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지역감정

 


1. 개요
1.1. 2010년대 이후 온라인상에서의 지역감정
2. 사례
2.1. 대(大)지역주의
2.2. 소(小)지역주의
2.2.1.1. 강남 3구[1][2][3] vs 그 이외
2.2.1.2. 한강 이남 vs 한강 이북
2.2.2.1. 북부[4] vs 남부[5]
2.2.2.3. 화성시 서부[6] vs 화성시 동부[7]
2.2.2.5. 중서부 경부선·경인선·수인선 연선지역[8] vs 동부 신도시[9]
2.2.2.7. 고양시 일산구 vs 고양시 덕양구
2.2.3.1. 원인천권(남동,연수(송도),미추홀, (영종), , (청라)) vs 부평권(부평, 계양, 공촌, 검단)[10][11]
2.2.6.1. 천안시 + 아산시 vs 나머지 지역들
2.2.7.1.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vs 그 외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
2.2.7.2. 부산광역시 vs 경상남도
2.2.9.1. 칠곡지구·시지지구 vs 기타지역 [12]
2.2.9.2. 수성구 vs 수성구[13]
3. 논란
3.1. 지역감정은 한국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3.2. 한국의 지역감정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4. 둘러보기
5. 관련 문서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환경을 보고 먼저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국인이라서, 흑인이라서, 또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사람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선입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닐까요? 사람 자체가 좋으면 그만인 것을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싫어한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추신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영남 출신 군인들이 전두환의 명령을 받아 광주시민들을 학살하였다는 소문도 있고 경남 합천 출신인 전두환과 대구 달성 출신인 노태우의 앙금과 원한으로 호남인들의 영남인들을 보는 시각은 매우 좋지 않았다. 이와 같은 영호남의 갈등은 정치에서 두드러져서 영남은 민주자유당에서 새누리당까지, 호남은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했다.


1. 개요


한국의 지역감정 하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종교", "민족" 요소가 얽힌 영국, 스페인 같은 나라에 비하면 덜 심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고 특징은 정치적인 감정으로써의 지역감정이 심하다는 것. 다만 경상도나 전라도 어느 한 지역이 분리독립을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의 “재력”'과 뒷받침해줄 “군사조직”, “인력풀”, 그리고 “합당한 명분” 까지 모두 갖추지는 못했다.
영남 부산 출신의 나훈아호남 목포 출신의 남진의 경쟁구도라든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대 지역 번호판을 단 차에는 주유를 해 주지 않는다는 등의 풍문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매우 심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1순위 공약 중 하나가 지역감정 해소였고, 정부 차원에서 영호남 신랑신부 맺어주기 프로젝트 등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정책을 따로 추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국민의식 향상과 지역간 경제, 교통, 통신 등의 격차 해소로 인해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14] 오늘날에는 약주 한 잔 거하게 걸친 어르신들의 푸념 외에는 지역드립을 현실에서 듣기 비교적 어려워졌다. 그 대신 최근에는 수도권지방 차별 문제가 새로 대두되고 있는 중이다.[15]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일베저장소로 대변되는 현상에 의해, 노인층의 유물로 여겨지던 영호남의 지역감정 문제는 다시 재발굴되어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한 유사인종주의로 보기도 한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지역감정들 중 '영남 vs 호남', '수도권 vs 지방', '서북 vs 기호' 가 있고 그중에 특히 영남 vs 호남, 즉 경상도 vs 전라도 는 그 중에서도 근래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심각한 수준의 지역감정에 속한다.

1.1. 2010년대 이후 온라인상에서의 지역감정


사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은 나이든 어르신들에게나 남아있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졌으나, 2010년대경부터 온라인상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특정 지역 비하가 유행하고 있다. 옛날 지역 비칭이라 해봐야 보리문디/깽깽이/감자바우 정도의 귀여운(?) 편이었지만, 2006년 막장 갤러리에서 고담대구갱스오브부산이나 마계인천으로 촉발된 지역별 마경이라는 신(新) 지역 드립을 시작으로 2010년 야구 갤러리에서 시작된 호성드립2011년 오오미가 유행했고, 비슷한 시기 유행한 홍어 드립과 여기에 대응하는 과메기 드립, 거기에 더 나아가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통구이 드립 등이 있다.[16] 또 전라도나 경상도의 지지 성향과 맞물려 정치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지역드립을 잔뜩 실은 스타크래프트 유즈맵까지 나올 정도. ㅁㅁㅁ를 아예 타국으로 분리독립시키라분리주의적 성향의 악질적인 드립까지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 인터넷에서의 이러한 악성 드립들은 대한민국 분열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역감정이란 지역 vs 지역 구도에서 형성되는 적개심이다. 즉 단순히 천박하고 정상교육을 받지 못한 네티즌들이 마음에 안드는 지역을 마구잡이로 비하하는 것에 가깝다. 정상적으로 사이트가 돌아간다면 지역비하를 금기시하겠지만 여러 사이트들이 진영논리에 의해 지역비하를 일삼는데 일베처럼 전라도 비하가 강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클리앙처럼 경상도 비하가 많은 경우 역시 존재하며 디씨 야갤처럼 통구이(경상도 비하) 드립과 홍어(전라도 비하) 드립을 둘 다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온라인 지역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다수의 경우는 개그소재일 뿐이라고 옹호를 하는데, 설령 당사자가 단순히 장난으로 그런 농담을 하는 것이라도 이미 도의적인 허용량을 아득히 초월했다. 꺼내는 쪽과 그 대상이 되는 쪽, 그리고 그것을 보고 듣는 제삼자 모두가 유쾌히 즐길 수 있어야 개그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떠도는 각종 지역드립을 모두가 유쾌히 받아들일까? 또한 온라인 특성상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도 쉽게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동글들이 특정 지역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크게 부추기는 주요인이 되고만다.

2. 사례



2.1. 대(大)지역주의



2.1.1. 남한 VS 북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이남 강원도 vs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자강도, 량강도, 이북 강원도한반도 최대의 지역감정. 국제적으로는 지역감정이 아닌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로 보지만, 한반도 내에서는 한국, 북한 모두 국내의 헌법에서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내법 상에서는 지역감정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2.1.1.1. 기호 vs 서북

이것과 비교하면 영호남 지역갈등은 양반 수준이다. 적어도 영호남은 기껏해야 정치 엘리트와 지역 토호 몇몇의 이해관계하고만 결부되었을 뿐이지만 이쪽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대립 관계를 이어왔다.[17]
좁게 보면 서울, 경기도, 충청도를 위시로 한 기호지방황해도, 평안도를 위시로 한 서북 사이의 대립이지만 넓게 보면 대한민국북한의 대립이다.
백제 멸망 이후 몰락해서 흔적이 옅어진 백제의 수도들이나 옛 신라의 수도로서 많은 유물들과 사적들이 존재하지만 영향력과 중요성을 많이 잃었던 경주와는 다르게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고려 왕조가 매우 아끼는 도시였으며 그때부터 수도에 이은 제2의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에 기인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이는 서경별곡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부심이 묘청의 난, 조위총의 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그런 것들 때문에 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이성계는 동북 출신인 까닭에 서북 출신의 사람들을 높은 벼슬에 등용하지 말라는 명을 내려 조선시대에 서북 지역은 중앙에서 벼슬 임용 등에 차별 대우를 받았고 결국 홍경래의 난 같은 극단적인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심지어 현대에는 해학으로 해석하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한양과 평양의 지역감정이 드러난다는 해석이 있을 지경이다.
이러한 지역감정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편을 갈라 충돌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한 사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독립을 하면 나라의 정권은 서북이 가져야 한다"고 하기에 만해가 왜 그러냐고 질문하니 "기호(서울 경기권) 사람들이 500년동안 정권을 잡고 일을 잘못했으니 그 죄가 크고, 서북은 500년간 박대를 받아왔으니 그렇다."고 주장했다가 만해 선생이 뒤도 안 돌아보고 인연을 끊어버렸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
또한 일제강점기축구 시합들 가운데 경성부 팀과 평양 팀이 서로 겨루는 경평전이 유명했었다.
그리고 개성서울과 같은 기호지방에 속하지만 개성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탓에 조선 왕조가 개성의 왕족들을 많이 죽이거나 탄압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때 개성 사람들은 조선 왕조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심지어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적대적인 감정을 유지했을 정도였다.[18]
결국 남북 분단6.25 전쟁까지 불러일으켰다. 분단 이후 북쪽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끊기면서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상태다. 하지만 남북통일이 되었을 경우 경제적, 사상적, 문화적 가치관 차이 등으로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높으며, 오히려 위에 서술한 다른 지역감정과는 완전히 비교 불가할 극도로 심각한 지역감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게다가 경제적, 사회적 문제 등으로 인해 통일반대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만큼 2030년경에 북한 체제가 갑작스럽게 붕괴한 후 흡수통일을 이루어 통일독일이 밟은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면 이 지역감정이 극도로 심각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이 지역감정은 단순히 기호 vs 서북으로 끝나는게 아닌 vs 의 지역감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그러하다. 독일의 경우는 통일 이후에도 구 동독의 풍습과 구 서독의 풍습간 충돌과 지역간 언어소통과 이념문제의 잔재 등으로 여전히 대부분 상호간의 괴리감과 불신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동서 분단시절 남아있는 고질적인 사회주의 성향과 자본주의 성향이 충돌하기도 하여서 통일 이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통일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도 훨씬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서북지방이 너무 심각하게 못 살기 때문에 통일되고 나서 많이 발전시켜주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발전을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을 부담하는 대상은 남한 주민이 될 것이며 그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더 커질 위험성도 존재하므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19]

2.1.2. 남한



2.1.2.1. 영남 vs 호남

1970년대부터 202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내 가장 대표적인 지역갈등 중 하나로, 내용이 너무 길어 문서가 따로 분리되었다.


2.1.2.2. 수도권 vs 지방


위의 영남 vs 호남만큼은 각자 출신 정치인들 간의 비난 및 비방과 인터넷상의 키배를 제외하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20]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감정은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심각한 지역감정. 과거에 비해 지방을 떠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수도권의 광역화가 갈수록 진행되어 21세기에는 수도권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량(약 2,500만)을 차지하게 된 반면에 비수도권은 위 영남 vs. 호남 단락의 경제적 갈등 기원설과 같이 비수도권 내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된 수도권에 비해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군사정권 시절의 '호남소외론'을 넘어 '지방소외론' 이 대두되었다.
차라리 호남의 경우에는 정치적 갈등 때문에 생겨났다고 했지, 이쪽은 아래에 나올 서북 vs 기호만큼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보다 한층 과격해진 인터넷 문화까지 맞물려 지방충, 지잡충, 지잡대같은 비하 용어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고, 상호 불신감은 점차 증폭되고 있다.
지잡대라는 비하 용어의 근원은 곧 현 시대 서울 vs 지방 갈등 구도를 심화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학 서열을 정하고 특히 인서울 대학을 상위권 대학으로 쳐주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취업시장에 그 원인이 있다. 만일 대학에 상관 없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직장에 얼마든지 취업이 가능한 환경이었다면 굳이 인서울이니 지잡대니 하면서 대학 서열을 정할 필요가 없다. 또 환경에 상관없이 직원을 뽑고 생산하여 매출, 순이익을 올릴 수 있다면 회사는 서울이 아니라 한국 어디든 세울 수 있다. 서울대 간다고 좋은 직장을 가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인서울대학, 스카이 출신 학생들이 취업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지역감정이 아닌 대학 서열의 문제다. 그러다 보니 취업시장에서 불리한 지방대에 지잡대라는 멸칭이 붙은 것이다. 이때문에 현 시대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받고 나온 대다수의 40대 이하 청년 세대들은 대학교와 직장을 따라 전국을 떠돌고, 이는 자신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며, 좋은 대학교와 좋은 직장이 몰려있는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오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청년세대를 인서울 성공한 청년 vs 인서울 실패한 청년의 내부 대립까지 만들어낸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이라는 분류는 상호 교류도 적고 별 상관없는 지역들을 수도권이 아니라는 하나의 공통점만 가지고 한데 묶은 정체성이 모호한 용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감정 구도는 지역별로 체감차가 크다.
그러나 다른 소모적 지역감정에 비해 이 쪽은 실질적 이권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수도권 규제 해제나 행정수도 이전 논란 때처럼 이권이 충돌할 때마다 다시 부각되고 있고, 지역감정에 이미 염증을 느끼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신지역주의의 발현을 억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실체화되고 있다.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감정은 사실 실질적으로 그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정치 엘리트와 지역 토호 몇몇의 이해관계와만 결부되었을 뿐이지만, 이러한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지역갈등이라는 사회적 균열의 하나라고 봐야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성적 문제로는 비유하기 어려운 것이, 이건 누가 더 능력이 있거나 노력을 더 하고 덜 하고의 문제와는 하등 관계가 없이 일방적으로 단지 서울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 이익을 본다는 명백한 사실 관계가 실재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좌파적 관점에서 자본가노동자를 필연적으로 착취한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가 착하고 나쁘고 그런 도덕성과는 관계가 없으며, 노력과는 별 관계없는 구조적인 차원의 담론이다.
다만, 수도나 최대 도시와 그 인근 도시들 vs 나머지 지역들간의 지역 감정은 단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21][22] 그러나 서울 공화국이란 용어에서도 나왔듯이 대한민국의 소용돌이적 구조, 즉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적 집중현상은 유례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서 가볍게 넘기기는 힘들다. 이는 왕실에 의한 수도 집중화가 강할 수밖에 없었던 전근대시대의 수도 집중 현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론 근대화가 진전되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도 또한 규모가 막대하게 커질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이러한 도시화는 정확히는 도농 격차를 훨씬 더 크게 유발하지 수도-지방 격차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지방과 시골이 동일시되는 경우가 항상은 아니더라도 종종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심각한 수도 집중 현상이 언어 습관에도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방이 피해자라는 관점을 앞세워 그들의 주장을 모두 정당화하려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예로 인천시에서 행정자치부에 대도시 표기 순서를 '서울-부산-대구'에서 '서울-부산-인천'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하자, 대구 지역 언론을 필두로 지역민들이 힘을 합쳐 온라인 상에서 악의적 지역드립을 날리며 반대했던 사례가 있다. 인천이 대구보다 인구, 경제 규모에서 앞서 있지만 대도시 표기 순서를 바꾸지 못하게 반대하면서도, 수도권 중심주의나 서울 공화국 현상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모순점이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로 연결될 수 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방'이란 하나의 개념으로 묶기엔 정체성이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으며, 지방의 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수도권-지방 격차 문제와 이러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간의 격차 문제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는 당장 결론을 내릴 수 없고 어느 한쪽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다른 한쪽을 합리화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러나 수도권과의 격차 문제만으로 후자의 지방 내의 격차 문제를 아예 뭉개려는 양상은 정상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며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예시에 대해선 혁신도시, 부산특별시 문서 등에 나와 있다. 위에 언급한 영호남 지역 갈등 문서에도 예시가 나와 있다.
추가적으로 지방에 주어지는 농어촌특별전형, 지역 인재 할당, 조세 부담의 불평등 등으로 인하여 역차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예로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역 인재 전형은 인천광역시 출신자, 인천 소재 대학 출신자가 아닌 인천국제공항과 아무 관련 없는 지방 소재 대학 출신자를 우대한다. 지역 인재 우대라는 것 자체의 의미 자체가 퇴색된 것이다.

