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사

 



보현사

普賢寺
1. 개요
2. 상세


1. 개요


북한묘향산에 있는 사찰. '''영변 3대사찰'''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혔던 절이었다. 현지에서의 행정구역은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향암리이다.

2. 상세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지어질 당시의 이름은 안심사(安心寺)였다. 원래 황해도 황주군 출신의 탐밀(探密)이라는 승려가 연주산(묘향산)에 들어 와서 수행하고자 지은 난야(蘭若, 암자)였는데, 정종 4년(1038년) 탐밀의 조카로써 제자가 된 굉곽(宏廓)이라는 승려가 숙부의 암자에 찾아왔고, 사방에서 제자들이 몰려들면서 4년만인 정종 8년(1042) 동남쪽 100보 되는 곳에 243간의 대찰로 중창했다고 한다. 보현사라는 이름도 이때 처음 붙여진 것이다. 이후 문종 21년(1067년) 보현사에 전답을 기증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1]가 이 절에 주석하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승병장으로 유명한 휴정대사가 보현사에 머물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31본산의 하나로써 많은 부속건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대부분의 절이 파괴된 것을 복원하면서 가람배치의 기본인 대웅전과 산자락에 바짝 붙어서 폭격을 피한 건물 중심으로 새단장을 하고 부서진 건물터에는 그냥 잔디를 섬고 꽃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보현사는 북한불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조선불교도연맹이 관리하고 있다. 물론 남한에도 성보박물관이 딸려있는 경우는 많지만 여기는 북한 전역의 많은 불교문화재를 보현사에 있는 불교력사박물관에 모아놓은 것이다. 절의 경내에는 인근의 불교 유물을 가져다 놓기도 했으며, 북한 전국의 사찰에서 나온 많은 불교 유물[2]들을 이곳에 모아 보관, 전시해 놓았다.[3] 2018년 기준으로 6793권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4] 그리고 묘향산 관광객의 관광 코스에 포함시켰다. 북한이 김씨부자 숭배 이외의종교에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한국사의 많은 문화재가 불교 미술품이고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으로 역사는 또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 땅 전체의 불교문화재를 여기에 가득 모아놓고 관광코스로 포함시킨 데서 보현사라는 절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해주는 걸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역사스페셜에서 북한문화유산 특집으로 보현사가 소개되었는데, 소장 유물 가운데 북한 측에서 "백제 시대 것"이라고 하면서 보여준 금동불상이 있었다. 취재진이 그 불상을 찍어가서 남한의 학자에게 보여주고 고증을 부탁했더니 "백제 때 것은 아니고 '''고려 말기나 조선 시대의 작품''' 같다(...)"고 견해를 내놓았다.
보현사 경내의 주요 건물로는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 관음전, 영산전, 수충사[5]이 있고, 고려 당시의 유물로는 8각 13층 석탑이 있다. 유홍준에 따르면 북한에서 보현사는 가장 큰 절일 뿐 아니라 북한 불교의 총림(叢林)으로, 남한으로 치면 서울조계사에 삼보사찰인 송광사, 해인사를 합친 것과 같은 위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6]에서 느꼈던 한국 산사(山寺)의 그윽하고 깊은 향취를 느낄 수는 없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절의 스님들이 기거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곳인 요사채가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더라고 감상을 적었다. 요사채는 성속(聖俗)이 어우러진 격조 높은 공간으로 승화되어 빈틈없고 냉랭한 신앙 행태에 숨통을 열어주며 부처님과 대중의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 형식인데, 북한에서는 승려들이 대부분 대처승[7]이고 에서 기거하는 일 없이 따로 사하촌(寺下村) 격인 아랫마을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입장이다. 그렇보니 남한에서처럼 수도자성직자라기보다는 그냥 '''절간 관리인'''에 가깝고, 따라서 부처님과 대중의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사채가 복원될 겨를도 없었다고 평하고 있다.
2013년 북한에서는 미국 CNN에 보현사 취재를 허용했다. 북한 입장으로서는 체재 건재를 선전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기자들이 취재한 영상에는 '''폭우로 지반이 무너지거나 도로가 아주 폭삭 내려앉은 꼴'''이며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빨래하고 머리 감는 주민들의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그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보현사의 모습이 차라리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 '''누가 봐도 연출된 것'''임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결과가 되었다.#
2015년에 KBS 취재진이 찍은 묘향산 보현사의 모습은 여기를 참조.#

[1]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의 스승이다.[2]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불타 없어진 금강산 유점사의 범종도 보현사로 가져다 보관하고 있다.[3] 유홍준이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쓰던 1997년 당시에는 불상 101개, 불화 84점, 불교장식품 149점에 불경목판 원판과 남한의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인쇄본 완질 1,159권 등 총 5,430점이 있었다고 한다.[4]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018년 9월 20일 방송분 참고[5] 유정대사와 휴정대사, 처영대사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6]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충청남도 서산시 개심사, 전라남도 강진군 무위사 혹은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 같은.[7] 아내와 자녀를 둔 승려. 반대로 독신 승려를 비구(남성)/비구니(여성)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