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랜드 FC/사건사고 및 논란

 


1. 구단 명칭 논쟁
2. 엠블럼 설명 논란
3.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 관련된 사건
3.1. 구단 운영 관련 우려
4. 할렐루야, 임마누엘, 이랜드의 복잡한 연결고리


1. 구단 명칭 논쟁


이 문단에서는 수정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명칭을 '''서울 이랜드 FC'''로 통일해주십시오.
K리그에서는 팀을 호칭할때 모기업 명으로 부르기 보다는 지역 명을 통해 부르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사실, 전 세계를 뒤져봐도 한국 야구와 일본 야구 정도 외에는 '''팀명에 기업명을 넣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PSV 아인트호벤이나 바이어 레버쿠젠 정도와 그 외엔 레드불 계열 축구팀, 끝. 애초에 K리그에서만 그러는게 아니라 이는 전 세계적인 공통된 현상이다. 오히려 유럽 축구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연고지로 부르지 않고 소프트뱅크니, 한화니 하는 기업명으로 부르는게 '''연고지 의식이 없는 행위'''로 보일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서울 이랜드 FC의 창단 때부터 네이버 스포츠나 스포츠 기사 댓글에 '''기자님. 서울 이랜드입니다. 서울을 꼭 붙여주세요.''' 라는 댓글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붙으며 논란이 시작됐다. 기자들도 명칭이 통일이 안되어서 '''서울E''' , '''서울 이랜드''' , '''이랜드'''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기사를 썼었고, 그런 기사에는 또 순식간에 많은 댓글이 달려 논쟁이 벌어졌다.
협회에서 사용하는 서울 이랜드 FC의 공식 약칭은 '''서울E'''이며 서울 이랜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다만 팀 이름이 5글자로 너무 길다거나 타이핑을 할 때 한영 전환을 해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에[1] 기자나 팬, 또는 TV 중계진도 모기업명인 이랜드라고만 부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심지어 청춘 FC의 연습경기 예고 자막에도 이랜드 FC로 나왔다.
서울 이랜드 FC의 첫번째 시즌이 끝나갈 즈음에도 기업명이 아니라 지역명으로 부르라며 인터넷상에서 집요한 비난이 이어졌고, 결국 이 문제 관련으로 칼럼이 뜨기까지에 이르렀다. 기업명이 불편한가요? 하지만 모기업명만으로 불러도 상관없는가 연고지명을 꼭 붙여야 하는 것인가가 주요 논점인데 서형욱의 해당 칼럼은 뜬금없이 서울E와 서울 이랜드 둘을 비교하여 논점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서울 이랜드 FC 구단 측에서도 연고지명을 함께 불러주길 요구하고 있으며, 그동안의 K리그 관행상 모든 팀들을 연고지명으로 불러왔고 방송사 역시 현재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
서울 이랜드 FC 구단에선 이러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가고자 구단명을 공모했고 여러 구단명이 공모되었는데[2] 구단에서 구단명을 직접 고르는것이 아닌 팬들의 투표를 통해서 구단명을 선정했다. 이후 선정된 구단명이 지금의 구단명이다. 정리하면 서울 이랜드 FC란 구단명은 팬들이 직접 고른 구단명이고 구단측에서 기사나 해설시 연고지명도 함께 불러주길 요구하니 당사자들을 존중해 그렇게 해주면 된다. 약칭으로 쓰려면 협회에서 사용하는 공식 약칭인 서울E를 쓰면 된다.

2. 엠블럼 설명 논란


엠블럼에 새겨넣은 한국 표범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표범으로 서울 창경궁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다 간 상징적 존재"라고 설명했는데, 창경궁에는 표범이 머문 적이 없다. 애초에 왕실 궁궐에 표범을 들여서 키우지도 않았고 조선 왕조는 검소하게 산 편[3] 이라 동물원 같이 동물들을 가둬놓고 키우지도 않았다.[4] 창경궁에 표범이 있었던 적은 일제강점기 당시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면서 동물원으로 바꾸면서 들여온 것.이를 지적하는 글. 일각에서는 하느님을 사자나 표범에 비유하는 성경적인 표현을 집어넣고 억지로 끼워 맞추기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5] 논란이 일자 이랜드 측에서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발빠르게 사과를 했고 3마리 표범에 대한 재해석을 담은 설명을 기재했다.##
뭐 따지고 보면 이런 끼워 맞추기식 해석은 전세계 어느 종목 클럽이든 흔히 있는 현상이긴 한데, 리그 개막을 앞두고 충격과 공포레오파드 호피무늬 유니폼을 내놓으며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6] 전신을 개신교 축구단이었던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 축구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다.[7][8] 추가적으로 이랜드의 엠블럼을 자세히 보면 유럽 왕실 스타일과 유사한데 왕관과 십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십자가다. 이것을 단순 원래 기독교적 기업 엠블럼에서 따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것 역시 종교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팬들이 페이스북으로 문의했지만 그런 의문에 대해선 부인한 적은 있으며 비록 서울 이랜드 FC가 종교적으로 운영이 되진 않더라도 곳곳에 담긴 상징과 인사 관련해서는 종교적 영향이 없다고 부인할 순 없다.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팀 하나 더 생기고 연간 수십억씩 내고 운영하는데 그 정도는 참아 넘기자는 입장과 스포츠의 중립성을 위배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은 항상 일고 있다.[9]

