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균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성명'''
문석균 (文晳菌)
'''출생'''
1971년 10월 5일[1] (53세)
경기도 의정부시
'''본관'''
남평 문씨[2]
'''학력'''
경의초등학교 (졸업)
의정부중학교 (졸업)
의정부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회학 / 학사)[3]
'''병역'''
면제(근시)
'''가족'''
아버지 문희상, 어머니 김양수
여동생 2명
배우자, 자녀 2명
'''소속 정당'''

'''현직'''
숭문당[4] 대표
'''약력'''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시 갑 상임부위원장
1. 개요
2. 상세
3. 논란
3.1. 세습 논란
3.2. 의정부 시의회 야합
4. 기타
5.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 의정부시 갑 예비후보였다.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자 20대 의정부시 갑 국회의원인 문희상의 장남이다.

2. 상세


일치감치 지역구 출마를 준비했지만, 2020년 1월 23일 지역구 세습 논란[5][6]이 불거지자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오영환 전 소방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여 출마포기 선언 54일만인 3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고 하루뒤인 17일에 의정부시 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문석균 후보를 포함한 오범구·김정겸·김영숙 이상 의정부시의원들도 하나 같이 3월 16일에 민주당 경기도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이들은 나중에 스리슬쩍 복당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가 이미 경선 결과 불복으로 탈당한 이들에 대한 복당을 불허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불가능할 전망이다.
앞선 3월2일 핵심 당직자 400여명이 집단 사퇴한 데 이어, 3월12일 안병용 시장이 사실관계를 전혀 무시한 채 오영환(32)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를 향해 “보따리 싸서 당장 꺼져라”라는 막말을 내뱉은 것을 보면 갈등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탈당한게 무색하게도 여론조사에서는 계속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2020년 3월 24~25일, 알앤써치가 실행한 여론조사에서 13.1%, 3위라는 충격스러운 결과를 받아보게 됐다. 1위 오영환 후보의 37.7%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후 3월 29~30일, 리얼미터가 실행한 여론조사에서도 11.5%라는 더 하락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오영환 후보의 42.6%와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 3월 31일 매트릭스리서치에서 실행한 여론조사에서는 9%까지 하락했다. 1위인 오영환 후보와 30% 이상 차이가 난다. 4월 5일 KBS-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아예 7%까지 떨어지며 더 어려워졌다. 결국 8.5%의 지지율을 얻고 3위로 쳐박히며, 선거비용 보전도 받지 못한 채로 추하게 낙선했다.
여러모로 볼 때 아버지의 투철하고 선명한 정치 역정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명성과 조직에만 기대는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 게 결정적으로 보인다.
결국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비호감만 쌓인지라 앞으로 정치활동을 이어가긴 어려워 보인다.[7][8][9]

