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아미나/AKB48 활동
1. 개요
사토 아미나의 AKB48 활동을 서술한 문서.
2. 캐치프레이즈
'''사랑받고 싶어,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역시 사랑받고 싶어! 2○살 사토 아미나입니다.'''
3. 활동
3.1. 데뷔 전
AKB 오디션을 보기 전부터 악수회에도 번번히 갈정도로 AKB48의 팬이었다. AKB 오디션을 본 계기도 같이 극장에 다니며 팬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팬들이 강력추천해서 오디션을 보게 된 것. AKB48 팬이던 당시에 가장 좋아하던 멤버는 나카니시 리나였다.
AKB48 가입 전에는 편의점, 패스트푸드, 프리쿠라개발, 티슈 뿌리기, 무료배포 신문만들기, 영화의 시사회의 접수 등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3.2. 2007년 ~ 2008년
2007년 'AKB48 4기 오디션'에 합격하였다.
오디션에 합격하여 연구생이 되었어도 아미나는 고생을 엄청 했다.
이밖에도 AKBINGO! 'AKB 사복패션쇼'에서도 다른 인기멤버들은 모두 유명브랜드의 옷을 들고 나왔지만 아미나만큼은 매우 저렴한 보세를 들고 나와서 진정한 생계형 아이돌이 뭔지를 보여줬다.데구치 아키: 아미나는 레슨 때, 매일 같은 옷 입었었지. 역시 옷은 빨아 입는 게 좋아.
사토 아미나: 제대로 세탁하고 있어. 옷, 그렇게 산 적 없었으니까. 제대로 매일 빨아 입고 있다구. 그리고, 정말 한 시기에 돈이 없어서. 아무래도 허기가 지면, 핍피가 고기만두를 사줘서 견딘 적도 있었어.[1]
(극장MC 中)
2008년에 구팀 A로 승격해서 구팀 A의 정식멤버가 되었다.
3.3. 2009년 ~ 2010년
2009년 8월 '조각마츠리'에서 팀 B로의 이적이 발표되었을때는 쇼크로 의식을 잃고 구조실로 옮겨졌다.
2009년의 1회 총선거 대이변의 주인공으로, 그 전에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싱글선발 경력도 없었으며, 속보와 중간발표도 15위와 18위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아미나는 언더걸즈(22위-30위)에도 선발 끝자락에도 이름이 불려지지 않아서 '역시 TV에 나가지 않으면 나 따위 알아주지 않는구나'라고 고개를 숙이고 울고있었지만 '''8위'''에서 이름이 불렸다. 단상에서 '가수나 여배우가 되고싶어 AKB48을 스탭으로 할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AKB48가 정말 좋아서 AKB48이 되고 싶어서 들어와 여러 공연에 나가고 싶어서 AKB48에 들어왔습니다.'라고 발언, 자신을 무대에 오르게 해준 팬에게 감사를 전했다. '''중간발표부터 마지막까지 기간에 투표된 수는 1423표로 1위의 마에다 아츠코를 넘어 전 멤버 중에서 최다 득표수가 됐다.''' 본인도 결과에 놀라서 흐느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였다.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는 '극장에서 끝없이 열심히 해와서 팬의 마음을 꿰뚫었다'라고 '''제1회 선발총선거의 최대의 서프라이즈'''로 알려져있다.
미야자와 사에는 아미나의 8위에 대해 "극장에서의 아미나의 노력을 봤다면 그녀의 8위에 이견을 가질 수가 없다. 그녀의 노력에 비하면 8위도 낮은 것이다."라고 말했다.[2]
그러나 총선거와는 무관하게 귀신같은 無푸쉬는 계속 이어졌다. 총선거후 발표된 싱글인 <言い訳Maybe>의 PV에는 출연 분량이 5초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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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나온 출연 분량은 이게 전부다. 나머지는 그냥 배경에서 휙 지나간다. 8위인데...
처음 완성된 PV를 보고 쇼크를 먹어서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다카하시 미나미가 들어와서 다독여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후의 싱글에는 계속해서 탈락, 그나마 가뭄에 콩나듯 언더걸스로 참여하는 게 다였다. 버라이어티에 어쩌다 나와도 병풍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팬들에게 어필횟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멤버가 미디어 일때문에 공연에 출연 못하게 되면 언더로서 '''팀A, 팀K, 팀B, 심지어는 연구생공연까지 출연'''하는 등 AKB48 전체의 극장공연의 댄스와 노래를 '''혼자서 독학'''으로 외워 그 전체의 공연에 계속 출연해왔다. 당연히 그런 멤버는 당시 약 50명인 정규멤버중에서 아미나뿐이였다. 토가사키 토모노부에 의하면 ''''다중녹화하면 아미나뿐으로만 이루어진 전체 세트리스트 DVD가 만들어지지않을까. 그 정도로 전곡 대부분의 전체포지션 안무를 외우고있어요''''라고 한다.
