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군인)

 


'''김관진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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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3대 국방부 장관
김관진
金寬鎭 | Kim Kwan-jin
'''
[image]
합참의장 재직 시절
<colbgcolor=#dd0000><colcolor=#fff> '''출생'''
1949년 8월 27일 (75세)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1]
'''본관'''
경주 김씨
'''재임기간'''
제20대 제3야전군사령관
2005년 4월 4일 ~ 2006년 11월 17일
제33대 합동참모의장
2006년 11월 17일 ~ 2008년 3월 25일
제43대 국방부 장관
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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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0000><colcolor=#fff> '''부모'''
아버지 김영문
'''배우자'''
김연수
'''자녀'''
슬하 3녀
'''종교'''
천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학력'''
전주중앙초등학교 (졸업)
전주북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 20회)
'''경력'''
제43대 국방부 장관
제2대 국가안보실장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28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2년 3월~2008년 3월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제3야전군사령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이자 정치인. 前 국방부장관, 국가안보실장.
전라북도 임실군 출신으로 전주북중학교[2]서울고등학교(20회)를 졸업하고,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까지 지냈다. 2008년예편했으며, 최종 계급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이다.
이후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하여 전임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장관직을 사임하자, 26일에 그 후임 장관으로 내정되었고 다음 달 4일 정식으로 제43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김관진 장관 취임사 전문 그리고 2014년 6월 1일, 전임인 김장수 초대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이임 후, 국방장관직은 후임인 前 합참의장 한민구 장군이 맡게 되었다. 퇴임후에는 국방부를 동원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정황과 증거문서가 발견되고 재판 중에 있으며,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도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의 주동자임이 밝혀져 진행 중인 재판이 하나 더 생겼다.
대부분의 정무직 공무원에 해당되는 사항이긴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에 대해 보여준 강경한 자세 등으로 인해 참군인이라는 칭송을 듣고,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는 여론조작 및 계엄령 모의 사건 연루 등으로 인해 똥별 취급을 받는 인물이다.[3]

2. 생애



2.1. [image] 대한민국 군인



2.1.1.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친 후 서독 육군에서 졸업까지 하고 왔다. 당시 그가 수학했던 1969년 뮌헨의 서독 육사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처지의 후진국 출신 생도들이 유학 중이었고, 그중 한 달에 60달러($)로 생활해야 했던 김관진 생도는 졸업할 때까지 그럴듯한 식당에서 식사 한 번 못 해봤다고 한다.
독일 육사가 학사 학위를 주지 않은 탓에 한동안 학력이 고졸로 처리되었다.[4] 육군에서 보상으로 서울대학교 위탁 교육을 제안했지만 자기는 군인이 되기 위해 임관했다며 거절했다. 나중에야 학력이 인정되고 육사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1.2. 주요 경력


1972년 육군 보병소위로 임관해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12사단 52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소대장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학군단인 101학군단 교관을 지낸 후 서독 육군 전투병과학교에서 고군반을 이수했다. 귀국 후 수방사에서 203차량화보병대대 3중대장을 지내고 육군보병학교 전술학처 전술교관을 거쳤다.
영관급 장교 시절 육군대학 정규과정을 이수했으며, 대통령경호실 경호요원으로 파견근무를 했다. 이후 15사단 50연대 2대대장을 지냈으며, 동사단에서 작전참모를 지냈다. 육본 작전참모부 군사대책계획총괄장교를 지냈으며 국방대학원 안보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국방부 818기획단 법규과장을 지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26기계화보병여단장을 지냈는데, 이때 수기사의 차상급부대인 제7기동군단이현부 중장(육사 20기)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순직했다. 이후 합참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력과정과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장군으로 진급한 후 7사단 작전부사단장을 거쳐 육군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을 지냈다. 이후 준장 요직인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과 육본 전력기획참모부 전략기획처장을 지냈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35보병사단과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을 지냈다. 기획관리참모부장 후임으로 김태영(군인) 전 국방부 장관이 맡게되었다.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단과 중장 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했다.
군단장 시절 2003년 10월 1일에 열린 국군의 날 제55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았다. 작전본부장 시절 이라크 파병을 총괄했는데, 상당히 중요한 보직이라 이때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꽤 높아졌다. 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선일씨 사건 당시 이라크 파병과 부대 경계 회의 등에 참여했었다. 10월 14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가서 동해안에서 잠수함 추정 물체 출현 첩보에 대해 보고했다.
이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원도 명예 도민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을 다룬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에 저자로 참여했다.

