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 아기

 

1. 개요
2. 상세
3. 도시전설의 소재
3.1. 도시전설로 오인받는 이유와 해석
4. 패러디
5. 관련 문서


1. 개요


국내 동요. 1950년에 만들어졌다. 다만 시 자체는 1946년 이전에 쓰여졌다.

작곡: 이흥렬
작사: 한인현[1][2]
편곡: 안형수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2. 상세


모두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한 번씩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짝반짝 작은 별, 모차르트의 자장가와 함께 어머니들이 아이를 재울 때 가장 많이 불러주는 노래다.
이 노래의 유래는 작사가 한인현 선생이 6.25 전쟁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해변을 산책하던 중에 해변가의 집을 들어갔는데 집에는 아기만 곤히 자고 있었고 아이 어머니가 낯선 사람이 집에 온 걸 보고 놀라서 바구니를 던져두고 모래톱을 뛰어오는 광경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가사를 썼다는 얘기가 있는데 모두 도시전설이다. 이 시는 6.25 전쟁 훨씬 전인 1946년 발표된 동시집에 있고, 6.25 직전인 1950년 4월 나온 잡지에 재발표되었기 때문이다.[3] 아마도 작사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함흥에서나 혹은 교사로 근무한 경기도 해변 어느 동네에서 본 광경을 기억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한인현은 디자이너 한혜연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느리고 서정적인 가락[4]이 구슬픈 느낌을 주므로,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다 엄마 생각이 북받쳐 울 수도 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5] 일본식 운율인 7·5조가 사용되어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비슷한 7·5조 노래로 '학교'와 '고향의 봄'이 있다.
트라이건 한국 더빙판에서 원본의 극중 삽입곡인 Sound life-Rem 대신 이 노래로 치환되어 등장하기도 했다.
쟁반노래방2003년 3월 6일 방영분(69회)의 도전곡으로도 쓰였다.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풀하우스에서 정승환이 가족들한테 봉변을 당한 후 "'''제~발 그만들 좀 하세요!!''' 이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구요."라는 명대사를 외칠 때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체리필터가 부른버전이 Rewind에 수록되었다.

샤이니가 부른 적이 있다.

주현미해금 반주에 맞춰 부른 적이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도 앨범에 수록한 바 있다.
심재윤이라는 유투버의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편곡 버전도 있다.

오연준 - 정규 1집 앨범 '12' 수록곡 섬집 아기

계피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 9번 트랙
부활의 9대 보컬 출신의 가수 정동하가 경연 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 2에서 이 노래를 편곡해 부른 결과 우승했다.
2019년 12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10살때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는데, 마침 그날 배운 노래가 섬집아기였다. 노래를 듣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는데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울었다는 이유로 복도 가서 손들고 서 있으라고 했다는 글이 올라와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3. 도시전설의 소재


그런데 이게 왜 도시전설 카테고리에 올라와 있냐면, 이상하게 도시전설이나 괴담에 엮여서 소재거리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 게다가 희한하게도 TV 예능프로그램의 납량특집의 '공포 체험'때 나오는 일이 잦아져서 본의 아니게 이런 성향의 노래로 이미지가 고정화 된 탓도 있다.
조용한 장소에서 이 노래를 낮고 느리게 부르면 매우 오싹한 느낌이 든다.[6][7][8]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귀신이 이 노래를 부른다거나, 귀신에 홀린 친구 또는 가족이 이 노래를 부른다는 괴담도 알게 모르게 널리 퍼진 상태.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에서도 이에 관한 투고글들이 몇 개 올라와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때 '섬집 아기의 가사 해석'이라는 의미불명의 게시글이 나돌아다닌 적이 있다.
가사를 달리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기가 집을 본다는 가사는 어머니가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뜻이고,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든다는 부분은 아기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뜻, 갈매기 울음소리는 아기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온다는 소절은 어머니가 뒤늦게 아기의 죽음을 알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애초에 이건 2절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아예 2절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으로 시작한다. 아이의 신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얘기. 버전에 따라서는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 소절이 세상을 떠난 엄마가 죽은 아이를 데리러 왔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또 다른 바리에이션도 있다. 매우 암울하게 위의 가사를 읊은 뒤 "애기가 혼자 어떻게 팔베개를 베고 자...?"라고 말하는 것인데 사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이가 혼자 팔베개를 하는 것이 가능한 지 모르지만 서로 소름 돋으며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아이가 벤 것은 귀신의 팔이라고 생각하며. 사실 혼자 집을 볼 수 있는 나이의 아이라면 팔을 혼자 베고 자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신경쓰지 말자.[9]
팔을 베고 잔다는[10]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여담으로 엄마는 있는데 가사에 아빠를 언급하는 부분은 없어서 아빠는 배 타고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배가 뒤집혀 죽었다'''는 괴담도 있다.
어찌됐건 지나친 확대해석으로 본의 아니게 시궁창스러운 가사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3.1. 도시전설로 오인받는 이유와 해석


