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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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국방부 장관.
2. 생애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경기고등학교(64회)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재수를 거친 끝에 육사 제29기로 들어간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직후 서강대학교에 입학해 독어독문학 학사를 취득한다. 한국경제 기사.
김관진의 뒤를 이어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에 보임되었으니 이명박 정부 첫 합참의장이다. 오랜만에 나온 포병 병과 출신 합참의장으로, 전임 김관진 예비역 대장과 마찬가지로 독일 육군장교학교 유학파 출신이다. '독일 육사 전성시대'
2009년 9월 23일 37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예비역 대장으로 전역 후, 같은 날 한 시간 만에 제42대 국방부장관에 취임하였다.[1] 김관진 장관과 출생년도는 49년으로 같지만 재수를 하는 바람에 한 기수 후임이다. 다만 장관직은 먼저 맡게 되었다.
중령시절 제15보병사단에서 포병대대장을 역임했고, 합동참모의장 보좌관을 지냈다. 1991년 대령으로 진급하여 8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연대장과 제56보병사단 참모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전쟁기획과장,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국방담당관을 지냈다. 1997년 준장 진급 후에는 제6군단 포병여단장과 국방부 장관 비서실장, 서울대학교 학군단장[2][3] 을 지냈다. 2000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23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냈다. 중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4] 을 역임했고,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과 합동참모의장을 지냈다.
합참의장 이임 후 1시간 만에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역대 최단시간[5] 만 민간인으로 있다가 장관이 되었다. 장관 재직 중에는 '''군가산점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천안함 침몰, 북한의 연평도 포격 같은 외부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장관임기를 마쳤다.
가끔 말실수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0년 제주도 대한민국 해군기지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간담회를 하던 도중 '아프리카는 밀림 자연만 있고 무식한 흑인들만 뛰어다니는 곳'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사
천안함 피격사건을 두고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이진삼 의원이 장성들의 군번줄 착용 문제를 들먹이자 '''군번줄은 전시에 필요한 물건이지 평시인 국회 청문회에 차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답한적이 있다. 그때 군인의 기본자세를 망각했느니 어쨌느니 하는 반응이 나오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 인가? 오히려 사건의 진상조사나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경례나 군번줄 발언으로 새나간 이진삼 의원이 문제다. 더군다나 이진삼 의원은 실력 없이 '''하나회 빽'''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로 국군정보사령관 시절에 정치인 테러 등을 저지른 사람이다.[6]
물론 당시의 김태영 장관 발언도 문제는 있었다. 군번줄은 전시에만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평시에도 착용해야 하는 물건이다. 김 장관의 의도는 지금 군번줄 문제로 설왕설래 할 때가 아니고 사건 진상조사에 집중하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의원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군번줄 문제보다 사건 진상조사가 더 시급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문제부터 논의하고 군번줄 착용 같은 기본 자세 문제는 따로 훈시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의 좋은 예시인 것이다.
뛰어난 장관이라는 평을 들으며 김장수 국회의원(예비역 대장)처럼 퇴임 후 정계 입문까지 점쳐지기도 했지만 임기 내에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천안함 사건 당시에 사의를 표명했으나 군 내부의 동요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결국 2010년 11월 25일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당시의 언행과 연평도 포격 대응의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했다. 국방장관 후임으로는 한 기수 선배이자 이 사람의 전임 합참의장이었던 김관진 예비역 대장이 내정되었다.
요약하자면 군인으로서 모범적인 인품과 신망의 소유자이며, 그동안의 경력도 화려했지만, 재임 시기에 휴전 이후 북한에 의한 가장 공개적인 군사도발이 차례로 발생하면서 '패장' 이미지가 박혀버린 인물.
팬카페도 있으나 회원들의 활동이 끊긴 상태.
2014년 ~ 2016년까지는 한민고등학교의 이사장직을 맡았고, 2016년 2월부터는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나무위키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 중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던 이준구 교수와는 경기고 64회 동기동창으로 고3때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이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고교시절부터 모범생이었다고...한민고등학교 설립 당시 같이 주축으로 활동한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7] 도 김태영과 고교 동기다.
