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산화
영어: Decommunization
폴란드어: Dekomunizacja
독일어: Dekommunisierung
체코어: Dekomunizace
루마니아어: Decomunizare
우크라이나어: Декомунізація
러시아어: Декоммунизация
소련과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이후 민주화된 국가들에서 전체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관료적 기득권에 대한 청산, 국가범죄나 억압에 대한 역사 청산, 더불어 다시 공산주의 세력이 기득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반공주의적 조치들을 말한다.[1] 다만 공산화와 대칭되는 개념은 아니다. 공산화는 소유관계에 대한 재분배 과정이 핵심인 경제적 개념인 반면, 이는 정치적 개념이 강해서 공산화과정에서 분배받은 (토지나 건물 따위의) 재산을 몰수하여 이전의 소유자에게 돌려주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2] 다만 실제로는 탈공산화가 그리 엄격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많아서 실질적으로는 공산혁명 관련 인물 동상을 철거하거나 문제되는 인원들 정도를 적당히 거르는 경우가 많고, 아예 관료조직 자체를 드러낸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당원의 비율이 전체 인구수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거나[3] 공산당 혹은 공산당 후신 정당들이 상당한 세를 얻는 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그렇다.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만 해도 민주화 직후에 이름만 싹 바꾸어서 집권한 사례도 있기도 하고.
1998년 폴란드는 국가 기억 연구소(Instytut Pamięci Narodowej, Institute of National Remembrance)를 설립해 공산주의 정권 하에 있었던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했으며, 공산정권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폴란드통합노동자당 및 국가안전부(Służba Bezpieczeństwa, 보안국)의 고위공직에서 근무한 인사를 정부 요직에서 추방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독 정부는 동독에 남아있는 공산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동독의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는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시민들의 사살명령을 내린 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특히 악명높은 슈타지(Stasi,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 관련 기록을 철저하게 조사해 슈타지 관련 인사들을 처벌하고 연방슈타지기록위원회(Der Bundesbeauftragte fü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BStU)에서 보관하고 있다.
1991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이었던 국가보안경찰(Státní bezpečnost, StB)에서 근무한 인원을 체코슬로바키아 내 주요 정부 및 군, 경찰 또는 민간 요직에 진출할 수 없도록 제정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된 이후인 1995년, 체코 정부는 공산주의 범죄 기록 및 수사 사무국(Úřad dokumentace a vyšetřování zločinů komunismu služby kriminální policie a vyšetřování, ÚDV)을 창설해 공산정권 시절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및 수사하고 있다. 또한 레닌 동상은 시애틀로 수출했되어 시애틀 시민들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로 체코에서 공산당이 연립정당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하면서 퇴색하고 있기는 하다.
헝가리는 1989년 헝가리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카다르 야노시의 사망 이후 개혁을 시작해 1990년 민주화되었다. 이후 헝가리에서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너지 임레를 복권시키는 등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복권시켰다. 1994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과거 공산정권 시절 고위관료로 근무한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4]
헝가리에서는 1993년에 공산주의를 포기한 이후 낫과 망치를 금지한 적도 있으나, 2013년 헝가리 헌법재판소에서 낫과 망치를 금지하는 법이 헝가리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루마니아는 1990년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차우셰스쿠 시절 이루어진 살인 및 범죄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루마니아공산범죄수사연구소(Institutul de Investigare a Crimelor Comunismului în România)를 설립,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수사했다.
[image]
리투아니아 빌뉴스 시에 있는 제노사이드 희생자 박물관, 통칭 KGB 박물관 (출처:위키피디아)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처음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0년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소련에 강제로 합병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발트 3국은 1991년 독립 이후 옛 소련 국가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소련 시절을 청산했다. 우선 이들 3국은 1995년 자국 내 남아있던 러시아군을 철수시켰다.
