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해
食醢
1. 개요
젓갈과 술의 중간쯤의 발효법을 이용한 저장식품으로, 탄수화물과 고춧가루를 이용해 소금을 적게 쓰면서도 저장기간을 늘인 음식이다.
2. 상세
이름을 봐도 식(食)이 밥을 뜻하고 해(醢)는 젓갈을 뜻하므로 밥을 넣은 젓갈이라는 뜻이 된다. 곡물의 발효를 이용하기 때문에 소금과 생선만으로 만든 젓갈보다는 염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실제로 밥알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냥 보기에는 김치를 버무린 것처럼 고춧가루 반죽으로 생선을 버무려 놓은 듯한 모습이다.
강원도와 경상도 해안가에 가면 거의 10에 9는 밥상에 올라올 정도로 일상화되었던 반찬이지만 외지인에게는 무척 생소하다. 밥 사이에 날생선이 고춧가루와 범벅이 되어 파묻혀있는 장면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강원도 해안 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 먹는 토속적인 음식이 되었는데, 특히 김치를 만들 때 들어간다. 가장 흔하게 넣는 것은 가자미 식해이다. 식해를 넣은 김치는 현대인들에게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혹시 여러분 집의 김치에 생선이 들어가 있다면 그 원향이 강원도 지역은 아닌지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께 물어보자.
동해안식 김치에 든 식해는 그 자체로는 먹기 거북할 수 있는데, 의외로 전어회 썰듯이 채썰면 먹을 만해진다. 같은 음식에 같은 맛임에도 식감의 차별화로 인해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 예시이다. 혹시 이 식해를 처리하는 게 곤욕이라면 한번 채썰어서 반찬으로 먹어 보자. 각 지방의 토속 조리법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문화가 사멸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3. 맛
식해는 취향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맵고 시고 짜며 은은하게 달아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모두 즐길 수 있다. 또한 생선과 무우의 식감도 매우 좋은 편이다. 근래 들어서는 식단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이렇게 양이 줄어든 반면 질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문제의 하나로 지적되던 냄새도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얼핏 봐서는 생선요리라고 눈치채기 어려워질 정도로 형상도 변했다. 맛은 진화했다는 표현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졌는데, 제대로 만들어진 가자미 식해를 한번이라도 맛보면 이전의 식해는 눈길도 안 주게 될 정도. 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밥도둑 중 하나.
한편 소금과 고춧가루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은 생선의 원형을 유지하여 발효된 무침에 가깝게 먹지만, 과거에는 진하게 간을 하여 일본의 붕어초밥처럼 완전히 뭉그러질 정도로 푹 삭혀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4. 주 재료
가장 유명한 식해는 좁쌀과 무, 가자미로 담근 가자미 식해. 이북 음식이며 지금은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많이 사는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 원래 것과 가까운 것을 먹을 수 있다. 서울에도 이북 출신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구할 수 있다[1] . 워낙 식해 중에서 유명한 쪽이 가자미식해이다 보니 식객에서도 한 번 다뤘다. 백석의 시에서도 그의 고향을 대표하는 향토적인 음식으로 나온다. 가자미 대신 양미리나 명태, 창난, 갈치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시장에서 가자미식해를 파는 곳을 보면 갈치 식해도 같이 파는 곳이 많다. 함흥식 비빔냉면에는 원래 가자미 식해가 들어간다.
발효 음식이지만 의외로 원재료, 특히 생선의 선도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이건 홍어도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신선한 홍어를 삭힌 쪽이 더 맛이 좋다. 따라서 냉동 생선보다는 냉장 생선이 더 좋고 당연히 유통 경로가 짧은 산지 주변의 시장에서 구입한 생선이 더 좋다. 특히 갈치나 가자미의 경우 특유의 향이 있기 때문에 선도가 더더욱 중요하다. 가자미 식해의 경우는 흔히 먹는 참가자미는 뼈가 굵어 만들기 적합하지 않고, 뼈가 연한 물가자미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
5. 일화
소동파와도 인연이 있는 요리이기도 하다. 옥에 갇힌 소동파가 아들에게 사식을 넣을 때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식해를 넣어달라 했는데, 아들이 바빠 친척이 대신 사식을 넣어주면서 사정을 모르고 식해를 넣어주자 소동파는 절망에 빠졌다. 이때 될대로 되라는 심정에서 황제에게 간언을 했는데 되려 감동을 먹은 황제가 그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
6. 어원에 대한 견해
해(醢)는 주로 육고기로 된 젓갈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밥과 생선을 삭힌 식해는 다소 다른 면이 있다. 안동식혜[2] 의 경우 국물이 있게 만드는 점, 그리고 또 하나의 주 재료인 고춧가루가 조선 중기 이후에서 들어온 점을 보아 식혜의 변형판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반대로 식해에서 육류가 빠진 게 식혜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삭히다'의 명사어가 변형되어 '식혜', '식혜' 같은 한자어 비슷하게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3]
7. 초밥과의 관계
초밥 문서에서도 보듯 에도 시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초밥은 식해와 만드는 법이 비슷했다. 그러다가 초밥의 소비가 많아지면서 지금처럼 촛물을 섞은 밥에 생선회를 올리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이러한 형태의 음식은 동남아를 비롯한 쌀문화권에서 흔한 음식이기에 서로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붕어 같은 생선을 밥에 묻어 발효시키는 나레즈시("붕어초밥") 같은 것도 있다. 한국의 식해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은 아니며 자국인에게도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고 한다.
8. 기타 동음이의어
- 식해(食害) - 먹어서 피해를 입힘. 쥐나 벌레 따위가 음식물이나 자재를 먹어 해를 끼치는 것. 하늘소, 흰개미가 나무 속을 갉아먹어 목재나 장작으로는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나 톱밥파리가 균사를 먹어치워 버섯 생산품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것 등이 식해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