병완

'''2대
김성식'''

3대
조배숙

'''경기도''' '''정무부지사'''
''' 손학규 도정 '''
''' 김문수 도정 '''
7대
한현규

''' 8-9대
김성식 '''

10대
원유철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이름'''
김성식(金成植, Kim Songsik)
'''출생'''
1958년 12월 16일 (65세)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적'''
평안남도 강동군
'''본관'''
강동 김씨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제15보병사단)
'''종교'''
개신교(성결교)
'''가족'''
배우자 김남주, 슬하 1녀
'''소속 정당'''
[1]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8, 20
'''약력'''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경기도 정무부지사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이력
3. 생애
3.1. 정치 입문 초기
3.2. 제18대 국회의원
3.3. 탈당, 합류, 근신
3.4. 국민의당 합류와 20대 총선
3.5. 제20대 국회의원
3.5.1. 국민의당 시절
3.5.2. 바른미래당 시절
3.6. 다시 무소속으로, 21대 총선
4. 그 밖에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수상
8. 저서
9. 관련문서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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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 한 정당 한 정권이 과연 해결해 낼 수 있습니까? 한 테이블에 모여서 인기 있는 정책, 인기 없는 정책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욕도 같이 먹고 꿈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민생을 위한 새 정치입니다.'''

2017년 9월 1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마무리 발언 中

'''저는 보수냐 진보냐 식의 문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으니 콘텐츠는 시대에 따라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면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자'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서 <국회의원! 뭐하는 사람이야?> 中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울 관악구 갑을 지역구로 하는 재선 국회의원이다.
아버지가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으로 6.25전쟁을 피해서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한다.관련 뉴스 즉, 실향민 2세이다.
친게임, 경제통, 정책통 정치인으로 꼽히며 손학규와의 인연으로 범손학규계로도 꼽힌다. 2012년 부터 시작된 안철수와의 결합과 이별을 거듭한 인연으로 일명 '''안철수의 남자'''로 불리기도 했다.[2]
야권의 빅텐트론에 맞서 제3정당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전략가이자 20대 총선에서 안철수를 제외하면 국민의당에서 유일한 수도권 당선자[3]라는 생존력도 보여준 정치인이기도 하다.

2. 이력


  •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제15보병사단 육군 병장 만기제대
  • 서울대 재학 중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투옥
  •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역임 중 두 번째 투옥
  •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
  • 방송시사 평론가(CBS시사자키 등)
  • 통합민주당 부대변인, 정책실장
  • 한나라당 관악구 갑 지구당 위원장
  •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경제, 예산 담당)
  • 경기도 정무부지사
  •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갑, 한나라당→무소속)
    • 제18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제18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제18대 국회 일자리특별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 민본21 초대 간사
  •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경제, 예산 담당)
  • 안철수 진심캠프 공동선거대책본부장
  •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 창당준비위원장
  • 제3지대 신당(가칭 새정치민주연합)합류 거부 꿈을 마음에 묻으며
  • 국민의당 입당, 최고위원 지명
  •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갑, 국민의당→바른미래당신설합당→무소속)
    • 제20대 국회 전반기/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제20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제20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
    • 제20대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
    • 제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 제20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 소위원장
  •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
  •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
  • 국민의당 수권비전위원장
  • 안철수 국민캠프 총괄선거대책부본부장ㆍ전략본부장
  • 국민의당 복지 및 조세재정 개혁 TF 위원장
  • 바른미래당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

3. 생애


부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77학번)하고 최전방 제15보병사단에서 육군병장으로 만기제대 하였다. 대학 재학 중 한번, 졸업 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재직시 두번째로 민주화 운동을 하다[4]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징역5년, 자격정지 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시기 사면복권되었는데, 이 때 지급된 민주화 유공자 보상금을 수령 거부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사단법인 나라정책 연구원 정책기획실장,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평론가, 금융연구회 등을 거쳤다.

