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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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354호'''
'''서울 탑골공원'''
서울 塔골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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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외 (종로2가)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면적'''
15,051㎡
'''지정연도'''
1991년 10월 25일
'''제작시기'''
대한제국[13]
'''위치'''


塔谷(塔骨)公園 Pagoda Park
1. 개요
2. 역사
3. 문화재
4. 주변 정보
5. 사건사고
5.1. 삼일문 박정희 친필현판 철거 사건 (2001)
6. 같이 보기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에 있는 서울 도심의 공원.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어 탑골(탑곡;塔谷)이라고 불렀으며, 탑이 길쭉한 뼈 모양이라 탑골(塔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1] 별칭으로는 파고다공원으로도 불렸는데, 파고다(pagoda)는 탑파(塔婆)라는 뜻이니 마찬가지로 탑을 뜻한다.[2]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은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 조성된 인천 자유공원이다. 다만 자유공원은 외국인이 조성한 공원이므로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을 꼽으라면 탑골공원이 맞다. 한동안 서울시 당국이 일반 공원 차원에서 관리해 왔으나, 1991년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었다.
탑골공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3]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2. 역사


원래는 사찰이 있었던 자리였다. 고려 왕조 때는 흥복사(興福寺)라는 절이, 조선 왕조 때는 세조가 건립한 원각사(圓覺寺)가 있던 자리였다. 그런데 조선 10대 임금이자 폭군이었던 연산군이 원각사를 없앴고,[4] 11대 임금인 중종 때 건물이 철거되어 한동안은 원각사지 십층석탑만 선 공터로 남았다.
그 이후 1897년(광무 1년)에 영국인 고문이 이곳을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공원이 되었고,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기 때문에 '동양의 불탑'이라는 뜻의 '파고다'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야사에는 총독부가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부수기 위해 공작을 했으나, 실패하자 '빠가야로 공원'이라고 욕했고, 이것이 파고다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돈다.
일제 시기 들어서 솟을삼문식 남문을 부수고 석조 대문을 세웠으며, 1919년 3.1 운동 때는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운집하여 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되었고, 팔각정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 4.19 혁명 때도 이 공원은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탑골공원은 당시에도 서울 도심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일만한 유일한 공원이었는데, 하필 이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있었다. 4.19 당시 이 공원은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던 곳이기도 했는데, 시위가 극에 달했던 1960년 4월 26일 오전 9시 45분께 분노한 시민들이 공원 안으로 들어가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쳐부수게 된다. 그리고 동상이 철거된 직후인 오전 10시 20분에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하게 되었다.
탑골공원은 1967년부터 대대적으로 모습이 훼손된다. 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억 3,000만원이라는 초대형 민간자본을 투입해 광장의 테두리를 둥글게 두르는 대형 아케이드를 건설하고 공원 입장료까지 받았다. 이와 더불어 서양식 석조 대문은 1969년 동숭동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에 기증되어[5] 교문으로 쓰이기도 했고,[6] 1972년 삼성건축이 강릉 객사문을 모방해 삼일문을 새로 만들었다.
건설 당시 건설부가 아케이드 상가 건설을 반대했다고 하지만 정부의 고집으로[7] 아케이드가 지어졌다.[8] 2층짜리 상가로 지어진 이 건물은 파고다 아케이드라고 불렸고, 소공동 반도조선아케이드(현 스타벅스 소공동점), 공평동 신신백화점(현 SC제일은행 본점 터)과 더불어 서울의 3대 쇼핑 아케이드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 파고다 아케이드에는 악기상, 양장점 등이 있었고, 당시의 생활 수준에서 볼 때 고급으로 분류되는 기호물품을 파는 상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고다 아케이드는 줄곧 독립운동 사적지인 탑골공원을 훼손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시민의 지적을 받았고, 결국 1977년 서울특별시청이 아케이드 상인들을 상대로 관리권 명도이전 소송을 걸어 5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서울특별시청이 승소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후인 1982년 파고다 아케이드 철거 방침이 내려져 1983년 하반기에 철거가 이루어졌다.
공교롭게도 파고다 아케이드가 철거되면서 공원 바로 북쪽에 있는 낙원상가가 악기상의 메카로 자리잡았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파고다 아케이드가 철거되면서 이 상가에 입주하던 악기상들이 줄줄이 낙원상가로 이주한 결과, 낙원상가가 악기 도소매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파고다 아케이드의 건설과 철거 등이 담긴 2018년 중앙일보 기사를 읽어보자. 동 신문사의 다른 기사도 참고할만하다.
1988년 5월 무료공원으로 개방되었으며, 1991년 10월 11일에 정식 명칭을 '탑골공원'으로 개칭하고 2011년 7월 28일에 '서울 탑골공원'으로 변경했다.
90년대 이후 종묘 공원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으며, 공원 주변에는 노인들을 손님으로 하는 오래된 상가가 많다. 그러나 무료급식 등으로 노숙자가 몰려들고 일부 노인들이 술판을 벌이는 등 고성방가를 일삼으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게다가 속칭 '박카스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노인 전문의 중년 성매매 여성들까지 득실거렸다. 결국 2001년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탑골공원의 정비로 일부 설비 철거 및 무료급식소 이전, 고성방가 단속으로 노인 이용객이 하루 수십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풍선효과로 2009년경 노인 인구가 대다수 종묘광장 공원으로 인구이동이 일어났으나, 이후 2007년부터 시작하는 종묘 광장 성역화 사업으로 이곳의 노인 이용자 수 역시 격감하는 추세이다.