2.1.2.3. 부울경(PK) vs 대경권(TK)

경상도는 남한에서 강원도와 함께 가장 넓은 도이며 옛 경상북도권과 옛 경상남도권은 문화와 정치성향[23] 등 이질적인 부분이 많으나 같은 경상도라는 인식 하에 갈등이 억제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상에서 서로 느끼는 감정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지역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쌓인 것이 많다. 80~90년대 야구에서도 TK와 PK는 호남팀을 상대할 때까지는 아니어도 더비에 대해 은근히 경쟁심리가 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4]
특히나 낙동강을 두고 여러 가지의 갈등을 빛은 것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유명한 것은 대구 vs 부산의 갈등으로 90년대 위천산업단지의 조성을 두고 갈등을 빚은 것이다. 특히 과거 금호강이 오염이 엄청나게 심한 강이어서 낙동강 오염의 주 원인이 될 정도였으며, 페놀 유출, 다이옥신 유출 사건 같은 굵직굵직한 환경오염 사고가 터지면서 부산시민들 사이에선 '쟤들 때문에 우리가 똥물 다 마시는 거 아니야?'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 또 대구가 상류지역인 구미 지역에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면서 구미시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 심지어는 4대강 사업의 보 이름을 두고 싸우기도 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한 때 매우 미묘한 오월동주 관계였는데 1990년 1월의 3당 합당1992년 대선 국면 때의 우리가 남이가 사건 등으로 사실상 같은 지지 성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오월동주 관계를 만들어낸 YS가 PK 출신이었기에 시작은 PK 주도였는데, 이에 대해 TK에서 반발이 거셌고[25] 이후 YS가 퇴임하고 한나라당의 성격이 여러번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TK가 PK를 호구 취급하는 구도로 둘의 관계가 역전되어 2010년대에는 이런 상황이 극대화되었다. 한편, 양 사이의 제휴 관계가 아직 견고했던 2000년대 초반 호남 기반의 민주당에서 비주류로 묻혀있던 경남 출신 노무현2002년에 기적적으로 당선될 무렵부터 노무현과 친노 진영 인사들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PK의 정치 성향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2017년부터는 친노, 친문계가 주류인 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지역으로 탈바꿈했고, TK는 기존의 자유한국당이 계속 강세를 보여 2017년의 정권교체와 이듬해인 2018년의 지방선거를 계기로 사실상 이 둘의 관계는 1990년 1월 이전으로 돌아간 상태.[26]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당시에도 가덕도와 밀양 중 어디에 신공항을 짓느냐를 두고 TK와 PK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논란에서 지역갈등이 심해지자 박근혜 당시 정부에서 밀양 신공항으로 내정설이 나돌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부득이하게 기존 가덕신공항밀양 신공항만 진행하던 용역에서 김해공항 확장안을 쑤셔넣어 2016년 6월 21일, 최종적으로 대구국제공항국제선 200만여명을 김해 신공항으로 통합시켜서 3800만명 규모의 통합터미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나, 2016년 7월 10일, 대구경북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건설하겠다며 합의를 위반하고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국토교통부가 이를 지원함으로 인해 김해신공항의 터미널 3800만명의 통합규모에서 1500만명/1단계규모로 축소적용하고, 대구경북통합신공항에 500만명/1단계, 1000만명/2단계로 추진을 지원하여, 결국 가덕신공항 재추진의 빌미를 주게 된다. 이를 가지고 대구 시민들이 부산으로 원정을 가서 건설 반대를 주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신공항 문제도 있고 해서 요즘은 지역 카페를 중심으로 호남 지방과 손 잡고[27][28] 대구경북 견제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견제 수단이라고 하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2.1.2.4. 전북 vs 광주·전남

우선 문화권부터 전북과 전남이 크게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며, 완주부터 김제에 이르는 전북 북부방언의경우 충청 방언의 영향을 약간 받아 흔히 알고 있는 호남 방언과는 다른 여유로운 말씨를 지닌 덕에[29] 전북 사람이 전남 사람을 만나면 보수적이고 기가 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또한 호남권의 소외를 막기 위해 뒤늦게 개발한 쪽도 거의 대부분 전남 지역이었고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전북 주민도 꽤 된다. 88올림픽고속도로(現, 광주대구고속도로)가 원래 전주로 연결되었어야 했는데 광주의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서 광주로 이어졌다는 카더라도 돌고 있다. 전북권 뉴스 보면 전남권 개발 및 투자현황과 비교하며 투덜대는 내용이 많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지역인재 광역화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 광주전남은 나주혁신도시대비 전주혁신도시 공공기관규모가 훨씬 작아 (약 3배) 광역화하면 손해이기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전북은 기껏 호남소외론으로 울산광역시를 제치고 알짜배기 에너지 공공기관을 유치했더니 돌아오는 거는 전북 차별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전북의 정치력이 광주전남 발끝에 못 미쳐서(...) 광역화에 최종합의한 충청도와 다르게 일방적으로 광주전남에 끌려가는 모양새이다.
정치적으로도 전북전남은 약간 이질적이다. 역사적으로도 박정희 정부 초기까지는 전북의 경우는 보수 세력이 강한 지역이었고[30], 1992년과 1996년에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당선되기도 했다.[31] 광주광역시·전남지역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호남의 이미지처럼 민주당계 정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보수정당은 거의 발을 들이지 못하며(단, 순천시 제외[32]), 가끔 진보 계열에 자리를 내주기도 하는 반면, 전북에서는 시,도의원이 가끔 보수정당에서 당선되곤 했다. 2019년 현재 호남 유일의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자리잡은 지역이기도 하며, 바른미래당이 지지율은 낮은 편이긴 해도 보수세력이 완전히 배제된 전남에 비해 숨구멍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학생운동권 가운데 뉴라이트로의 전향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도 전북대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보수성향도 있기는 하다는 거지, 민주당계 정당에 대한 지지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호남 비하 중 홍어드립이나 광주와 관련된 지역드립을 치면서 전남전북이 통째로 같이 엮이기도 했는데, 사실 전북은 상술한 것처럼 정치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엮인 것도 아니었고, 지역드립이 심화될 시기 우승하면서 홍어 드립이 엮였던 KIA 타이거즈의 메인 연고지도 아니었다. 이 때문인지 전북은 광주 전남지역과 엮이는걸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남북 사이의 이질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호남 홀대론 외쳐서 뽑아줬더니 결국 전북 소외는 그대로다. 전북은 2중대일 뿐이었나"라는 전북권의 불만이 쌓이면서부터였지, 그 이전까지는 전남북 사이에 딱히 갈등거리도 없고, 인적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으로, 5.18 당시에도 광주가 고립되기 전에 전북의 친척집으로 피신해있거나 연락을 주고 받은 광주 시민들이 꽤 있었는데, 전북에선 이런 친지들을 통해 실상을 들어 웬만큼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타지역에 비해 많았고, 뿐만 아니라 5.17 쿠데타의 첫 희생자가 전북대학교의 이세종 열사였던 만큼 이 참사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히 야구의 경우에는 호남 야구팀의 대표격인 해태 타이거즈가 너무 강력했고, 전북 연고를 가지고 나온 쌍방울 레이더스가 워낙 후발주자였던데다 전주, 군산 일대 도시를 제외하고는 지지세가 약했다보니, 호남 = 해태/기아로 연결되는게 어색하지가 않다. 쌍방울이 해체된 이후엔 더더욱. 이외에 타지에서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기피한다든지 셋방을 내주지 않는 등의 차별을 겪다 보니 전남북 사람 사이에는 같은 처지의 호남인으로서 동질감이 쉽게 형성되었는데, 어찌보면 강력한 핍박이 단결을 불러와준다는 예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국내외 지역감정과 수준을 달리하는 인종차별, 그 인종차별 정책 중에서도 끝판왕격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백인들에게마저도) 엄청나게 꽉 막힌 성격을 띠었다보니 서로 동질감따윈 가지고 있지 않고 투닥거리기나 했던 흑인 부족들을 단결시킨 사례가 있다.

2.1.2.5. 충북 vs 대전·세종·충남

이쪽 또한 서로 미묘한 감정이 있다. 그냥 충청도로 뭉뚱그려 묘사하는 언론매체가 많아 충청권 거주자나 지역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르지만, 충남과 충북은 서로를 다르게 생각한다. 다만 충남과 충북의 중심도시가 한 광역권으로 엮이니, 단순히 외부에서 봤을 때 그냥 충청도로 뭉뚱그려져 묘사되는 것일 수도. 대체로 충북에서는 충남에 개발이 집중되는 것에 불만 및 박탈감이 있는 편이고, 충남에서는 충북이 어거지를 부려 일을 엉뚱하게 만든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전의 경우 예전에는 충남 소속이긴 하였으나 독립 이후에는 기존 충남지역과는 이해관계가 달라진 부분도 많기 때문에 독자노선을 걷는 일도 꽤 있다.[33] 최근에는 여기에 세종시까지 끼어들어 구도가 더욱 복잡해졌다. 청주지역서 세종의 모태가 충북이라고 거의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이전 서술에서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신인 연기군이 청주 생활권이었다고 했는데, 조치원읍[34], 부강면[35]을 제외한 지역은 공주나 대전의 배후지 성격[36]이 강했으므로 전체적인 면에서 청주의 생활권이라 보기 어렵다.
충청도는 동서로 길쭉하기 때문에 서쪽과 동쪽의 지역색 차이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즉 충남과 충북의 차이가 의외로 꽤 있다는 의미. 대체로 충청도 하면 사람들이 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서쪽(즉 충남 중서부)의 것에 가깝다.[37] 가운데의 경부선 라인[38]은 비교적 큰 도시들이 많아 지역색이 옅은 편이며[40] 충북 동부지역은 앞에서 언급한 충청도 스테레오타입과는 좀 거리가 있다. 충북 최동단인 제천시나 단양군 쯤 가면 행정구역만 충청도지 생활권도 문화도 모두 강원도에 가깝다. 충주시는 충북 동부 내지는 동부+북부 중심지로서 성격이 강했으나, 근대화 이후 도로/철도교통 측면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던 탓에 전통적인 힘은 상실했고, 제천시만큼은 아니지만 원주시 생활권에 가까워져려는 추세다. 도청 소재지마저도 지역색이 엷으니, 충북의 지역색이 충남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래도 충북 지역 언론은 충북이라는 이름을 꽤나 강조한다.
한편 충남북은 미묘하게 정치성향 역시 다른데, 양당제 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제3당이 있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충남(+대전, 세종)의 경우 지역정당(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등)이 있었을 때에는 이 정당들이 나름대로 위세를 떨쳤던 반면 충북은 비교적 지역정당의 세가 약했다. 충청 지역정당이 사라진 현재에도 약간의 차이는 남아 있는 편.[41]

2.1.2.6. 호남 vs

아래의 사진은 1958년에 서울대 이진숙 교수가 발표한 8도 전 지역에 대한 "선입견" 연구에서 조사되어 인용된 설문조사(표본추출 수 : 1,000명)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게, 이 논문에는 전국 각 지역에 대한 선입견( )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냥 이런 내용도 있었구나 하고 참고로 해야지 1갑자가 지난 21세기 시점까지 100% 수용하면 위험하다. 참고로 아래 설문조사에서 전라도 사람에 대해서는 간사하다는 선입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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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50년대에 아래처럼 지역비하 내용을 여러 사람이 보는 잡지에 버젓이 기고한 개인은 있기는 하였다. 61년 5.16을 지휘한 수뇌부에서 군 정리작업을 하면서 각 지역 명칭 대신 일부 미국 지명으로 대체한 내용(예, 평안도, 함경도 : 알래스카, 전라도 : 하와이) 역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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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개땅쇠는 간휼과 배신의 표상··· 전라도 놈은··· 송충이와 그 이하의 해충··· 전라도 사람은 신용이 없고 의리가 없으며 잔꾀가 많아 깊이 사귈 수 없다. ···

하와이 교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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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부터 고향을 떠나 객지로만 다녔는지라 전라도 외에 타도 사람들을 많이 교제 하여왔다. 어찌된셈인지 전라도 사람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요새와서는 전라도 본적을 타도로 옮긴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개땅쇠[42]

의 변(유엽)

이러한 지역갈등이 심해진 건 1960년대 ~ 1990년대인데, 지역 인심의 특성 때문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산업화 혜택이 수도권 서해안, 충청 내륙, 경북 남부, 경남 동부에 주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들은 산업화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적게 본 지역주민이 전국으로 상경하였고, 수도권을 포함하여 대규모 공장이 건설된 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예, 처신, 음식, 금전 지불, 방언 등)에 따라 이런저런 일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이를 잘 반영한 논문이 아래의 통계가 기록된 1976년에 이루어진 고흥화, 김현섭의 <한국인의 지역적 편견>이라는 논문이다. 위 논문은 결혼, 동거, 정착 등 특정 단어를 중심으로 본 지역인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였는데, 여기서 타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이 많았던 호남 지역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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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도 아직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래의 표이다. 위의 자료는 의회발전연구회에서 출간한 지역주의의 변화라는 논문에서 2016년의 지역 차별 현황을 조사한 표이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호남이 차별 경험 없음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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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일환으로, 2018년에는 한 편의점에서 전라도 출신을 편의점에서 채용을 안하겠다는 공고까지 올라와 세간의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문제의 편의점 점주는 자기 부모님도 호남 출신이라고 주장 하엿으나, 이는 확인하기 어려운 "개인신상정보"인 관계로 이 항목에는 이런 "주장"이 있다는 내용만 기록한다.

2.1.3. 북한



2.1.3.1. 관서(평안도) VS 관북(함경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함흥을 중심으로 하는 함경도 사이의 지역감정이다.
남북 분단이 지나고 두 지역 사이의 지역감정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대체로 북한의 최대도시 평양과 그 다음으로 큰 도시인 함흥의 라이벌 관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두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나 특징도 꽤나 다른 편이라 이러한 감정의 골이 깊은 부분도 있다. 평안도황해도는 평야지역이고 환경도 그나마 좋은 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유순하고 나긋나긋하며 느긋한 편이라고 한다. 이것은 평안도 사투리만 봐도 그러하다. 반면 함경도 지역은 동해안을 제외하면 험준하고 가파른 산 지대에, 굉장히 춥고 척박한 지역이다. 실제로 함경도의 대도시들은 모두 함흥, 청진과 같이 동해안 지대의 평야에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드세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한다. 함경도 사투리만 들어봐도 굉장히 억센 스타일을 보여준다. 게다가 서로간에 부르는 명칭도 특화되어 있다. 평안도 사람들은 함경도 사람들을 '찔락이', 함경도 사람들은 평안도 사람들을 '북데기'라고 비칭한다고 한다.
어느 탈북자의 주장에 의하면 김일성조차 생전에 함경도 지역을 경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43] 심지어 반란 기도까지 있었다. (6군단 반란사건) [44]
이 같은 극렬한 지역감정은 김일성 정권 구축 초기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대립과 연관이 있지 않나 보기도 한다. 특히 평안남도함경북도 간의 감정골이 특히 심한 편.[45] 그런데 북한 지도부에서 의도적으로 동서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하위계층을 의도적으로 동부에 고립시켜 왔다고 한다. 북한 지도부에게 두려운 것은 대부분의 인민이 단결해서 정권을 타도하려 나서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함남지방(량강도를 제외한)이 지정학적으로 북한에선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동해가 아니면 탈출할 구석이 없기 때문에 적대계층을 격리시키기엔 알맞은 조건인 것이다. 지역드립 문서 중 북한 항목도 참조. 참고1 참고2 (4분 50초부터)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함경도 지역을 마냥 방치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이라서 회령을 선전 도시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해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김일성함흥옥류관 못지 않게 큰 식당을 건립하도록 지시해서 대형 식당을 지었고 직접 신흥관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에서 평양 다음으로 큰 도시들은 함경도 동해안 지역에 있다. 물론 함경도 동해안 지역이 발전하기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발전한 면이 있지만.
또한 함경도 지역은 소련(현재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북소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라 김일성도 중요시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평안도와 함경도 나머지는 대부분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기 때문에 그나마 함경도 동북방의 경우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에 긴밀한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했다. 소련이 러시아연방으로 전향한 이후에도 북러 국경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통일 뒤에는 이 두 지역 사이의 지역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북한 지도부가 일부러 평양 위주로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북한 자체가 워낙 폐쇄적인 나라라서 도시가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지만 통일이 되고 개방이 되면 대외 무역을 하기 좋은 함경도 동해안 지역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46] 그리고 남북통일이 된다면 더 큰 지역감정인 남북한관계에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2.1.3.2. 평양직할시 VS 그 밖의 지역들

북한의 수도인 평양과 그 외의 지역들과도 은근히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략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기득권층과 나머지 지역들의 국민들 사이의 지역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남한처럼 수도 위주로 개발을 했다. 현재 남한서울 공화국이라면 북한은 사실상 평양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서울 공화국이 반 농담조라면, 북한은 정말 평양에다가 모든 것을 때려박았다는게 차이점.
그런데 북한남한보다 더 심하다. 우선 타 지역민의 평양으로의 이주 및 여행을 제한한다. 평양시민들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전체적으로 전력이 부족하지만 평양 중심부만큼은 계속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의 각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들은 평양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북한 지도부가 지방 거주민들의 피땀을 계속 평양 꾸미기에만 집중해서 지방 거주민들이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북한에서 2차 한국전이나 내전이 일어난다면 사실상 기득권층이 모인 도시 평양을 상대로 저항하는 나머지 지역들의 국민들의 봉기로 인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2.1.3.3. 자강도 VS 량강도

북한의 신설 행정구역인 자강도량강도의 대립이 있는데, 자강도는 친(親)평안도계고 량강도는 친(親)함경도계라고 한다. (어차피 원래는 자강도는 평북, 량강도는 함북, 함남의 일부였으니...) 또 황해도(특히 북부)도 친평안계에 속한다고 한다. 평안도 대 함경도 지역감정의 연장선이라 칠 수 있다.

2.2. 소(小)지역주의



2.2.1. 서울특별시



2.2.1.1. 강남 3구[47][48][49] vs 그 이외

1970년대말 지금의 강남구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이 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 교육, 복지 등의 인프라가 엄청나게 좋아진 것에 비해 강북 지역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50] 생활 수준 격차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어떤 우월의식이나 자괴감 같은 것도 한가지 원인. 정치성향의 경우에도 제법 차이가 나는데 강남3구의 경우는 본래 민주당계가 강세였지만 90년대부터 현 미래통합당 계열 지지세가 막강해졌으며[51][52] 강북의 경우는 본래 강북이 80~90년대까지만 해도 토박이들이 많이 살아 보수정당이 제법 힘을 쓰는 구도였다. 민주당계도 제법 당선되었다. 하지만 강북이 노후화되고 민주당계에 힘이 쏠렸지만 그래도 뉴타운, 새누리당 돌풍 등으로 보수정당이 다시 막강해졌다. 21세기 이후로는 어느 정도 변동은 있지만 대체로 강남 3구는 보수정당, 나머지 지역은 민주당계가 선전하는 경향이 존재하며,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규제가 정치적 차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2.2.1.2. 한강 이남 vs 한강 이북

지역 구도만 달라졌을 뿐 갈등 양상은 위의 강남 vs 비강남 또는 경기도 남부 vs 북부와 동일하다 봐도 된다. 비강남 지역들 중 서남권이나 서북권이 대기업, IT밸리 또는 대학교와 같은 경제효과 유발 인프라가 동북권보다 비교적 많다는 점, 그리고 철도 인프라도 관악구만 제외한다면 서부 영등포권역이나 그 외 지역이 동북부보다 풍부한 편인데 2010년대에 들어 추가 인프라 확충 및 개발 계획 역시 동북부권이 다소 미약하다보니 해당 지역에서 푸념이 나오는 편. 없지는 않지만 노원.도봉의 창동기지 이전+서울아레나 계획 확정, 2017년 하반기의 우이신설선 완공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적고 진전이 더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일부 자치구들에서 '우리가 강남에 버금간다'라는 인식에서,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강남에 크게 꿇리지 않는 지역(강북의 3대 신흥부촌)을 묶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이라는 말이 퍼져있고, 가끔 '강남 4구' 자리를 두고 강동구와 동작구 사이 은근한 다툼이 있다던가 하는 것이 있다.