3.1. 정치 입문 초기


1991년 민중당 소속으로 서울 동작구 갑 제3 선거구에서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 제정구, 이부영, 김부겸 그리고 노무현이 있던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아 서울 동대문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13%의 득표에 그치며 낙선했다.[5]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면서, 김성식은 빈민운동을 했던 제정구 의원을 따라 함께 한나라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합당 당시 상황에 대해 본인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한나라당 당원이 됐다. 많이 힘들었다. 제정구 선배를 믿고 따라갔는데 선배가 일찍 떠나셔서 엄청난 좌절을 경험했다. 18대 말에 탈당했지만 그 전까지 안에서 누린적 없고, 하루도 안싸운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후 서울 관악구갑 지역구에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였다.
원외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현직 국회의원이 맡는 경제 및 예산 관련 7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관장하는 한나라당 제2 정책조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고,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제안으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이후 손학규 대선캠프 정무특보로도 활동했다.

3.2. 제18대 국회의원


세 번의 낙선 끝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지역구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 유기홍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관악구 지역이 이해찬 전 총리가 관악을 지역에서는 5선을 하기도 하고 호남 출신 이주자 비율이 서울 내에서 가장 높다 카더라는 말이 있고 저소득층 또한 많으며 청년층의 인구비율도 제법 높은지라 전통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이러한 정치성향 때문에 '서울의 호남' 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며 민주당 지지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그야말로 민주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깃발을 들고 꾸준히 출마해 지지율을 올리며 당선되었기에 지역주의 타파를 견지하는 노선을 꾸준히 밟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나라당내 당시 얼마없는 "개혁 소장파"로 분류된 인물'''로 국회 입성 이후 3선급 초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부자 추가감세 철회, 대학등록금 경감, 청년창업 등 일자리 예산증액, 보육지원 정책 강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 정책, 비정규직 차별해소 정책 등을 주도했다. 또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이명박 정부의 기업 법인세 인하 움직임을 막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3법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2012년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정활동을 토대로 18대 국회 4년간 의정평가 종합 1위, 국회 백봉신사상 베스트10 4년 연속 수상등의 기염을 토했다. 이 당시 낸 '재정위험 관리 및 세출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총 243쪽 분량)와,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 전환과 과제'(총 298쪽)의 두가지 의정보고서는 역대급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국감 스타' 남들이 사진 찍히려 튀는 행동할 때 이 사람은 500쪽 정책 보고서 내놨다
개혁성향을 가진 한나라당 18대 초선 의원의 모임인 '민본21'의 초대 공동간사를 지내며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정수행과 여당 지도부에 쇄신을 요구하며 주목 받기도 했다. 특히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함부로 침해받아선 안된다고 주장했고, 야간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의 본회의 표결에 앞서서도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면 범죄가 줄어드느냐"며 "통행금지나 다름없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야 말로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몰입해서 더욱더 비참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하며 이목을 끌었다.

3.3. 탈당, 합류, 근신


이렇듯 '여당 내 야당'소리를 듣는 등 개혁소장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 연이은 악재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들어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쇄신안을 거부하자 12월 13일,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며 동료 의원인 정태근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6]
한나라당 시절을 종합해보자면 드물게 진보성향이 강했던 인물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고 정계 입문부터 삼김시대 반대를 내세운 꼬마민주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리 놀라운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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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서울특별시 관악구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참고로 이때 새누리당측에서는 김성식 의원을 배려해 공천을 안 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정권 심판론이 결집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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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2014년 1월 22일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다시 한 번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였으나 3월 2일 새정치연합민주당과 통합 이후 신당(가칭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을 발표하자 합류를 거부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꿈을 마음에 묻으며''' #

새정치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통합도 나름 길이 될 수 있겠지요.

잘 되길 기원합니다. 어느 길이 절대 선인지 가늠할 능력조차 제겐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 구조 자체를 바꿔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가야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합니다.

고민은 없습니다. 꿈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있을 뿐.

