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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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6] 출신 정치인이다. 보수 소장파에 속하며 친유계로 분류된다.[7]
1957년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태자리에서 태어났다. 안동중학교, 경북고등학교(57회)[8]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역, 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꼬마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 갑[9]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신한국당 김길홍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10]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통합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11] 한나라당이 창당될 때 이에 참여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권정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을 보좌하여 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후보의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부터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으나, 현직 김관용 지사에게 밀려 낙천되었다.
2016년 새누리당 탈당 및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후 안동시 당협위원장이 되었고, 바른정당 최고위원으로서 속칭 '친유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모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 경북도지사 후보 지지율 1위로 보도되었단다. 실제 본인도 바른미래당 후보로 경북지사에 출마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이다.
2018년 4월 15일,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였다. 같은 당 내에서 먼저 출마 선언한 박재웅 예비 후보[12] 등이 있었으나, 권오을 쪽이 3선 의원 + 국회사무총장으로 경력이 압도적이라서 그런지 경선 없이 박재웅 예비후보가 권오을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했다. 다만 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은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소속으로 뛰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 결국 낙선했지만 10% 넘기기는 성공했다. 권 후보는 경상북도 지자체 중 안동시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22.8%)을 올렸고, 특히 그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에서는 무려 40%의 득표를 하여 양대 정당의 이철우, 오중기를 누르고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득표율의 배경은 안동이 권 후보의 고향이라는 점도 있지만, 안동시 문서의 정치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등 몇몇 가문들 위주로 돌아가는 '문중 정치'가 꼽힌다. 또한 권 후보는 안동 권씨 가문 출생이다.[13]
2019년 12월 27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새로운보수당이나 미래통합당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동시·예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5 대한민국가족지킴이 대한민국 실천대상 지역발전부문
2011 청조근정훈장
2007 NGO 국정감사 모니터링단 선정 농해수위 우수상임위원장
2005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4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2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선정 문화관광위원회 최우수의원
2001 올해를 빛낸 정치인상
2001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0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0 국회의원 의정대상
1999 제1회 납세자의 친구상
1999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8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7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4 전국 광역의원대상 의정평가 BEST의원
1. 개요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6] 출신 정치인이다. 보수 소장파에 속하며 친유계로 분류된다.[7]
2. 생애
1957년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태자리에서 태어났다. 안동중학교, 경북고등학교(57회)[8]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역, 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3. 정치 경력
1991년 지방선거에서 꼬마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 갑[9]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신한국당 김길홍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10]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통합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11] 한나라당이 창당될 때 이에 참여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안동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권정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을 보좌하여 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후보의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부터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으나, 현직 김관용 지사에게 밀려 낙천되었다.
2016년 새누리당 탈당 및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후 안동시 당협위원장이 되었고, 바른정당 최고위원으로서 속칭 '친유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모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 경북도지사 후보 지지율 1위로 보도되었단다. 실제 본인도 바른미래당 후보로 경북지사에 출마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이다.
2018년 4월 15일,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였다. 같은 당 내에서 먼저 출마 선언한 박재웅 예비 후보[12] 등이 있었으나, 권오을 쪽이 3선 의원 + 국회사무총장으로 경력이 압도적이라서 그런지 경선 없이 박재웅 예비후보가 권오을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했다. 다만 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은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소속으로 뛰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 결국 낙선했지만 10% 넘기기는 성공했다. 권 후보는 경상북도 지자체 중 안동시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22.8%)을 올렸고, 특히 그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에서는 무려 40%의 득표를 하여 양대 정당의 이철우, 오중기를 누르고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득표율의 배경은 안동이 권 후보의 고향이라는 점도 있지만, 안동시 문서의 정치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등 몇몇 가문들 위주로 돌아가는 '문중 정치'가 꼽힌다. 또한 권 후보는 안동 권씨 가문 출생이다.[13]
2019년 12월 27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새로운보수당이나 미래통합당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동시·예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 상훈
2015 대한민국가족지킴이 대한민국 실천대상 지역발전부문
2011 청조근정훈장
2007 NGO 국정감사 모니터링단 선정 농해수위 우수상임위원장
2005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4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2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선정 문화관광위원회 최우수의원
2001 올해를 빛낸 정치인상
2001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0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2000 국회의원 의정대상
1999 제1회 납세자의 친구상
1999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8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7 국정감사 최우수의원
1994 전국 광역의원대상 의정평가 BEST의원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저서
- <우리는 여기서 천년을 꿈꾼다> (1996년)
- <꺼벙이의 꿈> (2011년)
- <을의 길> (2014년)
8. 기타
- 유승민, 주성영, 류성걸, 정종섭과 경북고등학교 57회 동기이며, 노회찬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년 선배[19] 였다. 실제 2018년 7월 노회찬의 급사 이후 그에 대해서 밝힌 바 있다.
1982년, 군대 제대하고 복학을 하니 고대 정외과에 노회찬이가 있었습니다.
늘 책을 끼고 다니면서 해박하고 달변이었습니다.