노래 자체는 생계 때문에 아이를 돌보지 못해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묘사한 것이니 쓸데없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대부분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으므로 부모님은 돈 벌러 나가고 아이가 홀로 집을 지키다 지쳐서 잠드는 장면은 드물지 않게 연상될 수 있는 장면이다.[11] 현대에도 맞벌이로 인해 할머니·외할머니에게 맡겨지거나 방치 상태에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가. 즉, 섬집 아기의 가사는 당시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의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괴담으로 각색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식과잉. 특히 2절을 모르고 1절만 가지고 괴담을 만든 경우도 있는 걸로 보인다.
이 평범한 동요가 괴담까지 나온 이유로는 아마 이 동요가 노래 가락이 적막하고 청승맞은 분위기기도 하고, 유명하기 때문에 더욱 뇌리에 남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된다. 사실 섬집 아기 동요 자체가 상당히 음이 낮고 우울하기 때문에 밤중에 들으면 스산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영화 올가미에서 죽은 아들의 시신을 침대에 누이고 이 노래를 불러주는 씬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아마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본다.
어느 옛날 드라마에서는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 타고 위 노래를 부르며 놀던 아이가 알고보니 죽은 아이었고 죽은 후에도 그네가 저절로 움직이며 이 노래가 들리는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비슷한 도시전설로는, 동요인 꼬까신[12][13]이 한 정신병자가 읊조리던 말을 옮겨왔다는 썰이 있다. 또는 아기가 극단적 선택하러 가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거나, 부모가 보지 못하는 새에 아기가 다른 사람에게 유괴되는 내용을 담았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1970년에 타계한 최계락 시인이 지은 '''동시'''다. 동명의 동시집도 있다. 이런 예쁜 시에서 어떻게 그런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아마 '신발만 벗어놓고 놀러나갔다.'라는 여러가지를 상상하기 쉬운 내용 때문에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비슷한 취급을 받는 동요로 토랸세가 있다. 사실 토랸세는 가사부터가 대놓고 불길하다는 걸 생각하면[14] 카고메카고메가 더 비슷한 취급일 지도 모른다.
애기들한테 이 노래를 들려주면 운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걸 스펀지에서 실험한 적이 있다. 실제로 대다수의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고,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무의식적으로 아기들이 엄마가 어디 갔다는 가사를 느끼고, 우울한 음이 울음을 유발한 것이라 한다.
뭐 사실 가사 내용만 보면 '''아동을 방치하는 내용'''으로 들리니까 어쩔 수가 없다.
2010년대에는 한인현이 어촌의 소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때 일어난 일이라느니 1969년 한인현 씨 사망 후에 나온 회고록에 실린 실화라는 괴담이 돌고 있으나 모두 도시전설에 불과하다. 한인현의 경력을 보면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경기도 여주군 가남초등학교에서 교사를 지내서 어촌에서 교사를 한 적이 없으며 1950년 4월 소학생에서 시가 발표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서울에서 교사를 재직하였다. 또한 언급되는 한인현 사망 후 출간된 회고록은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며 당시 韓寅鉉(한인현) 기념사업회 등 다른 공식 기록에서 언급되지 않는다.[15]
여담으로 조용한 장소에서 들으면 공포가 느껴지는 이유도 음악의 선율과 분위기가 만나서 나오는 우연의 일치로 설명이 가능한데 어둡고 컴컴한 방에서 고양이소리 혹은 착신아리의 음악소리를 낼때의 공포감과 비슷한 것이라 볼 수 있다.