그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전날인 3월 1일 JTBC 밤샘토론에 출연해서 새정치연합독자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한 이후에 발표된 통합이기에 개인적인 성향을 차치하더라도 신당 합류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3.4. 국민의당 합류와 20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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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했다.# 윤여준 창당준비위원장이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국민의당 창당 이후 당직을 맡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김성식 전 의원이 합리적 보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2월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창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2016년 2월 22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지역에 다섯번째 출사표를 던졌다.거대양당 나눠먹기 이제 끝내야... 관악구 갑 지역구 현역인 유기홍 의원과 1승2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고 최근 수도권에서 지지율에 열세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당의 핵심인사 이면서 꾸준히 출마해 유효한 득표를 올려왔기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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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재선에 성공했다. 출구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후보에게 1.3%P차로 뒤졌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0.8%P(1239표)차로 신승하여 수도권 1석을 추가함은 물론 국민의당 돌풍에 화룡점정을 찍으며 생환했다.
특히 당선가능성이 있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출신 현역 의원들이 불과 수십표차로 아깝게 낙선한 문병호 후보를 포함해서 모조리 금뱃지 획득에 실패한 상황에서 안철수 대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수도권에서 국민의당 의석을 추가하며 높은 비례 득표율과 함께[7] 국민의당의 호남정당화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사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김성식 후보가 유기홍 후보에게 10% 포인트 뒤지고 있는 결과가 대부분이었고 새누리당 원영섭 후보는 과거 한나라당 출신이었던 김성식 후보의 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예상이 많았다. 이러한 3자 구도에서 현역 유기홍 후보는 지역에서의 평가와 의정활동이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기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일찍부터 관악구 갑지역은 유기홍 후보가 낙승할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선거기간 막바지엔 거의 매일같이 지원을 오고 천정배 대표도 호남에서 올라와서 지원유세를 했다.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도 선거유세를 도왔다. 거기에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던 장하성 교수까지 지원유세를 해줄 정도로 수도권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당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손학규 전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할 당시 초대 정무부지사로 인연을 맺었기에 선거 지원을 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손 전 대표는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으나 개소식 부터 본 선거기간 까지 여러 차례 측근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송태호 이사장[8]을 통해 지지 메시지를 보냈고 송 이사장이 김 전 의원의 유세를 도왔다. 2000년에 관악갑 지역에서 맞붙었던 민주당 이훈평 전 의원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으며 지원했고, 관악구의회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이성심 구의장(4선)과 새누리당 출신 임춘수 구의원(4선)은 탈당까지 결행하며 국민의당에 합류하여 김성식 후보를 지지했다.
이러한 지원과 함께 국민의당의 호남발 녹색 바람을 등에 업고 인물론을 바탕으로 선거판을 흔들었고. 출구조사에서는 1.3%차로 뒤졌으나 개표가 진행되면서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리드했고 행운동, 신림동, 낙성대동, 남현동[9]과 사전투표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에서 앞서면서[10] 실제 개표 결과 0.8%P(1239표)차로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기적같은 승리'''. 이를 통해 유기홍 후보와의 전적을 2승 2패 동률로 만들었다.

