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종원

 



鮮于宗源
1918년 2월 17일 ~ 2014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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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검사, 변호사, 관료이다. 1918년 2월 17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아들 선우중호평화의 댐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총장광주과학기술원 총장을 지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 12월[1]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8.15 광복 후부터 6.25 전쟁 때까지 오제도 등과 사상검사로 활약하였고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였다. 이후에는 이승만 정부와 거리를 두었다. 1951년 장면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1952년 박정희, 이용문 등이 꾸민 이승만 제거 쿠데타 가담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다. 1960년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196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임기 중에 여의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신축에 관여하였다.
1981년부터 1997년까지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변호사로도 활동하며 보수 우익계에서 활동하였다.
[1] 원래 1942년 3월에 졸업 예정이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에 따라 1941년 10월 16일 칙령 제928호로 수업 연한의 임시단축령이 공포되어 3개월 단축되었다. 결국 1941년 한 해에 두 번 졸업생을 배출했다. 1942년 ~ 1945년까지는 6개월 단축하여 9월에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