3.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 관련된 사건


2016년 2월, 석주일아프리카 TV 방송에서 전주 KCC 이지스연고이전[10][11]을 얘기하던 중,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이전하게 된 이유는 이랜드그룹 때문"이라는 비화를 얘기했다. 당시 이랜드그룹에서 오리온그룹에게 "너네 농구단 살게. 대신 수도권으로 연고지 옮겨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라고 손을 내밀었고, 오리온 그룹에서 농구단 매각을 위해 연고이전을 했지만 정작 이랜드 그룹이 "우리 축구단 만들기로 했음. 미안"이라며 말을 바꿔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석주일이 오해한 부분은, 오리온스의 연고이전 직후인 2012년에 이랜드그룹이 추진한 것은 축구단 창단이 아니라 LA다저스 인수였다. 따라서 농구단 인수는 LA 다저스 인수 준비 때문에 날아간 것이지 축구단 창단 때문에 날아간 것은 아니였다. 이후 이랜드그룹은 LA 다저스 인수 실패 후 KBO 리그K리그를 저울질했고, K리그를 택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서울 이랜드 FC이다.
하지만 이랜드 그룹이 대구 오리온스의 연고 이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랜드 그룹의 오퍼가 농구단의 연고이전을 결정하게 만든 주 원인이였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 때문에 대구 시민에게 서울 이랜드 FC는 이랜드 그룹의 축구팀인지라 곱게 보기는 어려울 것임이 자명하다. 인수할 때는 축구와 관련이 없었다고 해도 자기들의 모기업 자체가 연고이전에 큰 원인을 제공한 이상,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형편이다.

3.1. 구단 운영 관련 우려


창단 초기 우수한 마케팅과 색다른 접근법으로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서울 이랜드 FC지만, 몇몇 국내축구 팬들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향후 3~5년의 단기간에 승격을 하지 못할 때, 최악의 경우로 이랜드 그룹이 축구단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랜드의 매시즌 승격 여부에 따라서 이러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 이랜드는 승격은 커녕 K리그2에서도 최하위를 찍으며 총체적 난국을 보이고 있다.
이랜드는 2015년 K리그2(당시 챌린지) 진입 이후 계속 성적이 나빠지더니[12], '''기어이 2018년 K리그2에서도 최하위를 찍었다.''' 현재 상황을 보았을때 처음 창단한 만큼의 긍정적인 탄력을 이미 대부분 잃었다. 이랜드에서 말했던 취지는 FC 서울뿐 만이 아닌 서울 연고지를 기반으로 한 다른 인기구단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현실은 성적 부진과 함께 서울이라는 천만도시의 메리트를 끼고도 평균관중이 3000명도 넘지 못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랜드가 말하던 구민들과의 융합정책이 완벽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K리그2라는 장애요소에도 특출날 것 없는 관중 수는 문제시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한 상황을 인지한 이랜드 그룹도 막 창단한 시기에 비해 지원이 계속 줄고 있으며, 기업구단 특성상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지원이 계속 줄어들 수 밖에 없으니 이랜드가 다음 시즌에도 반등을 못하거나 계속해서 K리그1에 올라오지 못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는것 또한 K리그 팬들이 걱정하는 바다. 이런 위기 의식을 가지고 프런트들은 지역 구민들과의 융합, 조금 더 혁신적인 마케팅방법을 통해서 진지한 반등을 생각할 필요가 크다. FC 서울과 같은 인기구단이 되고 싶다면 지금쯤 한번 큰 터닝포인트를 마련해야 할 시기로 보인다.
돌아보면 서울 이랜드의 가장 큰 문제는 창단 직후의 긍정적 기류로 넘처흘렀던 2015년 이적시장을 대강 넘겨버린 것. 대전, 수원, 대구와 강원 등 그간 승격을 경험한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에 돈을 쏟아붙다시피해서 승격한 것과 달리 이랜드는 실력있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 없었고 그렇다고 수준급 국내 선수를 영입하지도 않은 채 시즌을 보냈고 결국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와중에 뒤쳐지게 되었다. 오죽하면 대학 리그를 평정한 김병수를 데려왔음에도 축구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선수 지원 하나 없이 김병수 혼자만으로 한계가 있다'''며 희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랜드라는 그룹의 부실한 운영철학. 애초에 이랜드의 문화사업 자체가 박성경 부회장의 즉흥적 의사결정과 그룹의 부실한 사업역량이 겹쳐 언제나 환 상의 콜라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2011년 대구 오리온스 인수를 위한 수도권 이전 요구 → 2012년 LA 다저스 인수전 참여 → 2013년 한류사업(와팝) 진출 → 2014년 K리그 창단