특히 이들 3국에서는 자국의 소련 시절을 '''괴뢰국'''으로 간주하며 소련이 강제 병합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따라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이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국권 재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오늘날 발트 3국에서 소련의 상징 (낫과 망치)을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실제로 경찰에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2015년 승리의 날 당시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낫과 망치가 들어간 깃발을 휘날리다 실제로 연행된 사례.
우크라이나 내 전체주의 상징 금지법
우크라이나의 탈공산화 과정은 조금 독특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탈공산화의 목적은 소련 시절의 유산 청산과 함께 러시아 제국 시절 '''탈러시아화(De-russification)'''로, 이는 최근 일어난 유로마이단, 크림 위기와 돈바스 전쟁의 영향이 크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대숙청과 홀로도모르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소련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독립 이후 공산당의 세력이 나름대로 상당했었고, 경제난으로 인해서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주로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가 제법 있었던지라 러시아와 친했던 편이라 여기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 도중 키예프에서의 레닌 석상의 철거를 시작으로[5] 전국에 위치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으며 이는 Ленінопад(Leninfall)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러시아가 크림 합병과 내전에 개입하면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고, 무엇보다 자국 내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해 위협을 느낀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소련, 러시아의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탈공산화법을 제정해 소련 시절 소련 공산당 및 KGB, GRU 등 고위급 간부로 근무한 인물을 우크라이나 정부기관에서 임용할 수 없도록 지정했으며, 또한 승리의 날 공식 명칭을 대조국전쟁 승전기념일에서 2차대전 승전기념일로 바꾸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소련 시절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단행했다.
이 법에 의거해 소련 시절 국기 및 국장, 소련 관련 단체 및 국가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친러 보수계열을 띄던 우크라이나 공산당[6] 및 3개 정당이 해산되었다.
또한 소련 시절의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을 바꾸는 작업도 진행했는데, 이로인해 바뀐 지명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굵은 글씨는 대도시)
위에 나온 도시 이름이 전부는 아니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약 '''900여 개'''가 넘는 지명과 주소가 바뀌었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위치한 공산주의 시절 조형물 (레닌 동상, 소련군 기념비)이 철거되었다.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러시아 공화국은 집권 소련 공산당의 활동 금지 및 소련 공산당이 소유하던 재산을 몰수하였다. 물론 그 뒤 헌법재판소에서 공산당 활동의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고, 1993년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재건되었지만 몰수재산의 반환소송에는 패소하였다.
또한 공산주의 시절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도 바뀌었다. 예들 들어 레닌그라드, 고리키, 스베르들롭스크, 쿠이비셰프같은 대도시는 각각 상트 페테르부르크 니즈니 노브고로드, 예카테린부르크, 사마라로 바뀌었다. 또한 수많은 도시에서 사회주의 시절 기념물들이 해체되었으며,[21] 각종 기구들(예) 레닌 도서관: 러시아 국립 도서관, 사회주의 혁명 기념 역사 박물관: 러시아 역사 박물관)의 이름이 바뀌고 성격이 달라졌다.
러시아 또한 옛 공산당 세력에 대한 청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1996년에는 당시 국가두마 의원이었던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를 중심으로 청산법(Закон о люстрации)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제1당이었던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반발로 채택되지는 못했고, 이후 스타로보이토바는 옛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과 대립하다가[22]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암살당한 적도 있었다. 이후 국가 차원에서 공산당 및 KGB 출신 인사들의 청산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사실 초대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나 현 대통령인 푸틴이나 우파성향이기는 하지만 소련에 대한 향수가 위낙에 강하기 때문에 굳이 건드려봐야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렉세이 나발니 또한 소련에 긍정적이다.
오늘날 민간 차원에서는 러시아의 민간 기구인 메모리얼(Мемориал)에서는 소련 시절 수용소나, 국가 범죄, 그리고 재야의 반소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홈페이지
천안문 6.4 항쟁, 중국 재스민 혁명 참고.
여전히 공산당이 유일정당이긴 한데 사실상 김씨일가의 전제군주제가 되었다. 실제로 북한은 2000년대 중반부터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했다.