결국 2010년 2회 총선거에서는 순위가 대폭 하락해 18위로 떨어졌다. 당선 인사에서 전회와 같은 울음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팬의 '18위라도 대단해!'라는 소리에 미소를 되찾아 '18위라는 멋진 순위를 받게 되어서 이 찬스를 이번이야말로 절대로 도망가게 하지 않도록 다음 선발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을 아깝지 않도록 매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言い訳Maybe>의 다음싱글 <RIVER>에서는 선발에서 제외, <桜の栞>, <ポニーテールとシュシュ>를 포함해 제2회 선발총선거까지 싱글 표제곡의 선발에는 한 번도 들어간적이 없어서 '이런 이벤트로 밖에 선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3.4. 2011년 ~ 2012년
2011년의 3회 총선거 직전 싱글인 Everyday、カチューシャ때에는 NMB멤버 둘을 포함해 대거 26명이 참여했음에도, 선발되지 못하고 언더걸스로 만족해야 했다. 선거 때도 언더걸스로 밀려날거란 예상이 많았지만, 18위를 지켜 3년 연속 싱글에 선발되었다. '''싱글참여가 딱 3번인데 그게 전부 총선거에서 당선이라는 진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푸쉬예감은 전무하다. 본인의 소속사가 그다지 힘이 없고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가 그다지 좋게 보고 있지 않다고...그래도 라디오 퍼스널리티나 뮤지컬 주연 등 활동 폭을 넓히고 있긴 하다. '모리타씨는 과묵'라는 애니메이션에 성우로도 출연. 목소리가 좀 독특한데, 평소 목소리가 달달한 혀짧은 소리...[3]
선발에 들지 못했다고 다른 곳에서 포지션이 좋았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언더걸즈의 경우 <RIVER>의 언더 곡인 君のことが好きだから와 <Everyday、カチューシャ>의 언더 곡 人の力 정도를 제외하면 언더걸즈에서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다. 극장 포지션도 찬밥 대우는 마찬가지라서, 1회 총선거에서 8위를 차지하고 나서 만들어졌던 B5에서 조차 유닛 센터를 주지 않았다. 1회 총선거 전에 만들어진 A5와 포지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냥 운영에서 신경을 안쓰는 듯.
3회 총선거 이후 AKBINGO에서는 총선거 18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뒷줄에 앉아 있다. 총선거 순위가 더 낮고 살이 더 찐 미야자키 미호가 TV에 계속 나오는 걸 볼 때 '이게 다 소속사 때문이다. 소속사를 까자'라는 다수의견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3회 총선거 이후 싱글 <フライングゲット> 프로모에서는 빠지는 멤버의 좋은 자리의 땜빵을 많이 맡아서 거의 전부의 TV 프로모 무대에 좋은 자리에 나와 아미나팬들을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이때 살을 거의 다 빼고 나왔다.
2011년 3월부터 니코니코 동화에서 '아미나와 니코니코'라는 웹방송을 시작하였다. 방송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아미나의 토크감이 발휘되고 있다.
이후 뮤지컬과 연극을 하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200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풋루즈'의 아린역을 맡아서 출연하게 되었고, 2011년 'DUMP SHOW'에서는 더블캐스팅을 맡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BLUES IN THE NIGHT'에서 팀 A 카타야마 하루카와 함께 여주인공을 맡았다.
2011년 4월 5일 첫 칸무리라디오 RF라디오닛폰의 'AKB48 사토 아미나의 이세상에 소문자는 필요없습니다!'가 스타트되고 라디오 퍼스널리티가 되어 장래희망을 달성했다(...).
2012년 1월 8일 열린 <上からマリコ> 악수회에서 어떤 오타쿠가 악수회권을 40장이나 써가며[4] 아미나를 계속 만나서 폭언을 했다고 한다. 듣다 못한 아미나가 결국 쓰러졌다고.