3. 특이점
몇몇 여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과 입씨름을 벌여서 이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회 국방위원회 일부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국방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들이 몇 없었다. 애초에 포병 출신 4성장군을 상대로 포병에 대해 입씨름을 벌여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김 장관의 VS 국회의원 입씨름 영상은 국회방송이나 돌발영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8]
▲ 그런데 출신 육사 선배 이진삼 국회의원한테 욕을 겁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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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매우 청렴한 사람으로,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도 별을 수 없이 달면서도 재산이 7억 남짓이고, 그나마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 25.7평 아파트(3억)와 부인이 상속받은 대지 위주였다. 게다가 아들은 병장 만기 전역이라 병역 의혹이 없고, #, 그 자신이 법을 어긴 것이라곤 '''속도위반으로 딱지 떼인 게 전부여서''' 주목받았다.
게다가, 딸의 결혼식은 비용을 투명하게 집행하기 위해서 신용카드를 썼다. 당시 청문회 때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은 이날 '신용카드 사용'을 언급하며 경의를 표하듯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결국 청문회에선 오직 정책에 관한 질문만이 들어왔다. 당시 야당이던 문희상 의원은 "아주 잘된 인사"라고 칭찬을 할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청문회를 무탈하게 통과한 두 사람(김태영, 김황식) 중 일인이었다.
같은 날, 백희영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엔 아들의 병역의혹, 부동산 탈루, 논문 가로채기 등등의 문제로 탈탈 털리고 있던 것과 제대로 비교가 되었다. 고소영 내각이니 강부자 내각이니 하면서 새 총리까지도 위장전입 문제 등 다양한 도덕성 논란 속에서도 예외로 취급받는 인물이었다.
4. 논란
4.1. UAE 한국군 개입 비밀협약
[단독] 김태영 "UAE와 군사협약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하자 했다"
“이면계약 없다”던 이명박, 거짓말 들통…김태영 'UAE 한국군 개입 비밀MOU' 실토
국회 위증·무능한 MB·무책임한 태도…김태영 전 장관 인터뷰 후폭풍.
2018년 1월 9일 김태영 본인이 직접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과 관련하여 큰 폭탄발언을 던졌다. 당사자로서(국방부장관) 당시에 이면합의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 군사 관련 중대 조약은 헌법상 국회 비준이 반드시 필요한데, 스스로 그것을 어겼음을 밝혀버렸다. 사태 추이가 어찌 되냐에 따라 그동안 받아온 참군인으로서의 명성과 신뢰가 박살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에, 까딱하면 이것 하나만으로 이명박 정부 수뇌부 상당수가 구속될 초대형 문제다![9] 자세한 내용은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 항목 참조.
본인은 문재인 정부에서 너무 성급하게 협약을 수정하려 한 것이 UAE의 반발을 사려 했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았지만, 이면합의가 욕먹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헌법과 입법부를 무시하고 국회 비준도 없이 이런 밀약을 체결한 것 자체가 문제다. 거기에 사소한 협약도 아니고 국군의 파병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합의하면서 '''국회나 국민에게 거짓말까지 한 점은'''[10] 군인으로서 자각이 있는지 의문이 드든 부분이다. 그리고 위법을 떠나서 정치적으로도 당장 직전 정권때 파병문제로 국가와 국민들이 얼마나 골머리를 썩고 찬반갈등이 심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도대체 수십년간 짬밥은 어디로 먹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또한 2010년 당시 국회에 나가서 거짓말을 한 이유가 가관인데 '''국회가 당연히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덮어두고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그 때 가서 국회의 비준을 받으려고 했다고 한다.[11] 그리고 김태영 전 장관은 이런 엄청난 사실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태영 전 장관의 잘못이 지대한 것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무능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일이 심각해 진다.[12] 만약 진짜로 전쟁이 터져서 UAE가 협약에 따라 참전을 요구한다면 대한민국은 있는 줄도 몰랐던 동맹국을 지키러 전쟁터에 나가거나, 있는 줄도 몰랐던 군사협약을 어겨서 외교적, 군사적 입지를 잔뜩 깍아 먹어야 했을 것이다.