3.5. 제20대 국회의원



3.5.1. 국민의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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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후 부산 민주공원 4.19 기념식에 내려간 안철수 대표를 대신해 서울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56주년 4.19 혁명 기념식에 국민의당을 대표해서 참석했다.
4월 27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원내대표로 추대된 박지원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만장일치로 합의추대되었다. # 또한 18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치되었고, 간사로 선임되었다.
정책위의장 재임 당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야정 정책 협의체인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의 제안 및 정례화, 추가경정예산,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미세먼지 대책, 민주당 안 보다 강력한 공수처 설치 제안, 조선해운업 위기와 브렉시트 대응, 탄핵 국면에서 2017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 누리과정 확대, 고소득층 증세 등의 정책을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의 캐스팅보트로서 선도적으로 주도ㆍ조율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박지원 원내대표의 정무 - 김성식 정책위의장의 정책 쌍두마차가 국민의당의 전성기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는 "모든 국회의원은 국민 편이냐 박 대통령 편이냐에 직을 걸고 결단해야 한다"며 찬성했다.
2016년 하반기에는 당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원회 의장과 최고위원직,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업무, 또 당해 예산을 결산하고 다음해 예산을 세우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까지 겸직한 끝에 '업무과중'을 사유로 예산결산특별위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탄핵 정국 동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는 "국민 편이냐, 박 대통령 편이냐에 모든 의원은 자신의 직을 걸고 결단해야 한다"며 찬성했다. 이후 2017년 3월 10일 탄핵이 선고 될 때 까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여했다.
12월 25일, 촛불의 분노를 넘어 국민들이 삶의 꿈을 꿀 수 있게, 더 큰 민심을 담아내어 집권하는 당으로 혁신을 모토로 재선의 권은희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국민의당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29일 열린 당 경선에서 주승용조배숙 조에 밀려 패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캠프 총괄선거대책부본부장ㆍ전략본부장에 임명되었고, 대선 이후에는 국민의당 복지 및 조세재정 개혁 TF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 해 12월 5일 같은 당의 최명길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당시 서울특별시의 유일한 국민의당 의원이 되었다.(...) 같은 달에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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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섰는데, 정치적 공세 일변도였던 타 당 의원들의 질문에 비교해 정책 중심으로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이른바 '차이나는 클라스'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3.5.2. 바른미래당 시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과정에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지만 2018년국민의당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 불참하며 향후 행보가 불투명하다고 평가받았다. 불참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따르면 상기했듯이 친안계 핵심으로 분류되었으나 2017년 8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때 출마를 반대하면서 안철수 대표와 멀어졌다고 한다. 통합과정에서 나온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안(철수)대표와 가까웠던 적이 없었다."고 밝히기도. [11] 그러나 바른미래당 출범 이후 첫 번째 의원총회에 참석하여 거취 논란을 불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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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공동대표는 의총에 앞서 김 의원에게 다가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이 둘은 통합 이전인 새누리-국민의당 시절에도 아젠다 2050이라는 초당적 의원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하였고, 18대 국회당시 대표적인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으로 꼽히던 사이라 꽤 친분이 있는 관계로 알려져있다.
그간 당내 현안에 말을 아껴왔으나, 3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내비친 유승민 공동대표에게 “선거 유불리만 집착해 공당의 명분을 훼손한다"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묵언수행’ 깬 김성식 “한국당과 연대? 유승민 선 넘지 말라”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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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5일, 머니투데이의 정책전문미디어 the300이 출범 4주년을 맞아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 가운데 5점 만점으로 국회의원 300인 중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머니투데이는 "김 의원은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어느 학자, 관료 못지 않은 전문성을 보였다. 충실한 자료조사와 명확한 대안제시, 깔끔한 전달력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국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장직을 수행하며 6개월간 25차례나 회의를 여는 등 동기간 개점휴업한 임시국회와 상임위 실적을 뛰어넘는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다. 단순히 회의에 그친 것이 아니라 4차산업혁명 국가로드맵, 정책권고안 152건을 도출하는 등 오랜만에 일하는 국회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입법심사권이 없어 권고에 그친 것에 대한 안타깝다는 평가도 있다.152건 vs 13건…과방위 공전 새 열일한 4차 특위
김동철 지도부의 비대위 전환 이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김관영 의원을 지지하며 불출마를 선언,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요구받은 당대표 출마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며 고사하였다. 후반기 국회에서는 18대, 20대 국회 전반기에 이어 기획재정위원회를 같은 경제통 유승민 의원과 지키게 되었다. 임기 4년 내내 간사인 것은 덤. 또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정개특위 바른미래당 몫 간사와 당내 정개특위원장을 동시에 맡게 되었다.[14] 지난 2017년 12월부터 심상정 의원이 주도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민심연대'에 국민의당 간사로 함께하며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 왔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대참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인 관악구 갑에서 기초의원이 3석을 얻어 약진했다. 20대 총선 당시에 각각 더민주, 새누리 소속이었음에도 김성식을 지지하며 탈당을 결행하고 현 바른미래당으로 합류한 이성심 전 구의장과 임춘수 의원도 5선으로 생환한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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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바른미래당 소속 간사를 맡았다. 연동형비례제 도입에 대해서는 꾸준히 찬성 의사를 밝혀왔다.
2019년 4월 30일, 공수처법과 공직선거법을 연계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결행과 사보임 등으로 인한 당내 분란 속에서, 비교적 잡음이 컸던 사개특위와는 대비적으로 정개특위에서는 별다른 잡음이 없었고 표결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식구였던 장제원·김성식, ‘패트’ 설전 “나쁜미래” vs “적반하장”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참 많이 참았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한국당이 막무가내로 정말로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선거제도 개혁 정치개혁이 떠내려가게 생겼다. 어떻게든 불씨 살려서 논의해보자는 게 패스트트랙"이라며, "한국당이 지난해 12월 여야5당 합의에서 '연동형비례제 적극 검토한다'고 해놓고 당론으로 비례제 폐지를 주장하는 거면 깽판 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패스트트랙에 올려서라도 하지 않으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 하게 됐다. 정치 따로 경제 따로 아니다. 좋은 정치가 있어야만 경제와 민생도 챙길 수 있다"고 찬성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패스트 트랙 추인 과정에서 발생한 당내 내홍을 통해 임기 1개월을 남기고 자진 사퇴한 뒤 유력한 차기 원내대표로 주목받고 있다. 국회 내 대표적인 정책통이기 때문에 '민생정당'을 추구하는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을 상승시킬거라 기대하고 있다. 또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원내에 진출했고 손학규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역임할 당시 정무부지사를 역임한 이후 '안철수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원조 안철수계로 분류되기 때문에 바른미래당의 숙원인 '구 국민의당계'와 '구 바른정당계'의 화학적 결합의 적임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즉, 현 당대표인 손학규, 바른미래당의 대주주인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전 공동대표와 모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5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오신환 의원에게 패했다.[15]