이것이 2011~2014년 사이 박성경 부회장이 진두지휘해온 이랜드 그룹의 문화체육부문 사업 흐름이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떠한 일관된 컨셉이나 전략을 찾아볼 수 있는가? 오리온스는 기껏 수도권으로 연고이전을 시켜놓고 다저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무책임하게 인수를 철회해버렸고, 다저스 인수전은 애초에 될 일도 아니었으며, 와팝은 그야말로 공무원 수준의 기획능력만 보여준 채 끝나버렸다. 축구계는 어떻게든 이랜드 참가의 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그나마 마케팅 논리로 개발(?)해낸 아시아시장 진출 연계성을 제시했지만, 정작 이랜드는 해외시장 진출 연계보다는 그저 뭔가 문화사업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결국 최소한의 컨셉 설정조차 결여된 프로축구 사업 또한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이미 충분히 예상이 되고 있었고, 애초부터 성공 가능성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2016년 12월 들어 이랜드의 노동착취가 이슈가 되며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구단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다.
2017 시즌은 구단 입장에선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일단 모기업의 경영상황이 악화되어 아르바이트 생의 월급도 못 챙겨줄 형편이었고, 사드문제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인해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 브랜드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팀에 투자는 기대할 수가 없는 형편이며, 이 성적으로 모기업에 투자를 요청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매각 루머가 돌고 있다.
이러다 보니 관중수 또한 폭망해서 평균관중수1,938명, 유료관중은 단 616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네이버 기사 더욱이 절망적인 것인 창단 직후인 2015시즌에 85%에 달하던 유료관중의 비율이 31%까지 떨어진 것이다. 서울 시장에 들어갔다고 흥행이 그저 따라오진 않는다는 걸 아주 잘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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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지막 홈경기의 기념사진. 300명도 되지 않는 이 팬들이 이랜드의 마지막 팬들이다. 연고지가 서울이라고해도 투자의지와 성적이 따라오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것. 이 팀의 막장운영이 축구계에 기여한 건 '''연고지가 서울인데 관중이 이것밖에 안 들어와?'''라며 에게 평균관중 및 객단가 1위를 거의 매년 찍고도 되도않는 인구비례 드립을 들으며 까였던 FC 서울[13]의 재평가밖에 없다. 제아무리 연고지가 서울이라도 납득할 만한 경기내용과 팬 친화적인 경기 바깥 요소가 어우러져야 사람들이 축구로 발길을 돌린다. 대다수의 서울무새 국내축구팬들은 서울 이랜드 FC가 처참하게 실패하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2019년 첫 경기에는 4,000명이 왔고 0-2의 처참한 경기를 보고 1,000명이 이탈, 두 번째 경기에는 3,000명이 왔다. (유료관객은 2,700명 정도) 3천명 후반대 정도의 관객들이 현재 이 팀을 아직 버리지 못한 팬들의 MAX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천안에서 경기를 한 이후에 여름에 복귀할 시에는 이제 가변석도 만들지 않기 때문에 팬덤의 이탈이 어느 정도가 될 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2019시즌 8월 마지막 경기에 '''4,400명'''으로 역대 최다 관객을 찍으면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다시 두 달 동안 천안에서 경기를 해야해서 서울 마지막 경기 + 최근 약간의 상승세가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되돌아온것. 서울연고지의 위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호재를 잇기 위해 U20 대표팀 감독이었던 정정용을 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변화를 시도 중이다.