2012년 4월 26일 AKB0048 성우선발멤버 9명과 함께 신유닛 'NO NAME'의 결성이 발표되었다. 같은 작품의 주제가 '희망에 대해서'와 '꿈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를 불렀다. 참고로 아미나 팬이라면 NO NAME의 무대영상이나 PV를 챙겨보는 것이 좋다. 무려 그룹 내에서 3번째로 비중이 많다!
2012년 4회 총선거 전에 일간스포츠 5월 8일의 선발총선거 특집기사에서 '16위 이내에 들어가서 절대로 선발에 진입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17위 이내로는 의미가 없다. 여기서 진입하지 못하면 어디서 진입할까라는 마음도 있다'라고 발언. 많은 AKB팬들을 눈물 짓게 하였다.
2012년 제4회 총선거때는 21위로 소폭 후퇴, 총선거 연속 선발은 중단되었다. 작년이었다면 21위도 선발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2012년엔 선발이 16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17,009표를 득표했는데 작년보다 453표가 증가한 득표 수이고 고정팬만큼은 확고하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2012년 8월 24일, 도쿄돔 콘서트 'AKB48 in TOKYO DOME ~ 1830m의 꿈 ~' 첫날 공연에서 팀 K로 이동됨이 발표된다. 이로써 아미나도 팀 A, 팀 K, 팀 B를 모두 돌아본 멤버가 되었다.분한 마음의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눈물이 고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여러분 들어주세요. 저는 지금 기쁨의 눈물입니다.
그래도 참고 있습니다만 그도 그럴께 AKB48는 1년 사이에 자매그룹도 많이 생기고
파생유닛도 많이 생기거나 연구생도 엄청 들어왔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A K B 다음의 4기니까 아직도 선배의 뒤를 쫓아가는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14기 연구생이 선발되었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꺾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팀B에서도 제일 연장자라 이제 어른이라는 자각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귀여운 애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제가 열심히 해야하는것도 당연하지만
후배를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는 것도 해야한다는것을 생각하기 시작해서 그런 가운데
총선거는 역시 순위를 올리고 선발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만 많은 귀여운 애들
이 있는 가운데 어쩌면 정말 순위권 내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돼서 정말 불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요.
제가 악수회에서 귀염성없게 와주신 팬 여러분께 몇번이고 와주는데도
'왜 오는거야'라고 말해버리거나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도 말버릇이 나빠서
쿠소 쿠소(젠장)라고 말해버리거나...
이렇게 어쩔수 없는 여자애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이렇게 21위라는 멋진 순위에 서게 해주셔서 여기서 여러분께
이름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된것이 정말 기뻐서 감사하는 마음이 정말 가득합니다.
언더걸즈로서 21위로 선택되었다면 멋진 곡을 받아 언젠가 키미노코토가 스키다카라같은
싱글을 뛰어넘는 리퀘스트 아워의 상위 랭크를 차지하기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토 아미나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4회 총선거 코멘트
2012년 9월 26일 주간문춘이 사토 아미나와 치카노 리나가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에 출연했었던 꽃미남 뮤지컬배우 히로세 다이스케와 그 친구와 2:2 미팅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가부키쵸의 노래방에서 같이 7시간정도 놀았다고 한다. 히로세 다이스케는 이 미팅에 대해서 사과해 버렸다. 마에다 아츠코때와는 다르게 이건 소속사 허락도 맡지 않은 거라서 난감하게 됐다.
3.5. 2013년 ~ 2014년: 졸업
이로 인해 팬들은 인기 폭락을 예상했고, '''역시나''' 2013년 제 5회 총선거 속보에서 무려 '''권외'''가 되었다. 그동안 아무리 무푸쉬에 미디어 출연 빈도가 극악해도 4회 총선까지 꿋꿋이 권내였기에, 언더걸스는 위험할지도...라는 말은 있었지만 설마 권외일 거란 생각은 못 했던 아미나 팬들은 충공깽...아미나의 블로그에 짠한 포스트[5] 가 올라와서 아미나 오시가 아닌 팬들도 애잔해하던 찰나...
'''대반전으로''' 개표해보니 무려 '''19,569표 33위로 넥스트 걸즈 센터를 맡았다!!''' 안그래도 푸시가 없는게 속보까지 권외라 희망이 없다고 생각 했는데, 갑자기 2만 가까운 표수를 획득하여 엄청난 자리를 획득했다. 물론 등수 자체는 작년 총선 이후 떨어졌지만, 그 사이 사고친 사시하라 리노, 미네기시 미나미 등과 함께 예상 외로 선전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멤버들은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난 1년간 AKB의 자매그룹들은 무섭게 성장했고 실제로 5회 총선거 선발 센터는 HKT, 언더걸즈 센터는 SKE, 퓨쳐걸즈 센터는 NMB가 차지한 와중에 그나마 이번 총선에서 센터를 차지한 유일한 AKB의 멤버가 됐다. 권외에서 33위로, 전년도보다 표수도 증가해서 진입했고 언더 병풍보단 넥걸 센터가 낫다며 팬들은 안도하는 중.