이후 8월 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종료되기까지 바른미래당 간사로 활동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심의 선거제 개편안에 힘을 실었다. 제1소위원회와 안건조정위원회, 전체회의 등에서 지속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며 민주-바른미래-정의-평화 선거제 개편 연대를 이끌었는데, 자유한국당의 지속적 회의 불참과 훼방에 '사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김성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치개혁의 시발점이자 불씨”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로부터 협치내각 구성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직을 제의받았지만 고사했다.[16]
20대 국회 후반기 기재위에서 활동하며 국감 시즌에는 항상 유승민 전 대표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실 가끔씩 유승민 대표의 행보에 반발하기도 하고, 2019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유승민 전 대표가 오신환을 밀어줘 경선에서 떨어졌지만 두 사람 성격상 그 정도는 쿨하게 넘어간듯 보인다.

3.6. 다시 무소속으로, 21대 총선


2020년 2월 5일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하고, 6일 탈당계를 제출했다.

'''며칠간 참담한 심경으로 묵언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말씀드려야 할 때입니다.

바른미래당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잘못된 합당의 주역들이 분란의 축이 되었고 결국 당을 이리저리 찢어버렸습니다. 당 대표는 비상한 전환점을 만드는 대신 파국의 인사로 쐐기를 박아버렸습니다. 힘을 합치고 당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들은 무력했고, 저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과 당원들께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특히 4년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선거혁명을 만들어주신 국민들과 저를 당선시켜주셨던 관악구민들께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대의를 잘 가꾸어나가지 못했고 이제 바른미래당으로는 되살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른미래당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역의 당원들께 설명드린 후 곧바로 실행할 것입니다.

험난한 길일지라도, 낡은 정치판을 바꾸고 미래 세대를 중심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정치적 시대교체를 이루는 일에 무소속으로 작은 힘이라도 보탤 것입니다. 이 길로 사죄드리고 소임을 감당하고자 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좇아 이리저리 곁눈질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2020년 2월 5일 페이스북

2020년 3월 3일 무소속으로 21대 총선 관악갑 출마를 선언했다. 낡은 싸움질 정치를 새 시대의 문제해결 정치로 바꾸는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상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미래통합당 김대호였는데, 김대호 후보가 30~40대 비하 및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제명되면서 후보자 자격을 상실하였다. 이에 따라 유기홍과의 1:1 양강 구도가 성사되면서 야권 단일화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
그러나 득표율 33.5%, 5만여표를 받으며 낙선했다. 오히려 4년 전 국민의당 시절보다 근 5천표, 5%pt가 줄어들었다. 단일화 효과는 없거나 미미한 수준으로, 상당수가 김대호의 기표였을 무효표는 1.2만표가 나왔다. 유기홍은 8.3만표를 득표하여 약 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협치내각을 구성하겠다고 하자 다시 한 번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제는 무소속이 된 만큼 전보다 입각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11월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8월부터 제3지대 중도개혁 세력 재건을 위하여 김관영 전 의원, 채이배 전 의원, 민생당 소속 윤영일 전 의원 등과 싱크탱크를 출범했다고 밝혔다. 차기 대선 의제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4. 그 밖에



2011년 4월 29일, 셧다운제를 강제하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토론에 나서 수많은 겜덕들의 마음을 울렸다. 국가가 규제를 시행할 때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부분을 제공한다. 이후로 한동안 보수 정당계에서는 이야기가 안 나오다가 2018년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셧다운제를 폐지할 것을 촉구한 것이 최근이다.