4. 할렐루야, 임마누엘, 이랜드의 복잡한 연결고리


모기업인 이랜드그룹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이념에 충실한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그룹 차원의 축구단 창단 시도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양 Hi FC와도 공유되는 할렐루야 축구단 관련 역사 승계 문제다.
먼저, 1980년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축구단으로 창단된 할렐루야 독수리는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최순영 회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의 종교색이 뚜렷한 구단이었다. 이 팀은 1985년까지 수퍼리그에서 잘 활동하다 돌연 '''선교'''를 이유로 자진해서 실업리그인 전국실업축구연맹전으로 내려간다. 할렐루야 독수리는 여기서 강팀으로 군림하다가 1998년 IMF발 금융위기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할렐루야'''의 이름을 내건 구단은 또 있다. 바로 고양 Hi FC의 직접적인 전신이 되는 이영무의 할렐루야 축구단인데, 1983년 창단된 '''임마누엘 축구단'''이 그 모체다. 이영무 감독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던 팀으로, 한때 할렐루야 독수리의 2군 팀 기능을 하기도 했고, 할렐루야 독수리가 실업리그로 내려온 이후에는 서로 별개의 팀으로 경쟁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1998년 해체된 할렐루야 독수리 선수단을 임마누엘 축구단이 인수하면서 할렐루야는 과거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그동안 임마누엘 축구단을 후원사로써만 후원했던 이랜드그룹이 1992년 재정난에 빠져 대거 선수를 방출했던 임마누엘 축구단의 일부 선수들과 감독, 코치를 영입해 이랜드 푸마를 직접 창단한다. 이 팀은 창단과 동시에 실업리그의 강호로 발돋움하며 많은 우승을 거뒀으나 역시 IMF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1997년 시즌을 마치고 해체된다.
이 세 줄기의 팀을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최근까지 존재했던 고양 Hi FC의 직접적인 전신이 되는 '''할렐루야 축구단'''이다. 먼저 해체된 이랜드 푸마 축구단을 '''임마누엘 축구단'''이 인수하며 흡수한다. 이후 조금 시간이 지나 할렐루야 독수리마저 해체되며 이 선수단까지 '''임마누엘 축구단'''이 흡수하며 '''할렐루야'''라는 이름까지 가져와 (신) 할렐루야 축구단이 된다. 이 할렐루야 축구단은 2003년 K2리그 창립멤버가 되어 한국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하다 K리그 챌린지 창설과 동시에 프로에 들어오게 되는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서울 이랜드 FC고양 Hi FC 간 인적, 역사적 교류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최초 창단 기사들을 찾아보면, 이랜드가 축구단을 창단한 이유 중 하나로 '예전부터 할렐루야 축구단을 운영할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하며 축구팬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하였다. 일종의 창단팀의 역사 늘리기 같은 언플인건데, 문제는 창단 과정부터 현재까지도 할렐루야 축구단과 관련있는 사람이 많고, 악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할렐루야 축구단, 그 후신인 고양 HI FC와 관련있었던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 프런트 : 김태완 단장, 권성진 홍보실장[14], 김철민 선수운영팀장[15]
  • 코칭스태프 : 인창수 감독, 황희훈 gk코치
추측할 수 있겠지만, 할렐루야 출신을 강력 추천한 건 김태완 단장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뒤에 비선실세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에펨네이션에서는 박건하 경질설 관련하여 서울 이랜드 FC에 비선실세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외에도 선수운영팀장이 고양 HI FC 출신이라 그런지 은근 고양 HI FC 출신 선수가 팀에 많았다.[16]
이런 이유에서인지 6대 정정용 감독 영입 이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 대신 그룹 차원의 첫번째 팀이었단 이랜드 푸마를 직접적으로 전신으로써 더 언급하고있다. 사실 후원사로써의 기능만 했던 할렐루야 축구단의 계승을 주장하는 것 보단 '''이랜드'''의 이름을 달고 뛰었던 이랜드 푸마의 후신을 자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할렐루야 축구단의 직접적 후신인 고양 Hi FC가 워낙 프로에서 막장행보를 보이다가 해체한 팀이라 더더욱 그렇다. 반면 이랜드 푸마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업축구에서 탑 레벨의 팀이었고, 프로와도 별 차이가 없는 실력으로 유명했던 구단이기에 이런 기조의 변화는 서울 이랜드 팬들에게는 환영할 일.