5회 총선 이후 받은 넥스트걸즈 센터곡 '이번에야말로 엑스터시'에서는 센터답게 비중이 가장 많다! 아미나 오시들은 뮤직비디오 후반부에서 폭풍같은 센터간지를 뽐내는 아미나를 보며 감격.AKB48 오오시마 팀K의 사토 아미나 입니다
투표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33위라는 순위를 받고,처음으로 정가운데에 서서...
이렇게 기쁜 마음은 처음 겪습니다!
정가운데의 광경은 이렇게 아름답구나~라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멋진 곡이구나~라고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더더욱 사토 아미나를 좋아해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테니 응원 부탁드립니다!
- 5회 총선거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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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 멤버 가운데 뮤지컬 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멤버중 한명이다. 팬들은 元 소속사 아틀리에 던컨이 뮤지컬이라도 잘 잡아준다며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속사에서 나간 후에도 뮤지컬 일을 계속 하는 걸 보면(...) 던컨이 딱히 신경써서 힘을 쓴 건 아닌 듯.
뮤지컬 SEPMO와 WORLD를 연타로 하면서 극장에 장기간 못 나왔는데, 오랜만에 10월 30일 본인의 생탄제로 다시 무대에 섰다. 팬덤 내에서는 졸업 선언이 나올까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는데, "언젠간 4기가 훌륭하게 졸업하는 그런 날이 오면 그때 자기도 멋지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추가로 내년 생탄제도 와달라고 못박았다. '''이때만 해도 아미나는 내년 10월까진 AKB에 있을 줄 알았다.'''
두개의 뮤지컬 출연 도중 선배 배우들에게 평이 좋았다고 한다. 어떤 배우에게는 극찬을 받아서, 아이돌이 아니라 신인 배우인줄 알았다고. 아미나는 블로그에서 감사를 전하며 엄청나게 신나했다.
그리고 최근 상당히 살이 많이 빠지고 머리를 붙이면서 역변했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비주얼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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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3년 12월 22일, 오오시마 팀K 공연에서 졸업을 발표해버렸다. 본인은 성우의 길을 걷고 싶다고 졸업을 한다고 발표했지만, AKB 내에서 아미나 뿐만 아니라 중견 멤버들의 (특히 그중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아미나가 졸업함으로써) 입지가 차세대 멤버들에 밀려서 점점 좁아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AKB사단 내에 성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소속사도 없는데 굉장히 갑작스러운 졸업이라는 점에서 괜찮은 성우 소속사에서 오퍼가 들어와 기회를 받아들여 졸업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6]
2014년 1월 15일 졸업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룹을 떠나지만, 악수회는 6월 29일까지 참여한다고. 구글 플러스 계정, 블로그 등도 악수회 끝날 때까지는 유지한다고 한다.
AKB의 당신, 누구?라는 프로그램의 PD가 아미나의 졸업에 대해 의견을 밝혔는데, 아미나와 더 일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쓸쓸하고 아쉽다고, 하지만 아미나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사고있기에, 하나도 아닌 두 수의 앞을 내다보는 아미나의 능력을 믿기에 걱정은 많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너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강한 면만을 내비치려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고 그 점은 오히려 약점이지 않을까 지적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15일 팀 K 공연을 마지막으로 AKB48을 졸업했다. 아미나가 AKB에 빠지게 된 곡이라고 하는 chocolove의 내일은 내일의 그대가 태어나요를 불렀고, 4기 동기이지만 다른 팀, 다른 그룹인 오오야 시즈카, 후지에 레이나, 나카니시 유카, 데구치 아키도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참여했다.
4. 참여곡
4.1. 선발 참여곡
4.2. 참여곡
4.3. 그 외
- NO NAME 명의 전곡 (てもでもの涙 NO NAME ver. 제외)
- チーム Z 명의 전곡
- もうこんなじかん / 무키야마 미노루 & 사토 아미나 • 쿠라모치 아스카 • 나카무라 마리코[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