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普信閣
Bosin-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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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보신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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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보신각 모습.)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5. 여담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관철동)[1]에 위치한 제관양식 콘크리트 건축의 누각. 이 달린 누이라고 해서 흔히 종각(鐘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매우 가까운데 1974년 종로선(현 서울 지하철 1호선) 최초 개통 당시 종로1가 사거리에 만들어진 종각역의 명칭도 이 누각에서 따왔다. 특히 매년 12월 31일에 열리는 '제야의 종 소리'의 서울 지역 타종 행사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누각 자체는 여러 변천을 거쳤는데 조선 광해군 때 중건돼 해방 때까지 보존됐던 옛 누각은 한국전쟁으로 폭격에 의해 사라졌다가 휴전 후 복구되었으나, 현재의 누각은 1979년 구 보신각 터 바로 옆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누각으로 재현해 놓았다.

2. 역사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만든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설치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태종 13년(1413년)에 2층 종루를 새로 짓고 위치를 통운교(現 종로 네거리)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1440년 세종 22년에 기존의 정루를 헐고 동서 5간 남북 4간에 2층으로 고쳐 지었고,세조 7년(1458년)에 새로 대종(大鐘)을 만들어서 설치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들이 한양을 점령한 동안 종루는 소실되고 대종도 파괴되었다.
광해군 11년(1619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도 새로 달았는데, 명례동 고개[2]에 있는 종각에서 종을 옮겨왔다. 원래 이 종은 원각사(圓覺寺)[3]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년)에 장악원을 옮긴다고 연산군의 명령으로 원각사를 폐찰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덩그라니 있던 종을 중종 31년(1536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겼고, 선조 30년(1597년) 임진왜란 때문에 다시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동시켰다. 새로 중건된 종각은 본래보다 작게 1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종각은 고종 연간에 여러 변화를 겪는다. 첫 번째 변화는 1864년 4월 19일 밤 4시경 지전에서 발생한 화재가 번졌으나, 급히 진압하여 종은 피해가 없었으나 종각이 모두 타버려 5월 24일쯤부터 종각의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어졌다. 그로부터 5년 뒤 1869년 9월 4일 두 번째 화재가 인근 시전에서 발생해 종각으로 번졌다. 그러다 10월 29일에는 완전히 제 모습을 찾으며 또다시 조금 변화하게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리가 뒤로 밀려나는 등의 변화도 있었다.
그 후 보신각은 1950년 6.25 전쟁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휴전 후인 1953년에 중건하였다.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과정에서 세종 때 지은 옛 종루의 초석이 발굴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누각이었다고 파악되었다. 이를 토대로 1979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4]로 종루를 새로 지었다. 발견된 주춧돌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85년에 본래의 보신각종[5]이 노후화되어 종을 새로 주조하고 교체하여 오늘에 이른다.[6] 보신각에 새로 건 종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복제했다는데, 이 종이 현대 기술로 진짜 에밀레종을 복제해놓고도 진품의 장중한 음보다 한참 못미치는 쇳소리가 난다고 까이기도 했다.[7] 종루도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에 다시 지은 건축물로 정면 5간 측면 4간의 콘크리트 2층 건물인데, 다시 말해 오늘날 보신각은 종까지 포함하여 전통 양식을 빌린 현대식 건축물인 셈. 안타깝게도 뒤로 더욱더 밀려났고 일제강점기에 바뀐 바라보는 방향 그대로 지었으며, 편액도 이승만의 글씨를 모각한 것으로 보인다.