2009년 12월 11일,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임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 당시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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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주인공 묘비 앞서 ‘오열’
2016년 5월 18일, 야당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자격으로 참석한 제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금지되고 졸속으로 기념식이 끝나자 황교안 국무총리,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광주 시민군 대변인의 묘비 앞에서 "진짜 미안합니다!"라고 외친 뒤 흐느껴 운 것. 위의 한나라당 시절 영상도 그렇고 그에게 5.18이 주는 의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본 선거기간 동안 신세계의 SSG 광고를 패러디해 본인을 SSK이라고 밀었다. 이색 선거유세로 지상파 방송도 탔는데, 중요한 표심으로 여겨지는 2030 젊은층의 이목을 끌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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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후 김성식 트위터
김성식 최고위원 100분 토론 영상

저희에 대해서 우려하시는 부분도 있으시지만, 뭐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유명한 정치소설에 보면 양 웬리가 이런 말을 하지요.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공존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말을 합니다.''''

2016년 4월 19일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은하영웅전설 양 웬리의 어록 중 하나를 인용했다. 동시에 놀랍게도 ''''지상파 생방송''''에서 PGR21홍차넷을 언급하고 이후에는 PGR21 정회원임을 밝히기도 했다. MLBPARK불펜 눈팅도 하고있다고. 덧붙여 앱을 개발할 생각이었는지 질문게시판에 애플 개발환경 구축 질문도 남겼는데 지금은 포기한 모양...
김성식 페이스북
2016년 제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금지되고 행사가 졸속으로 진행되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광주 시민군 대변인의 묘비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
박근혜 탄핵 사태와 관련하여 pgr21에 인증하고 글을 올렸다. 인증 글 김성식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사이트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 소속으로의 입장이 많이 드러나 있어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달리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남은 국민의당을 거친 바른미래당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17]
원외에 있을 때부터 '''경제통, 정책통''' 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었는데, 18대 국회, 2018년 5월에는 전체 국회의원 300명 대상으로 낸 스코어 보드에서 2년 연속 5점 만점을 받아 전체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스코어보드로 본 우수의원... 의정활동 한 눈에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1
정계 입문

1991
탈당

1991
입당

1991 - 1995
합당[18]

1995
탈당

1995
창당

1995 - 1997
합당[19]

1997 - 2011
합당[20]

2011 - 2014
탈당

( )
2014
창당준비위원회

2014 - 2016
신당 합류 거부

2016 - 2018
창당

2018 - 2020
합당[21]

2020 -
탈당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1
1991년 지방선거 (서울 동작구 갑 제3선거구)

3,634 (15.6%)
낙선 (3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대문 을)

12,177 (13.49%)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30,206 (29.88%)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47,701 (35.61%)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48,133 (46.72%)'''
'''당선 (1위)'''
'''초선'''[22]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52,808 (41.61%)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54,445 (38.43%)'''
'''당선 (1위)'''
'''재선'''[23]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

50,077 (33.55%)
낙선 (2위)

  • 같은 선거구에서 20년째 출마 중인데 3번 낙선하고 2번 당선되었다. 물론 이것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관악구에서 보수정당 계열로 나온 탓도 있어보인다. 그래도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때 30~40%대 득표율이 나오는 것을 보면 지역구 관리를 꽤 잘한 것으로 보인다. 2번 무소속으로 나올때마다 자의와 상관없이 유력 보수정당 후보가 나오지 못했는데, 2012년의 경우 이 지역구를 포함하여 단 2군데만 새누리당이 무공천, 2020년은 미래통합당 후보의 예측 불가능했던 돌발행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무소속일때는 두 번 모두 사실상 보수 단일후보였으나, 무소속일때 당선된 적은 없다.