2.1.2.1. [image]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2006년 11월 17일, 군 최고 서열인 제33대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2.2. [image]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2010년 12월 4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뒤를 이어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군인사를 불신하며 여러 국방장관 후보자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누군가 김관진을 추천하였고 그와의 대면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대담의 내용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도발이 있을 경우 가장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피력한 점이 장관 후보로 발탁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다.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세나 건보료 탈루 의혹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당시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전례없는 도발행위로 인해서 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던 김관진의 인사청문회는 큰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 취임 초기부터 재임 기간 내내 강경한 대북정책의 입장을 취해왔던 터라 김관진이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전군에 선조치 후보고의 매뉴얼이 매번 강조되었다. #1 취임 첫날, 연평도 방문 北, 추가도발시 항공기 동원 폭격, 선조치 후보고
2010년 12월 4일, 취임식 이후 북한의 포격도발 현장인 연평도를 방문했다.#
2011년 5월 27일, 축사를 통해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의 귀항#을 축하하고, 청해부대 장병 가족들의 건승과 해군의 발전을 기원하는 멘트와 함께 축배 제의를 했다.

2011년 7월 1일, 제5보병사단 최전방의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하였다.#

2012년 3월 15일 핵안보정상회의를 준비중인 코엑스를 방문해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관계관들을 격려했다.

2013년 3월 22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인 예비역 육군대장 김병관 장군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자진 사퇴함으로써,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자 박근혜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서 국방업무를 계속 총괄하게 되었다. 이에 뒷이야기가 좀 있는데, 골치 아픈 일도 다 그만두니 유학 중인 이나 보려고 관사에서 짐 다 빼고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다가 덜컥 유임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년이라고 무시하던 실무자들이 유임 후 굽신굽신하는 모습을 꼬집기도 했다.
2012년 10월 15일 '노크귀순' 사건과 관련,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2013년 4월 9일 TV조선의 보도영상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김관진 실장을 '''김관진놈'''이라고 부르며, 훈련 때 목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고 훈련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이명박을 비롯한 보수 정권의 주요 인물들이 공개적으로 강경한 대북 정책을 취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관진은 전임 장관이었던 김태영이 사실상 경질될 무렵 강조되었던 '도발 원점 타격', '적 지휘부 공격', '선조치 후보고'를 임기 기간 내내 전군에 강조한 바 있었다.
북에서 김관진놈이라고 사진을 가지고 붙인 것은 김관진 본인이 참군인이기에 북에서 두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11월 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유승민 국방위원장의 질문에 북한이 대규모로 장사정포 공격에 나설 징후가 있을 경우 선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3년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 출석해 "우리가 단독으로 전쟁을 하면 북한을 충분히 응징할 수 있느냐"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의 질문에 "전쟁 나면 북한은 멸망"한다고 답했다.#

2014년 6월 10일, 국방부장관 주관 국방 방산발전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2.3. 국가안보실장


2014년 6월 1일 세월호 참사 수습 실패로 인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사퇴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2015년 8월 22일 판문점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바 있다.
2016년,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THAAD 배치를 발표했다. #

3. 사건사고/논란




4. 경력


  • 1972. 4.~1973. 2.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
  • 1973. 2.~1973. 6. 육군보병학교(초등군사반) 교육
  • 1973. 6.~1974. 3. 12사단 52연대본부 전투지원중대 소대장
  • 1974. 3.~1976. 1. 종합행정학교 101학군단 교관
  • 1976. 2.~1977. 4. 서독 전투병과학교(고등군사반) 교육
  • 1977. 5.~1978.11. 수방사 203 차량화보병대대 3중대장
  • 1978.11.~1981. 3. 보병학교 전술학처 전술교관
  • 1981. 3.~1982. 2. 육군대학 정규과정 교육
  • 1982. 2.~1983.10. 대통령경호실 경호실요원(파견)
  • 1983.10.~1985.12. 15사단 50연대 2대대장
  • 1985.12.~1988. 1. 15사단 작전처 작전참모
  • 1988. 1.~1989. 2.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군사대책계획 총괄장교
  • 1989. 2.~1989.12.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교육
  • 1990. 1.~1990. 9. 국방부 818기획단 법규과장
  • 1990. 9.~1992. 3.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여단
  • 1992. 3.~1993.12. 합참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략과장
  • 1993.12.~1996. 1. 대통령 비서실 파견
  • 1996. 1.~1996. 1. 7사단 부사단장
  • 1996. 1.~1996.11. 교육사령부 전투개발부 차장
  • 1996.11.~1998. 4. 육군본부 비서실장
  • 1998. 4.~1998.11.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략기획처장
  • 1998.12.~1999. 4.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장
  • 1999. 4.~2000.10. 35사단장
  • 2000.10.~2002.10.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 2002.10.~2004. 5. 2군단장
  • 2004. 5.~2005. 4.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2005. 4.~2006.11. 3군사령관
  • 2006.11.~2008. 3. 합동참모의장
  • 2008. 4.~2010. 7.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자문위원(비상근)
  • 2010. 12. ~2014. 6. 국방부 장관
  • 2014. 6. ~ 2017. 5. 국가안보실장

5. 상훈


  • 1983. 10. 보국훈장 삼일장
  • 1989. 4. 대통령 표창
  • 1997. 10. 보국훈장 천수장
  • 2003. 10. 보국훈장 국선장
  • 2008. 4. 보국훈장 통일장