3. 논란



3.1. 세습 논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친이자 현직 국회의장문희상의 지역구인 의정부시 갑에 출마하려고 하여 지역구 세습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본인은 ''''아빠 찬스''''는 쓰지 않겠다고 말하며 총선 출마를 하는 상황이다.[10]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 보수 야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김해영 최고위원 등의 비판이 나왔다.# 당내에서도 높아지는 반대 목소리에 부담을 느꼈는지 결국 1월 23일, 총선출마 포기를 선언했으나 3월 12일 # 이를 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지역구 세습 논란 이외에도 자녀의 편법 전학 논란도 불거졌다. 부친 문희상이 국회의장이 된 직후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으로 전입하면서, 아들이 의정부에서 서울로 전학한 사실이 드러나 편법 전학이라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본인은 아내가 부친을 모시기 위해 전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역구 세습 논란이 더욱 거센 이유는 의정부시 갑이라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보면 답이 나온다. 본래 한국 정치에서 부자 간의 지역구 세습이 없던 것은 아니였다. 김영호 국회의원, 이재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홍문종 전 국회의원, 정호준 전 국회의원, 장제원 국회의원,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등 부자 세습 사례는 많다. 이 중에서 정호준 국회의원은 3대가 서울 중구에서 정치를 했고, 조부와 부친의 지역구에서조차 낙선했던 경험이 있다. 김영호 국회의원의 경우, 아버지인 김상현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광주로 옮기고 나서 지역 거물 정치인인 정두언에 맞서서 낙선도 두 번이나 하며 도전자의 위치에서 버틴 경우이다. 심지어 이재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은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의 강력한 지역구 기반에도 불구하고 총선에 두 번 나와서 두번 다 떨어지고 21대 총선은 출마조차 못했다. 이 세 사람의 경우, 비록 부친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지만 결코 정치를 하면서 꽃길을 걷지 않은 셈이다.
장제원, 홍문종, 김세연의 경우 똑같이 세습 논란이 있지만 지역에서도 인지도가 있었고, 무엇 보다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서''' 출마했었기 때문에 20대 총선에서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는 부친의 지역구로 21대 총선에 출마한 문석균과 달리 세습 논란이 더 약했다.[11] 게다가 본인들도 무소속으로 나와서도 본선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장제원은 부친도 부친이지만 일가가 동서대학교, 부산디지털학교, 경남정보대학교 등을 운영하는 사학재단으로서 부산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유지 집안이고, 당장 장제원 친형이 동서대학교 총장이다. 때문에 이 쪽은 세습이라기보다 가문의 유리함을 이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셈. 남경필의 경우는 본인의 부친이 국회의원 재임 도중 사망해서 치뤄진 보궐선거[12]에 부친의 지역구로 나와서 당선된 케이스라서 아버지 후광으로 당선됐다고 비아냥을 듣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논란은 크지 않았다. 본인도 자신이 부모 덕에 이 정도 까지 올라갔다며 인정하고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이 사례와 비교하면서 유승민도 세습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결론적으로 아니다. 물론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이라는 점이 도움이 안 됐다고는 볼 수 없고 본인도 인정한 바가 있다. 하지만 유수호가 불출마로 은퇴하고 거의 10년 뒤에 유승민이 국회의원이 되었고[13] 유승민 본인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학자로서 맹활약했다. 문석균의 커리어와 비교하는게 실례인 수준. 사실 대구 동구 을에서 당선될 때도 당시 친노 수장인 이강철과 붙어서 낙선될 것을 감안하고 출마한 것이다. 당시 유승민비례대표였고, 굳이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가지 않아도 편하게 4년을 보낸 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간 셈이다. 당장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이강철이 출마한다고 해서,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유승민을 공천한 것이다. 즉 국회의원직 상실을 각오하고 나간 셈이다. 애초에 유수호대구 중구가 지역구였기 때문에 세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유승민은 아버지인 유수호가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었을만큼 역량이 뛰어났다. 실제로 당선 되고 나서도 강대식이 국회의원 되기 전까지, 아니 지금도 대구 동구 을에서 유승민의 입지가 강한 편이다.[14]
심지어 같은 당 소속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도 세습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반인 서울특별시[15]나 장인어른의 기반인 경상남도 김해시, 부산시 낙동강벨트[16]를 포기하고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험지인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17]에 출마하기로 하였다. 즉 자신이 험지인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실제로 상대는 해당 선거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옥천군 출신이자 지역구 관리를 잘 하는 박덕흠이라는 것, 조상의 출생지만 영동군이지 실제로는 서울특별시에 기반을 가진 곽상언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1.44%라는 적지 않은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즉 노무현이라는 배경 외에도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이용희 외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고, 심규철처럼 영동군을 기반으로 하면 당선되기 힘든 지역구임에도 불구하고 출마한 것이다.
하지만 문석균씨는 의정부 번화가에 위치한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물려받아 운영하였을 뿐, 지역구에서 뚜렷한 정치적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의정부는 강력한 상대가 있는 지역도 아니고, 쉬운 지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험지라기도 애매한 곳이다. 아무리 아빠 찬스를 안 쓰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미 지역구를 의정부로 삼은 한 의미가 없는 소리다. 의정부는 자기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일 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지역구이다. 게다가 지역구 당직자들의 절대다수[18]가 정치적 커리어가 없는 문석균을 따라가는 등 지역구를 의정부 갑으로 정한 것 그 자체가 아빠 찬스라는 것이 중론이다. 상기의 영상에서는 아빠찬스 안 받는다고 했지만, 본인이 낸 자서전이 '''《그 집 아들》'''이라는 점에서 뭘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계속 밀리더니, 결국 소방공무원 출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21대 총선 결과 오영환은 과반을 훌쩍 넘은 53%를 얻었고, 문석균은 고작 득표율 8%에 그쳐 선거비 보전에도 실패했다. 그나마 문석균의 의정부 갑 출마와 낙선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문희상이 점거하면서 사실상 수 십년 간 고착화된 지역 당협위원회의 당직자나 대의원들 세 명을 제외한 모두가 탈당한데다, 탈당자들의 복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해찬 대표의 선포 덕에 손쉽게 인적 물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문석균이 그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후보였다면 민생당이나 정의당에서 의왕시·과천시김성제(정치인)송파구 병의 최조웅처럼 이삭줍기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19] 그러면 문석균 본인의 입장에서도 기호 3번이나 6번을 받고 더 유리하게 총선을 치룰 수 있었다.

3.2. 의정부 시의회 야합


2020년 8월 4일 김민철 국회의원, 오영환 국회의원의 SNS에 '''"문석균과 같이 탈당한 무소속 시의원들이 통합당과 짜고 시의회 의장, 상임위원회를 다 먹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지역구 세습을 시도하지 않나, 토라져서 탈당하고 표를 갈라먹은것도 모자라 미래통합당과 붙어먹은 모습까지 보이며 비호감의 끝을 보여주는 중이다. 시의회에서 여러모로 오영환, 김민철 의원을 발목잡을건 당연한 상황. # #
이로써 이들의 복당은 물 건너 가게 됐다.

