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3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현재는 대구나 영천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면서, 보수정당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1936년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 신광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영천군 대창면에 있는 대창국민학교만 졸업하였다. 그 이후 대창면사무소에서 사환으로 근무하면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박상천, 박희태 등이 합격 동기.
이후 판사로 근무하다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장을 끝으로 1981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89년에는 대구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천시-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정동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입당하고, 1994년 민주자유당 원내부총무, 1995년 민주자유당 특별법기초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신한국당 법률자문위원회 위원장, 당기위원장, 경북도지부위원장, 1998년 한나라당 인권위원장, 경북도지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대신 아들이 출마를 하려고 했는데 정희수와의 경선에서 밀렸다. 이 때 박헌기 당시 국회의원은 본인 아들이 밀린 것은 본인 탓도 있고, 본인 아들의 탓이 있다며 경선 결과에 대해 인정하고, 전재희[2] 와 같이 정희수를 지원했다. 후에 나오는 문석균, 문희상의 사례와 대비되는 사례이다.
현재는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상임고문직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