부산 부잣집 아들이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17대 국회에서 다시 만날 땐 반가우면서도 한편 서먹한 분위기였습니다.
그 뒤 말을 트기도 하고 서로 올리기도 하면서 가끔 보는 사이였지만 한국 최고의 국회의원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늘 조문을 마치고 노 의원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유명을 달리한 노회찬 의원님.
이 시대의 정직하고 양심적인 참 정치인이었습니다.
부정비리에 추상 같았던 잣대를 본인 스스로에게도 들이댄 정치인이었습니다.
이제 돈 걱정 없는 저 세상에서 마음껏 경륜의 정치를 펼치길 빌어봅니다.
- 아들 2명이 있는데, 정작 권오을 뿐만 아니라 부인 배영숙 마저도 자녀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어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졌으나, 정작 손자, 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편이다. 즉 손주바보라고 봐도 무방.
- 성실한 국정감사로 유명하다. 상훈 내역을 보면 거의 매년 국감 최우수상을 빼놓지 않고 받았다. 또한 16대 국회에선 국회의원 273명중 의정활동 평가 최우수를 받을 정도였다.
- 국회사무총장 임명 동의안에 여야를 막론하고 95%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 '찾아가는 입법 서비스' 를 도입해 호평을 받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초청까지 한다고 한다 ‘현장 입법’ 전국 누비는 권오을 국회사무총장
- 키가 큰 편이다. 대략 178cm를 전후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으나, 측근들에 따르면 175~6 정도라고 한다. 아무튼 동료 의원들보다는 키가 큰 편인 건 사실.
- 단순히 만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 뿐만 아니라, 만 25세로 규정된 지자체장 피선거권 연령을 더 낮추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유럽 선진국 등에서는 대학생 시의원 등이 많은데, 우리나라도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고, 특히 20대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20]
- 바른미래당 내 지역당 중 경북도당의 경우 구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가 제대로 화합한 몇 안 되는 지역당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로 국민의당 출신 당원들과도 공적-사적으로도 두루 친하다고 한다. 뭐 애당초 권오을이 보수 정치인들 중 개혁적인 인물로 꼽히는 인물이니...
- 2019년 현재 림프암 투병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다. 실제로 한참 투병중이던 2019년 3월 간담회에서는 유승민, 안철수의 당무 복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 무튼 2019년 6월 초에 결국 완치하여 퇴원하였다고 한다.
9. 둘러보기
[1] 35세손 '''오(五)◯''' 오(悟)◯ 숙(肅)◯ 오(梧)◯ 항렬[2] 지번 주소. 현재 도로명 주소 기준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재미길 33-6 [3] 권오을 출생 당시였던 1957년에는 안동군이었다. 안동군은 1963년 안동읍을 (신)안동시로 독립시켰다가 1995년에 안동시에 합병되어 현재의 안동시가 되었다.[4]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고 하며, 2018년 3월 수필가로 데뷔하기도 했다.[5] 2018년 지방선거 관련 기사 발췌. 상대적으로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손자녀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던 편이다.[6] 라고는 하지만 아래 문서를 보면 1957년생으로서 1991년, 만 34세에 선거에 당선돼서 정계로 들어갔으므로 노동운동을 오래 한 것은 아니다.[7] 새로운보수당에 참여하지 않았고 미래통합당에도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아직도 교류가 많다.[8] 주성영과 동기다.[9] 이전 총선에서 안동시, 안동군에서 각각 국회의원을 뽑던 게 1995년 시군통합으로 안동시가 되었는데, 분구 기준에는 미달하는 바람에 졸지에 안동 지역구 의석 수가 한개 줄게 되어 15대 총선에서만 특례로 갑을 분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 바로 다음 16대 2000년 총선에 하나로 통폐합되었다.[10] 권오을 당선 이후 경북에서는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당선된 사람이 20여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대경권 전체에서도 제20대 총선서 김부겸이 당선되기까지 20년 동안 민주당계 정당 소속 의원이 나오지 않았다.[11] 법적으로는 신설합당이기 때문에 '흡수'된 것은 아니지만, '거대여당'인 신한국당과 '소수야당'인 통합민주당이라는 위상의 큰 차이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흡수된 것으로 본다. 그를 방증하듯 통합민주당의 투탑이었던 조순 시장과 이기택 총재(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당해 신한국당(이회창)에게 당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토사구팽당한 셈이 되었다.[12] 경북도당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민의당 출신.[13] 애초에 1996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도 당선된 것을 당시 정치권과 언론에선 오로지 안동 권씨 문중의 힘으로 분석했다.[14]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15] 개혁신당(1995년)과 신설 합당[16]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17]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18] 15대 대선 직전에 신한국당과 합당.(한나라당 창당)[19] 노회찬은 1956년생, 79학번이다. 권오을은 1957년생, 77학번(재수를 한 것으로 추정.).[20] 뭐 신기할 게 없는 게 같은 당 내 보수정당 소장파 출신인 하태경 최고위원도 비슷한 입장이다. 심지어 이 쪽은 한술 더 떠 청소년의 선거 운동 보장 법안까지 제출한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