3.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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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대원각사비, 탑골공원 팔각정, 앙부일구(해시계) 받침돌, 만해 한용운 동상, 의암 손병희 동상 등이 있다.
이곳에 있던 종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광해군보신각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세한 내용은 옛 보신각 동종 문서 참고.

4. 주변 정보


길 하나만 건너면 인사동이다. 가끔 지도를 보고 찾는 관광객이 여기까지 오곤 한다.[9] 또한, 근처에 낙원상가도 있다.
탑골공원 동문 앞에는 서서 먹는 포장마차가 많으며, 낙원상가 근처까지 종로 3가를 포함하여 이 근처는 오래된 노포들의 집합소이다. 평양냉면부터 돼지머리국밥, 짜장면까지 해방 전부터 현대까지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하고[10] 오래된 가게가 많다. 그렇지만 외관이 낡고 빈곤한 노인층이 주 고객이라 관광지로 갈만한 곳은 아니다. 젊은층은 근방에 방송으로 유명해진 평양냉면 집이나 몇몇 맛집 등을 찾는 경우 혹은 요 몇년새 유명해진 익선동 한옥거리를 찾아가는 경우에 종종 지난다.
노인층이 많다 보니 최근 종로구청은 여기서부터 낙원상가까지 이르는 골목에다 어르신들의 홍대거리를 표방한 '락희거리'를 조성했다. 1960~70년대 당시의 모습을 컨셉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송해길이라는 명칭을 추가로 부여해서 홍보하고 있다.
탑골공원 맞은편에는 버거킹 국내 1호점이, 버거킹에서 종각 방향 맞은편에는 KFC의 국내 1호점이 있다.[11] 과거에는 KFC에서 종각 방향 옆에 맥도날드 국내 2호점이 있었지만 2016년 3월 29일부로 폐점되었다. 대신 맥도날드 종로3가점이 남아있다. 위치 특성상 값싼 커피를 마시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을 찾는 중~노년 고객이 많다.

5. 사건사고



5.1. 삼일문 박정희 친필현판 철거 사건 (2001)


정문격인 삼일문에는 해방 뒤부터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쓴 현판이 걸렸지만 1967년 파고다 아케이드 조성 후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현판으로 대체되어 기존 김충현의 현판은 서울시청 창고로 넘겨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박정희가 재평가되면서 현판 존치에 대한 논란이 몇몇 의식 있는 이들 사이에서 제기되었고, 2001년 11월 23일 한국민족정기소생회장 곽태영 등 5명이 해당 현판을 떼낸 후 소각시키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12] 이 사건을 계기로 현판 존치 논란이 점차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현판을 철거한 곽태영 등 5명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후 2002년 서울중앙지법에서 1인당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들이 항소에 상고까지 했음에도 2004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서울시 측은 2003년 독립선언문 서체로 쓴 새 현판으로 바꿨다.

6. 같이 보기



[1] RTHK 등 중화권에서는 탑동공원이라고도 부른다.[2] 파고다는 종로2가의 파고다 어학원 등에 남아있다.[3] 현실의 장소보다는 인터넷상 가상 장소를 가리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4] 그 이유는 자신이 놀 기생방을 만들기 위함이었다.[5]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지만 사적 지정 전의 일이라 기록이 미비해 실제 교문 위치는 아직도 알 수 없으며, 동숭동 시절 서울대 법대 출신들 사이에서도 교문이 방송통신대학교 쪽으로 나있다고도 주장했다.[6] 1975년 동숭동 캠퍼스가 관악으로 이전한 뒤에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교문으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7] 박정희 정부는 집권 이후 3.1 운동과 4.19 혁명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렸고 삼일절의 위상도 낮췄다. 그렇기에 파고다 아케이드를 건설한 것도 3.1 운동과 4.19 혁명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을 말살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있다는 역사학계 일부의 지적이 있었다.[8] 아케이드 건축 과정에서 공원 경내 남쪽에 있던 종로도서관이 쫓겨나 현재의 사직공원 뒤편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9] 관광안내소 지도를 보면 인사동 끝자락에 탑골공원이 걸려있어 마치 마지막 코스처럼 보이게 한다.[10] 국밥, 찌개, 면 등이 2~3천원선이다.[11] 지금은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브랜드이지만 하디스 1호점도 이 근처에 있었다. 현재의 지오다노 자리다.[12] 10월 26일에 이미 거사하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무산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