2.2.1.3. 서울특별시 vs 경기도·인천광역시

일부 서울시민들은 경기도, 인천에 대해 '서울의 높은 집값에 밀려난 루저들의 거주지' 또는 '서울 근처 촌동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서울부심 참조.
한편 경기도민들은 서울시계 출입 광역버스 노선 증차 억제 정책 등 수도권 교통 광역행정에 관한 서울시의 이기주의적 행태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인천시민들은 서울부심을 가진 일부 서울시민들이 인천을 비하하는 것과 인천에 서울의 각종 혐오시설을 밀어넣은 것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다.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 실시 당시에 "꼬우면 서울로 이사오면 될거 아녀!"라는 서울시민과 "집값 비싸서 경기도에 사는 게 서러운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항변하는 경기도민 간의 갈등도 있었다.
경기도 외곽 신도시 붐이 일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과 경기 간 지역감정이 덜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 부동산 시장에서 인서울 트렌드가 강해지자[53] 서울 사람과 인천, 경기도 사람을 구분하려는 의식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이에 편승하듯 7차 지방선거에선 경기도가 서울의 변방이라고 주장하는 캐치 프레이즈도 등장하였다. 거기에 한술 더떠 인천과 경기 지역(특히 부천) 주민들을 서울에서 밀려난 빈민이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2018년 서울 부동산 폭등에 대한 신규 택지지구 발표에 대해, 경기도 중에서 비교적 서울편입 정서가 강하다던 광명시에서조차도 "우리는 서울의 베드타운이 아니다. 정부가 경기도민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며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중[54].
이러한 지역 감정은 최근 부동산 양극화 심화(서울 + 서울 일부 근교[55] vs 경기 외곽[56] + 지방)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아예 경기도가 서울의 변방이란 것을 언급하고 있는 입장이라 지역감정을 더 심화시키고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인천 역시 중국인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는지라 서울 동부 vs 서울 서부와 비슷한 지역감정도 존재한다.

2.2.1.3.1. 서울특별시 vs 성남시

광주대단지사건항목 참조. 이 때문에 성남시의 어르신들은 아직도 서울 하면 이를 간다. 서울특별시는 이 일에 대해 계속 사과하는 형편.

2.2.2. 경기도



2.2.2.1. 북부[57] vs 남부[58]

경기도는 크게 한강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로 나뉘고 한수이북-한수이남으로 부른다. 또한, 같은 수도권이면서도 경기북부는 경기남부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꽤나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도 북부 인구는 웬만한 도를 뛰어넘고 면적도 상당한 편이지만, 경기도 내 주요 도시들과 신도시들이 대부분 경기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시의 경기도청 북부청사와 수원시의 경기도청 본청 사이의 행정단절 및 거리감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데, 일단 경북 남부 vs 북부 갈등에서 후술하겠지만 행정적 단절에 대해서는 공직사회에서의 불만이 크며 지역민들은 이 문제 인식에 둔감한 편. 8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경기북도 분도가 경기도의 지역 문제로 정부에서조차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는데, 행정적 문제가 빠지지는 않지만, 단순 개발 소외 문제와 남북한통일 대비라는 과제 덕분에 분도 논의의 생명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중.
다만, 북부 주민들 사이에서 남북 격차/소외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동의는 하나, 북부 안에서도 도로망, 생활권, 인근 서울 지역과의 연계성을 두고 크게 셋(고양-파주권, 의정부-양주권, 구리-남양주권)으로 나뉘기에 경기북도로 인한 이해관계[59]나 경기북도 분도 자체에 대한 시선[60] 이 세 지역권 주민들의 의견차가 있다. 2016년 이후로는 부동산이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북부지역의 내부 갈등이 많이 목격되는데, 테크노밸리 관련으로 의정부-양주 VS 구리-남양주 지역 갈등 구도가 펼쳐졌고, 민락2지구의 경우 7호선 역 추가 논란 때문에 양주신도시와, 그리고 구도심 vs 신도심 구도가 항상 있어왔듯 의정부 나머지 지역과도 갈등이 제법 있는 편이다. 다산신도시의 경우에도 같은 남양주시에 있는 별내신도시와 갈등이 있는데 남양주시 및 경기도가 다산만 밀어준다는 푸념을 하고 작은 규모지만 거리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그렇지만 구리남양주권의 경우 다산신도시, 의정부양주권의 경우 민락2지구가 도시 위치상으로 볼때 크게 성장하게 되고 지역 대표성까지 띠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각각 이 둘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경기북부 콩라인을 가지고 동북부 vs 북부 간 알력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물며 경기북도 분도에도 입장차가 아주 큰 편인데 의정부,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은 적극 찬성하고, 구리, 남양주, 가평의 경우에는 회의감을 보이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가평군의 경우 의정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고 남양주 - 춘천 사이에 끼인 이중생활권 문제 때문에 분도에 대해 상당히 무관심하고 반대 의사를 관 차원에서까지 밝혔으며 남양주시의 경우 신도시 주민들 및 외지인들이 내키지 않아하며, 구리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해서 일부 주민들은 서울과 더욱 동질감까지 느끼는 편.[61][62]일단 경기북도 등장을 내키지 않을만한 곳으로는 보통 GRDP 및 재정면에서 우위를 보이는 고양시, 파주시 지역이며 특히 경기 서북부권은 LG디스플레이와 같은 돈줄이 충분하고 지형적으로 남북교류시 어려운 부분조차 없다시피한 점에서 분도를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매우 뚜렷하다. 비록 전임 고양시 시장이 도지사 자리가 생긴다는 전망 등에 힘입어 립서비스 차원으로 경기북도에 호의적이었으나, 현 시장은 그마저도 없고 도의원 시절에 분도에 회의적인 의사를 밝힌 바가 있다.

2.2.2.2. 성남시 수정구-중원구(구성남) vs 성남시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1
위의 비(非) 강남 vs. 강남 구도와 비슷한 소득수준 격차 차원이다.
크게 광주대단지사업 때 개발된 원도심[63] 지역과 1기 신도시 지역인 분당신도시 지역으로 나뉜다. 분당신도시는 개발 당시 연일 폭등하던 강남의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한 신도시로 계획되었다. 이로 인해 고급 아파트[64], 대기업 본사 등이 분당에 위치하게 되었고 강남에 거주하던 중산층과 신흥부자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이후 소득수준 격차로 인한 원도심 지역과 분당 지역의 학업 분위기, 학력, 흡연율, 음주율, 이혼율 차이 때문에 상당수의 분당 주민들은 원도심 지역에 대해 과도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65]
한편, 원도심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분당구로 오게 되면 도시에 생기가 없다는 인상을 말하는데 계획적으로 나뉘어진 도시구획과 아파트 위주의 주거공간이 번잡하지만 개성있는 원도심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이 원도심 또한 재개발이 진행 중으로 주거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21세기에 들어서 서울의 새로운 도심으로 자리잡은 강남을 배후로 두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파이가 작아지고 있는 사대문안(중구, 종로구)를 배후로 두고 있는데다 메가톤급 물량폭탄을 떠안아 기존 택지지구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해버린 고양시보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성남 원도심과 분당의 갈등은 한동안 일었던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의 통합을 가로막은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 도시가 생활권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데, 성남시 내부 지역감정이 이런 정도이니 통합을 한들 실효성이 별로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또, 한 때 분당구를 분당시로 분리독립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당장 분당구청 부지부터가 분당시청으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성남시의 태클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2.2.3. 화성시 서부[66] vs 화성시 동부[67]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2
2000년대 들어 동탄신도시가 개발됨에 따라 생긴 지역감정이다.
화성 동부 지역 주민들은 생활권이 수원시 영통구, 권선구 남동부 지역, 용인시 기흥구, 오산시, 평택시 진위면 북부와 밀접하지만 서부 지역은 수원시 나머지 지역, 안산시, 시흥시, 평택시 안중출장소 관할 구역과 일치하며 서로 간의 왕래도 거의 없다. 이는 교통편도 문젠데, 동부에서 서부로 가기 위해 수원역에서 환승하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할 정도이다. 시에서 이 문제를 체감했는지 최근에는 화성 서부의 대표 랜드마크인 시청과 동부의 대표 랜드마크인 동탄 메타폴리스를 연결하는 1000번과 1001번 버스로 대표되는 노선이 많이 증가됐다.
한 일례로, 혐오시설은 거의 서쪽에 몰려있는데 동쪽 혼자 꿀빤다며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산다. 역사적으로 남양군이었던 서부지역과 수원군이었던 이유도 큰데, 지역감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사실상 동부지역(병점/동탄)은 최근 20년간 유입된 인구가 대부분이라서 화성시 서부지역에 대한 거리감이 수원에 대한 거리감보다 훨씬 크고, 실제로도 수원시청이 화성시청보다 3~4배는 더 가까운 등(...) 여러모로 비합리적인 행정구역의 현실을 보여주는 곳이다. 자세한 사항은 화성시 문서 참고.

2.2.2.4. 안양시 만안구 vs 안양시 동안구(평촌신도시)

강남 vs 비강남 경기도 버전 3
면적이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평촌신도시(동안구)와 구시가지(만안구) 간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만안구는 재개발 이야기가 매년 나올 정도로 낙후된 아파트와 빌라가 많은데다, 예비군 훈련장을 비롯한 군부대까지 있는 지역이라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치안과 사창가(...) 문제도 있다. 따라서 평촌신도시(동안구)와는 집값, 소득, 교육환경 등에서 격차가 심하다.
이러한 양극화적인 발전수준의 차이를 보이는것은 안양시의 지리적인 문제가 큰데 만안구는 대부분의 영토가 산지이며 도심지는 1호선안양천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 부근(북쪽에서는 약간 동쪽도 포함)에 산지라 신도시는 커녕 아파트단지 하나 지을 변변한 터가 거의 없는 반면에, 동안구는 아예 동네 이름이 '평촌','벌말'이었을 정도로 현 비산3동(비산3동일부)과 관양동(관양동일부)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형이 평지(논밭,과수원)였으므로 건물을 지을 터가 넘쳐났기 때문이며, 지하철도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전철 4호선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따라서 90년도에 1기 신도시로 동안구에 평촌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서 두 '구'간의 발전의 차이가 점점 양극화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부분이 농사짓던 땅이었던 동안구와는 달리 이미 어느정도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만안구에서는 뭐 하나 지을려면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등 발전하는데 꽤 많은 걸림돌이 존제한다. 그 예시로 전 덕천마을 터에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래미안 안양 메가트리아로, 철거와 이주를 시작한 2010년경부터 완공되어 입주가 거의 완료된 2018년 현재까지 원래 주민들과 안양시 당국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그래도 노년층 시민들은 별로 지역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유로는 당시 평촌신도시는 대부분 젊은층이 유입되어 계속해서 동안구에 거주하고 만안구주민은 계속해서 만안구에 거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청년층 시민들의 지역감정이 심각한 수준이다. 심지어는 청소년도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데, 평촌에 학원가가(분당과 더불어 경기도 최대) 발달되어 있다 보니 대학 진학 수준에서 평촌과 만안구 간에 격차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은 만안구에 있는 안양외고랑 신성고가 가장 잘 가는데 이는 신성고 학생의 대부분은 동안구 출신이기 때문이다. 안양외고는 외고라는 특수성도 있고.



2.2.2.5. 중서부 경부선·경인선·수인선 연선지역[68] vs 동부 신도시[69]

마찬가지로 위 강남 vs 비(非) 강남 구도와 비슷하며, 비(非) 강남 vs 강남의 경기도 버전이라 보면 된다 (광역버전)
이 쪽은 2000년대 들어 교통 인프라나 신도시 개발, 그리고 서울에 있던 대기업 본사[70]경부고속도로 인근의 신도시 지역으로 몰아주면서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지역감정으로, 경부선·경인선 인근 지역들이 1990년대 평촌신도시, 산본신도시, 중동신도시를 끝으로 대규모의 신도시 건설 없이 자잘한 소규모 신도시 개발[71]만 이루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구 시가지 지역이 낙후되고,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인 뉴타운 재개발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것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 인근 신도시 지역에만 대규모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면서[72] 감정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다.
이 지역감정은 2006년경에 있던 분당급 신도시 건설 발표 주장과[73] 그것이 동탄제2신도시로 결정되면서 경기도 중서부 경부선·경인선 연선지역과 경기도 동부 신도시들 간의 지역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아직 별다른 갈등 없이 2015년 현재까지 잠잠한 상태다. 다만 기름 상태인 이 지역감정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GTX인데, 안양권 도시들도 GTX C선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잡아놨긴 했지만, KINTEX~동탄역 노선을 우선 착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철도 건설에 예산을 잘 투자하지 않는 경향도 있어서.

2.2.2.6. 성남시 vs 용인시

2000년대 중반에 용인의 동백죽전대로와 분당의 미금로 연결계획이 진행되는 중이었는데, 당시 성남시에서 '생태다리' 조성을 위해 진짜로 막아버리려고 했었다. 이 일은 꽤나 이슈가 돼서 두 지역 주민의 첨예한 이기주의로 비춰지기도 했다. 결국 이 두 도로는 다행히도 연결된 상태.
또한 성남시경부고속도로 지하를 통해 수지와 분당을 연결하는 토끼굴을 봉쇄하여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관련기사1관련기사2


2.2.2.7. 고양시 일산구 vs 고양시 덕양구

고양시/비(非)일산신도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논란, 3기 신도시 문서(문제점 문단), 창릉신도시 문서(반응 및 논란 문단) 각 항목 참조 바람.
이쪽은 80년대까진 조용하다가 90년대 초반 "천하제일 일산, 천당 아래 분당" 소리 나올때부터 치고받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인구 10만명 남짓한 조용한 경기도 변두리의 시골 동네였다. (역사깊은 위의 경기도 지자체간의 알력다툼과는 달리 이쪽은 25~30년 전만 해도 고양군이었다(...))
인지도면에서도 지금은 옛말이지만 2000년대 까지만 해도 일산은 알아도 고양시는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요약하자면 한적한 경기도 변두리 시골동네에 90년대에 갑자기 1기 신도시 중 2번째로 큰 규모인 일산신도시를 던져놓으면서 생긴 일. 인프라와 재정지원과 같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은 당연히 일산신도시로 집중되었으며 그 여파로 배척당하게 된 구일산(현재의 중산, 과거의 일산읍), 원당(과거의 원당읍), 삼송(여기는 삼송면이었다.) 일대에선 불만이 가득차게 된다. 특히 일산읍의 경우에 고양 경전철 관련해서 주민들이 현피를 뜨고 물리적으로 치고박았던 전례가 있다.
다만 2020년대 현재로써는 삼송,원흥지구 개발 등에 힘입어 덕양구가 자산가치 등의 면에서 거의 따라잡았고[74], 90년대나 2000년대 중반 보다는 확실히 분쟁이 덜해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서울 구도심(을지로,종로)의 노후화로 파이가 작아지고 강남 중심으로 옮겨간데다 신도시 자체도 20년이 넘어 노후화된 지라 일산신도시가 몰락했기 때문에 지역간 경제적 격차와 해소되었다고 보는게 맞다. 한마디로 90년대 그 시절에 경기도 외곽 촌동네에 갑자기 인구 50만명 짜리 최신식 중산층 도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기존 주민들은 싸그리 배척한 채로 고양시 지자체의 자원을 신도시에 죄다 몰빵쳐버려서 난리가 났다가 신도시는 적당히 망하고 촌동네는 적당히 개발되어서 다같이 적당히 사는 경기도 변두리 서민도시가 되고 기초자치단체(고양시) 자체도 인구가 10배나 늘어 고양군 시절보다는 재정여유가 생기게 되어 지자체의 신도시 몰빵행위가 종식되며 평화로운 맑고 푸른 자연을 가진 근교의 전원도시로 원점 회귀.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창릉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어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대략 삼송+지축+원흥은 결사 찬성[75], 화정+행신+능곡+원당은 원론적 찬성[76], 일산신도시+주변 택지지구는 결사 반대[77], 킨텍스 신시가지는 원론적 반대[78], 그 외의 화전+향동+덕은 및 농어촌 지역의 경우 무관심.
반대여론이 큰 일산신도시 지역의 경우 발표 당시 중앙로 가두행진시위 및 국토교통부 장관(당시 김현미) 집무실 점거를 시도할 정도였다. 아쉽게도 집무실 점거는 경찰의 발빠른 통제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관산,내유,벽제 같이 양주시와 붙은 북부 산간지방쪽 읍면 출신 지역들은 수색로, 경의선 연선 지역이 인프라를 싹 다 뺏겨가고 개발될 여지도 없어서 아직도 불만에 가득차 있는 듯 하나 인구가 너무 적고 영향력도 적어서 존재감이 없는 상태. 90년대 뺏어간 3호선 전철 돌리도~ 를 부르짖으며 파주 구도심과 함께 금촌선 등을 추진하지만 너무 낙후된 지역이라 도저히 타당성이 나오지 않는 수준.. 양주시와 함께 서울교외선 운행재개도 집적이고는 있으나 이쪽도 답보 상태..
아무튼 이 파장은 생각보다 커서 평상시 대다수 시민들은 관심없긴 하지만 선거철 고양광역시 승격 떡밥이 나오면 항상 이참에 자치시광역시 승격 대신에 일산구는 일산시로, 덕양구는 덕양시로 일반구자치시 승격해서 분리독립 하자는 쉰떡밥이 딸려나온다. (애초에 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 계획 원안에 따르면 독립승격하는 이게 맞다. 당장 일산동구청 부지부터가 일산시청으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다만 인구로만 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79] 덕양↔일산 간 교류가 적은 편인데다 연담되있지도 않아서 경기도 대도시(수원,용인 등등..)들의 광역시 승격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서 미래의 대한민국 중앙정부에서 분리승격론자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

2.2.3. 인천광역시



2.2.3.1. 원인천권(남동,연수(송도),미추홀, (영종), , (청라)) vs 부평권(부평, 계양, 공촌, 검단)[80][81]

역사적으로는 각각 인천도호부, 부평도호부로 서로 별개의 지역들이었다.[82] 물론 인천은 일찍이 도시화되어 지자체가 통합된 농어촌 지역처럼 양 지역간의 지역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나 큰 이질감은 없다. 부평권에 거주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1940년 인천 편입 이후에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부평권에서는 인천시의 남동구&연수구 위주의 개발(송도국제도시, 구월동, 논현지구)을 좋게 봐줄수는 없는 상황. 부평권 주민들은 같은 인천광역시인 원인천권과의 왕래만큼이나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경기도 부천시와 왕래가 잦다.[83] 문화생활을 즐길때도 부평권 주민들은 부평역 인근[84], 원인천권 주민들은 구월동으로 간다는 것도 큰 차이점.

