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오마르
1. 개요
파슈토어: ملا محمد عمر (몰라 모하마드 오마르)
페르시아어: ملا عمر (몰라 오마르)
영어: Mullah Mohammed Omar
'몰라'[1] 모하마드 오마르(1960년 1월 3일 ~ 2013년 4월 23일)는 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국가원수이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최고지도자(امیرالمؤمنین, Amir al-Mu'minin)이다.
2. 생애
1960년 1월 3일 칸다하르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며, 측근들의 주장에 따르면 1950년부터 1962년까지 다양하다. 출생지 역시 칸다하르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며, 우루즈간이나 데흐라우드라는 설도 있다. 애초에 여러모로 비밀스러운 인간답게 출생에 관한 사실조차도 알 길이 없다.
가난한 파슈툰인 집안에서 태어나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훗날 하미드 카르자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마르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종교 지도자로 일했다고 하나, 엘리트 집안 출신이 아닌 탓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하며, 오마르가 어렸을 때 이미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 오마르 본인이 말하기를 자신이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며, 삼촌의 손에서 키워졌다고 한다.
3. 투사로 떠오르다
그러던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침공하였고, 오마르의 집안은 비교적 소련의 영향력이 적은 우루즈간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종교 선생님으로서 잠시 일했으나, 나라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즉각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소위 무자헤딘이라고 불리는 투쟁을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소련 측과의 충돌로 수차례 다치곤 했었다. 이 와중에 한쪽 눈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
하지만 오마르는 지도력을 발휘해 어마어마한 세력들을 키우면서 한순간에 범인민적인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이 때 그 유명한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그의 감명을 받은 뒤 투쟁의 강도를 높였고 1988년 소련은 철수한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해방과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새로 집권한 정부는 무능하기 그지 없었고, 민심은 서서히 신임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 때 온 인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던 오마르는 탈레반을 결성했고, 탈레반은 온 인민의 지지 속에서 1996년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수립해 새로 권력을 쥔다. 새로운 지도자에 오른 오마르는 무려 '''60%'''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아프가니스탄을 건설할 줄만 알았다.
4. 독재
그가 영웅이었다는 것은 사실 '''거기까지만'''이었다. 새로운 지도자에 오른 오마르는 매우 잔악한 독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 때의 여파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적인 막장 국가들 중 하나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마르는 이슬람을 빙자한 사이비 사상으로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여성들은 '''무조건 몸을 가려야''' 했으며, '''남편의 동의 없이 외출할 수 없'''었으며,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여성이 이러한 악법들을 어기면 투석형을 처하게 하는 무시무시함을 보여줬다. 거기에다가 남성을 상대로도 무조건 수염을 기르게 했고 안 기르거나 면도할 경우 채찍형으로 다스리거나 최대 사형에 처하고, 머리카락을 단정치 않으면 채찍형에 처하게 하는데다가 TV와 음악, 춤도 금지시키는 등 등 좀체 이해할수 없는 짓거리를 저질렀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내에는 시크교와 사업차 체류하던 힌두교도들도 살고 있었는데 오마르는 그들에게 구별된 복식을 강요하여(물론 차별과 박해가 목적이다.) 인도와 심각한 외교 스캔들을 일으켰다. 종교적 소수자들(시아파와 시크교도, 힌두교인 등등)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시작해, 축출되기 전 시점에는 기독교와 힌두교인이 사실상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전쟁 직후라 과부들이 많았으나 오마르는 이들에게 사실상 구걸이나 매춘 외에 대부분의 직업을 봉쇄하였다. 경제정책에서 예전 정부와 다를 거 없이 무능하다보니 빈곤한 아프간의 현실을 개선하지도 못한 데다 지나친 문화업악과 폭정으로 오마르에 환멸을 느낀 아프간 인민들은 오마르에게서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록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영웅 중 한 명이긴 했으나 궁극적으로 그가 집권한 뒤의 현실은 소련 시절만도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도회지에서는 원래 이슬람권으로서는 드물게 높은 권리를 누렸다. 불행히도 현재는 오히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보다 그나마 나은 삶을 살고 있으니 격세지감 그 자체다.
