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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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대통령경호실장. 대한민국 육군의 예비역 4성 장군으로 제38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49년 3월 18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20회)를 졸업하고 1968년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입학 후 1972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인사 특기로 7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육군발전위원회 위원장, 3군단장,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2006년 11월에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1]
동기로는 전 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지명자[2] 김병관이 있으며 이 셋을 '28기 트로이카'라고 부르곤 한다.
통상 육군참모총장은 대장 2차 보직으로 1차 보직인 야전군사령관이나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친 뒤 역임하는 것이 원칙인데 박흥렬은 중장 2차 보직인 육군참모차장에서 곧바로 참모총장으로 영전한 특이 케이스다. 더불어 당시 박흥렬이 제친 경쟁자들은 매우 쟁쟁했는데, 독일 육사 유학[3] 출신으로 28기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했으며 현재도 안보 라인 최고 실력자인 김관진 제3야전군사령관과 전략통으로 이름 높던 육사 수석 졸업자 김병관 제1야전군사령관 등이 경쟁자였다. 세간에서는 당연히 차기 총장감으로 호평받던 김관진과 김병관의 합동참모의장/육군참모총장행을 점쳤으나 충격적으로 아직 대장 진급도 못한 박흥렬이 참모총장에 낙점되었다. 그 것도 이분 작전 특기가 아니라 인사 특기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예상 못한 시나리오였다. [4]
그런 그가 전격적으로 참모총장에 발탁된 사유는 추진하던 국방개혁 2020을 마무리 짓기 위한 노무현 정부의 의도였다. 박흥렬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김장수를 도우며 국방개혁 2020의 핵심 추진 라인에 있었다. 개혁의 연속성 확보와 마무리를 위하여 현역 참모총장 김장수를 파격적으로 국방부장관에 발탁하고[5] 호흡을 맞추던 참모차장 박흥렬을 더 파격적으로 참모총장에 발탁한 것이었다. 당시 후보자들 중 군생활 전체를 기준으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는 방식으로 점수를 산정해서 발탁했다는 소리도 있는데 누가 봐도 김관진이나 김병관의 경력이 박흥렬을 압도했다.
박흥렬이 참모총장이 되면서 김관진은 합참의장으로 발탁되었지만 김병관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되면서 희비가 다소 엇갈렸다.[6] 군 내에서는 박흥렬의 파격적 발탁에 충격을 먹었고 김병관의 낙마는 아쉽지만 박흥렬의 자질은 인정하는 소리가 있었다. 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장성들을 숙청[7] 할 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08년 3월에 임충빈 장군에게 이임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2013년 장관급으로 격상된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으로 발탁되어 임기 끝까지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경호실장으로 활동했다. 여담으로 당시 국정원장 남재준[8] , 국가안보실장 김장수, 국방부장관 김관진 등 핵심 안보 인사들이 전부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으로 채워졌는데, 이는 문민정부 이후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1] 여담으로 그가 참모총장에 오르면서 경쟁자였던 권영기 장군이 전역했는데 육군의 마지막 갑종장교였다.[2] 박근혜 정부 첫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으나 청문회에서 여러 의혹이 겹쳐 낙마했다.[3] 육사 기수당 유능한 인재 1~2명씩 독일 육사로 유학시키는 제도로 해당 기수 육사 수석 졸업자보다 높게 쳐줬다. 대표적인 독일 육사 유학 출신으로 김관진과 김태영이 있다.[4] 육군에서는 주류인 작전 특기가 아니면 대장 달기도 매우 힘들거니와 참모총장행은 꿈도 못 꿀일이다.[5] 문민통제 구현을 위하여 현역 대장은 예편한 뒤 다소 시간이 흐른 후에 국방부장관에 기용되곤 했다.[6] 참모총장은 육군의 꽃이며 군정권을 가지고 있고, 합참의장도 참모총장에는 밀리지만 전군의 작전 지휘권을 가지면서 선망하는 보직이 되었다. 다만, 대장 1차 보직이나 다름 없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된 김병관이 물먹었다고 보면 된다. 김병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되며 재기하는가 했는데 갖은 의혹에 휩싸여 청문회에서 침몰했다.[7] 숙청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게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인사들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배제했다. 전임 정부 대장들을 물갈이하기 위하여 육사교장이던 중장 임충빈을 참모총장으로 올렸을 정도. 이처럼 전임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하던 유능한 장교들은 진급에서 사정 없이 물먹었다. 김장수와 김관진이 기용되기 시작한 후에야 이게 풀렸고 이들이 안보 라인의 핵심이 된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약진하는 현상이 벌어진 바 있다.[8] 남재준 원장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상당히 대립각을 많이 세웠음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낫다고 술회해 측근들을 놀라게 했다고. 사실 유난히 싫은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스타일이라 국정원장시절에도 박근혜와도 대립각을 세우다가 세월호참사 터지고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