7. 수상


  • 2020년 법률소비자연맹 제20대 국회 종합의정평가 '국회헌정대상'
  • 2020년 벤처기업협회 '공로대상'
  • 2020년 아주경제 제1회 베스트의정대상 '베스트상'
  • 20대 국회 4년 연속 '머니투데이 the300 국회 국정감사 스코어보드' 종합 1위 (16.17.18.19)
  • 20대 국회 4년 연속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16.17.18.19)
  • 20대 국회 2년 연속 '머니투데이 the300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 및 국정감사 스코어보드대상' (18.19)
  • 2018년 국회의장 표창 '국회예산정책처 출범 15주년 공로패'
  • 2018년 벤처기업협회 '벤처인이 뽑은 최고 국회의원'
  • 2016년 '국회사무처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
  • 2016년 '국민의당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 2012년 '조선비즈 경제분야 의원평가' 베스트 1위
  • 2012년 18대 '국회의원 4년 의정활동 평가' 종합 1위
  • 2011년 법률소비자연맹 제18대 국회 종합의정평가 '국회헌정대상' 1위
  • 2011년 '여야의원이 뽑은 일 잘하는 의원' 1위
  • 18대 국회 4년 연속 '국회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08.09.10.11)
  • 18대 국회 4년 연속 '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08.09.10.11)
  • 18대 국회 3년 연속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 (08.09.10)
  • 18대 국회 2년 연속 '국회보좌진 선정 올해의 의원상' 1위 (10.11)
  • 2010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의원'
  • 2009년 '국정감사 베스트 오브 베스트'

8.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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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풀어보는 서울시행정
한국경제의 새 틀을 찾아
: 위기를 넘어 체질강화로

국회의원? 뭐하는 사람이야!
길벗 (1991.5.1)
새로운사람들 (2009.12.4)
새로운사람들 (2011.11.16)

9. 관련문서



10. 둘러보기







[1] 2020년 2월 5일 바른미래당 탈당 선언. 6일 탈당계 제출[2] 이러한 계파구분에 대해 본인은 측근정치는 배격하고 한 적도 없다며 단호히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바른미래당 창당 이후로는 당의 또다른 대지주인 유승민 전 대표와도 같은 국회 활동도 같이 한 바 있다.[3] 2018년 3월 현재 수도권의 국민의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언주이찬열도 있지만 이들은 전부 더불어민주당에서 당선되어 국민의당으로 넘어간 케이스기 때문에, 순수 국민의당 당적으로 당선된 현역 국회의원은 김성식이 유일하다.[4] 여담으로 박종철 열사와 같은 CA(제헌의회그룹) 소속이였다.[5]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하면서도 이 시절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유세하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6] 이 당시의 심경을 인터뷰한 프레시안 기사.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을 깨라[7] 관악구 국민의당 비례대표 투표 득표는 관악구 갑, 을구의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수 보다 더 많은 81,681(31.14%)표로 관악구 정당득표 1위를 달성했다.[8]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학규 전 대표의 싱크탱크로 알려져있다. 총선기간 동안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김성식 후보 뿐만 아니라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의 여러 후보들에게도 손학규 전 대표의 지지를 대신 전한 바 있다.[9] 다만 남현동의 경우는 다른 동에 비해 새누리당 원영섭 후보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3위인건 변함 없지만[10] 특히,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12년에도 승리했던 성현동의 몰표가 컸다.[11] 단, 이건 안철수와 소원하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측근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선거용 멘트에 가깝긴 하지만 안철수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김성식이라고 말할 정도이다.[12] 사실 유승민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연대론을 꺼냈던 건 원희룡을 의식했다는 평이 많다. 정작 결국 원희룡은 탈당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하니(...)[13] 하지만 이후 어느정도 봉합이 된 이후로는 국회 내에서 유승민과 활동을 같이하고 있는 편이다.[14] 2018년 9월 세법 개정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에 항의하면서 두 사람이 같이 항의 및 퇴장까지 했다.[15]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선거는 과반득표자가 나오면 바로 개표를 중지하고 당선자를 공표하는 시스템이다. 당원권 정지된 이상돈, 박주현, 장정숙을 빼면 총투표권자가 25명이니 13명이 과반.[16] 한편 이종훈 전 의원은 고용노동부장관 직을 제의받았지만 마찬가지로 고사했다.[17] 원래는 노원구에 안철수가 있었으나, 대선 출마로 사퇴하였기에, 유일이라는 타이틀이 붙게되었다. 경기도의 나머지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바른정당 출신이거나, 이언주, 이찬열 등은 민주당 간판을 거쳤기에 제외.[18]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19] 민주당(1991년)과 신설 합당[20]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21]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22] 2011.12.13 한나라당 탈당[23]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020.02.05 바른미래당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