폴란드어: Dekomunizacja
독일어: Dekommunisierung
체코어: Dekomunizace
루마니아어: Decomunizare
우크라이나어: Декомунізація
러시아어: Декоммунизация
1. 개요
소련과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이후 민주화된 국가들에서 전체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관료적 기득권에 대한 청산, 국가범죄나 억압에 대한 역사 청산, 더불어 다시 공산주의 세력이 기득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반공주의적 조치들을 말한다.[1] 다만 공산화와 대칭되는 개념은 아니다. 공산화는 소유관계에 대한 재분배 과정이 핵심인 경제적 개념인 반면, 이는 정치적 개념이 강해서 공산화과정에서 분배받은 (토지나 건물 따위의) 재산을 몰수하여 이전의 소유자에게 돌려주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2] 다만 실제로는 탈공산화가 그리 엄격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많아서 실질적으로는 공산혁명 관련 인물 동상을 철거하거나 문제되는 인원들 정도를 적당히 거르는 경우가 많고, 아예 관료조직 자체를 드러낸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당원의 비율이 전체 인구수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거나[3] 공산당 혹은 공산당 후신 정당들이 상당한 세를 얻는 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그렇다.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만 해도 민주화 직후에 이름만 싹 바꾸어서 집권한 사례도 있기도 하고.
2. 국가별 진행과정
2.1. 폴란드
1998년 폴란드는 국가 기억 연구소(Instytut Pamięci Narodowej, Institute of National Remembrance)를 설립해 공산주의 정권 하에 있었던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했으며, 공산정권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폴란드통합노동자당 및 국가안전부(Służba Bezpieczeństwa, 보안국)의 고위공직에서 근무한 인사를 정부 요직에서 추방했다.
2.2. 독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독 정부는 동독에 남아있는 공산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동독의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는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시민들의 사살명령을 내린 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특히 악명높은 슈타지(Stasi, 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 관련 기록을 철저하게 조사해 슈타지 관련 인사들을 처벌하고 연방슈타지기록위원회(Der Bundesbeauftragte für die Unterlagen des Staatssicherheitsdienstes, BStU)에서 보관하고 있다.
2.3. 체코
1991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공산정권 시절 비밀경찰이었던 국가보안경찰(Státní bezpečnost, StB)에서 근무한 인원을 체코슬로바키아 내 주요 정부 및 군, 경찰 또는 민간 요직에 진출할 수 없도록 제정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된 이후인 1995년, 체코 정부는 공산주의 범죄 기록 및 수사 사무국(Úřad dokumentace a vyšetřování zločinů komunismu služby kriminální policie a vyšetřování, ÚDV)을 창설해 공산정권 시절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및 수사하고 있다. 또한 레닌 동상은 시애틀로 수출했되어 시애틀 시민들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로 체코에서 공산당이 연립정당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하면서 퇴색하고 있기는 하다.
2.4. 헝가리
헝가리는 1989년 헝가리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카다르 야노시의 사망 이후 개혁을 시작해 1990년 민주화되었다. 이후 헝가리에서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너지 임레를 복권시키는 등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복권시켰다. 1994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과거 공산정권 시절 고위관료로 근무한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4]
헝가리에서는 1993년에 공산주의를 포기한 이후 낫과 망치를 금지한 적도 있으나, 2013년 헝가리 헌법재판소에서 낫과 망치를 금지하는 법이 헝가리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2.5.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1990년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차우셰스쿠 시절 이루어진 살인 및 범죄를 수사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루마니아공산범죄수사연구소(Institutul de Investigare a Crimelor Comunismului în România)를 설립, 공산정권 당시 일어난 범죄들을 기록, 수사했다.
2.6. 발트 3국
[image]
리투아니아 빌뉴스 시에 있는 제노사이드 희생자 박물관, 통칭 KGB 박물관 (출처:위키피디아)
1920년 타르투 조약으로 처음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0년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소련에 강제로 합병되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발트 3국은 1991년 독립 이후 옛 소련 국가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소련 시절을 청산했다. 우선 이들 3국은 1995년 자국 내 남아있던 러시아군을 철수시켰다.