김태영 입장에서 이번 이면합의 고발은 무식할 정도의 자충수인데 당장 김태영은 문재인 정부가 비밀협약을 건드린 걸 비난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김태영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 파병협약인 이상 절차적으로 파기든 공개든 건드리지 않을수가 없는 협약이었다. 내용도 심각한 독소조항이었던 것은 덤이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는 자원외교 등 이명박 정부의 비밀을 조사할 명분, 아니 반드시 조사해야 할 의무가 생겨버렸다. 다른 협약에도 이런 심각한 이면합의가 있을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로서 반드시 조사해야하는 상황이다. 아래 각주처럼 김태영은 이번 UAE 이면합의에 대한 처벌은 여러 이유로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재인 정부입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다른 외교 합의들도 반드시 들여다 봐야하는 상황인지라 김태영은 물론 다른 이명박 정부 수뇌부들이 안엮일수가 없는 상황이다.
한편 김태영의 이 자충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에게 하는 투항선언(이명박을 버리고 비리를 고발할테니 징역만 면해주라)이 아닌가 하는 썰도 있다. 그러나 인터뷰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 몰랐으며 한편으로 지금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비밀 협정을 건드린 탓이라며 책임을 돌리는 투의 발언이 섞여있어 당시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터뷰라는 평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현재 법률적으로 김태영 전 장관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 역시 이 타이밍에 자백한 동기일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실제로 김태영 전 장관이 당시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자백한 시점이 위증죄 공소시효 7년이 막 지난 시점이다. 즉, 고백 혹은 자백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 혹은 국방부에 책임이 돌아가는 상황을 돌리기위한 어그로 끌기용 발언이었다는 것. 혹은 가장 심각해보이는 추측으로는 전직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진짜 자동 파병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얼렁뚱땅 넘길수 있다고 생각해 이런짓을 벌였다는 추측이다.
오죽하면 김종대 의원에 따르면 외교부에서 '국방부 걔네들은 미쳤다'고 했을 정도이다.
5. 경력
- 1970. 1.~1973. 7. 서독육사 파견
- 1972. 4. 서독육사 임관
- 1973. 3. 육군사관학교 졸업
- 1973. 9.~1974.10. 1사단 59포병대대 1포대 관측장교/전포대장
- 1974.11.~1975. 2. 육군사관학교(민간대 위탁교육 준비)
- 1975. 4.~1977. 3. 서강대 독어독문학과 위탁교육(학사과정)
- 1978. 6.~1978.12. 포병학교 고등군사반 교육
- 1978.12.~1980. 6. 15사단 68포병대대 2포대장
- 1980. 6.~1982. 2. 육군사관학교 독일어 강사
- 1982. 2.~1983. 2. 육군대학 정규과정
- 1983. 2.~1984.12. 특전사 작전처 작전장교
- 1984.12.~1986.12. 15사단 26포병대대장
- 1986.12.~1987.12. 1군사령부 작전처 작전장교
- 1987.12.~1989. 2. 1군사령부 행정실 행정실장대리
- 1989. 2.~1989. 4. 1군사령부 작전처 연구관
- 1989. 4.~1990. 9. 합동참모본부 의장실 의장보좌관
- 1990.10.~1991. 9.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검열관
- 1991. 9.~1993. 4. 8사단 포병연대장
- 1993. 4.~1993.12. 56사단 참모장
- 1993.12.~1994.12. 영국 국방대학원 국방정책연수과정
- 1995. 1.~1995.12.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방위/전쟁기획과장
- 1995.12.~1996.11. 대통령 비서관실 국방담당관
- 1996.11.~1997. 4. 101학군단 단장
- 1997. 4.~1998. 3. 6포병여단장
- 1998. 3.~1999. 1.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 1999. 1.~2000.11. 국방부 정책기획국 차장
- 2000.11.~2002.10. 23사단장
- 2002.10.~2003.10.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 2003.10.~2004. 3.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기획국장
- 2004. 3.~2004. 5. 국방부 국제협력관
- 2004. 5.~2005. 5. 수도방위사령관
- 2005. 5.~2006.11.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2006.11.~2008. 3. 1군사령관
- 2008. 3.~2009. 9. 합동참모의장
- 2009. 9. ~2010. 12. 국방부장관
6. 상훈
- 1992. 10. 대통령 표창
- 2001. 10. 보국훈장 천수장
- 2007. 10. 보국훈장 통일장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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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말에 벌어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왜 바로 전투기를 띄우지 않았냐고 질책을 하자 "실제 상황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기사1 기사2
- 본인 이후 한동안 포병 출신 4성 장군이 안 나왔으나, 2017년 정권교체 이후 드디어 다시 부활했다.