3. 특징


서울특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물이며 종로구의 종 모양 로고도 보신각종을 본따 만들어졌다.[8] 종로구청도 근처에 있다.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총 33번에 걸쳐 보신각종을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여는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로 꼽힌다.[9] 이때면 종로를 지나는 차량이 전면 통제되고 많은 시민들이 보신각 앞으로 운집하며 지하철은 종각역을 무정차 통과한다. 이로 인해 1·3·5호선 종로3가역, 5호선 광화문역, 2호선 을지로입구역 등 인근의 지하철역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하차하게 된다. 1979년 보신각이 현재의 형태로 중건된 이후 줄곧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려왔는데[10]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타종 행사가 아예 취소됐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취소된 것은 1953년 제야의 종 행사의 연례화 이후 처음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종을 12번 타종한다. 예전에는 덕수궁 수문군이 이곳까지 와서 행사를 했는데, 이제는 그냥 종만 타종한다.
12월 31일 이외에도 3.1절, 광복절국경일이나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 등 국가적으로 특별히 경축해야 할 날이 되면 타종 행사를 열기도 한다.[11]

4.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image]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1호

2호

3호
한강대교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구 통계국 청사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은 수도권 전철의 높이 및 깊이의 척도가 되는 원점이다. 종로의 이 수준점을 기준점으로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의 높이, 역사(驛舍)의 상하축 높이가 가늠되었다. 1960년대 인구 과밀화와 차량 증가로 교통체증 문제를 겪던 서울특별시는 1970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09호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설치조례》가 국무총리의 승인을 얻어 공포된 후 6월 9일에 서울지하철 건설본부를 신설했다. 이후 7월 제4차 한일각료회담을 거쳐 9월에 일본 지하철건설 기술용역단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이를 통해 지하철 건설은 기존의 철도망을 전철화하는 한편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지하로 연결하는 수도권 고속전철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서울 지하철 계획의 첫 작업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서울시내 지하철 공사를 위한 모든 측량작업이 이루어졌다. 보신각 울타리 안에 설치된 직경 7cm, 길이 12cm의 놋쇠 못이 한가운데에 박힌 사방 25cm의 화강암 수준점은 지상 20cm 높이로 묻혀 있으며,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날 양택식 시장이 수준점을 설치한 후 첫 측량에 나섰고, 측량 작업은 그해 11월 30일까지 진행되었다.

도로 확장에 따라 보신각이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수준점도 이전되어 수준 기점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여전히 보신각 구역 내에 위치하고,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서울시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5. 여담


  • 2017 11월 방영된 SNL 급식체 특강 2편에서 보신각은 규장각과 함께 각드립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의외로 법정동 종로1가에 속해있지 않다.[2] 오늘날의 명동 일대이다.[3] 현재의 탑골공원에 있었다. 탑골공원 내에는 지금도 국보 제2호인 원각사 터 10층 석탑과 원각사비가 남아있다.[4] 이에 앞서 인근의 광화문도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다가, 해체하고 다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바 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전통 방식의 건축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는 일은 흔한 결정이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복원된 전통 방식의 건축물이 몇몇 남아있다.[5] 보물 제2호, 현재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 중이다.[6] 교체 이후 첫 타종은 1985년 광복절 때 일이다. 지금도 첫 타종 날짜로 된 기념비가 앞에 있다.[7] 두 종이 왜 비교가 됐냐면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에밀레종을 더 이상 치지 않지만, 80년대에는 에밀레종도 자정에 타종했고 그걸 TV에 생중계했다. 새 보신각종(에밀레종 복제품)과 에밀레종 치는 것을 교차해 생중계했는데 그 소리 수준 차이가 일반인들도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쉽게 알아차릴 만큼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8] 이전에 쓰인 로고 역시 보신각에서 따왔다.[9] 보신각종 외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 설치된 종루에서 각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린다. 다만 보신각종의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새해맞이 순간으로 이 종의 타종을 꼽는다.[10]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12월 31일 밤은 통금이 예외적으로 해제된 덕에 제야의 종 타종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보신각 주변에 몰려들기도 했다. 다만 최근처럼 종로 일대 도로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종로1가 사거리에 인파가 몰려드는 풍경이 연출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11] 국경일 경축 타종 행사는 낮 12시에 열고 신임 대통령의 임기 개시를 고하는 타종 행사는 취임일 오전 0시에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