2.2.3.2. 인천광역시 vs 경기도 부천시

부천시와 인천광역시는 인접한 지방자치단체인데 시정끼리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단 참조.

2.2.4. 강원도



2.2.4.1. 춘천시(영서 북부) vs 원주시(영서 남부) vs 강릉시(영동)

춘천(영서중부) vs 원주(영서남부) [85] vs 강릉(영동)
강원도는 애시당초 태백산맥 때문에 영동영서라는 별개의 지역심이 강하게 유지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신기한 점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옛 한국어의 흔적이 많이 남는 형태이다.[86] 또한, 같은 영서 지역이라도 영서 북서부[87], 북동부[88], 중부[89]와 영서 남부[90]도 언어가 약간 다르며 미묘한 문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영동의 최대 거점도시였던 강릉은 영동을 대변하기 위해서, 원주는 영서 남부 및 전통적으로 충주와 함께 중부지역의 핵심 거점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강원도 감영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춘천 역시 대대로 영서 북부 지역의 거점 도시여서 통일신라고려시대주(州) 치소가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강원도청 소재지인 점을 내세우기 위해 이들 세 도시간의 견제심이 고무적이다. 또 춘천은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성장 동력을 모두 원주시에게 뺏겨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강원도/역사 문서 참조. 미래에는 철원도 지역 중심도시의 역할이 부활하여 싸움에 재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강원도는 춘천, 원주, 강릉이 트로이카 노릇을 하고 있고, 실제로 선거철에 강원도 정치 판세를 분석할때 이 세 도시들이 표심을 좌지우지 하는 big3 지역으로 표시되고는 한다. 특히나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한 정치 진영이 강릉(영동)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면 대체로 다른 진영에선 춘천(영서 북부) 또는 원주(영서 남부) 출신을 후보로 내세우는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정치력 결투에서나 세 도시가 삼파전을 벌이는 양상이지, 실제로는 춘천 vs 원주가 가장 심하고, 원주 vs 강릉도 약간씩 존재하나 사라지는 추세, 춘천 vs 철원은 일제시대에 갈등이 컸으나 현재는 철원이 전쟁 이후 파괴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고. 춘천 vs 강릉은 1920년대 강원도내 고등보통학교 유치전 이후 아무 일도 없었던 관계이다.
춘천과 원주는 1888년 춘천이 유수부로 승격되어 도관찰사 사무에서 이탈하고, 1895년 23부제 실시 후부터 강원도의 수부도시 자리를 가져가면서 1896년 13도제 실시 당시 원주 지역 유생들이 집단상소를 올린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다. 일제시대에는 원주가 쇠락하고 경원선 철도가 부설된 철원이 발전하면서 도청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춘천에서는 군민 1만 명이 집회를 벌이며 반발하였으며 결국 총 12만 주 중 춘천에서 6만 주를, 가평, 화천, 양구, 인제, 홍천에서 합 4만 5천 주를 매입하여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세워 1939년 경춘선을 부설하기에 이르렀으며 경춘철도 부설 이후 춘천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1940년 강원도청이 전소 후 신축할 때에는 반발이 없어지기에 이른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 38선이 지나가는 춘천이 최전방이 되어 1951년부터 원주에 도청 임시청사를 두었는데, 정전 이후인 1953년 8월 도청이 다시 춘천시로 돌아가자 원주군에서는 도청 간판을 들고 야반도주했다며 도지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대대적으로 반발하였다. 이 사건은 이후 '도청간판 야반도주사건'이라고 불리며 일부 원주시민들이 춘천에서 도청을 전쟁 이후 빼앗아갔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후 2005년 혁신도시 선정 과정에서 선정위원회가 춘천 10명, 원주 6명, 강릉 3명을 선택했으나 춘천, 강릉을 1위로 꼽은 심사위원들과 달리 원주를 1위로 꼽은 심사위원들이 죄다 점수 차등을 20점 이상으로 주면서 춘천에서는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춘천종합운동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등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고, 강릉 역시 이때 영서-영동 분도론을 꺼내들며 엄청나게 반발했었다. 50년 간 서로 거의 엮일 일이 없었던 이 세 도시는 이때부터 원주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원주와 강릉 간에는 2014년 원주의 아이스하키 경기 유치 시도 이외에는 서로 큰 악감정이 남아있지 않으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발판으로 성장해서 춘천의 시내 인구를 뛰어넘은 원주가 주요 도급 행정기관의 이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특히 2019년 강원도청 재건축 결정 당시 원주시의회에서 강원도청 이전 공론화를 요구하면서 다시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춘천은 일제가 춘천에 철도가 없다며 도청을 경원선이 있는 철원으로 이전하려 하자 춘천 유지들이 경춘선을 지어버릴 정도로 도청에 대한 사수의지가 강한데, 원주시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버린 것. 이 때문에 앞으로도 한동안 춘천과 원주의 관계 개선은 요원해진 상태이다. 반면 춘천과 강릉은 서로 영 연관이 없는 지역이다보니 반 남남으로 사는 상태이다.
다만 사람들끼리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 편. 아무래도 강원도민이라는 동질감이 약간은 있는 모양새다. 타 광역자치단체처럼 남북도로 나뉜것도 아니고... (경기도 제외) 가뜩이나 다른 지역에 치여서 대한민국 전체에선 푸대접도 아닌 무대접을 받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는 뭉칠 수밖에 없다.

2.2.4.2. 철원군 vs 구 김화군

구 철원군 지역 : 철원읍(+묘장면, 내문면, 북면), 동송읍(+어운면), 갈말읍 (+평강군 남면 정연리)
400.89㎢, 33,926명
구 김화군 지역 : 김화읍, 서면, 근남면,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 + 김화 생활권인 갈말읍 지경리, 토성리
490.71㎢, 12,609명
현재의 철원군 지역은 과거의 철원군김화군이라는 2개의 독립된 군[91]이었다. 그러다가 8.15 광복 이후 북한 지역(38선 이북)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이 38선 이북으로 북상하여 휴전선을 그으면서 철원군과 김화군 모두 두동강이 나 버렸다.[92]
남한에서 수복한 철원군과 김화군 지역이 1963년 병합되었고[93] 신서면이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철원군이 되었고, 북한 쪽의 철원군은 현재도 철원군이며(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은 근처 군에서 빌려온 것이다) 북한 쪽의 김화군은 김화군과 창도군으로 쪼개졌다... 지못미 김화군. 다만 김화라는 명칭은 현재도 철원군 김화읍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철원군의 경제 중심은 동송권 & 갈말권 두곳인데, 김화권 지역 인사들이 철원지역에서 파워그룹을 형성한 탓에(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 국회의원 한기호 & 군의회 & 철원군수 이현종 등등)[94] 안그래도 철원권 & 동송권 & 갈말권 주민들은 김화권 주민들을 거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적대하고 김화권 주민들은 나머지 권역 철원주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서 선거 때마다 이런 소지역주의가 발동하곤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인구수가 훨씬 적은 김화권이 이기냐 하면, 우선 보수세가 영서지방에서 가장 강한 철원에서도 김화권의 보수세가 강하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후보가 대부분 김화권 출신이기도 하고, 철원권 내의 힘싸움에서 인구수 때문에 밀린데다 김화권과 교류가 많은 신철원이나 문혜리 등의 갈말권에서 김화권을 지지하는 경우가 꽤나 있기 때문이다.
철원 지역에서 군대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나 철원 출신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철원 & 동송 & 갈말 지역과 김화권 지역은 주민들의 정서도 완전히 다르고 김화권 주민들이 유난히 보수적이고 깐깐하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 와수리에서 "철원 주민 여러분~" 이라고 하면 "여기 김화인데요..." 라는 답변이 100%의 확률로 돌아온다. 젊은 사람들끼리는지역감정이 없다고 한다. 강원권 국립대에 다니는 철원 출신(와수리, 동송)사람들이 직접 증언해줬다.
동송권 & 갈말권과 김화권이 나누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도청소재지인 춘천시보다 경기도청 북부청사 소재지인 의정부시가 대체로 가깝다.
구철원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65km, 1시간 10분
구철원 ~ 강원도청 약 85km, 1시간 45분
신철원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55km, 1시간
신철원 ~ 강원도청 약 80km, 1시간 35분
다만 김화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김화 ~ 강원도청 약 70km, 1시간 20분
김화 ~ 경기도청 북부청사 약 75km, 1시간 15분
철원권에서 경기도청 북부청사로 가는 게 35분 빠르다. 다만 김화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도역이 크고 도시들은 완전히 분산되어 있는 강원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95], 전쟁으로 지역 중심도시 능력을 잃어버린 철원에서는 경기도 편입 떡밥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려 때부터 수도 근처에 있는 도시였기도 하고. 그래서 법원, 검찰, 세무 업무는 모두 의정부지법, 의정부지청, 포천세무서에서 담당한다. 따라서 철원, 동송, 갈말권에서는 실생활권이 경기북부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도로 편입하자는 떡밥이 돌기도 한다.
다만 이것은 일제시대 도내 최대 읍이었으며 1944년 당시 강원도 제2의 도시였던[96][97] 철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당시 경원선이라는 주요 간선을 끼고 있던 철원권(철원, 김화, 평강, 이천, 회양)은 서울과 원산 사이에 끼여 춘천권(춘천, 화천, 양구, 인제, 홍천)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던 생활권이었기 때문이다.
군민들 여론은 철원, 동송, 갈말에서는 경기도 편입을 바라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반응이 시큰둥한데다 강원도는 철원군을 그렇게 홀대하고도 철원이 경기도로 가는건 필사적으로 막고(...) 철원군민들 사이에서도 김화권 주민들은 경기도 편입을 반대해서 철원 & 동송 & 갈말권 주민들과 싸우기도 한다.
현재는 김화 지역에서도 편입 여론이 높아져 있다. 다만 여전히 존치여론이 훨씬 많다.[98] 김화권과 화천군간 도로의 경우 빗길에 다니기 위험하거나(56번 국도 수피령) 민통선 안에 있어서 낮에만 다닐 수 있거나(5번 국도 말고개)하지만, 유일한 활로가 463번 지방도 하오터널[99]이다. 다만 중간중간 산양리, 다목리 등의 마을은 김화와 매우 가까운 편이다. 화천은 지나지 않더라도 길의 선형이 나쁜 편은 아니고 사실 김화와 화천을 오갈 일도 별로 없으며 춘천 시내까지 1시간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특히, 경기도 편입 논란은 소지역주의가 배타적으로 강한 케이스다. 자세한 것은 행정구역 개편/경기권철원군 문서 참고.

2.2.4.3. 이외

이외에 강원도에서 소지역주의가 나타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구 화천군 (화천읍, 상서면, 하남면) vs 사내면
본래 조선시대 낭천현이었던 지역과 1954년 춘성군에서 넘어온 사내면 간의 지역감정. 두 지역은 서로 간의 왕래가 거의 없고, 춘천 생활권이라는 접점만이 있다. 사내면의 인구가 약 7,000명이고, 간동면을 제외한 나머지 화천군 지역의 인구가 거의 16,000명임에도 이 두 지역을 잇는 시내버스는 2000년대 후반에야 생겼을 정도. 일 10회 정도 다니나 그마저도 거의 비어서 다닌다. 애초에 화천에서는 놀러갈 일 말고는 사내면에 갈 이유가 없고, 사내면에서도 군청이나 경찰서를 가지 않는 이상은 시내를 갈 일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양 지역 간의 갈등이 있었다. 군 체육대회를 하면 화천고 vs 화천실고 (현 화천정보산업고) vs 사내고 간의 3파전이 벌어지다 화천고나 화천실고 중 하나가 탈락하면 화천 시내의 학교를 응원하며 화천 vs 사내 대결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동네 사람들 역시 서로를 별로 안 좋아해서 사이가 좋지 않다.
인제군 인제읍 vs 원통리 (북면)
인제역 위치 논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두 지역은 위와는 달리 상당히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서 지역감정이 생기는 경우. 인구규모 등이 대등하기 때문에 서로 위의 화천 vs 사내처럼 자존심 싸움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고, 상대 지역에 시설이 생기는 경우 그것을 자신의 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2.2.5. 충청북도



2.2.5.1. 충주시 vs 청주시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청도(충북도)의 유력한 도시로써 충청도의 이름 유래부터 충주랑 청주를 합친 것이다. 충주시랑 청주시는 충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을 벌여봤는데 과거에 도청이 충주에 있었다가 청주로 이전했기 때문에 충주 사람들은 청주 사람들을 도둑놈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최근 청주시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통합을 진행하여 청주광역시로 승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커진데다가 충주시를 비롯한 충청도 동쪽이 개발이 부진함에 있어 소외되고 있다.

2.2.5.2. 충주시 vs 제천시

충주시제천시의 관계도 좋지 않다. 호수 이름가지고 싸움이 많이 일고 있는데 충주시는 충주시에 댐이 있으니 충주호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주장하며 제천시는 제천이 더 수몰지역 면적이 넓고 충청북도는 청풍명월의 고장이라며 청풍호를 주장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충주댐 문서 참조. 참고로 나무위키에서는 충주댐 문서밖에 없으며 청풍호로 검색하면 충주댐 문서로 넘어간다.
이때문이 아니더라도 충주사람과 제천사람이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단골 소재로 오르는 내용이 충주호가 맞냐 청풍호가 맞냐며 멱살잡고 진지하게 싸울정돈데 둘 사이는 전라/경상 지역감정보다 심각할정도다.

2.2.5.3. 음성군 vs 진천군

충북혁신도시를 기점으로 혁신도시가 위치한 음성군과 진천군 사이의 행정문제 해소를 이유로 음성군이 음성과 진천이 시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진천과 갈등을 빗고 있다. 아직은 못먹는 감 찔러라도 보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충북혁신도시 내에서는 통합 안되면 충북혁신도시가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2.5.4. 증평군 vs 괴산군

증평군은 원래 괴산군에서부터 독립되었다. 즉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이 증평군으로 개편된 것이다. 괴산군에서 독립한 증평군은 청주시, 대전시, 경기도와의 가깝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산업단지 유치 성공, 청주권의 위성도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괴산군은 불리한 입지로 인해 계속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괴산군이 충주시와 가깝다고 해도 교통의 불리함으로 인해 산업단지 유치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서, 증평군과 병합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증평군에서는 증평군 생활권이나 행정구역 상 괴산군인 사리면, 청안면을 반환해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괴산군에서는 증평군 전체가 괴산군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편이다.

2.2.5.5. 청주시 VS 나머지 시군

청주시의 특례시 지정을 놓고 청주시를 제외한 나머지 충북 지자체들이 반대하고있다. 청주시는 충북에 50%이상의 세금을 반납하고 38%정도밖에 안되는 예산을 받고있다.

2.2.6. 충청남도



2.2.6.1. 천안시 + 아산시 vs 나머지 지역들

충청남도 내 대부분의 인구와 경제력은 경기도와 붙어있어 수도권 규제로 인해 성장하기 시작한 충남 북부의 천안시아산시에 집중해 있다. 그나마 수도권 인접지역이라는 측면에서는 천안, 아산과 비슷한 상황인 서산시, 당진시서해대교 개통 이후로 수도권과 육상으로 직접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산업단지를 많이 유치하여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홍성군, 예산군충남도청유치했지만 이 지역들도 아직 천안, 아산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고 나머지 서해안 지역은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거 이외에는 이렇다 할 발전동력이 없어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비록 과거에 비해서 충남 서해안권이 발달됬다고는 하지만 도시 인프라 발전은 여전히 미약한 상태로, 과거 산업화 시기는 물론 최근까지도 동부 지역에 더 많은 개발이 있었다. 지금은 충남에서 분리되어 나간 대전광역시, 세종시 모두 한때 충남 동부에 있었던 도시였고, 천안시, 아산시는 여전히 여타 충남 지역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100] 그나마 수도권빨을 받게 된 서산시와 당진시가 조금 사정이 나을 뿐 나머지는 거의 허허벌판과 다를 바 없다.
충남 동부 지역들은 충청권보다는 수도권과의 교류가 더 많으며, 특히 천안시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다니고 수원이 대전보다 더 가깝다. 심지어 지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는 천안시, 아산시를 수도권 도시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거기다 충남 동부와 서부는 지형적으로도 삽교천과 차령산맥으로 지리적으로 꽤 크게 갈라져 있기도 해서, 충남 동부와 충남 서부는 교류를 하지 않으려 들고, 알게 모르게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2.2.6.2. 천안시 vs 아산시

아산시가 천안시와 가까이 붙어있는 탓에 아산의 중심지인 온양이 인구수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고 천안 인근 지역(배방읍, 탕정면)에 짓고 있는 신도시는 사실상 천안 시가지의 연장선상이나 다를 바 없어 천안으로의 쏠림 문제를 겪고 있는 아산이 천안을 곱게 보지 않는 편. 아산이 천안 인접지역의 천안 편입 여론에 매우 강하게 반발하고 천안아산역 역명 선정 문제로 천안과 피터지게 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2.7. 부산광역시



2.2.7.1. 해운대 권역(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vs 그 외 지역(원도심, 서부산, 동래)

2000년대 들어서 부산광역시 내부에서 해운대 권역과 나머지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인 격차가 커지며 점점 두 지역 사이에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중이다.
일단 다른 지역에서 생각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나 명소들이 대부분 해운대구나 수영구 일부에 몰려 있기에 해운대가 부산의 정체성을 독차지한다는 다른 지역들의 불만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당장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보통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부분 해운대, 광안리, 광안대교, 마린시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구도심의 명소 중에도 알려진 장소가 꽤나 있었으나 최근에 들어서 부쩍 해운대광안리일대의 장소들만 유명하게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해운대와 수영구 일대만을 둘러보고 부산을 다 둘러보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동부산 지역은 여름철 대규모 피서객을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이 많고, 또한 그에따라 숙박업소나 음식점, 유흥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하기에 더더욱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동부산 권역으로 집중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관광객의 방문이 해운대 권역에 집중되게 되고 이는 각 지역 상인들 사이의 소득에 있어서 차이를 유발하며, 또한 부산시의 지원도 해운대구와 동부산 해운대 권역 일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제적 격차도 크게 작용한다. 모든 해운대 권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운대권에는 마린시티, 센텀시티와 같은 부산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높은 가격의 상류층 주거지가 많다. 또한 해운대 신시가지도 입주한 지 20년 정도 된 아파트들만 있지만, 신시가지로 개발된 지역이라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며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학군도 좋다고 알려진 편이기에 집값은 부산에서 비싼 편은 아니라도 충분히 평균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같은 동부산 권역인 남구도 평균 이상의 집값을 보이는 편이다. 즉 해운대 권역 지역이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고소득층, 중산층 거주자가 다른 지역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시설이나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발생하는 큰 격차가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부의 격차나 지명도의 차이에 따라 부산시가 지나치게 해운대 및 동부산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점이 지역감정의 가장 큰 발생 원인이다.
실제로 전 부산 시장이었던 허남식이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월 25일 부산 사하갑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이 허 전 시장이 재임 중 서부산을 홀대해놓고는 사하구에서 국회의원을 하려 한다며 기자회견장으로 쳐들어가 시위를 벌였으며, 같은 당의 경선 경쟁 후보도 이에 편승해 허 전 시장을 비판했다. 결국 허남식 전 시장은 경선에서 김척수 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되었으며[101], 김척수 후보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후보에 밀려서 낙마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부산시 내부에서는 허남식 시장의 재임기간 동안 지나치게 동부산 해운대권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서부산을 홀대했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2.2.7.2. 부산광역시 vs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댐의 물의 부산 공급 문제, 현 부산 강서구 영역인 낙동강 서부 지역의 지역 환원 문제, 김해국제공항 명칭 변경 문제, 부산신항 명칭과 관할구역 조정 문제,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 등으로 자주 다툰 사이다.