4. 기타


  • 아버지 문희상이 배우 이하늬의 외삼촌이기 때문에 이하늬와 사촌지간이다. 즉 문석균은 이하늬의 외사촌 오빠이고 이하늬는 문석균의 고종 사촌 동생이다. 그래도 이하늬를 선거운동에 부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8,844 (8.55%)
낙선 (3위)

[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생년월일 등이 공개되었다.[2] 의안공파 이곡-참의공파 31세손이나,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3] 출처, 동명의 의사가 있어 의사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4] 정당 이름이 아니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서점이다.[5] 문희상 의원의 집안은 의정부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대지주 집안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지역 내 유명한 서점의 창업주이자 6선 국회의원국회의장이라면 이 지역구를 경선으로 할 경우 누가 경선을 이길지는 불보듯 뻔하다.[6] 사실 이런 세습은 통합당에도 있긴 했는데, 남평우 전 의원의 아들인 남경필수원시 병 지역에서만 둘이 합쳐서 7선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남경필 쪽은 본래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가 부친의 급사+이회창 총재의 강력한 추천으로 얼떨결에 출마했고 문석균 쪽은 계획적이었다는 것 정도이다. 참고로 11~12대 국회의원 장성만 아들 장제원의 경우는 세습이 아니다. 지역 유지 출신이라는 건 맞지만, 이 당시 사상구 선거구는 없었고, 북구 갑에 출마한 관계로 세습은 아니다. 장제원이 출마한 사상구는 예전엔 북구 을이였다가 북구 을 지역을 포함한 일부가 사상구로 독립하면서 1995년에 사상구 갑, 사상구 을로 출범했다가 인구 유출로 병합된지 8년이나 지난 18대에서야 20년 만에 아들이 당선되었다. 당시 장제원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다.[7] 똑같이 공천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한 민병두도 초반에는 까이긴 했지만 나중에 당에서 공천한 장경태 후보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하자, 뒤늦게나마 약속대로 장경태 지지 선언 후 사퇴를 한 점에서 그나마 문석균에 비하면 낫다는 평을 받고 있다.[8] 그리고 8% 득표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인해 본인이 자랑하던 지역구 관리 또한 별볼일 없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정말 지역구 관리를 개판으로 하지 않는 한 적어도 두 자리수 득표율을 받는다. 심지어 지역구 관리를 개판으로 하고 이부망천 망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정태옥도 19% 가량을 얻었다.[9] 문석균을 따라 탈당한 시의원들이 미래통합당에 붙어 본인이 의장직을 차지하는 대가로 모든 상임위와 부의장직을 넘겨주는 명백한 해당행위까지 저지른터라 민주당에 절대 복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10] 이런 논란 때문인지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의정부시 갑 국회의원 지역구를 전략공천 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경선으로 진행할 경우 부친 영향으로 지역구 내 입지가 강한 문석균에게 유리하기 때문.[11] 홍문종15대 총선에 나왔는데 부친 홍우준13대 총선이 마지막 국회의원이였다. 김세연18대 총선에서 나왔는데 부친 김진재16대 총선이 마지막이였다. 장제원은 18대 총선에 나왔고, 부친 장성만12대가 마지막 국회의원이였다. 거기다 같은 지역구도 아니였는데, 장성만북구 갑 쪽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장제원은 당시 북구 을이였던 사상구에 기반을 뒀다.[12] 심지어 남경필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갑자기 온 사례였고, 본인은 원래 정치보다는 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평우 국회의원이 사망하면서 갑자기 귀국해야만 했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소장파를 키워 정치 쇄신을 한다는 명분으로 남경필을 공천하기로 하였다. 그 당시 이회창소장파를 키우고 당내 개획을 위해 영입하거나 중용한 케이스가 남원정 동료인 원희룡, 정병국유수호의 아들인 유승민이다.[13] 심지어 천하의 문희상마저 정계은퇴가 코앞에 오자 민주당이 하나 되여 문석균을 버리며 손절 당했는데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 10년 후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이라 추측하기는 어렵다. 문희상은 의정부 토호 수준이었지만 유수호는 고향이 영주시에 있는 법률가 출신 정치인이었다. 그러다보니 유수호는 거물급이긴 하지만 문희상 급은 아니었다. 후임 국회의원이 9선의 박준규 국회의장이어서 지역구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추기는 어려웠다.[14] 강대식의 경우 현직 구청장인데도 자유한국당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유승민을 따라 바른미래당까지 합류해서 본선에 나갔다. 비록 3위로 패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유승민의 조직을 그대로 이어받아 2년 후 원내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대식은 동구 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안심지역 출신이라는 점과 중도적 성향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이긴 사례이다.[15]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군이나 실제 거주지는 서울특별시이다.[16] 서부산+양산시+김해시는 동부경남지역 치고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부를 걸 만한 지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마할 때는 험지였지만 그가 당선되고, 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치지형이 변한 것이다.[17] 이용희를 제외하면 다 국민의힘 계열 출신이 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역임했다.[18] 무려 415명 중 412명이 문석균을 따라갔다고 한다.#[19] 참고로 21대 총선에서는 민생당, 정의당 모두 의정부시 갑에 후보를 공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