6. 여담


  • 2011년 5월 2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공식적으로 트위터 활동을 시작했다. 트위터 주소 민감한 정보와 현안을 제외한 다양한 국방정책에 대해 장관 본인이 직접 국민과 소통의 장으로써 트위터를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 2012년 1월 2일 국방장관의 트위터로 7사단의 한 병장이 직접 소원수리 멘션을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5]
  • 김 장관의 집무실 의자 뒤편 벽에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군사보좌관 김격식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이 A4용지 크기로 걸려있다고 한다.[6] 이러한 적들의 사진이 장관의 집무실에 걸려있다는 것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적이 장관의 등을 노려보고 있는 만큼 한시도 적을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 2011년 8월 10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김관진 장관 암살을 위한 간첩단이 국내에 잠입 중이라고 했으나, 이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판명났다.
  • 참여정부 시절 장성으로서 10년이 넘도록 중용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는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과 전작권 반환을 적극 추진하였지만 보수정권에서는 180도 바뀐 모습을 보이는 줏대없는 인물이라는 비판이 있다. 군인 김관진과 국방장관 김관진의 행적이 너무 대비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금배지나 달아보겠다고 정계 기웃거리는 똥별들보다는 묵묵히 튀는 일 없이 주어진 소임에 충실하는 게 낫다는 긍정적 시선도[7] 있었다
  • 2017년 5월 29일 주진우,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안민석 의원이 출연한 SBS 라디오 방송 중,노승일 전 부장이 “내가 ‘박원오 원장님이 너(정유라)네 아버지(정윤회)랑 형님 동생 한다는데?’ 그러자 유라가 ‘웃기지 말아요. 우리 아빠는 김관진 아저씨하고만 형님동생이에요’라고 말해서 저는 ‘김관진? 국방부장관?’ 이렇게만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질문 안 던졌다”는 주장을 꺼냈다.# 이어서, 노승일 전 부장은 당시 정유라의 남편(신주평)의 대한 병역비리에도 관련되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미 신주평의 병역 비리 의혹은 안민석 의원의 실수임이 밝혀졌다. 신주평 본인은 2016년 12월 5일 채널A 단독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본인은 처음부터 현역입영 대상 판정을 받았으며, 1회 연기했으며 2017년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현역병 입영장 까지 공개하며 밝혔다. #

7. 관련 문서




[1] 국가안보실장 퇴임 이후에도 이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2] 전주고등학교와 함께 전라북도의 수재들만 모여든 학교로 전주고등학교와 같은 캠퍼스 안에 있었다. 중학교 입시의 과열을 잠재우고자 명문고와 연계된 중학교들이 폐교되었다. 폐교 문서 참조[3] 물론 진보진영 중 일부는 합동참모의장 혹은 국방부장관에서 끝냈으면 저런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고, 명예롭게 군생활을 마무리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분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현역군인 시절 때 보인 강인한 자세 때문이다.[4] 당시 서독 연방군에 육사는 없고 부사관학교만 있어 부사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고 나머지 2년은 병과학교를 순회하며 교육받아 정식 학사학위를 받지 못 했다.[5] 당시 취임한 사단장이 전방 격오지 사단의 휴가에 1일씩 붙여주던 '1야전군 위로 포상'과 함께 잡다한 포상 휴가들을 일거에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위로포상의 삭감 때문에 그 병사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기세였고, 이 포상휴가 삭감은 7사단이 소속된 제2군단 내의 전 부대에 전파되기까지 했다. 이에 김 장관은 알았다며 사실 확인 후 시정할 것이라는 답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해당 병사는 상급 지휘관들에게 분노를 샀다.[6] 우리나라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은 2000년대 중반 후계자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의 군내 우상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또한 김격식은 2005년 김 장관이 합참 작전본부장을 마치고 서울과 수도권 방어를 주 임무로 하는 제3야전군사령관을 맡았을 때 반대편에서 서울과 경기 북부를 공격대상으로 하는 2군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당시 두 사람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2006년 11월 ~ 2008년 3월 합참의장이었을 때 김격식은 김영춘에 이어 군 총참모장(2007년 4월 ~ 2009년 2월)을 맡았다. 김격식은 이어 황해도와 서해 북방한계선#s-2(NLL)을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내려왔는데, '강등'이라기보다는 전권을 갖고 NLL을 무력화하라는 임무를 띠고 왔다는 게 우리 군의 분석이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 지난해 11월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김격식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은 그가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함께 일으킨 도발이라고 한다. 이렇듯 대남도발에 많은 전과를 올려 김정일에게 상당한 총애를 받아왔고 일찌감치 후계자인 김정은의 측근으로 분류돼 2011년 9월 그의 군사보좌관으로 승격되었다.[7] 문민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군의 특성상 제복군인은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