4. 패러디


마광수의 '엄마가 섬그늘에'라는 시도 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여러 날 여러 날
집을 보다가
굶어
죽었다
(...)
동명의 패러디 시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은유한 시로, 작가는 최현우. 참사 100일(2014년 7월 24일)을 기해 나온 시집인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에 실려 있다.
섬집 아기
혼자 집을 지키며 울지 마라
까치발 들어 밖을 보다가, 맨발에 물을 묻힌 아이야
낮달에 손가락 걸고
밤아 오지 말라고 약속한 아이야
깜빡 꿈을 꾸다
먼 지평선이 옮겨 붙어
두 눈을 가늘게 감아버린 아이야
웅크려 발톱을 만지는 사이
어깨 위로 갈매기 앉았다 가고
입김 가득 불어놓은 창문에
언 뺨을 부비며 몸 녹이는 아이야
그래서 얼굴 가득 황혼을 묻혀버린
잠든 아이의 영원한 저녁아
바다야, 바다야
잘 시간 오지 않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부르지 마라
그늘에서 굴 따던 엄마
모랫길을 뛰어가다
넘어진다

5. 관련 문서



[1] 1921∼1969. 평생 교직에 몸담았고, 동요와 우리말 연구에 힘쓰다가 과로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2] 한혜연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3] 상식적으로 전쟁 중이라 부산 일대의 바닷가들에는 미군 배에 수송선과 기타 배들이 수없이 드나드니 굴따러 갈 만한 섬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가 없고, 또 남자가 한가로이 산책이나 하고 다닐 만한 정황도 아니다. 엄마가 낯선 사람이다 라고 신고하면 간첩으로 몰려 즉결처분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었으므로.[4] 이 때문에 단조 곡이라 오해할 수 있는데, 다장조 곡이다. '사계'와는 정반대.[5] 일제강점기가 지났긴 하지만, 아직은 일제 때의 영향이 남아있다.[6] 분명 장조인데 단조로 들리기 때문에 으스스하다.(?)[7] 다만 이건 거의 대부분의 자장가나 동요가 마찬가지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호러 게임 데드 스페이스의 메인 테마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이다. 궁금하다면 직접 들어보자.[8] 그런데 진짜 무서운 내용의 가사가 있는 자장가가 실제로도 있다. 해당 항목 참조.[9] 아기라는 점 때문에 불가능하다라고 하기 쉬운데 노래가 나온 시기를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시 어르신들은 작은 아이나 심지어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 역시 '아기'라는 명칭으로 많이 부르곤 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자란 아이에게도 부르던 호칭이다. 2010년대에도 어르신들이 많은 집안에서는 40~50대 막내자식을 애기라고 부르는 집안이 꽤 많다.[10] 스스로 자기 팔을 자르고 과다출혈로 숨졌다는 뜻.[11] 게다가 이 노래가 나온 시기는 광복직후이고, 일제시대 말기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인들을 전쟁에 이용하였다는 걸 명심하라. 시대상 고아, 혹은 편부·편모 슬하의 아이들은 쉽게 연상되는 부분이다.[12] 알록달록한 색상에 꽃이 그려진 신발.[13] 가사: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 아가는 살짝 신 벗어 놓고 /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갔나 /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14] 특히 2절.[15] 말년에 은석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사망했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초등학교 내부에 섬집아기 동상과 한인현의 얼굴과 약력이 새겨있다. 이 동상 역시 섬집아기 괴담의 마수를 피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