2.2.8. 경상남도



2.2.8.1. 서부 vs 동부

경남 서부는 한때는 경상남도청이 서부 진주에 있었고, 손에 꼽힐 정도의 큰 도시였으나 70년대 경남 동부 마산, 창원 중심으로 비중이 옮겨가면서 쇠퇴하고 있는 지역이다. 도내의 도시 권역들마다 발전도가 상당히 차이가 나서 특히 1970년대 이후 발전된 경남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남 서부와 다소 거리가 있어 이질감 및 행정적 불편함이 다소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낙후된 서부 경남이 경상남도에서 찬밥신세로 있을 바에는 따로 도를 만들어 분도하자는 경상서도 분도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2027년 개통 예정될 남부내륙선으로 또 다른 갈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남부내륙선 참조.

2.2.8.2. 사천시 삼천포 vs 구 사천군

1956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삼천포시로 분리 승격되었다가 1995년 도농통합 때 다시 통합되었으나, 통합 당시에도 삼천포 주민들이 시명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고 2014년 기준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 타 지역 사람들이 사천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삼천포 지역은 삼천포에서 왔다고 하고, 사천 지역은 사천에서 왔다고 한다.[102]
사천시청은 허허벌판인 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유는 사천과 삼천포가 시청 유치로 아웅다웅하면서 결국 중간 지점에 세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매 선거 결과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2010년 지방선거와 삼천포 출신 후보와 사천 출신 후보의 지역간 득표율을 보면 삼천포 출신 후보는 동 지역에서, 사천 출신 후보는 읍면 지역에서 모두 우위를 보였다.

2011년에는 사천 부분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삼천포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 을 표출하는 낙서가 곳곳에 발견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문제는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지역감정이 사그라든 흔적이 보인다.

2.2.8.3. 창원시 마산합포구 + 마산회원구(옛 마산시) vs 성산구 + 의창구(옛 창원시)vs 진해구(옛 진해시)

지방자치단체 통합이 쉽지 않음을 보여 주는 예. 역사성, 생활권, 지역 간 밀접성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통합의 필요성이 높게 보였던 창원이 여러 잡음을 일으키면서 여타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103]
일제강점기 전까지 한몸이었던 창원부가 국권 피탈 후 마산부로 명칭이 변경되고 비도심 지역을 창원군으로 분리한 이후 옛 마산시는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며 큰 도시로 성장했고, 경상남도 및 남부지방 전체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지만, 옛 창원시 지역은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러다가 한국 최초로 계획도시로 지정되어 공단이 들어서고, 마산이 원조 경상남도청소재지인 진주와 도청 이전 싸움을 벌였으나,(이전에는 부산에 있었다) 결국 창원시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에 있던 한국은행 마산지점을 비롯해 창원지방법원, 검찰청 등 공공기관들이 모두 창원시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마산시에서 창원시로의 인구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인구역전 현상이 일어나 마산은 창원은 물론 김해시에게도 뒤지게 되었다.
통합당시 진해쪽에서는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유독 창원과 마산 사이에서 잡음이 많았다. 결국 정치적 요인에 의해 2010년,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하게 되었다. 통합 합의에 의해 창원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마산시, 진해시에게 창원시 측에서 지원금을 주는 형태로 합의했다. 즉 창원시는 명예를 택하고 진해, 마산시는 실리를 택한 셈.
그리고 창원시에서는 마산이라는 명칭을 유지해 달라는 마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거 마산시에서 폐지되었던 구 이름에 '마산'을 붙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라는 이름으로 구를 신설했다. 그러나 통합시 시청사 위치 문제, 창원에 새로 유치한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주경기장 위치를 지역적 안배라는 이유로 진해에 지을 뻔한 일 등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결국 창원시 의회에서 마산지역을 재분리 하자는 건의가 통과되었으나 중앙정부가 절대 동의할 일이 없어 흐지부지된 상태.
한편, 구 진해시와 구 창원시간의 간극도 심화되었다. 과거 창원시의 경우 방위산업과 백색가전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세수가 높았고 구 진해시는 해군기지로 인한 서비스업, STX조선을 통한 산업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해군이 기지를 부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진해의 세수 부족으로 적자기조를 보였었다. 이후 부산북항이 폐쇄되고 진해와 중첩된 부산신항으로 물류가 이전이 되자 진해에 산업기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신항의 행정구역 문제로 잠시 갈등이 있었을때 나왔던 내용이 진해를 부산으로 편입하는 방안이었다.
이후 창원-마산간이 갈등이 심해지면서 창원시의 선심성 예산으로 마산으로 재원이 돌려지자 진해구 시민들의 갈등이 쌓여갔던 것이다. 진해구민들은 부산신항으로 인해 세수와 고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통합창원시보다는 독립하거나 부산시로 편입하는 것도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104]
마산지역은 과거 '마산연합'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연합체계를 이루었는데(과거 200점 만점에 180점 이상 맞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과거 마산이 경남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였을때 연고 학교들이 연합고사 형태로 치루었던 것에 기인한다. 반면, 옛 창원지역은 80~90년대 계획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인문계 학교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정치/경제적인 학연구성이 약했다. '창원 특수지역'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마산지역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었다. 이 학교들은 공립, 사립을 불문하고 연합체계가 아니라 학교별로 학생을 선발했다.(그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옛 창원지역에 위치한 창원고등학교경상고등학교는 처음부터 이 마산연합에 속했다. 나중에는 공립인 창원중앙고등학교창원여자고등학교가 합류) 하지만 2000년 이후 지역경제 주도권이 마산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면서 마산연합의 지위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 갔다.
1990년 초기 이 학교들을 한데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마산지역이 극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창원과 마산을 아예 분리하여(창원시 소속인 창원고, 경상고를 창원으로 보내고) 연합을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었지만, 여기에 마산이 또 반대했다. 이유인즉 마산의 상권이 죽어버린다고... 지금도 학군은 마산은 마산지역 평준화, 창원은 창원지역 평준화로 각각의 지역학생은 다른 지역으로 지원할 수 없다. 반면 진해는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아 있어 마산, 창원 지역으로 지원 가능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는 경남교육청이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학교를 신설하는 대신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있는 '가포고등학교'를 의창구 북면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가포고 동창회 및 지역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2.2.8.4. 창원시 vs 창원시

창원이 대도시인 것은 인정하나 현재로써는 광역시, 즉 시 승격은 사실상 어렵다.
- 행정자치부

창원시를 창원광역시로 승격시키는 것이야말로 부산, 울산, 창원을 통틀어 세 광역도시를 통해서 영남권의 발전이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자 창원시민들 모두가 더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안상수 창원시장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경남도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경남도민 모두를 기만하는 반역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부산이나 울산도 경남에서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떨어져나갔는데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어서 경남에서 이탈하려는 그거는 도지사로서 절대 반대합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

창원광역시 승격을 두고 창원시와 경상남도 그리고 창원을 제외한 경남 관할 시군간의 갈등과 분쟁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시는 창원은 광역시급에 가까운 거대도시가 되었으니만큼 창원을 경상남도에서 분리독립하여 광역시로 승격하겠다는 굳고 틀림없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면 창원이 자치적으로 시정을 볼 수 있고 경남도의 지휘없이 창원시 독자적으로 행정을 볼 수 있다는 점과 기존 부산, 울산광역시와 삼벽을 이루며 영남권 최대의 거점도시로 성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경상남도는 절대적인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상남도 입장에서는 한때 경남 관할이었다가 1961년과 1997년에 각각 경상남도에서 분리독립하여 직할시 및 광역시로 승격한 부산시와 울산시의 분리독립 사례와 창원시가 현재 경남도청 소재지이자 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만큼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반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창원시와 경상남도간의 갈등이 생기게 되었으며 신경전으로까지 가게 되었다.
여기에 경상남도와 함께 창원시를 제외한 나머지 경남 시군들도 창원시의 경남 분리독립 및 광역시 승격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부산시와 울산시가 광역시로 분리되었던데다가 창원시가 경남도에서 광역시로 분리독립할 경우 창원과 경남 시군간의 시경계 지정문제, 창원 - 주변 경남 시군간 교통망 문제, 해수로 및 어로 경계문제, 농지 경계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차등화되는 가능성이 높아서 경남도민 및 경남 시군민의 행정적, 경제적 부담도 커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산과 울산이 경남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도 경남도의 도역이 줄어졌던 적이 있으며 울산시가 분리독립되면서 경남도는 동해안 남부지역과 경북 경주시와의 시도 경계선 등을 상실하게 되어서 현재는 남해안 지역을 관할하는 도가 되었다.
그나마라도 창원시가 광역시로 분리독립되면 경남도는 지금 남아있는 창원시 몫의 바다와 항구, 어촌 등도 모두 상실하게 된다. 바다 뿐 아니라 창원시 몫의 농촌 및 농토, 도시, 주거, 교육, 행정도 상실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경남 시군들 역시 창원시가 광역시로 분리되면 경남도의 행정망, 교통망, 치안망, 해안망 등이 앞으로 달라지게 될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과거 부산시와 울산시가 분리독립되었을 때도 경남도의 별개의 행정구역이 되었던만큼 교통망에서는 경남도가 따르는 요금제가 아닌 부산과 울산의 독자요금에 따라서 적용되었기 때문에 시계외 요금이 추가되어서 창원시마저 광역시로 분리독립하면 앞으로 경남도에서 지시하는 교통 요금제가 아닌 창원광역시 독자 요금제에 따라 시계외 추가요금 등을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생긴다.
교육망에 있어서도 지금은 창원이 경남도교육청 소속이지만 창원광역시가 되면 창원광역시교육청을 통해서 경남 교육과 차별, 차등화된 교육을 지향할 가능성도 있다.
치안망도 지금은 경상남도경찰청이 창원까지 모두 관할하고 있지만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되면 창원광역시경찰청이 독립체제로 창원광역시만을 관할하게 되기 때문에 경남경찰 입장에서는 창원이 광역시가 되면 창원 지역을 관할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창원에 있는 경남도청 이전문제 역시 빠질 수 없다. 경남도청은 본래 부산에 있었다가 1961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하여 경남도에서 분리독립함에 따라 도청을 현재의 창원시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현재 창원마저도 광역시로 독립한다면 경남도청은 다시 이전이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남도와 경남 시군들의 입장에서는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을 그리 반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혼자만 잘 살려고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2.2.9. 대구광역시



2.2.9.1. 칠곡지구·시지지구 vs 기타지역 [105]

칠곡, 시지가 공산동, 달성군과 더불어 대구 속 시골 느낌이 난다거나 다른 도시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나마 시지지구는 2호선이 개통한 지 15년이 지났고 경산시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데다 수성구에 속해서 시민들 눈에 익은지 좀 지나서 대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칠곡은 이상하게 아직도 그렇지 않다. 이는 칠곡에서 대구 도심을 오고가려면 무조건 금호강을 건너야 하고 함지산으로 분리돼 있어 지형적인 장애물로 인하여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에서 기인한다. 3호선이 개통하여 도시철도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또한 칠곡지구는 시지지구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다 보니 외지인들이 들어올 일이 잘 없다.[106] 때문에 대구에서 오래 산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칠곡을 시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도 학정역 인근에 너른 밭이 펼쳐져 있어 오해하기 딱 좋다(이는 경북농업기술원의 작물실험을 위한 밭이다.). 시지지구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린벨트 너머로 혼자 동떨어져 있다 보니 아직 시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시지지구로 접근하기 위해선 산과 들판밖에 없는 휑한 구역을 지나야 하니 그런 오해가 더 커질 수 밖에.

2.2.9.2. 수성구 vs 수성구[107]

서울의 강남 vs 비강남과 마찬가지의 모습. 수성구의 집값, 교육수준, 생활수준이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릴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보니 수성구 중심으로 관광지 개발, 교육시설, 공공시설, 편의시설 및 오락시설 등이 주로 들어섬으로써 인구도 늘고 집값도 상승세를 탄 반면 달서구 일부 등을 제외한 대구 내 타 구ㆍ군이 지속적인 인구하락세와 함께 별다른 발전이 없자 불균형발전을 주장하며 수성구와 비수성구[108] 간의 갈등구조가 생겨났다. 그리고 시청 신청사마저 수성구 못지 않게 발전한 달서구에 건립하는 것으로 확정되며, 안 그래도 낙후의 길을 걷는 서구와 남구는 더욱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이에 수성구↔북구 접근성을 강화하는 엑스코선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구에서 불만이 있었다.[109]
한 예로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 문제에 관해서 당초 수성구에 대구대공원을 조성하여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달성군에서 항의하며 하빈면으로의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다만 타 지역에서 어거지로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도 있는데, 수성구는 예전부터 낙동강 수계가 아닌 동구, 경산시와 함께 청도군 운문댐에서 상수도를 끌어와 쓰고 있었다. 사실 아무래도 댐인 만큼 낙동강보다는 오염될 확률도 적고 관리도 잘 될 뿐더러 물 온도나 질감도 훨씬 우수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수성구청도군과 인접하며 수성구 동쪽의 시지지구는 원래 경산시 소속이었으나 1981년 대구로 편입되어서이다.[110] 그러나 2018년에 대구 수돗물 과불화 화합물 사태가 터지면서 다른 구 주민들이 왜 우리는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흘러오는 더러운 강 물을 마시고, 수성구에서는 깨끗한 댐물을 마시냐고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2.10. 경상북도



2.2.10.1. 남부 vs 북부

20~30년 동안 무조건 찍어줬더니 안동 시민, 경북 도민, 무시하고 무관심했던기호 2번 한국당 아닙니까 여러분!

- 권오을[111]

, 안동중앙신시장 유세 中 #

경상북도는 면적이 넓은데다가 도내의 도시 권역들마다 발전도에 상당한 차이로 인해 시쳇말로 강원도 소리 들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북부와 1970년대 이후 발전된 경북 남부권과의 이질감이 있으며 감정은 껄끄럽다.
불과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국 15대 도시 내에서는 경북 안동이 들어가 있었고[112][113]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시절에는 경북 북부권도 나름대로 사정이 나쁘진 않았으나, 1970년대 반도체 산업과 철강 산업 육성으로 인해 구미-포항권역이 발전되기 시작하면서 경북 북부와 경북 남부의 사정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갈등이 증폭되었던 시기는 1980년대 대구가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그에 따른 도청 이전 문제로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도청 이전은 수많은 갈등을 겪었고, 최고 갈등으로 치달았던 시기는 1996년이었는데, 드디어 안동으로 도청 이전이 결정되고 공단까지 유치하자, 남부권 시의원들은 낙후와 타당성을 들고 일어나 안동 이전을 반발했고 안동은 이에 반발해 가두행진과 삭발시위, 급기야는 안동댐을 일시 단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도청이 안동시로 이전되면서 갈등이 많이 누그러졌으나 경상북도 일부에서는 경상동도 분도를 논하고 있다.
경북의 남부, 북부의 갈등은 행정적인 면이 강하다.(공무원이나 도의원들끼리 치고 박을 뿐...) 도청 이전 시 지역감정이 좀 격해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도 (충남이나 전남)의 갈등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물론, 포항과 구미, 포항과 안동, 구미와 안동의 사이가, 포항-경주, 구미-김천처럼 좋은 것은 아니나, 일단 같은 경북이라는 마인드가 매우 강한 편이며, 같은 경북 지역이면, 대체적으로 우호적으로 바라본다. (경주 사람이 문경 사람을 우호적으로 보며, 김천 사람이 울진 사람을 우호적으로 본다.)
위에 내용에 의하면 구미,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남부권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권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일단 구미와 포항이 교류가 많지 않다. 가운데 대구라는 대도시가 있어서 구미나 포항 모두 대구와의 교류가 많지, 서로간의 교류는 적다. 오히려 누가봐도 경북북부가 될 울진군영덕군포항시와 비슷한 입장이 많다. 동해를 접하고 있는 울진·영덕·포항·경주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경북 내에서의 지역간 갈등을 다룰 때 구미를 중심으로 한 남부내륙,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내륙,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114]

2.2.10.2. 영덕군 vs 울진군

이쪽은 대게 전쟁으로 지역간 갈등과 경쟁이 심한 편이다. 영덕군은 한국 대게의 원조는 영덕이며 역사적으로도 영덕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대게 생산도 활발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울진군도 한국 대게의 원조는 울진이며 역사적으로 울진대게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서로 대게문제로 분쟁중이다. 이들 지역은 대게를 모태로 외지 관광객 유치에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다.

