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게임
1. 개요
- 영어: arcade game
- 일본어: アーケードゲーム
2. 역사
2.1. 1960년대 후반기, 아케이드 시장의 태동
60년대에는 2차 대전 이후 경제 부흥이 각국에서 이루어지며 문화 및 유흥에 관심이 기울어지던 시기였다. 기술 발달은 다소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게임 개발 의지는 있었지만 쉽사리 진척되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70년대 초반, 아타리 퐁과 타이토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이 이끌었으나 그 구상은 60년대 후반에 어느 정도 시도된 듯 보인다. 그 당시에 사물을 움직이는 형태의 게임들이 아케이드의 시초다. 대다수가 퐁에 밀려 망하긴 했다.[2]
2.2. 1970년대 전반기, 아타리의 퐁 입점 후 아케이드 시장의 본격적인 붐
아타리가 퐁 게임을 게임 센터용 캐비넷에 넣으면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시작되었다. 이후 비슷한 시기에 타이토가 아스트로 레이스 등을 개발하며 아케이드 시장은 확장되기 시작한다. 북미에서는 미드웨이가, 일본에서는 세가 등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게임기 및 아케이드 시장의 질서가 잡혀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2.3. 1970년대 후반기,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
1950년대 창업한 타이토는 주크박스 수입 위주였으나, 1960년대 들어서 성장하고 있는 비디오 게임 시장[3]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미드웨이로부터 개발협력을 얻어내고 일본으로 미드웨이의 게임을 들여왔다. 특히 부트 힐이나 건 파이트 같은 게임들은 타이토와 미드웨이에 좋은 판매량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1978년 타이토와 미드웨이[4] 가 공동제작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일구어 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각종 아류작들이 발매되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타 회사의 게임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붐은 불법복제 문제를 가져 왔는데,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기가 엄청나게 되어버리자 전 세계의 메이커들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불법복제(파쿠리)해서 자사의 게임인 것처럼 팔았다. 타이토는 일본 내에서 소송을 걸 수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신경쓰는 걸 포기했다.
2.4. 1980년대 전반기, 일본 갤러그, 제비우스 붐과 팩맨의 글로벌 성공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으로 남코는 갤러그의 원형인 갤럭시안을 출시하고, 이후 제비우스 등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슈팅 게임 붐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다른 종류의 게임도 출시되거나 제작되기도 했지만 아직 주류는 아니었고 퍼즐 게임 및 슈팅 게임이 본류를 이루어 게임 아케이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오락실은 남성과 남자아이들만 가득했고, 쾨쾨하고 음침한 가게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남코의 게임 디자이너 이와타니 토루는 이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동안 남자의 전유물인 오락실의 비디오게임을 커플들과 여자아이들에게도 전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이와타니는 피자의 모양과 귀여운 모양새와 알록달록한 컬러를 이용해 게임을 만들자는 기획하에 팩맨을 탄생시키고, 이는 일본과 특히 북미시장에 유래없는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패미컴 및 NES의 소프트를 중심으로 일본과 북미 등 각지에서 슈팅 게임 붐을 위협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2.5. 1980년대 후반기, 일본의 체감형 게임기붐과 미국 레트로 게임, 그리고 테트리스 붐
2.6. 1990년대 초중반기,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등장, 대전 액션 게임 붐
1991년 캡콤에서 제작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무지막지한 붐을 일으키며 오락실을 사로잡았고, 이에 따른 엄청난 양의 아류작과 후속작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폴리곤 기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3D 그래픽 게임, 그리고 폴리곤 기반에다가 텍스처 효과가 적용된 게임이 하나둘씩 등장했던 시기이도 했다.[5] 차츰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 독자 체제에서 넘어가 2D 게임계에서는 1992년 모탈 컴뱃, 1994년 KOF, 3D 게임계에서는 1993년 말 버추어 파이터, 1994년 말 철권 등의 온갖 대전액션게임이 들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고수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려 사람들은 점차 새로운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2.7. 1990년대 중후반기, 대세는 3D 그래픽, 체감형 게임과 리듬 게임의 붐
1996년 '''리듬 게임''' 장르라고 처음 표기한 가정용(PS1) 게임인 파라파 더 래퍼 이후로 코나미에서는 1997년 말 비트매니아, 1998년 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출시시켜 기존 대전 액션 게임과 함께 아케이드 게임계의 주역이 되었다. 한편 국내에선 1999년 EZ2DJ와 펌프 잇 업이라는 국산 리듬 게임을 중심으로 그 열풍이 짧게나마 있었다. 그와 동시에 대전 액션 게임은 2D보단 3D가 대세로 전환된 시기였기 때문에 1997년 스트리트 파이터 3를 기점으로 2D 대전 액션 게임은 점차 하향세로 접어들었지만 1999년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9 시절까지는 과거 2D 게임의 막강한 영향력까진 아니더라도 몇몇의 걸작 덕분에 영향력은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었다.[6]
2.8. 2000년대 초중반기, 아케이드 게임 자체의 사양화
90년대 말까지는 아무리 가정용 게임기와 PC 플랫폼 기반의 게임들이 우후죽순 출시되어 대세로 자리 잡았어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건재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대세를 더이상 거스를 수 없었는지 가정용 PC와 엔비디아 지포스 2 MX같은 합리적인 그래픽카드들의 보급, DVD 플레이어 대안이라는 마케팅 덕을 본 플레이스테이션 2의 전세계적인 초대박[7] 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축소가 본격화되었다. 국내에서는 리듬 게임 열풍 덕분에 오락실 시장의 축소가 지연되었을 뿐, 1999년 10월 국민PC, 2002년 2월 PS2의 정발과 PC 플랫폼 기반 온라인 게임의 보편화로 국내 역시 아케이드 게임의 사양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경우 2001년부터 아케이드 게임에 ALL.Net같은 네트워크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하고 개인 플레이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마그네틱 카드 등을 도입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성,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들(예를 들어 아이돌 마스터, 삼국지대전 등등)이 등장하는 등 오락실 게임에서의 장르의 다변화가 시작되었다.