특히 이들 3국에서는 자국의 소련 시절을 '''괴뢰국'''으로 간주하며 소련이 강제 병합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따라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이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국권 재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오늘날 발트 3국에서 소련의 상징 (낫과 망치)을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실제로 경찰에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2015년 승리의 날 당시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낫과 망치가 들어간 깃발을 휘날리다 실제로 연행된 사례.
2.7.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내 전체주의 상징 금지법
우크라이나의 탈공산화 과정은 조금 독특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탈공산화의 목적은 소련 시절의 유산 청산과 함께 러시아 제국 시절 '''탈러시아화(De-russification)'''로, 이는 최근 일어난 유로마이단, 크림 위기와 돈바스 전쟁의 영향이 크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대숙청과 홀로도모르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소련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독립 이후 공산당의 세력이 나름대로 상당했었고, 경제난으로 인해서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주로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가 제법 있었던지라 러시아와 친했던 편이라 여기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 도중 키예프에서의 레닌 석상의 철거를 시작으로[5] 전국에 위치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으며 이는 Ленінопад(Leninfall)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러시아가 크림 합병과 내전에 개입하면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고, 무엇보다 자국 내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해 위협을 느낀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소련, 러시아의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 의회는 탈공산화법을 제정해 소련 시절 소련 공산당 및 KGB, GRU 등 고위급 간부로 근무한 인물을 우크라이나 정부기관에서 임용할 수 없도록 지정했으며, 또한 승리의 날 공식 명칭을 대조국전쟁 승전기념일에서 2차대전 승전기념일로 바꾸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소련 시절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단행했다.
이 법에 의거해 소련 시절 국기 및 국장, 소련 관련 단체 및 국가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친러 보수계열을 띄던 우크라이나 공산당[6] 및 3개 정당이 해산되었다.
또한 소련 시절의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을 바꾸는 작업도 진행했는데, 이로인해 바뀐 지명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굵은 글씨는 대도시)
- 드니프로제르진스크[7] : 카미얀스케
- 드네프로페트롭스크[8] : 드니프로
- 스베르들롭스크[9] : 도우잔시크
- 스타하노프[10] : 카디이우카[11]
- 아르툐몹스크[12] : 바흐무트
- 울리야놉카[13] : 블라호비셴시케
- 오르조니키제[14] : 포크로우
- 체르보노파르티잔스크[15] : 보즈네세니우카
- 키롭스크[16] : 홀루비우카
- 키로보그라드:[17] 크로피우니츠키
- 크라스니 리만[18] : 리만
- 크라스노돈:[19] 소로키네
- 크라스노아르몌이스크[20] : 포크로우시크
위에 나온 도시 이름이 전부는 아니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약 '''900여 개'''가 넘는 지명과 주소가 바뀌었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위치한 공산주의 시절 조형물 (레닌 동상, 소련군 기념비)이 철거되었다.
2.8. 러시아
1991년 8월 쿠데타 이후 러시아 공화국은 집권 소련 공산당의 활동 금지 및 소련 공산당이 소유하던 재산을 몰수하였다. 물론 그 뒤 헌법재판소에서 공산당 활동의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고, 1993년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재건되었지만 몰수재산의 반환소송에는 패소하였다.
또한 공산주의 시절 인물들이 들어간 지역 이름이나 거리 이름도 바뀌었다. 예들 들어 레닌그라드, 고리키, 스베르들롭스크, 쿠이비셰프같은 대도시는 각각 상트 페테르부르크 니즈니 노브고로드, 예카테린부르크, 사마라로 바뀌었다. 또한 수많은 도시에서 사회주의 시절 기념물들이 해체되었으며,[21] 각종 기구들(예) 레닌 도서관: 러시아 국립 도서관, 사회주의 혁명 기념 역사 박물관: 러시아 역사 박물관)의 이름이 바뀌고 성격이 달라졌다.