[1] 다른 국방부장관 후보들은 전역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양복 정장을 입고 인사청문회를 치렀지만, 김태영은 합동참모의장 보직을 가진 군인 신분으로 육군 정복을 입고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를 치렀다. 전역 당일 날 장관 취임했기 때문에 야권측에서는이를 두고 약간의 논란이 일었다. 9년 후정경두 장관이 이 전철을 밟았다. 현직 합참의장 신분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취임 당일 10시에 전역식, 14시에 취임식[2] 당시 서울대 학군단장은 준장 자리였다. 군사정권의 특혜를 받아서 진급 자리이기도 했다. 역대 서울대 단장 중 이 분을 포함해 2명이 대장까지 진급했다. 다른 한 사람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과 주 대만 대사를 역임한 박노영 예비역 대장. 박노영 대장은 호국군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 유일하게 대장까지 진급했다.[3] 서울대 학군단 단사 2층에 가면 역대 학군단장 사진이 걸려 있는데서 김태영 장군의 사진도 볼 수 있다.[4] 원래 합참의 작전관계직(작전본부장, 작전부장 등)이 요직 of 요직이다. 작전부장은 사단장을 마치고 소장 2차 보직, 작전본부장은 군단장(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포함)을 마치고 중장 2차 보직으로 부임하는데 이 보직들을 거쳤다는 것은 다음 계급으로 진급하는데 청신호가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작전본부장 보직은 수많은 대장을 배출했다.[5] 1시간 남짓[6] 이진삼 의원이 실력 없이 하나회 빽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진삼 의원은 중위~대위 시절 북한에 여러차례 침투하여 정찰 및 공작활동을 하며 북한지역 내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며 북한군을 사살하는 등 위험한 임무를 여러차례 맡으며 진급을 하였다. 군번줄에 대한 집착은 이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시 여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7] 홍두승 교수의 부친은 홍대식 육군 예비역 준장(前 육군 경리감)이다.[8] 하지만 천안함 음모론을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패장의 모습 어쩌구하는 망언을 듣고 있다.(...)[9] 이 비밀협약 의혹을 언급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당시 정부가 여러 중동국가와 맺은 비밀협약이 더 있을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만일 이마저 사실로 드러나면 생각조차 할 수없는 무시무시한 파장이 일게 된다. 비록 김종대 의원이 논란거리가 많은 인물이긴 하나 UAE 협약 건에 관한 행보를 보면 가볍게 넘어갈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10] 2010년 당시 유승민 국방위원장이 이면합의의 유무에 대해서 집중 추궁을 했는데 이 때 김태영 당시 장관은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거듭 답변했다.[11] 일본군은 일단 전쟁 일으키고 상부 결재 받는 식으로 전쟁을 시작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상부 몰래 일터트리는 것이 매우 똑같다.[12] 그리고 UAE 입장에선 이명박 정부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당시 정부가 목적이었던 자원외교의 성과를 위해 자국의 입법부와 협상 상대국까지 속여버린 것이라는 황당한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