북미지역은 더 심해서 90년대 후반부터 아케이드 게임센터 자체가 사라져갔다. 북미의 대표적인 아케이드 게임인 모탈 컴뱃 시리즈도 97년작인 모탈 컴뱃 4 이후로는 콘솔로만 발매되게 되었다.
2.9. 2000년대 중후반기, HD 아케이드 게임의 시작, 네트워크 서비스의 본격화
2005년 Xbox 360의 발표 이후 가정용 콘솔 게임기가 7세대로 접어들면서 HD 화질이 대두되었고 기술력에서 밀려났던 아케이드 게임도 기판 업그레이드 겸 HD급 모니터를 채택하여 2005년 말에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4와 철권 5 DR을 기점으로 와이드 스크린 또는 HD 트렌드에 따라가기 시작했다. 2006년 타임 크라이시스 4와 버추어 파이터 5같은 다른 몇몇 게임들도 HD에 합류했고, 2007년 철권 6를 기점으로 대중화에 접어들면서 아케이드 게임의 그래픽이 가정용보다도 뒤쳐진 퇴물 장르라는 편견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2005년 이후 광회선의 도입으로 네트워크의 속도가 향상되었는데, 가정용 콘솔 게임기나 PC에 구현되었던 실시간 멀티플레이 기능이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구현되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성인용 게임이 오락실 시장을 주름잡고 있었고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해 아케이드 시장은 물론 한국 전체 게임 시장에 큰 타격을 받아 2007년 한 해에 걸쳐서 잠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2008년 이후에 들어서야 철권 6의 국내 정발과 DJMAX TECHNIKA를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HD 아케이드 게임 물결에 합류하여 새로운 아케이드 시장으로 개편되었고 침체기를 조금이나마 반등하여 아케이드 시장의 재도약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2.10. 2010년대 초중반기,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한 아케이드 게임의 2차 위기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 본격적인 HD 및 네트워크 아케이드 게임으로 오락실 시장의 부흥을 기대했으나, 2007년 iPhone의 등장과 2008년 앱스토어, 그리고 2010년 안드로이드 OS의 전세계적인 대중화로 인해 스마트폰 모바일 플랫폼이 급부상되면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다시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 때문에 PSP, 닌텐도 DS처럼 한때 흥했던 휴대용 콘솔 게임기마저 사이좋게 침체되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아케이드 게임과 거치형/휴대용 콘솔 게임은 '돈 있는 매니아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고, 심지어 리그 오브 레전드같은 일부 유명 AOS 게임이나 지금까지 서비스 중인 일부 메이져급 온라인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PC 게임들마저 매니악한 부류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국내 게임 규제에 관련된 문제가 진전되지 않은건 덤.
2.11. 2010년대 중후반기, VR HMD 플랫폼이 등장한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
2016년에 출시된 오큘러스 리프트, HTC VIVE, 혹은 출시 예정인 플레이스테이션 VR 등의 각종 VR HMD 기기 소식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케이드 시장은 이전의 연장선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대했던 VR 기기들 마저 일반인들이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대로 예상되면서 안그래도 수익성이 예전만큼 보장되지 않는 아케이드 게임인데다 HD화로 인해 개발비가 상승함에 따라 기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덩달아 상승해버려 들여 놓기가 부담스러워진 오락실 업주에겐 VR 장비를 접목한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들여 놓기가 버거운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 높다. 하지만 체감형 게임에 VR을 접목한다면 마치 현실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할수 있어 미래에 다시 붐을 일으킬수도 있다.[8]
3. 게임 목록
- 아케이드 게임/목록 참고 바람.
- 게임 제작사/목록도 참고 바람.
4. 관련 문서
[1] 2000년대 초중반 한정으로 PS2 정발 이후 가정용 콘솔 게임이 온라인 PC 게임 못지 않게 흥행했었다.[2] 전자 오락의 본격적 시대는 빨리 잡아도 1970년대 말이다.[3] 당시로써는 테레비 게임[4] 타이토가 미드웨이로부터 기판 제공을 받았다.[5]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케이드 게임기가 기술적인 선구자격 플랫폼이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등 5세대 가정용 게임기의 등장으로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적인 격차가 대등해졌다.[6]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는 스트리트 파이터 4를 비롯해 대다수의 대전게임이 3D를 도입한 2010년까지도 2D를 유지하다가 결국 14번째 작품부터 3D로 전향했는데 다른 제작사들보다 출발시기가 늦다보니 떨어지는 그래픽으로 비판을 받았다.[7] 2년 먼저 나왔던 드림캐스트는 DVD 매체를 지원하지 않았다.[8] 예를 들어 남코가 인기작이던 갤러가를 다시 VR로 만드는 것. 레이싱 아케이드 와 같이 우주선 기기 모양의 기계에 타고 VR 고글을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적들을 죽이는 게임이 탄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