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라이히
1. 개요
'''Stephen Michael Reich(1936.10.03~)'''
미국의 현대 작곡가. 필립 글라스와 함께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2. 생애
스티브 라이히는 1936년 미국 뉴욕에서 작사가이자 가수인 어머니와 변호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한 살일 때 부모가 이혼을 했기 때문에 라이히는 아버지가 있는 뉴욕과 어머니가 있는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자랐고, 이 때의 경험은 나중에 '다른 기차들' 등의 작품에 영향을 준다. 아버지의 권유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중산층의 취향'이라고 하면서 반쯤 강제로 배웠다고 한다. 대신 그는 드럼에 관심이 많았고, 이는 나중에 그가 리듬 중심의 음악을 쓰는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당시부터 강한 반골기질을 가져 '1750년에서 1900년까지의 음악에는 흥미 없습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저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바그너 등이 있다. 그래서 14살 대 음악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부터 바로크 음악과 20세기 음악을 주로 들었고, 드럼을 사사하는 열성을 보였다. 평생의 라이벌인 글라스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라이히도 16살의 나이로 코넬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라이히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전공으로, 음악을 부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줄리어드 음대로 향했다. 그러나 줄리어드 특유의 보수적인 음악관과 갈등을 일으키고 현대음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가 있던 오클랜드의 밀스 칼리지로 학교를 옮긴다.[1] 라이히도 처음에는 베리오의 음악을 지지했지만, 이내 노선을 바꿨다. 당시 그가 있던 미 서부를 뒤흔든 히피 열풍과 그에 따른 재즈, 로큰롤의 열풍이 첫번째 요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테리 라일리, 라 몬테 영이 창안한 미니멀리즘 음악이었다. 이때부터 라이히는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음악을 작곡해왔으나, 아직은 테이프를 이용한 구체 음악에 집중하여 베리오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당시의 대표작으로는 '생계(Livelihood)'등이 있다.
대학원 졸업후 라이히는 글라스처럼 알바 전선에 뛰어든다. 낮에는 택시 운전이나 우체국 직원으로, 밤에는 밴드를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 이때 당시 그의 밴드의 멤버 중에는 그레이트풀 데드의 톰 콘스턴틴, 필 레시 등 후에 대중 음악에서 성공한 인물들도 있다. 1966년, 라이히는 음악에 있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테이프를 이용한 구체 음악에서 벗어나 실제 연주를 위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선 변경에 시발점이 된 작품은 1967년 발표한 '피아노 위상(Piano Phase)'이다.
들어보면 알 수 있듯, 한 피아노가 일정한 박자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다른 피아노가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낮추면서 일종의 맥놀이 효과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주류 음악계에서 밀려난 라이히는 정규 음악회에서는 데뷔할 수 없었고, 그의 작품들은 대개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주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도 뉴욕 아트 갤러리에서 초연되었다(…).
1968년 '점진적 과정으로서의 음악'이란 글을 발표하면서 라이히는 자신의 미니멀리즘 음악의 방법론을 세웠다. 이러한 방법론에 바탕한 그의 작품들은 구조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이 당시 작곡된 작품들로는 '진자 음악', '4개의 오르간', '바이올린 위상' 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의 평가는 냉담했다. 1973년 보스턴 심포니에 의해 '4개의 오르간'이 초연되었지만,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다.
1970년, 라이히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5주간 가나로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떠난다. 이 당시 모기 폭격을 받아 말라리아에 걸려 뉴욕행 비행기 대신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탈 뻔 했지만, 가나에서의 음악적 체험은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원래 재즈나 드럼에 관심이 많았던 라이히에게 아프리카 음악 특유의 역동적인 리듬은 부스터를 달아준 셈이었다. 이 당시 발표된 대작 '드러밍'은 기존의 구조 중심의 음악에서 벗어나 다양한 리듬을 도입한 그의 음악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어 1973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전통음악인 가믈란 음악을 배우면서 그의 음악의 범위는 더 넓어진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박수 음악(Clapping Music)', '여섯 피아노', '타악기, 성악, 오르간을 위한 음악' 등이 있다.
라이히와 미니멀리즘 음악이 주류로 떠오르는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74년부터 3년에 걸쳐 작곡한 '18인의 음악가를 위한 음악(Music for 18 Musicians)'이 뉴욕 타운홀에서 초연되어 음반이 10만장이 넘게 팔리면서 글라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 초연과 함께 미니멀리즘 음악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시기 들어 라이히는 음악의 규모도 늘리기 시작하여 '큰 앙상블을 위한 음악(Music for large ensemble)', '8중주', '목관, 현, 키보드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 등 실내악 내지는 독주곡에서 앙상블로 무대가 넓어진다.
