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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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의 아들.
이름은 후(珝). 선조의 서4남이다. 한성부판윤 신립의 사위이다. 인빈 김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고 있으면서 이후(신성군)를 낳았으므로 선조의 사랑을 받았다.
위로 친형 의안군이 있었으나 요절했기 때문에 사실상 인빈 김씨의 장남으로서 세자 후보 중 한명이었다.
2. 생애
1591년(선조 24년) 서인 정철이 먼저 경연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세울 것을 건의했으나(일명 건저의 사건), 신성군에게 마음이 가 있는 선조의 의중을 알고 있던 동인 이산해 등이 선조의 분노를 이용해 정철을 실각시킨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도성이 위급해지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신 종묘관원을 따라 평양으로 피란했다가 5월 29일 왜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보고를 받고 구사맹, 신잡 등의 호위를 받아 평안북도 영변으로 향하였다. 이해 11월 평안북도 의주에서 병사하였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선조가 세자로 책봉할 생각을 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던 신성군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이후 영창대군의 경우처럼 광해군의 후계자 지위가 상당히 위태로워졌을 가능성이 크며 그로 인하여 조선 조정의 후계자 싸움이 격화되었을 것이다.
3. 드라마
위에도 서술되었던 것처럼 유력 세자 후보였기 때문에,임진왜란 발발 이전을 다룬 선조 시대의 사극서는 큰 비중은 없더라도 어머니 인빈 김씨와 더불어 빼놓을수 없는 인물인지라 반드시 빠지지 않고 나온다.
드라마 허준에서도 등장한다. 예직의 구완와사와 반위 건으로 공빈의 신임을 잃고 세희와의 스캔들로 명나라 별견의관 파송까지 받으며 출세길이 주춤해진 유도지는 허준에게 추월당할 것을 염려해 줄을 댈 다른 곳을 찾다 당시 공빈을 제치고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과 연결이 되고, 인빈을 착실히 모셔 받들며 신성군의 회임을 도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십 수년의 세월이 흘러 신성군이 성장하였을 때 욕창에 걸려 내의정으로 있던 궁의 유도지가 치료하고자 애썼으나 여의치 않자, 첨정 자리에 있던 허준에게 기회를 선심쓰는척 넘겨버린다. 고심 끝에 허준은 거머리를 잡아다 그 욕창을 치료해 내었으며, 허준의 치료법을 크게 불신하던 선조와 인빈이 감탄, 본래 아래 직급이었던 허준이 그 길로 곧바로 유도지를 뛰어넘은 관직인 어의에 봉해진다. 허준을 함정에 몰아넣었다 생각했던 유도지는 허탈해하게 된다.
후에 임진왜란이 터져서 피난을 가게 되자 허준은 의서를 챙겨가는데 신경쓰다 선조의 호위를 하지 못했고, 이를 서운하게 여긴 선조는 평양에서 의주로 피난가는 길에 허준을 평양에 광해군과 함께 남겨버리고 유도지를 데려간다. 하지만 가는 길에 신성군이 풍토병에 걸렸고, 무사히 당도할 수 있겠냐는 선조의 질문에 유도지는 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리고 병을 피난길에서 무리해서 생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걱정 말고 가자고 진언한다. 의주에 도착한 뒤엔 이미 병세가 위중해져 돌이키기 힘들어져 있었고,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허준이 챙겨운 의서를 좀 가져올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던 유도지는 결국 신성군을 소생시키지 못한다. 이렇게 사망한 신성군은 유도지의 결정적인 몰락을 가져왔고, 유도지는 하옥되어 중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으나 허준이 손 부상을 핑계로 그에게 선조를 치료할 기회를 줌으로써 극적으로 사면을 받게 되었으며, 드디어 둘은 화합하게 된다.
징비록(드라마)에서 등장하며 결국 피난중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