러시아 또한 옛 공산당 세력에 대한 청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1996년에는 당시 국가두마 의원이었던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를 중심으로 청산법(Закон о люстрации)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제1당이었던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반발로 채택되지는 못했고, 이후 스타로보이토바는 옛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과 대립하다가[22]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암살당한 적도 있었다. 이후 국가 차원에서 공산당 및 KGB 출신 인사들의 청산이 거론된 적은 없었다. 사실 초대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나 현 대통령인 푸틴이나 우파성향이기는 하지만 소련에 대한 향수가 위낙에 강하기 때문에 굳이 건드려봐야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알렉세이 나발니 또한 소련에 긍정적이다.
오늘날 민간 차원에서는 러시아의 민간 기구인 메모리얼(Мемориал)에서는 소련 시절 수용소나, 국가 범죄, 그리고 재야의 반소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홈페이지
3. 실패한 사례
3.1. 중국
천안문 6.4 항쟁, 중국 재스민 혁명 참고.
3.2. 북한
여전히 공산당이 유일정당이긴 한데 사실상 김씨일가의 전제군주제가 되었다. 실제로 북한은 2000년대 중반부터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했다.
[1] 공산주의 정당을 해산한다던가, 공산주의의 상징물을 금지한다던가 하는[2] 간혹 성당 등의 종교시설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된 경우는, 다시 몰수하여 종단에 돌려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3] 공산정권 시절에는 공산당에 입당하면 여러가지 혜택들이 있기때문에 공산당에 기를 써서 입당하는 풍조가 있었고 그래서 공산당원들의 비율이 상당한 편이었다. 거기에다가 공산당원들 가운데서 엘리트 계층들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짜르기 뭐한 경우도 많았다. 현재의 중국, 북한도 마찬가지[4] 출처[5] 철거되어 받침대만 남은 레닌 동상은 시민들에 의해 여러 행위예술의 재료가 되었다.[6] 옛 소련 국가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계열 정당은 국제주의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중점으로 하던 서유럽 좌익 계열과는 달리, 옛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하거나 애국을 강조하는 보수 성향이 강하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 참조.[7] 이름의 유래는 펠릭스 제르진스키. 체카, 소련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다.[8] 이름의 유래는 혁명가 그리고리 페트롭스키.[9] 이름의 유래는 혁명가 야코프 스베르들로프. 스베르들롭스크는 예카테린부르크의 옛 이름이기도 했다.[10] 이름의 유래는 광부 알렉세이 스타하노프. 광부 시절 경이로운 석탄 채굴량을 기록하여 소련 당국이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존재로 신격화시켰다.[11] 카디이우카는 스타하노프가 커리어를 시작한 곳이었다.[12] 이름의 유래는 소련 혁명가 표도르 세르게예프. 정확히는 그의 별명인 아르툠 동무(това́рищ Артём)[13] 이름의 유래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원래 성인 울리야노프.[14] 소련의 혁명가. 스탈린을 지지했다가 숙청되었다.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인 블라디캅카즈의 옛 이름이었다.[15] 붉은(Червоно) 파르티잔(Партизан)이라는 뜻이다.[16] 이름의 유래는 소련의 정치인 세르게이 키로프.[17] 이름의 유래는 역시 세르게이 키로프. 키로보흐라드 이전에는 그리고리 지노비예프의 이름을 딴 지노비예우시크였다. 처음에는 도시의 이전 이름이었던 엘리사벳흐라드로 바꾸려고 했으나 이 또한 러시아 제국 시절 예카테리나 대제에서 딴 이름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18] 붉은 리만.[19] 붉은 돈이라는 뜻이다.[20] 어원이야 당연히...[21] 다만 도시 중앙에 위치한 레닌 동상은 아직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22] 당시 스타로보이토바와 대립하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는 전직 KGB, SVR 의장을 거쳤던 중요 각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