[1] 바르셀로나, 피오렌티나, 갈라타사라이, 볼프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 해외구단을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긴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지만 바르셀로나는 바르샤, 피오렌티나는 피렌체, 갈라타사라이는 우리나라에서 언급할 일이 잘 없는 팀이고 볼프스부르크는 볼프스, 아우크스부르크는 아욱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결국엔 팀 이름이 길어서 부르기 불편한 것이 사실이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랜드로 많이들 사용한다.[2] 서울 이랜드 FC외에 이스턴 서울 FC, 서울 강남 FC, 서울 이랜드 시티 FC 등의 명칭이 후보에 올랐다.[3] 조선 정부는 최대한 조정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종이 또한 재사용 종이를 다시 쓰는 세초 작업을 진행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조선왕조실록 때 편찬한 종이도 마찬가지. 물론 당시 수제 한지의 가격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장제 A4 용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비싸긴 했다.[4] 동물원은 커녕 선물로 받아온 동물들도 처리를 못해서 안절부절 못하던게 조선이었다. 한 예로 조선 초기 나름 부유하게 살았던 태종코끼리 한마리를 선물 받았는데 그 먹이를 감당 못해서 쩔쩔 맸었다. 이 코끼리는 이후 사람을 밟아 죽이는 등 사고를 쳐 귀향을 다녔고 세종 재위 당시 죽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에게 애완동물을 키우지 말라고 간언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성종의 경우 매사냥을 다니자 "님이 매사냥이나 다니니까 가뭄이 드는겁니다."라며 신하에게 한소리 듣기도 했다.(물론 성종은 "가뭄은 내가 덕이 없어서 그런거지 이깟 매사냥 한다고 가뭄이 든다고?"라며 쿨하게 받아친 후 매사냥을 즐겼다. 관련 글 이런 상황에서 창경궁에 표범이 살았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것.[5] 이랜드는 기독교 기업으로써 반기독교성향의 네티즌들에게 집중공격을 받는 대상이고, 때문에 왕관의 십자가로 말이 많은데, 스포츠는 스포츠일뿐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된다. 저 왕관은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왕실 상징인 제국왕관(The Imperial State Crown)을 형상화한 것으로 챔피언 풋볼 클럽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하며, 다섯 개의 별은 서울 이랜드의 가치로 Excellence, Entertainment, Econimic Independence, Exchange, Example을 의미한다고 한다.[6] 창단 기념 유니폼으로 전반기까지만 착용하고, 후반기부터는 새로 나올 뉴발란스 킷을 입게 된다.[7] 2대 감독인 박건하의 경우 감독 데뷔전 경기 후 서울 이랜드의 전신이 이랜드 푸마 축구단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애초에 선임된 이유가 과거 이랜드 푸마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은 감독 개인의 의견이 아닌 구단 보드진도 언급만 없을 뿐, 암묵적으로는 같은 의견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8]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 축구단과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 FC 모두 이랜드그룹이 구단주인 축구단이므로 실업과 프로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사실상 이랜드 퓨마 축구단이 현 서울 이랜드 FC의 전신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시선도 있다.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 축구단이 개신교 색체가 강한 축구단이였다고 해서 같은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는 서울 이랜드 FC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리이다[9]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창단 초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창단한 팀들도 많다. 레알마드리드는 1920년 국왕으로부터 '레알'이란 호칭을 구단명에 하사받은 때부터 구단 엠블럼에 현 서울 이랜드와 유사한 왕관과 십자가를 넣었다.(왕관과 십자가 로고는 계속 유지되다가 2012년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은행과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하며 엠블럼에서 십자가를 제거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77&aid=0003657197 EPL의 맨체스터 시티 역시 1987년부터 2015년까지 기독교의 상징인 독수리와 별이 들어간 엠블럼을 사용했다. 즉 단순히 서울 이랜드 FC의 엠블럼에 십자가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것은 구단주인 이랜드 그룹이 기독교적 기업이란것을 감안하면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10] 2016년부터 기존의 연고지였던 전주시를 떠나 수원시로 이전한다는 의혹이 돌았다.[11] 2016년 4월, 실재로 구단이 전주시의 무관심과 수원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 등을 이유로 꺼내며 수원으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으나 놀란 시에서 황급히 체육관 신축을 구체적으로 약속하면서 연고지 잔류로 방향을 틀었다.[12] 2015년 4위, 2016년 6위, 2017년 8위.[13] FC 서울은 18시즌 K리그1 11위까지 성적이 곤두박질치며 주말관중 7천명을 못 찍고 평균관중 1위도 전북에 내주며 엄청난 부진을 겪었음에도 총발권수입 대비 실입장수입 비중이 92.5%로 매우 양호했다. 코어팬층이 타 구단에 비해 크고 시즌권자들의 이탈만큼은 매우 적었다는 뜻. 이는 같은 서울연고 구단인 서울 이랜드 FC는 물론 2018년 평균관중 1위는 기록했으나 객단가는 아직 서울과의 차이가 큰 전북 현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 인기팀으로 취급받는 타 구단들과도 대조적이다.[14] 참조 [15] 참조 [16]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