2.2.10.3. 안동시 vs 예천군

경북도청신도시 참조.

2.2.10.4. 영양군 vs 청송군

청양고추 참조.

2.2.10.5. 구미시 vs 김천시

김천구미역 참조.

2.2.10.6. 의성군 vs 군위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참조.

2.2.11. 전라북도



2.2.11.1. 서부 vs 동부

이쪽은 양 지역들 사이의 이익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2000년대 이후로 부상하고 있는 갈등이다.
전라북도에서 지역 중추지는 예나 지금이나 전주시이며, 전주는 동부, 서부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지형적 특성상 산지가 많은 동부와 평야가 많은 서부 지역 중 서부 지역이 비교적 발전도가 높았지만 동부권도 남원시같은 경우에는 제법 도내에서 영향력이 강했다. 그러나 전북도가 전체적으로 쇠퇴하는 와중에도 2000년대 이후 서해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서부지역의 경우 이촌향도로 인한 타격이 덜한데, 동부지역은 쇠락의 정도가 서부보다 더 심각하다. 서부권의 군산시[115], 김제시, 부안군으로 전북도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점차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추세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시군 통합 때 전북 서부 새만금 지역인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을 통합해서 새만금광역시를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 다만 일단 2018년을 기점으로 군산 GM공장이 철수했고 새만금 사업 역시 그 이전부터 경제성에 대한 논란이 크면서 도시 조성, 기업 유치 작업 역시 지지부진하기에, 서부권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2.2.11.2. 전주시 vs 완주군

조선 시절의 전주부와 고산군이 1914년에 같은 전주군으로 통합을 했다. 그러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어 분리되고 전주군은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질적으로 여러번이나 시도되었던 전주-완주 시군간 통합문제를 놓고 일부 지역민들끼리 갈등과 분쟁을 벌였다.
전주시는 전북도의 맏이격 도시인 전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완주와의 도농통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완주군은 굳이 통합을 한다고 해도 도농 지역민간 갈등과 앙금만 남으며 전주 원주민들만을 우대하고 완주 출신들은 배척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고산면을 비롯한 산간 및 농촌지역 보수성향 노인들의 강력한 반대로 현재까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2013년 통합 선거에서도 통합 무산이 확정되면서 일부 지역민들간의 갈등과 앙금이 남아있는 상황이다.[116]
전주에서는 양 지역 통합을 못한 것이 완주 농촌놈들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완주에서는 전주 도시놈들이 우리 완주군 농촌과 농민을 죽일려고 환장하더라라며 비난하였다. 완주 농촌지역 일부에서는 또다시 전주와의 시군 통합론이 나온다면 그때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전국에서 유이한 시군급 월경지인 완주군 이서면의 경계와 구도 등을 두고도 말이 많은 편.
완주군은 전주와 통합하면 농어촌 지역으로서 혜택이 사라지고 전주만 좋은 일 시켜주는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주시는 완주군민들이 전주에 상업/문화적인 면을 의지해서 살고 전주시 세금으로 만든 인프라나 시설을 이용하면서 막상 통합하자고 하면 지역 독립성을 운운하는 데 상당한 불쾌감을 느낀다.

2.2.11.3. 전주시 vs 군산시 vs 익산시

최대도시광역시로서 중심 역할을 하는 과 다르게 전주는 특례시로 상대적으로 왜소하며, 전주와 함께 전북을 지탱하는 군산, 익산과의 체급 차이가 크지 않아 과거 전북도청 익산 이전론부터 2020년 이전공공기관 유치전에 이르기까지 전북 내 이권으로 유독 다툼이 잦다.[117][118]

2.2.12. 전라남도



2.2.12.1. 서부 vs 동부

이 쪽 역시 정치와 경제의 괴리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즉 단순히 역사적, 문화적 갈등이 아니라 양 지역들 사이의 이익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2000년대 이후로 떠오르고 있는 갈등이다.
전라남도에서 정치적인 중심지는 보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인 목포시, 무안군 등 서부권 지역이 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 호남권 정치세력만 하더라도 전남 서부권이 비중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중이다.
하지만 경제력은 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항, 포스코 광양제철소 등 거대 공업단지들이 위치한 전남 동부권이 거의 독차지하다시피한 상태다. 그리고 이 지역의 평균 소득이 굉장히 높아서 광역지자체 기준으로 소득평균을 내면 전라남도가 인식에 비해 생각보다 높은 소득값을 나타내는데 역할을 한다. 물론 서부권인 영암군에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어느 정도 경제력이 늘어났지만 아직 동부권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전라남도청 이전 문제가 갈등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라남도청은 광주에 있었으나 광주시가 1986년에 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면서 광주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라남도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뒤 전라남도 여러 지역들이 도청 유치 운동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 무안군 남악신도시[119]가 도청 자리로 결정되어 결국 2005년에 전남 도청이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되었다. 그런데 무안군전라남도 내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이라서 동부권에서는 접근성이 불편했었다. 영암 순천 고속 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교통이 불편한 편이었다. 물론 이전할 때에는 영암순천고속도로 개통을 전제로 이전했겠지만.
뿐만 아니라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J프로젝트, F1 등 여러 개발 사업들이 서부권에서 이루어지고 그 외의 SOC 유치 등 예산 편성에서 서부권이 더 예산 유치를 받는듯한 현상이 일어나자 동부권에서 차츰 전남 동부권 소외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부권 입장에서 볼 때 동부권 소외론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동부권에는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고속도로가 일찍이 개통되었지만 서부권에는 대불산업단지가 세워지기 전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었고 2001년 말에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기 전까지는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면에서도 전남 동부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전라남도 전체 국회의원 선거구 중에서 전남 동부권에 해당하는 선거구가 여수시 갑, 여수시 을, 순천시, 광양시-구례군-곡성군 으로 10석 중에 4석을 차지하고 있다. 서부권, 중부권의 선거구가 3~4개 행정구역을 합친 선거구임을 감안하면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다. 전남도의회 지역구에서는 전체 52석 중에서 동부권 3개시에서만 1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전라남도에서 목포시 중심의 전남 서부권이 정치를 주도하지만 동부권의 존재가 만만치않고, 서부권 중심으로 끌고 다니는 정치에 매우 큰 불만과 반감이 쌓여왔다.

이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대표 사례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벌어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이때의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의 지역구 당선사례를 보면 이 간극이 극명히 벌어졌다. 당시 순천시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권에서는 탄핵을 주도한 기존 호남 정치권인 새천년민주당을 심판하면서[120] 친노 성향인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쏟아냈는데[121] 목포시를 포함한 서부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힘을 못 쓰고 새천년민주당이 그대로 대거 당선되어서 선거 결과 전남의 정당 구조가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에서 친노 성향의 여부를 따진다고 하면 서부권보다 동부권 지역이 상대적으로 친노 성향이 강한 편이다.[122]
결국 순천시에서 이정현이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순천시/정치 항목 참조. 다만 이정현 본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완벽하게 파멸해버렸고,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간신히 구축한 교두보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는 동부권 지역의 친노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순천시에서 문재인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67.8%)를 기록하는 등 강한 지지율을 나타냈다. 반면 서부권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역시 문재인이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긴 했지만 신안군, 진도군 등 일부 지역의 읍면동에서 안철수가 1위를 차지하는 등 상대적으로 문재인 지지율이 낮은 결과가 나타났다.
현실성이 낮은 이야기임에도 동부권 3개 시가 단일시로 통합해서 힘을 키우자는 주장이나 전남 동부권이 분리 독립하여 광역시를 출범하거나 경남 서부권의 소외지역과 손잡고 광역지자체를 만들자고 하는 일명 섬진광역시 이야기가 단순한 떡밥이나 헛바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2.2.12.2. 목포시 vs 무안군

원래 목포시-무안군은 구한말까지 같은 무안부였던 걸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이를 목포부-무안군으로 재편한 뒤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고[123], 신안군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무안군으로 통합된 이후 1969년 신안군 분리가 있을 때까지 무안과 같은 지역으로 있었으니[124] 역사적으로 연원이 깊고, 남악신도시가 목포시와 무안군 양쪽에 걸쳐있기 때문에 행정이 서로 맞지 않으며, 2005년 전라남도청까지 이전하면서 더욱 머리가 아프다는 게 목포시의 주장. 게다가 목포시는 인구에 비해 면적이 너무 좁아 뭘 하려고 해도 할 땅이 없고, 무안군-신안군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긴 이미 글렀으니 통합으로 난국을 타개하자는 것.
이에 무안군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목포와 통합할 경우 농촌 지역인 무안이 개발에서 소외돼 변방으로 전락하고, 시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이유로 시세(市稅) 부과 등 각종 세금이 증가하며, 혐오시설도 모조리 무안으로 들어오고, 농어촌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선 무안군의 내로남불이란 주장도 있는데 사실 100여년 간 한번도 합친 적이 없는 곳에서 통합을 논하니 찬성치 않은 것이라 일리가 있다. 행정구역 개편/전라권 문서의 목포시, 무안군, 신안군 통합 항목에 자세히 나와 있다.


2.2.12.3. 여수시 vs 순천시 vs 광양시

전남 동부권 3개 도시들인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사이의 갈등이다. 전남 동부권이 단합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 동부권의 여수시광양시여수국가산업단지, 광양제철소와 같은 산업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개발로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발전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지 않은 순천시는 전남 동부권의 중심지라는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주거단지, 문화시설, 소비시설들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옆 동네 광양시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어도 내내 발전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순천은 지금도 도시 규모에 비해 대형 소비시설들이 발달해있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한때 코스트코가 전남 동부권 전체를 상권으로 하기 위해 순천에 입점하려고 눈독을 들이기도 했을 정도.
2017년 초에 광양에 대형 아울렛이 들어서며 대규모 메이저 영화관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순천시로 영화를 보러 가야 했을 정도로 경제와 문화시설 간의 괴리가 상당히 컸다.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통합을 할 경우 여수시의 엄청난 빚(...)과 순천시의 부족한 경제기반 탓에 순천시에서 여순광 통합을 추진하려고 하면 여수시광양시는 반대 입장이고 특히 광양시가 크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주민들 간에 사이가 나쁜 점은 아니지만, 정치나 경제 분야로 갈 경우에 생기는 갈등이라고 보면 된다.

2.2.12.4. 보성읍과 그 주변 지역들 vs 벌교읍

애초부터 일제가 행정구역을 이상하게 짜깁기 해놓아서 생긴 매우 유서 깊은 갈등으로, 실제로도 벌교읍은 군내 인구 3할을 점유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대접이 안습한 동네이다. 그 이유는 벌교가 인구는 많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북부4면이나 조성면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오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항상 최다 인구 지역을 배려하느냐, 면 지역을 배려하느냐 때문에 항상 고민인 보성군. 그러다가 실수로 벌교 꼬막 축제 예산 1억을 삭감해 버리는 병크를 보성군청이 저질러서 벌교읍민들이 빡쳐서 순천시로 편입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벌교읍 문서 참조.

2.2.13. 제주특별자치도



2.2.13.1. 제주시(북부) vs 서귀포시(남부)

그다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섬의 남북 간에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내 고등학교 축구 대회인 백호기가 있다. 고등학교 축구대회인데 3학년까지 전교생이 참가해서 사관학교에서나 하는 카드섹션보다 몸으로 하는 바디섹션을 한다... 강릉의 농일전/일농전과 함께 가장 응원열기가 뜨거운 고교축구 이벤트. 제주 축구 팬은 백호기 출전 학교로 나눠져서 단합이 안된다는 말도 있다 산북 VS 산남보다 오현고 VS 제일고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는 말도 있다.[125] 아니, 최강이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백호기 경기 끝나고 학생들끼리 경기장 인근에서 대놓고 각목들고 맞섰다는 흑역사가 있다. 2000년대까지도 일부 학생들끼리 충돌이 암암리에 있었는 듯. 축구에서 비교적 약체인 D모 고등학교의 경우 패배한 후 응원을 총지휘하는 학생회장이 수능때 두고보자고 일침(?)을 놓은 적이 있으며, 실제로 도내 남자고등학교 중에서 수능평균점수가 가장 높은편이다.[126] 현재 바디섹션 응원은 제주도 내 중·고등학교 여러 학교에서 한다. 다만 중학교 바디섹션은 교복을 가지고 하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응원복[127]을 가지고 더욱 전문적으로 진행한다.
남북만 있는게 아니고 은근히 권역별[128]로 쪼개져서 지역감정이 있다. 제주도 주민들에게 들어본 결과 이들 사이의 어느지점은 전투종족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사실상 농업위주의 구 북/남제주군과 관광 인프라 중심인 서귀포시가 경제/교육/문화등 여러 방면에서 제주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제주시내 중고교생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단적인 예로 제주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4곳인대 비해서 서귀포시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1곳, 구 북/남제주군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다. 또 서귀포시의 경우 서귀여고를 제외한 고등학교들의 경우 평균수능성적이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며, 심지어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남학생들이나 제주시에 연고가 있는 일부 여중생들의 경우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에 많이 진학한다. 이촌향도 현상의 제주판인 제주시 과밀화 문제가 원인이다.


2.2.13.2. 서부 vs 동부

외지인이 보았을 때 눈에 띄게 드러나는 제주도내 지역감정은 산남 지역과 산북 지역 - 또는 과거 제주시와 그 외 지역[129]이다. 그러나 실제 제주도 내에서 가장 심한 지역 감정은 제주 동부와 서부 간의 지역 감정이다. 산남과 산북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실상은 서로 나쁜 감정이라기 보다는 산남 지방 사람들의 일방적인 소외감에 가깝고 산북 사람들이 자신들을 '산북'사람으로 크게 의식하지도 않는데다가 인구가 3배 가까이 차이나니 크게 부각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동촌과 서촌의 지역감정은 조선시대 이래로 역사가 오래고 서로 인구 또한 대등해서 20세기 중반 이전에 출생하신 어르신들 세대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지역감정이다. 심지어 지금도 특히 동촌 사람들은 제주도 동부지역이 서부지역에 비해 개발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낙후된 지역이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평소에는 '도시와 시골'이라는 구도의 산남-산북 지역감정처럼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다. 제주도는 동서로 긴 형태이고 가운데를 한라산이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동서간 교류는 남북간 교류보다 매우 적다. 또한 도시-시골간 갈등 형태가 아니어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도시-시골간 갈등은 도시에서는 시골보고 촌스럽다고 하고 시골에서는 도시를 보고 싸가지 없다고 하는 전형적 패턴이 존재하지만 동서 갈등은 도시-시골 갈등 형태가 아닌 데다 서로 교류도 많지 않아 평소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 사는 외지인들이 산남-산북 지역감정은 잘 알고 있지만, 동서 지역감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제주 동서 지역 감정이 표출되면 산남-산북 지역 감정은 그냥 아이들 말장난 수준. 제주도 동부랑 서부는 고려, 조선 때부터 토착 왕자 성주가 갈려 대립했다. 과거부터 제주 서쪽이 동쪽보다 훨씬 잘 살았고[130], 개발도 꾸준히 서쪽 중심으로 이루어졌다.[131] 제주도는 동부와 서부의 풍경이 확연히 차이난다. 서쪽은 완만하고 평지가 많으며 오름들이 둥그렇고 낮은 반면, 동쪽은 높은 오름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으며 평지가 많지 않다.[132] 더군다나 일주도로변 주변 밭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부는 땅이 모래흙인 경우가 많아 서부보다 농사짓기 어려운 지역이 넓다. 당장 주요 농작물만 비교해 보아도 서쪽은 감자, 동쪽은 당근...제주 감자는 타지역 저장 감자가 거의 떨어져갈 때 출하되어 높은 가격에 팔리지만 당근은 가격 폭락 뉴스가 종종 떠서 수확하지 않고 엎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한 제주시가 성장하기 전 북제주군 한림의 오일장이 제주시 오일장보다 규모가 더 컸던 적도 있었다. 서쪽 사람들은 동쪽 사람들을 억세고 거칠고 사납다고 하며 싫어하며[133], 특히 김녕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투종족 취급을 한다. 예컨대 3.1 운동의 제주 버전인 '조천 만세 운동'도 동쪽 지역인 조천에서 일어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되기 전, 타지역 사람들이 제주도의 지도를 보고 왜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가르지 않을까 종종 궁금해했다.[134]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 분리-승격되었기 때문에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은 지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북제주군청은 제주시에, 남제주군청은 서귀포시에 위치했다. 동제주군, 서제주군으로 행정구역개편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 격차 및 지역감정 심화 때문이었다. 동서 지역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2.2.13.3. 제주특별자치도 vs 한반도

제주도는 이런 섬 안의 지역감정보다 지역적 정체성 - 제주도와 육지[135][136] 구분이 훨씬 강하다. 때문에 타지역에서, 그리고 타 지역과의 경쟁에서는 제주도 사람들끼리 잘 뭉친다. 한국 사람이 지역끼리 으르렁대기도하지만 외국과의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 뭉치듯이말이다. 역사,문화적으로 지역적 정체성이 매우 강하고 타지역 사람들과의 교류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타지역 사람들로부터 '의리가 없고 자기들끼리 뭉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잡일 잘한다고 타지방에서 제주도 사람을 좋아한다고도 하더라.
외지인에 대한 편견과 지역감정(마을별) 역시 4.3 사건 등의 영향이 크다. 사실 역사적으로 외지인이 제주로 유입되면서 사단을 일으키고 거기에 도민들이 괜히 휩쓸려서 참극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삼별초 항쟁, 목호의 난, 길운절-소덕유의 난[137] 신축민란, 4.3 사건 등.
그 외에도 외지인[138]에 대한 편견[139]도 일부 존재한다. 그런데,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닌게,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육지에서 제주도로 갈 일이 별로 없었다. IMF이후 타지역에서 노숙자들이 대거 몰려온 이후 강력범죄가 증가하자 그 들이 1순위로 타겟이 되기도한다. 50년대 모 시인의 경우 여대생과 서울에서 바람을 펴고 임신시켜 본처를 피해 제주도로 이주해 약 반년간 생활하기도 했으며, 여대생의 아버지가 제주도로 내려가 집으로 데리고갔는데 당시 이별의 모습을 표현한 가곡이 떠나가는 배로 그 시인의 제자인 양중해시인이 작사하고 명태의 작곡가이자 당시 도내 모 중학교의 교사였던 변훈이 작곡하였다.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육지'로 수학여행을 가면 '한라산에서 공차면 바다로 빠지느냐, 전기는 들어오느냐' 따위의 은근히 놀리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전기가 안 들어와서 촛불 켜고 비디오 본다.'고 응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140]심지어 최근에도 조랑말타고 등하교하냐고 심히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사람이 있다거나 와이파이가 터지긴하냐고 묻기도 한다.