1980년대 들어서 라이히는 다시 자신의 뿌리로 눈을 돌린다. 유대계인 그는 히브리어 시편에서 가사를 따온 첫 가사달린 성악곡 '테헬림'을 발표한다. 그 외에도 앞서 설명한 유년기의 경험과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기리는 '다른 기차들(Different Trains)'를 발표했고, 그는 1989년 이 곡으로 그래미 어워드 현대음악 부문 상을 수상한다. 이 시기에 여러 오케스트라로부터 작품을 위촉받았는데 , '3개의 악장', '4개의 부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라이히는 이러한 요청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고, 현재까지 '''전통 좆까''' 노선을 유지중이다. 근본에 깔린 서구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반골 기질 탓이라고 하며, 본인의 말에 따르면 '내 교향곡 1번은 절대 없다'라고 못박았을 정도다.
90년대 이후 2010년대 현재까지도 라이히는 계속 활동 중이다. 그의 다양한 리듬과 미니멀리즘 방법론에 많이 기초하고 있는 힙합,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재조명 중이다. 1999년에는 켄 이시이, DJ Spooky 등 그에게 영향받은 음악인들이 합동으로 그의 리믹스 앨범을 내었고, 2010년대까지 '나고야 마림바', '시티 라이프', '첼로 대위법', '이중 6중주', 'WTC 9/11', '라디오 리라이트'등 여러 죽품을 발표중이며, 2013년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서양음악기행'에도 출연하였다. 유료로 볼 수 있으며(올레 TV에서 무료로 시청 가능),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2015년에 London Sinfonietta와 합작으로 박수음악(Clapping Music)을 게임 앱[2] 으로 만들었다. 제작사는 Touchpress.
3. 작품 성향
앞서 말했듯 라이히는 글라스 등과 함께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 주자이다. 그러나 글라스가 신낭만주의에 기울어 좀더 고전음악에 가까운 반면, 라이히는 '전통 좆까!'노선을 그대로 유지 중이다. [3] 월드 뮤직, 특히 아프리카, 동남아의 음악을 주로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화려한 리듬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한 대중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어 앞서 말한바와 같이 그에게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이 낸 리믹스 앨범 외에도 브라이언 이노, 킹 크림슨, 텔레비전(밴드) 등도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본인도 재즈, 로큰롤에 큰 영향을 받아 초기작의 경우 엘라 피츠제럴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한 바 있으며,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2013년 발표한 '라디오 리라이트'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듣고 받은 인상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이히의 음악은 오늘날 많은 청중을 불러 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스티브 라이히 외의 타 연주자나 타 연주단체가 연주한 라이히의 앨범도 매우 적다.
한국계 클래식 작곡가이자 유튜버인 Nahre Sol의 소개 영상. 영상 후반부(4:52)에서는 스티브 라이히 스타일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 주요 작품
- 생계(Livelihood)
- 비가 오고 있다(It's gonna Rain, 1965)
- 멜로디카(1966)
- 두개의 피아노 또는 마림바를 위한 '피아노 위상'(1967)
- 바이올린과 테이프 도는 바이올린 4대를 위한 '바이올린 위상'(1967)
- 3~4대의 마이크와 앰프, 스피커를 위한 '진자음악'(1968)
- 마라카스와 전자 오르간을 위한 '4대의 오르간'(1970)
- 네 대의 전자 오르간을 위한 '위상 패턴(Phase Pattern)'(1970)
- 4짝의 봉고, 3대의 마림바, 3대의 글로켄슈필, 두 여성 성악, 호루라기와 피콜로를 위한 '드러밍'(1970)
- 두 음악가를 위한 '박수 음악'(1972)
- 여섯 피아노(1973)
- 타악기와 성악, 오르간을 위한 음악(1973)
- 18인의 음악가를 위한 음악(1974-76)
- 큰 앙상블을 위한 음악(1978)
- 8중주(1979)
- 목관, 현악, 키보드에 의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1979)
- 여섯 마림바(1980)[4]
- 성악과 앙상블을 위한 '테힐림'(1981)
- 합창과 오케스트라 또는 성악과 앙상블을 위한 '사막 음악'(1983)
-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악장(1986)
- 오케스트라를 위한 네 개의 부분(1987)
- 현악 4중주와 테이프를 위한 '다른 기차들(Different Trains)'(1988)
- 두 대의 마림바를 위한 '나고야 마림바'(1994)
- 증폭된 앙상블을 위한 '시티 라이프'(1995)
- 증폭된 현악 사중주와 녹음된 테이프 또는 세 현악 4중주 또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삼중 4중주(1998)
- 증폭된 첼로와 테이프를 위한 '첼로 대위법'(2003)
- 2대의 바이올린, 2대의 첼로, 2대의 피아노, 2대의 비브라폰, 2대의 클라리넷, 2대의 플루트 또는 앙상블과 녹음된 테이프를 위한 이중 6중주(2007)
- 현악 4중주와 테이프를 위한 'WTC 9/11'(2010)
- 앙상블을 위한 '라디오 리라이트(Radio Rewrite)'(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