탈레반의 시대착오적 광신도적 만행이 이어지자 국제사회의 규탄이 이리저리 이어졌지만, 이 작자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끝내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뿌리치고 바미안 석불까지 폭파시켜 온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쯤 되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관대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전자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왕조 및 수니파 왕조 문화재를 파괴하는 짓은 안 했으며, 후자 또한 오스만 제국 시절에 모스크였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되돌리는 정도에 그쳤을 뿐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는 않았고 그 외에 터키에 남아있는 기독교·유대교·비수니파 이슬람 문화재 또한 절대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말년
나중에는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그를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분노한 미국이 개입하면서 축출되었고, 정권은 종말을 맞이했다. 쫓겨난 오마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는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이후 오마르는 공식적인 활동을 일체 하지 않았으며, 사실상 실종된 상황이나 다름 없었을 정도였다. 나중에 측근이 밝힌 바 그가 파키스탄에서 잠적하고 있다고 했으나,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므로 사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던 2011년 그가 갑자기 사망했다고 했으나,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결국 오마르의 근황에 대해서는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5년 아프간 대통령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이미 2013년에 사망했다고 하면서, 결국 이미 저 세상으로 갔음이 밝혀졌다.
6. 기타
한겨레 신문 정문태 기자가 1999년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직접 인터뷰했는데 정문태는 나중에 책을 쓰며 회고하길, 제대로 미친 놈이라고 분노어리게 서술했다. 그야말로 이슬람이 최고며 샤리아는 죽어도 지켜야하며 안 지키면 죽이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헛소리를 해대는 미친 광신도였다. 난 무슬림이 아니지만 내가 아는 쿠란을 이야기하며 반론하자 제대로 대꾸도 못하더라, 결국 넌 무슬림도 아닌데 왜 설교냐(...)라며 홀로 발광하기에 이 작자랑 제대로 인터뷰라는 걸 할 가치도 없더라라고 혐오감을 느끼며 나왔다.
그리고 병사하기 전까지 미군기지 근처에서 살았으며, 미군이 은신처를 뒤지고도 체포에 실패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선풍기는 서구의 사악한 발명품이라며 쓰지 못하게 하고선 자기 집에는 에어컨과 하이파이 스테레오 오디오 시스템(...)[2] 을 갖다놓고, 자기 집 마당 축사에는 선풍기를 설치해놓았다. 탈레반 정권이 전복된 직후 북부동맹 병사가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마르는 국민들에게 선풍기를 못 쓰게 해놓고 정작 자기 소들한테는 축사에 선풍기를 달아줬습니다. 우리한테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했습니다.”라며 분노하는 모습이 나왔다.
물론 선풍기를 금지한다는 황당한 율법해석이 제대로 된 근거가 있을리는 없고...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발전소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던 상황이라 사람들이 '더운데 선풍기 돌릴 전기도 없다니'라고 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 정부가 '''"불만을 가지거나 표현할 생각조차 하지마라."'''라는 뜻에서 '선풍기는 사탄의 작품'이라는 억지 파트와를 발표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놓고 정작 탈레반 유력자들 사는 집에는 일제 가전제품[3] 을 잔뜩 갖다놓고 비싼 돈 주고 자가 발전기를 돌린 것은 물론이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취미로 샹들리에 수집이 있었는데, 본인은 오두막집에 검소하게 산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오마르가 살던 저택에는 샹들리에가 수십개가 넘게 걸려 있었다 한다. 훗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무아트 알 카사스베를 처참하게 불태워 죽인 것처럼[4] ,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내로남불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람 후배들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은 마찬가지인지 탈레반 간부들이 카타르에서 호화저택을 짓고 사는 모습이 목격되어 비판을 받았다.#
[1] 페르시아어 '몰라(ملا, mollâ)'는 이슬람교에서 교리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키는 칭호이다. 아랍어로는 '물라(مُلَّا, mullā)'라고 한다.[2] 정작 아프간 국민들에게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 자체를 금지시켰다.[3] 2000년도 초반까지는 일제 가전제품이 세계 각지에서 부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현재는 알다시피 삼성,LG 등 한국제가 그 위치로 올라왔지만.[4] 이슬람교에서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건 엄청난 금기사항이다.