3. 논란



3.1. 지역감정은 한국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지역감정은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지역감정이 꽤 극심한 나라가 많다. 대표적으로 영국[141], 이탈리아[142], 스페인[143], 벨기에[144]의 경우만 하더라도 당장 내일 아침부터 나라가 분열돼도 전혀 신기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지역 간의 반목이 매우 극심해서 아예 동족의식 자체를 찾기 힘들어질 정도이다.
지역 간의 이질적 차이도 심해서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은, 워낙 광대한 영토와 인구 수 탓에 조금만 떨어지면 언어조차 외국어 수준으로 달라지고[145] 러시아에서도 동서간 동질성이 워낙 옅다 보니까 아예 지방을 자치공화국으로 뚝 떼어서 특별 관리하며, 지금은 갈갈이 찢어진 소련 시절엔 지역감정이 훨씬 더했다.
또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종족간 내전 및 시가전까지 벌였다. 지역을 넘어서 종족간 이념문제로 서로 총까지 발포하며 싸울 정도로 끔찍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동-서 지역의 국민들이 구 소련 시절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정치적으로 인해 지역감정이 극심해졌고 결국 나라가 갈라지는 최악의 사태인 우크라이나 내전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지역감정이 꼭 한국만의 폐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역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에 맞는 지역감정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심지어 읍면 단위에서도 서로 간에 경쟁의식을 갖는 예가 흔하다. 한국보다 인구든 면적이든 훨씬 조그만 벨기에 같은 나라도 자기들끼리 나라가 "쪼개지네, 마네" 이야기할 정도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민족이라고 지역감정이 무조건 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에서 지역 갈등이 있고, 일본도 오키나와를 제외하고봐도 지역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심지어 서울면적보다 약간 큰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도 동쪽과 서쪽의 인종분포와 문화의 차이때문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다만 그 규모가 작고 뉴스에 나올정도의 심각도가 아닐뿐이다.

3.2. 한국의 지역감정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한반도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지역감정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일부 외국 사례들에 비하면 대한민국 내에서의 지역갈등 주체들은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그래서 더욱 지역감정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반도처럼 예민한 국제 요충지에서 지역감정이 극한을 넘으면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지역갈등이 쉽게 우선 의제로 떠오르면 이보다 더 중요하고 발전적 담론인 남녀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학력갈등 같은 중요한 이슈들을 가로막는 등의 악영향도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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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 초기, 일부 네티즌들이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고 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자들은 어느 나라든 지역감정은 다 있다면서 입버릇처럼 지역감정을 정당화하는데, 그들이 예시로 드는 외국의 경우는, 처음부터 다른 국가 민족이었던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완전히 다른 민족의 지역이라서 처음부터 개념이 다르다. 물론 0같은 민족임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사실 더구나 우리나라 역시 옛날에도 지역감정이 있었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146]
이에 비하면, 한반도는 국가적 통일체가 된 것은 최초로는 통일 신라삼국통일, 이는 비록 완전하진 않았기에 다시 후삼국시대로 갈라지긴 했지만 아무리 늦어도 고려시대에 여몽전쟁 등을 겪으면서 단일의식이 분명히 완성되었다. 국가적 통일체의 기점을 고려의 후삼국통일부터로 잡는다고 해도 이 또한 936년에 완성되었으므로 현 시점에서 이미 1000년이 넘는다.
또한, 조선시대를 비롯한 후세의 역사적인 기록서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와 관련된 기록도 모두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라고 인식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왜곡이나 다름없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반박할 명분이 없어진다.
그렇기에 조선, 그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까지도 모두 한민족의 역사로 내외적으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1000년이 넘게 그렇게 넓지도 않은 지역에서 단일국체를 유지해온 나라에서 거의 증오 수준으로 온갖 편견을 가진 루머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실제 갈등과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히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운명공동체이며 지역감정은 반드시 사라져야 되는 악습이다.
지역감정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들이 아직 대규모 유혈 폭동이나 내란으로 번지지 않고 한국 사회가 그럭저럭 안정되게 굴러가는 이유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아직 사회 전반에 굳건하기 때문에 그런 갈등들을 억누르고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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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안에서도 서초구&강남구 vs 송파구로 나뉜다. 서초-강남은 자연경계가 없는 인문학적 경계이지만, 서초,강남 - 송파 사이에는 서울 및 수도권 동남권의 대표적인 하천이자 한강의 동남방향 제1지류인 탄천이 있다. 교육청(학군)도 서초강남교육지원청(8학군)으로 같이 묶이고 서울 시내버스 번호도 4번으로 같이 묶인다.[2] 강남구 안에서도 압구정동&청담동 vs 기타나, 테헤란로(= 2호선)을 경계로 한 테북 vs 테남로 나뉜다...[3] 여기에 강동구가 껴 강남 4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강남 3구의 반응은 "서민 동네는 니들 편에서 놀아라"다.[4] 의정부시, 고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파주시[5] 수원시, 성남시, 부천시, 용인시, 안양시[6] 병점 및 동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7] 동탄신도시, 병점 지역[8] 인천광역시, 부천시, 안양시 만안구, 군포시, 의왕시, 수원시 권선구·팔달구·장안구,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동탄을 제외한 모든 지역) 오산시, 평택시 중서부[9] 성남시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안양시 동안구(평촌신도시), 화성시(동탄신도시), 수원시 영통구(광교신도시), 용인시 수지구·기흥구, 오산시 일부(세교신도시), 평택시(고덕신도시 한정)[10] 서구는 특이케이스인데, 역사적으로도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 그리고 김포군을 모두 겪은 유일한 지역이다. 대신, 생활권과 동질성은 검단과 공촌지역을 제외하고 원인천 쪽에 집중되어있다.[11] 보다시피 알짜배기 개발지역들은 원인천권에 집중되어있다.[12] 칠곡 안에서 더 나누자면 관음동&휴먼시아1단지 vs 타 칠곡지역으로 나눠지는데 이는 일부 학부모들이 전자 지역 또는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돈없고 질이 나쁘다는 이상한 편견과 텃세가 있기 때문이다.[13] 수성구 내에서도 원도심권 vs 시지지구로 또 나눠진다.[14] 하지만 그리 약화되었다고 보기도 힘들고, 그저 수면 아래로 묻혀서 없어진 것처럼 착각이 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전라도에 대한 혐오와 멸시 정서는 1970년대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2000년대에 들어 와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15] 사실 아래에서 해외의 지역감정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제1도시권과 그 외 지역간의 갈등은 없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서울공화국 현상으로 유독 심한 편.[16] 광주광역시 5.18 민주화운동 학살 피해자와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 및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피해자 관련까지...[17] 물론 분단 직전까지의 두 지방간 감정과의 직접적 연결성이야 없지만 역사적으로 두 지방간의 악연은 백제(서울, 충청)와 고구려(평양)의 대립부터 시작한다.[18] 그렇다고 개성과 평양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묘청의 난이란 역사가 있기도 하고...[19] 이전에는 황해도개성기호지방이라 북한에서 차별받았다고 적혀 있는데 엄밀히 기호지방의 의미는 경기도와 호서 지방, 즉 충청도로 황해도 지역은 포함되지 않으며 조선 시대에는 황해도 역시 평안도와 함께 고위 관직으로의 등용은 거의 막혀 있었다. 그리고 개성은 조선 시대에 고려의 수도라 하여 역시 고위 관직 진출에서 차별을 받았다.[20] 거꾸로 해석하면 영호남 간 갈등은 그냥 입으로 증오를 내뱉는, 어린이들이 상대의 부모욕을 하는것과 같은 1차원적이고 감정 소비적인 면이 강하다.[21] 당장 동맹국인 미국만 해도 수도인 워싱턴 DC와 최대 도시인 뉴욕, 그리고 최대 학문 도시인 보스턴을 잇는 '동북부 해안 벨트'에 나라의 모든 정치와 경제, 산업, 학문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지역이 사실상 미국수도권이다.[22] 영국프랑스 역시 수도인 런던, 파리와 제2도시인 버밍엄, 마르세유 간의 인구 격차가 매우 크다. 예외적으로 중앙집권국가로의 발전이 매우 늦은 편인 독일베를린프랑크푸르트, 뮌헨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 그나마 가장 균형발전이 되어있다.[23] 부울경은 대경권을 뭘 하든 보수정당 찍어주는 지역감정이 심한 지역이라고 비하하며 대경권은 부울경을 지역색 없는 유사서울, 유사 경기도라고 비하한다.[24] 사실 스포츠에서의 영호남 지역갈등도 정치권에서 살포한게 강해서 그런지 2000년대 이후로는 동해안 더비, 클래식 시리즈, 낙동강 더비, 호남 더비 등 같은 지역권이나 타지역 연고 팀과의 라이벌 매치를 더 선호하고 인기를 끌게 되면서 영호남 라이벌 매치는 인기와 선호도가 거의 사라졌다.[25]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까지 겹쳐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무소속 문희갑 후보가 대구광역시장으로 당선되고 민주자유당 조해녕 후보는 무려 4위로 낙선했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대구 지역을 신한국당이 아닌 자유민주연합이 석권했다.[26] 구미시에서 9대 구미시장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세용이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유일한 예외 사례에 불과하다.[27] 이들은 영호남 지역갈등이 정치인들이 표 받아먹으려고 만든 것이라고 판단하며, 그렇기에 애초부터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28] 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29] 실제로 전주를 필두로 한 전북 북부지역은 호남 및 기호 충청 방언 어휘가 약간 섞인 말투를 쓴다. 이쪽 출신 이주자들의 말투가 지금의 수도권 말투에 영향을 줬다는 카더라도 있다.[30] 사실 이는 전남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박정희 정권의 대선 구도는 기호지방+강원도vs영호남+제주도의 구도에 가까웠었다. 처음에는 전라남북도 또한 공화당 우세지역이었다. 호남이 결정적으로 반 박정희 지역으로 돌아섰던 계기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김대중 후보가 신민당 대선후보로써 호남 대표 정치인으로 급부상하면서부터였고 노태우 이전 중대선거구제 시절에는 전북에서도 종종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당선되고는 했었다.[31] 1992년: 양창식(남원), 황인성(진안-무주-장수)/1996년: 강현욱(군산을)[32] 다만 여기는 정당이 특별히 노력해서 당선자를 낸 게 아니라, 출마 후보가 정당 색채를 지우고 지역 일꾼 이미지만 강력하게 홍보했으며 경쟁 후보들이 지역 민심을 신경 안 쓰고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운 좋게 당선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탄핵 이후에는 이런 광경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33] 물론 그래도 충북보다는 충남과 사이가 더 가깝다. 아니, 애초에 대전광역시는 원래 충청남도에서 독립한데다 2012년 내포신도시로 충남도청을 옮기기 전까지는 충남도청 소재지이므로 당연히 충남과 대전은 가까울 수밖에. 게다가 충남대학교도 대전에 소재한다.[34] 조치원리 일대가 청주목 영역이었던 적이 있다.[35] 청주시와 청원군 통합 이전에 세종시로 넘어왔지만, 충북 청원군 지역이었다.[36] 장군면은 이전에 충남 공주시 장기면이었고, 금남면은 대전시와 바로 붙어있고 세종시 탄생이전에도 오랫동안 대전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대전(정확히는 유성) 생활권이었다.[37] 여담으로 충남은 전북과도 붙어있기 때문에 남부지역의 경우 전북의 영향력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가, 대전이 발전하고 호남권이 쇠락하면서는 오히려 전북 북부가 대전/충남권으로 붙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38] 천안, 세종, 청주, 대전 및 그 주변지역. 천안(65만), 청주(84만), 세종(35만), 대전 (150만)의 인구만 합쳐봐도 충청도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39] 서북구 북부의 4개 읍면은 공업이 매우 발달해 다른 지역에서 온 외지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 시내처럼 지역색이 옅다.[40] 그럼에도 세종, 청주, 천안 동남구[39]등의 읍면 지역이나 대전의 최외곽에 위치한 대청동, 기성동 등은 여전히 지역색이 존재한다.[41] 제3당인 국민의당의 경우 대전충남과 충북의 조직력 차이가 은근히 있는 편이었는데, 상술한 지역정당의 영향력과도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았고 대전충남에 아무래도 호남 출신 이주민이 더 많았던 요인이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선진당계 인사들도 많이 영입했다. 사실 대한민국 내에서 호남 출신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약한 지역이 대전충남이다. 실제로 대전에는 호남 출신 구청장이 나왔다.[42] 하와이와 더불어 당시 전라도의 대표 별명이다.[43] 생전 교시 중에 '함경도 사람들을 간부로 등용하지 마라'라는 게 있었다.[44] 사실 김정은은 강원도 원산 출신이다. 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함경남도(...) 다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은 평안남도 출신이긴 하다. 헌데 아내리설주도 함경도민이다. [45] 탈북 여배우 김혜영 또한 함북 출신으로 이와 비슷한 발언을 남한 매체에서 한 적이 있다.[46] 하지만 신의주 역시 만만치 않은 동네인게 중국 대륙, 그것도 수도인 베이징과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닿는 동네인데다가 남한에서 가까운 최북단의 북한지역 도시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의주를 최우선 지역으로 개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함경도, 특히 함북지역은 험난한 지형형편상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47] 이 안에서도 서초구&강남구 vs 송파구로 나뉜다. 서초-강남은 자연경계가 없는 인문학적 경계이지만, 서초,강남 - 송파 사이에는 서울 및 수도권 동남권의 대표적인 하천이자 한강의 동남방향 제1지류인 탄천이 있다. 교육청(학군)도 서초강남교육지원청(8학군)으로 같이 묶이고 서울 시내버스 번호도 4번으로 같이 묶인다.[48] 강남구 안에서도 압구정동&청담동 vs 기타나, 테헤란로(= 2호선)을 경계로 한 테북 vs 테남로 나뉜다...[49] 여기에 강동구가 껴 강남 4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강남 3구의 반응은 "서민 동네는 니들 편에서 놀아라"다.[50] 여담으로 노원구의 경우는 강남보다 훨씬 늦게 개발 되었음에도 강남구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이유는 강남구는 강북 인구 및 인프라 분산 목적으로 개발된 곳이지만, 노원구는 태생부터가 베드타운이기 때문이다.[51] 3당합당의 영향도 크다. 87대선이나 88총선에는 통일민주당이 강남에서 강세였는데 3당합당으로 그게 대부분 민자당으로 고스란히 갔다. 알려져있다시피 민자당은 현 자유한국당의 전신. 영남 기반의 보수본당(제1당)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름과 성향은 다소 바뀌었으나 그 법통은 그대로 이어진다.[52] 예컨대 김덕룡 의원의 경우 서초구의 북부지역(반포 방배 등)인 서초구 갑에서 13대 총선('88) ~ 17대 총선('04)까지 5연속 당선되었는데, 첫 총선 즉 13대 88년 총선은 보수본당이라고 인식되는 민정당이 아닌, 통일민주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었다.[53] 강북의 별 볼일없는 서민동네로 취급받던 마포, 용산, 성동(이른바 마.용.성.)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신흥부촌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과거 경기도 외곽 신도시 붐때 소외받았던 서울 최근접 경기도 근교지역은 현재의 서울시내 부동산 열풍의 반사이익을 얻었다.[54] 다만 광명시의 사례에서는 서울에 대한 단순하면서 역사가 오래된 악감정 내지는 독자적 정체성때문이라기 보다는 철산동, 일직동에 비해 도시발전에서 비교적 소외당해온 하안동 주민들의 억감정과 교통 불편에 대한 불만때문인 것이 크긴 하다[55] 과천, 광명, 분당, 하남, 등지. 이들 지역은 경기도 내 투기과열지구다.[56] 시흥, 김포, 남양주, 의정부, 평택, 고양시 일산구 등. 인천광역시도 실질적 의미에서 여기에 포함.[57] 의정부시, 고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파주시[58] 수원시, 성남시, 부천시, 용인시, 안양시[59] 남양주시, 고양시 등 : 수자원 보호구역 및 각종 개발규제 해제 VS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 등 : 통일시대 대비, 경기 북부의 헤게모니 완전 장악[60] 도청 소재지가 될 의정부시와 의정부를 중생활권으로 하는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 지역에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해온 편이지만, 물주가 될 형편인 고양시, 파주시에서 크게 반대하는 편이고 서울 강동-송파지역 또는 강원도 영서지역과의 교류가 많아 경기북부라는 자각이 크지 않고 경기동부라는 인식이 같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구리시, 남양주시, 가평군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61] 갈매, 별내 일대는 조선시대 노원면(현 서울 노원구)의 일부였고,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90년대까지 들어가 있었으며,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기존 구리, 남양주 지역보다 서울 노원, 중랑 지역과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지리적으로도 그렇다보니 간혹 교통난 때문에 서울 편입이 되었으면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별내면의 중심지인 청학리 또한 의정부랑 교류는 조금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경기북도에 반대를 위치는 상황이다. 청학리는 사실상 구리, 노원, 중랑과 압도적으로 교류가 많은 이유는 1-1번은 구리로 통학하는 학생들은 물론, 10-5번을 타서 돌다리에서 먹고 마시는 일도 많은 편이다. 33-1, 10-5, 10번 또한 청학리~당고개역의 사실상 셔틀버스로 출퇴근 수요가 제법 많다. 물론 청학리 자체가 연천, 포천, 양주, 의정부 일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조금 있는 편이며, 의정부와 양주에서 쓰이는 국번, 즉 동의정부 전화국의 국번인 031-84X, 82X, 85X국번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이 지역은 3대 이상 살아온 토박이들이 좀 있는 편이며 구리와의 교류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토박이의 말을 빌려보면 양주군 별비곡면 청학동/동학동 시절 대부터 구지면, 망우리면, 즉 현재의 구리시와 서울 중랑구 일대와 교류가 많았다고 하니 당연히 반대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62] 남양주는 현재 토박이들이랑 외지인들끼리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지라 분도는 딱히 원하지 않는다. 특히 다산신도시 택배사건으로 남양주 이미지가 똥이 된 이후로는 더더욱.[63] 일반적으로 구성남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64] 대형평형 아파트 및 고급 주상복합아파트[65]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전연령대에 걸쳐 상당하다.[66] 병점 및 동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67] 동탄신도시, 병점 지역[68] 인천광역시, 부천시, 안양시 만안구, 군포시, 의왕시, 수원시 권선구·팔달구·장안구,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동탄을 제외한 모든 지역) 오산시, 평택시 중서부[69] 성남시 분당구(분당신도시, 판교신도시), 안양시 동안구(평촌신도시), 화성시(동탄신도시), 수원시 영통구(광교신도시), 용인시 수지구·기흥구, 오산시 일부(세교신도시), 평택시(고덕신도시 한정)[70]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 네이버, 두산그룹(두산그룹은 2019년 이후 일부 계열사들이 분당구 정자동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등[71] 광명시 광명역 역세권과 시흥시 목감보금자리지구, 능곡지구, 연성지구 등.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라는 분당신도시급 도시개발 계획이 있긴 했으나 무산되었다.[72] 다만 용인시 수지구, 기흥구는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사기업 건축회사들이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난개발 문제가 부각되는 곳이 되었다.[73] 당시 신도시 건설 후보지로 舊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 지역이나 안양시-과천시 사이의 그린벨트 지역 등이 후보로 올랐었다.[74]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 가치는 이미 도시화된 지역 기준으로는 일산신도시를 역전했다(...) 성남으로 치면 수정구 일대가 분당구보다 더 부촌이 되버린 셈(...) 다만 감가상각을 고려하여 동일연식 동일평형 신축 매물들을 비교하면 여전히 일산권역이 우세하긴 하다. 삼송지구 평당가 1600~1800대지만 요진Y 백석동 신축 주상복합은 1700~1950, 킨텍스 신시가지 신축 주상복합들은 아예 평당 2100~2500으로 여전히 일산 선호가 있기는 한 편이다. 2021년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삼송지구는 평당 2900 정도에서 횡보 중이지만 요진Y는 3200, 킨텍스 신시가지쪽은 GTX-A선 떡밥을 타고 아예 평당 4000을 뚫고 5000에 근접해 버렸다(...) 평당 4000~5000대면 송파구 외곽이나 강남구 개포동 일대의 노후된 구형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킨텍스 신축 아파트와 개포동 80년대 아파트의 비교기에 정상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이것은 덕양과 일산의 인프라 차이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삼송이든 행신이든 덕양구는 당장 백화점 갈려면 일산 가든지 신촌 가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반면에 일산은 어쨌든 명목상 백화점만 3개(현대, 롯데, 그랜드)다(...) 물론 자신의 생활패턴을 고려했을 때 저러한 고급 인프라가 필요 없다면 서울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덕양구가 더 나을 수 있다. [75] 3기 신도시가 중심생활권 구축을 해주며 개발의 수혜지[76] 삼송, 지축, 원흥과 마찬가지로 시정에서의 영향력 확대 및 시가지 파편화 문제가 해소되는 장점과 3기신도시 교통대책 중 고양선 경전철 건설, 화정-신사간 도로 건설의 수혜를 받으나 어쨌든 시가지가 노후된데다 일산보다는 덜하지만 창릉 대비 지리적 비교열위로 자산가치 하락 우려가 있음.[77] 어떠한 인프라 및 생활환경의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서울과 가까운 곳에 대량의 주택이 공급됨으로써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 우려, 지금도 덕양구에서 상당한 도로정체 및 광역전철(경의선) 객차 혼잡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창릉신도시 입주시 교통망의 부하가 현재 덕양구 수준의 1.5~2배이상 가중됨으로 교통대란 우려.[78] 마찬가지로 수혜받는 것도 없는 상황에 물량이 늘어나는 걸 좋아할 리가 없으나 그나마 GTX-A선 킨텍스역 도보역세권인 관계로 창릉의 압박을 상쇄할 수 있는 정도.[79] 현재 일산동구+일산서구 약 62만 명, 덕양구 약 46만 명. 고양광역시 대신 각각 일산시와 덕양시가 되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는 인구다.[80] 서구는 특이케이스인데, 역사적으로도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 그리고 김포군을 모두 겪은 유일한 지역이다. 대신, 생활권과 동질성은 검단과 공촌지역을 제외하고 원인천 쪽에 집중되어있다.[81] 보다시피 알짜배기 개발지역들은 원인천권에 집중되어있다.[82]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인천군 일부 지역(인천항, 개항장)만 남기고 부평군과 인천군 잔여 지역을 부천군으로 개편했다. 지금의 부평구와 계양구 지역은 1940년에 경성부 대신에 인천부(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고 인천시로 편입되지 않은 부평지역이 바로 지금의 부천시이고, 인천시로 재편입되지 못한 원인천지역이 지금의 시흥시 북부다.[83] 원래 부천시 자체가 '부평+인천'이 어원이다. 부평과 부천은 '부평도호부'라는 하나의 동네였는데, 일제시대 인천항과 동인천, 제물포 지역만 따로 떼어버리고 인천군 잔여지역과 부평군을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다. 훗날 원인천이 다시 인천항 지역과 합쳐지면서 부평구를 가져왔고, 부천시는 그대로 부평+인천으로 남아버린 것. 원래 부평과 부천이 하나였던 만큼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84] 이전 서술에는 부평권 주민들은 구월동에 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공통학군, 특목고 재학 학생들은 약속 장소가 대개 구월동, 부평역 인근이고 부천 지역 백화점은 서울, 인천 지역 백화점들에 비해 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까운 부천중동을 두고 영등포, 구월동으로 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부천시민들도 그럴 정도니 말 다했다. 젊은 층도 부천 상권보다는 부평역 인근이나 멀지않은 서울 홍대나 수도권 버스들의 집결지인 강남역 등이 더 왕래가 잦다.[85] 1931년 강원도청 철원 이전계획 수립 당시 춘천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경춘선을 부설하기도 했다.[86] 그래서 영서 방언과 영동 방언, 서울말은 방언연속체에 가깝기도 하다.[87] 철원, 이천, 평강[88] 김화, 회양, 화천[89] 춘천, 양구, 인제, 홍천, 가평[90] 원주, 횡성[91] 현재 갈말읍에 속해 있는 정연리는 원래 평강군 남면이었다.[92] 정확히는 철원은 남한지역이 2/3, 김화는 북한지역이 2/3 정도이다.[93]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김화군을 철원군에 편입하였다. 단, 이북 5도 체계 하에서 김화군은 여전히 명목상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94] 김화권에서는 군인가족을 제외하면 전쟁 이전부터 지역 주민이었던 경우가 많다.[95] 예를 들어, 원주에서 춘천을 가느니 차라리 서울을 간다던지. 사실 강릉 - 춘천 거리는 구철원 - 춘천보다 훨씬 멀다.[96] 춘천-철원-원주-강릉 순이었다.[97] 현재는 춘천-원주-강릉이 3대 도시이고 속초와 동해가 그 뒤를 잇는다.[98] 김화 지역에서 포천시와 붙어있는 곳이 서면에 있는데 47번 국도로 연결된다. 그러나 자등6리부터 선형이 별로고 이 도로도 이동(장암리)-일동(기산리)-내촌면(신팔리)를 통해 진접으로 이어져서 포천시내에 가려면 상당히 돌아가야 한다.[99] 2006년경 개통. 이전에는 길이 없었다.[100] 물론 충남 동부에도 조선시대까지 충청도의 핵심도시였으나 대전에 충남도청을 뺏기면서 타격을 받고 또 세종시 출범으로 인구를 지속적으로 뺏기고 있는 상황에 처한 공주시 같은 경우도 있다. 그나마 충남 동부를 비롯한 충청 내륙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지역색이 옅여서, 지역갈등이 아직은 심각치 않은 편.[101] 부산시장 3선이 꼴랑 도의원 1번 지낸 후보한테 경선에서 진 것이다.(...) 나이가 49년생으로 많기는 했지만.[102] 사실 이 항목에 나오는 지역감정 사례들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분당 사람이 자신을 성남시민이라고 말하지 않거나, 벌교 사람이 자신을 보성군민이라고 말하지 않거나 하는 등[103] 이후 청주시+청원군 통합이 있었기는 하나 이쪽은 1995년 도농통합 때 이뤄졌어야 하는 걸 뒤늦게 한 것에 가까우므로 논외[104] 다만 실제 여론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운게 이미 선거에서 진해 독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몇몇 존재했었지만 누구도 당선된 적은 없다.[105] 칠곡 안에서 더 나누자면 관음동&휴먼시아1단지 vs 타 칠곡지역으로 나눠지는데 이는 일부 학부모들이 전자 지역 또는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돈없고 질이 나쁘다는 이상한 편견과 텃세가 있기 때문이다.[106] 다만 1980년대부터 대구 대표 도매시장 매천시장이 존재했고, 운전면허시험장, 동북지방통계청, 칠곡경북대병원 등 시설들이 존재해서 방문할 기회를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107] 수성구 내에서도 원도심권 vs 시지지구로 또 나눠진다.[108] 특히 서구, 달서구, 달성군 등 대구 서부권.[109]수성구, 동구, 칠곡지구를 제외한 북구에서는 찬성하는 편이다.[110] 참고로 수성구 내에서 지산범물지구, 두산동, 파동달성군 가창면은 가창댐에서, 북구 검단동, 산격동, 복현동은 공산댐에서 원수를 확보하는 편이다.[111]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바른미래당 경북도지사 후보. 안동시 출신이다.[112] 이 때문인지 인구 수로는 구미나 포항에 역전당한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경북 내에서의 안동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113] 그래도 경북 북부에서는 아직까지 중심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14] 여담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에는 경북도지사 후보로 저 세 지역 출신이 한 명씩 나왔는데, 1번 더불어민주당 오중기 후보는 동해안(포항시) 출신, 2번 자유한국당 이철우 후보는 남부내륙(김천시) 출신, 3번 바른미래당 권오을 후보는 북부내륙(안동시) 출신이다. 다만 여전히 보수색이 강한 경북답게 이철우가 당선됐지만…[115] 익산도 있지만 새만금 영향보다는 전주 위성도시로서의 장점(?)이 큰 도시이다.[116] 찬성 지역은 과거에 전주부에 소속된 지역이었다.[117] 국립과학관 유치 ‘내부 경쟁 안 돼’…전북도 역할론 대두[118] [전북]지자체, 수도권 공공기관 유치 과열[119] 행정구역상 무안군이지만 실질적으로 목포 생활권으로 여겨진다.[120] 본문의 탄핵 사태 문서에 보면 나오지만, 한나라당이 탄핵한 것이 아니라 대선 경선 당시의 악감정이 쌓여서 기존 정치권이던 서부권 기반의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먼저 제안함.[121] 이때 순천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는 서갑원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는 노관규가 서울에서의 낙선 이후 순천으로 출마했었다. 순천시/정치 항목의 역사가 이때부터 본격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122] 20대 총선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보면 전남 서부에서는 더민주의 득표율이 27.0%에 그쳤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33.6%를 득표했다. 특히 순천시에서는 더민주 35.81% vs 국민의당 41.78%로 5.97% 차이가 나왔는데 전남 전 지역에서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비례대표 격차가 가장 적게 나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대 총선 당시에는 전남 서부에서는 열린우리당이 43.3%를 득표했으나 전남 동부에서는 50.8%를 득표.[123] 무안군의 경우 1968년까지는 군청이 목포시 내에 있기까지 했다! 1969년 신안군이 분리되면서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2011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을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하여 현재에 이른다. 또한 목포시의 법정동 중에도 '무안동(務安洞)'이 있는데, 일제 때 목포 개항장에서 옛 무안 읍내로 가는 길목이고 목포도 원래 무안의 일부였다는 의미로 '무안통(務安通)'이라 불렸던 것을 해방 이후 일제 행정구역 단위명인 '통(通)'을 '동(洞)'으로 바꾸어 이어진 것이다.[124] 13도제 이전까지는 무안현 관할이 아니라 영광, 나주, 광주 등의 월경지로 존재했다. 그리고 13도제가 시행되며 '지도군'으로 분리된다.[125] 이전 서술에는 산남vs산북 경기가 경기장을 채운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근 서고가 연속우승 사례가 많아지는 등 선전을 해서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서술한 것 같은데 사실 상대적으로 동문 숫자가 적은 서귀포고의 호성적은 대회 흥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현고vs제주일고 라이벌리가 관객 동원에도 훨씬 유리하고 실제 지역 사회의 호응 또한 크다. 백호기 응원은 출신학교로 갈리지 결코 산북vs산남 식의 라이벌리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애당초 오현고, 제주일고, 대기고, 제주중앙고(과거 제주상고)에도 산남 출신 동문들이 서귀포고 출신들 못지 않게 수두룩하게 많고 원래 백호기는 오현고vs제일고가 최대 라이벌리다. 두 학교 사이의 라이벌리가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 차선은 그 다음으로 동문 숫자가 많은 vs제주중앙고. 실제 산남지역 지역정치계에서도 오현고, 제일고의 영향력이 서귀포고 동문회보다 훨씬 강력하고 유력 정치인들도 훨씬 많이 나왔다.[126] 근데 이것도 2000년 이후 이야기. 그 전까진 오현고와 제주일고가 성적마저 압도했다. [127] 사실 그냥 체육복[128] 마을별[129] 북제주군, 남제주군, 서귀포시[130] 동부 지역 토질이 농업에 부적절했다.[131] 동쪽지역에 기반한 지역정치인들이 일부러 조장한 인식이긴 하지만 일정부분 사실이다. 실제로 동부의 대표적 지역인 구좌읍 지역이 자기 지역 연고 인사들에게 당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몰표를 몰아주기로 유명한데 원희룡 이전에 민선 제주도지사 자리를 서로 돌려가면서 하던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전 지사들은 모두 구좌읍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던 인사들이다. 그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막상막하였어도 구좌읍의 몰표를 바탕으로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동서지역간 갈등을 공공연히 조장해서 이용했었다.[132] 사실 서부지역의 경우 4.3사건 이전에는 중산간 마을과 해안가 마을의 지역감정과 차별이 굉장히 심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중산간 마을 사람들이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낮게 인식했었는데 4.3사건으로 중산간 마을들이 큰 타격을 받고 이후 개발이 먼저 도로망이 갖춰진 해안가 마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갈등이 상당히 희석된 것이다. 동부 지역에서는 서부시역처럼 중산간에 넓고 평탄하고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 부족하였으므로 서부지역처럼 중산간 마을들이 일찍부터 대규모로 발달하지는 못했다. 동부지역의 중산간 마을들은 1990년대가 다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간 마을들도 있을 만큼 낙후된 동네들이었다.[133] 농사짓기 어려운 토지 때문에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134]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도지사 선거 공약으로 그러한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있었다.[135] 제주도민이 타지역을 부르는 말.[136] 그래서 서울 같은 타지역에 이사간다고 하면 대부분 OO가 육지로 이사간다고 한다.[137] 1600년대 초에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유입된 외지인들인 길운절과 소덕유가 제주도에서 반란을 선동하여 중앙정부의 대규모 토벌이 있었던 사건이다. 그러한 중앙 조정에서는 청음 김상헌을 안무어사로 제주로 보내어 민심을 수습하고 제주에서 특별 과거시험을 실시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김상헌이 남긴 기록이 남사록이다.[138] 육지에서 이사온 사람들[139] 육지에서 부부가 이사 왔는데 주민들이 분명히 육지에서 바람펴 애낳아서 도망왔을 것이다고 쑤군쑤군 → 그 부부는 결혼식 사진을 거실에 걸어놓고 살게 되었다 등[140] 이미 1970년대부터 일본과 가까운 위치 덕택에 일본의 영향을 받거나 일본으로 일하러가서 떼돈벌어오는 경우도 있으니 일본의 최신 문물이 많이 들어오는건 당연한일[141] 잉글랜드vs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142] 북부vs남부[143] 카스티야vs바스크, 카탈루냐[144] 플랑드르vs왈롱[145] 그래도 이 쪽은 한족이라는 거대한 문화공동체로 묶여서 송대 이후로는 50년 이상 분열된 적이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홍콩등은 지역감정보다는 이념에 의한 조금 다른 문제고[146]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에는 고구려인과 비교해서 한인과 예인에 대한 차별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며 충주 고구려비에서는 신라를 동쪽 오랑캐라 부른다. 당연히 신라도 고구려인과 백제인을 차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